소설리스트

〈 7화 〉이건 진짜 어질어질한데? (7/84)



〈 7화 〉이건 진짜 어질어질한데?

“많이 무거울 텐데,정말로 괜찮겠나?”

“네. 이 정도야, 뭐. 오히려 가벼운데요?”

나는 지금 늑대의 모피를 어깨에 얹은  도시로 향하고 있었다.

리오테르가 들어주겠다고 했지만, 내가 거절했다. 스탯이 올라, 이 정도는 충분했기 때문이다.

‘안내해주고 지켜주고, 해제까지 해줬는데 들어달라고까지 한다니.’

버스도 어느 정도 것 타야 한다. 좋은 인상을 남기려면, 이런 사소한 일이라도 맡아야 했다.

“콰앙 민슥, 넌 보기보다 힘이 강하구나.”

휘청-

“어어, 괜찮은 것이냐? 무거운 거라면, 지금이라도 나한테 줘도 괜찮다.”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이름 때문에 하마터면, 앞으로 넘어질 뻔했다.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네.’

이름을 정정해주려고 했는데, 이미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인지, 계속 저렇게 불렀다.

“그래도….”

“제 걱정보다는, 도시로 돌아가서, 어느 여관에서마실지나 생각해봐요.”

“여관? 마신다니? 그게 무슨 소리인 것이냐?”

“모피 해제해주는 대신, 술이나 사달라고 하셨잖아요.”

“아. 아아, 그랬었지…”

“지금 그 반응 뭐에요. 저는 누나랑 술 마실 생각에 잔뜩 들떠 있었는데, 설마 그냥 해본 말이었어요?”

내가 실망했다는 투로 말하자,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그, 그럴 리가 있겠나! 이미 머릿속에 어느 여관으로갈지, 어떤 음식을 먹으며 술을 마실지까지, 전부 생각해놓았다!”

“흐응. 그래요?”

“그래!”

딱 봐도 허세를 부리고 있다는 게 느껴졌으나, 일단 귀여우니까 봐줘야겠다.

“그러면, 기대하고 있을게요?”

“그,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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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구나, 미쳤어!’

리오테르는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멍청한 자식! 거기서 거짓말을 하면 어떡하겠다는 거냐!’

그래, 원래 민슥이 말했던 대로, 술을 마시자는 소리는 흘리듯이  말이 맞았다.

그야, 그와 같은 미남이 자신과 마실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으니까.

애초부터, 모피를 해제해주는 것에 대해 부담감을 가지지 말라는 배려였다. 아마, 다른 남자였다면, 그냥 흘려들었을 것이다.

‘근데, 그걸 진심으로 받아들이다니!’

게다가, 모두 생각해두었다고 거짓말까지 해버렸다. 이제 더 이상돌이킬 수 없었다.

리오테르는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봤다.

넓고 듬직한 등, 어깨에는 여러 장의 모피가 얹어져 있었다. 무거울 만도 했는데, 그는 딱히 내색하지 않았다.

그의 찰랑거리는 흑발을보고 있자니, 처음 만났던 때가 떠올랐다.

마차 호위를 하던 도중, 고블린 무리를 직면했다.

아이언 등급의 약한놈들이긴 했으나, 약 네  이상 차이나는 수적 열세는, 힘의 차이마저 짓누를 정도였다.

‘게다가, 나는고작 브론즈급 모험가니까.’

최선을 다해 싸웠으나, 점점 밀렸다. 결국, 고블린의 공격에 쓰러졌고,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화살이 날아와 놈의 목을 맞췄다.

‘당황스러웠지.’

고블린 아처가 잘못 사격한 줄 알았다. 하지만, 화살은 계속해서 날아와 고블린을 공격했고, 끝끝내에는 네 마리가 넘는 고블린을 처치했다.

급박한 상황에서 벗어난 건 다행이었으나 한편으로는 걱정이었다.

거리가  멀었는데도 불구하고, 화살을 모두 적중시켰다.  정도 솜씨라면 상당한 실력자라고 생각했으니까.

‘만약, 그런 사람이 산과 숲을 그림자 삼아, 우리를 공격했다면….’

마차는 고사하고, 자신의 목숨조차 보장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예상외로 순순히 나와, 정체를 드러났다.

그것도 놀라웠지만, 더 놀란건 여자가 아닌, 남자였다는 것이다.

그는 마차를 도와준 것에 대해 대가를 바라지 않았고, 고블린 시체를 치우는 것까지 도와줬다.

요즘 남자 같지 않은, 호쾌하면서도 밝은 성격이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루시가 붙잡고 있는 바람에, 거의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아쉬움에 도시에서라도 붙잡아 잠깐 대화를 나눴다.



‘설마, 거기서 손을 잡을 줄이야.’

리오테르, 그녀의 인생에서 남자와 손을 잡는 건 처음이 아니었다. 아무리 모솔 처녀라고 해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친근하게! 웃으면서! 손을 잡는 건 처음이었다.

그에게 밝힐 순 없었지만, 손을 잡은 그 순간. 그녀는 그와 사귀는 것부터 시작해, 결혼까지 모두 생각해버렸다.

‘조금만  오래 잡고 있었다면, 노년까지 생각할 뻔 했다.’

남자에게 받는, 오랜만의 온기와 친절함이라서 그런가? 그녀는, 민석에게 첫눈에 반했다.

그 짧은 사이에말이다.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었다. 그녀의 성격 때문에, 남자와는 사이가 좋아질 수가 없었으니까. 그녀도 이게 문제라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고치려고 했지만, 부끄러움 때문인지 항상 모질게 대했고, 그 결과는 항상 좋지 않았다.

‘내 성격을 받아 줄 남자는  세상에 없을 거라고. 그러니 평생 처녀로 살아야 할 운명이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이럴 수가 자신의 냉담한 성격을 받아줄 뿐만 아니라, 먼저 다가와 친근하게 굴어주는남자가 눈앞에 떡하니 나타난 것이다.

심지어, 그 남자가 자신을 구해주기까지 했으니, 어떻게 사랑에 안 빠질 수 있겠나?

그녀는 이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남자가 마지막 기회라고도 생각했다. 민슥을 놓치면, 정말로 평생을 처녀로 살아야  것만 같았다.

‘그러니, 반드시 붙잡아야 한다. 붙잡아야 하는데…’

남자를 대체 어떻게 잡아야 한단 말인가? 인생 살면서 최대 스킨십이 어제  악수가 최대였따.

[남자를 다루는 데에는  고민이필요 없어. 그냥, 눕혀서 따먹으면 그걸로 끝! 기정사실을 만들라고!]

예전에 동료 모험가가 그런 소리를 하긴 했는데, 대체 무슨 낯짝으로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잘못해서 신고를 한다면? 그러면, 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민석과는 영원히 바이바이였다.

‘강제로 하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기왕이면 연인 사이로까지 발전되고 싶다.’

문제는 대체 어떻게 그런 과정까지 이끌고 가느냐인데.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응? 뭐라고 했어요, 누나?”

무심코 혼잣말이 나갔는지, 민석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흑발에 고급스러운 외모. 잘 생겼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남자였다.

“아, 아니다.”

저런남자를 대체 어떻게 공략해야 할까?

도시로 돌아가는 길, 그녀의 고민은 점점 더 깊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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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있다, 밤에 실프의 여관에서 보도록 하지.”

“네, 알겠어요. 좀 이따 봐요, 기대할게요!”

“아, 알겠다! 기대해라!”

리오테르는 호기롭게 말을 남기고는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여신 : 귀엽네.]

“그러니까요.”

여자의 허세가 이렇게나 귀여워 보이다니, 저쪽 세계에서 남자의 허세가 이런 식으로 보일까?

‘그건 아닐 거 같은데….’

아직 밤이 되려면, 꽤 오랜 시간이 남아 있었으니, 일단 퀘스트부터 완료해야겠다. 모피를 다시 얹고는 길드 건물로 갔다.

“여기 약초요.”

약초를 담은 자루를 내밀자, 남자가 잠시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약초50개. 확인했습니다. 퀘스트 조건은 만족하셨는데, 같이 가신 리오테르 님은 어디 계십니까?”

“누나는 할 일이 있다고 해서. 제가 혼자서 처리하려고 왔어요.”

“누, 누나요?”

“아.”

이거 말실수한 건가?

“그 미친년, 반나절 사이에 호칭 변한 거 봐라. 방금 들었냐? 누나란다, 누나.”

“아, 존나 부럽네. 무슨 그런 년한테 저렇게 친근하게 불러주냐. 내가  잘해 줄 자신 있는데.”

‘허허.’

말실수한 게 맞는 거 같다. 뭐, 어쩌겠는가. 이미 한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는데.

“30쿠퍼 여기 있습니다.”

나를 배려하는 건지, 접수원이 일을 빠르게 처리했다.

‘약초 50개 캐고 30쿠퍼라. 이게 맞나?’

이쪽 시세를 잘 모르니, 이게 맞는지 잘 모르겠다. 일단 돈을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모피를 좀 파려 하는데, 혹시 어디에 팔아야 하는지 아시나요?”

“모피를 보아 하니, 퀘스트 도중에 포레스트 울프를 마주치셨나 보군요.”

“네.”

“그거라면 저희 길드에서 매입을 하고 있습니다만, 아는 상회가 있으시다면 거기에서 파셔도 좋습니다. 아, 그래도. 각 상회마다 취급하는 게 다르고, 시세도 다르니, 잘 알아보시는 게 좋겠죠.”

아는 상회라면 있었다.

‘루시.’

어느 정도 시세를 받는진 몰라도, 아마 섹스한 ‘정’도 있는데, 매몰차게 내치진 않을 것이다.

‘모른 척하면 강간했다고 신고하지, 뭐.’

딱 보니 남자 인권이 더 높게 취급되는세상인 거 같은데, 이런 일 쪽에서는 내가 더 유리했다.

“혹시, 금빛 상회라고 아시나요?”

“금빛 상회요?”

남자의 눈이 커졌다.

“네.”

“이 근방에선 꽤 유명한 상회죠.”

“아, 그래요?”

“네. 규모도 상당히  데다가, 매입하지 않는 물건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특이한 건, 아직도 가끔 회장이 직접 두 발로 뛰면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규모가 꽤 커졌는데도, 직접 일을 한다는  대단한 거긴 했다.

‘미련한 거일 수도 있지만.’

 세계에서는 그게 긍정적으로 비치는 듯했다.

“금빛 상회 건물은 어디에 있나요?”

“길드에서 나와서, 위로 쭉 가셔서, 상업지구로 가시면 바로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정중앙에 있는 데다가, 건물 자체가 워낙 크거든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앞날에 좋은 일만 있으시길.”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밖으로 나왔다.

‘위로 쭉 가라?’

모피를 들고는 길을 따라 쭉 올라갔다. 거주 지구를 지나 상업 지구에 들어서자, 맛있는 냄새가 났다.

‘저 건물인가?’

상업 지구 안으로  들어가자, 정중앙에 금빛의 건물 한 채가 떡하니 자리해 있었다. 길드 건물보다 훨씬 높고 커다랬다.

“이렇게 높은 걸 대체 어떻게 지은 거지.”

5층은 족히  보이는 건물. 과학도 없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이런 건물을 지은 걸까?

[여신 : 마법이지.]

“마법.”

한마디로 정리가 된다는 게 참 웃겼다. 그건 저쪽도 똑같긴 하지만.

“과학이지, 음음.”

모피를 들고는 그대로 금빛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넓으면서도 고급스러운 내부. 위를 올려다보니, 나선형 계단과 함께 천장에 거대한 샹들리에가 빛나고 있었다. 층 전체를 관통해서 볼 수 있다는  신기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창구로 다가가자, 잘생긴 접수원이 웃으며 말했다.

“모피를 좀 파려고 하는데요.”

“혹시, 계약한 담당자가 따로 있으신가요?”

“담당자 같은  없는데요. 아, 아는 사람이라면 상회에 있긴 합니다.”

“성함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실  있으십니까?”

“루시라고 들었습니다.”

“루…시요?”

“네네. 금발에다가 조금 그 흉부가 많이 튀어나오신 분인데. 혹시, 아시나요?”

“알죠. 아니,모를 수가 없죠.”

상회 내에서 유명한 사람인가 보다.

‘마차 규모는 그리 크지도 않던데.’

그래도, 강간한 사람이 유명하면, 뜯어먹을 게 많다는 소리니까.

“그러면, 지금 만나볼 수 있을까요? 도움이 필요하면 찾아오라고 해서요.”

“루시 님이랑은 무슨 사이이신지,   있을까요?”

“어….”

[여신 : 섹스한 사이죠. 야스, 야스!]

마음 같아서는 나도 저렇게 대답하고 싶은데, 그건 좀 그랬다. ‘님’까지 붙여서 부르는  보니, 평판도 꽤 있는  같고.

“제가 그분을 도와드렸다고 해야 하나. 저한테 빚진 게 있으세요.”

“루시 님이요.”

“네네.”

“아, 알겠습니다. 그러면, 일단 연락을 넣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앉아서 기다려주시겠어요?”

“넵.”

근처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대체 어느 정도 위치이길래, 저러는 걸까요?”

태도만 보면 상당히 높아 보였다.

[여신 : 글쎄다~?]

여신은 모두 알고 있지만, 모른 척했다.

“허허.”

그렇게 앉아 있을 때, 누군가 내 앞에 다가왔다. 고개를 드니, 갑옷을 입은 여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투구 때문에 얼굴은  보였다.

“콰앙 민슥님 되십니까?”

“아, 네.”

“루시 님께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모피를 들어 드릴까요?”

“괜찮아요.”

“그러면 따라오시죠.”

자리에서 일어나 기사를 따라갔다. 그녀는 계단을 쭉 오르고 올랐다.

‘자리와 높이는 사람의 권력을 대변해준다던데.’

3층을 넘어선 걸 보면, 정말로 유명한 듯했다. 하지만, 곧 4층마저 넘어가고 5층까지 도달하자.난 무언가 잘못됐다는  깨달았다.

5층에는 단 하나의 문이 자리  있었다.

“안에 들어가면 루시 님께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그러면, 좋은 시간 되십시오.”

고개를 꾸벅 숙이는데,  모습이 무척이나 절도 있었다.

‘대체 뭐하는 년이지.’

거대한 건물에서  꼭대기에 방이 있는 여자라니.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문을 열었다.

“어, 왔네?”

찰랑이는 금발이 바람에 의해 약하게 휘날렸다. 고급스러운 집무실 안, 루시는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책상 앞에는 ‘회장’이라는 직함이 떡하니 놓여 있었다.

“허허.”



상황이 참 어질어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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