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리오테르 눈나
“리오테르 씨, 화 좀 풀어요. 네에?”
길드에서 너무 놀린 탓인지, 그녀는 약초를 채집하러 가면서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이러면 곤란한데.’
이게 잠시 삐진 거라면 괜찮았다. 하지만, 이번 퀘스트를 마치고, 그녀가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할 거 같다고 말한다면, 그건 매우 곤란했다.
아직 그렇다 할 지식도 못 얻은 데다가, 혼자서 헤딩하면서 다니기에는 이 세계가 그리 만만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이랑 파티하자니, 그건 또 그렇고.’
정말로 숲으로 데려가서, 강간할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아무리, 스탯이 올랐다고 해도, 그녀들이 나를 강간한다면 나는 저항조차 못할 것이다.
‘아직, 여자 평균 스탯보다도 낮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리오테르는 안전한 울타리였다. 그리 높진 않지만, 브론즈급 모험가이며, 믿음직했다.
‘생면부지의 모험가를, 단순히 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도와주는 것만 해도 그래.’
게다가, 미인이기까지 한데, 마음에 들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럼, 어떻게 기분을 풀어줘야 하냐인데.’
성별을 바꿔, 리오테르가 남자고, 내가 여자라고 생각해보자, 그랬을 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조심스레 그녀 옆으로 다가갔다. 다행히, 이전보다는 마음이 좀 풀렸는지, 아까처럼 피하진 않았다.
“누나, 화났어요?”
이때까지 묵묵히 걷고 있던 그녀의 동공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걸음걸이도 조금 늦춰졌다.
“놀려서 미안해요, 네? 누나가 너무 귀여워서 그랬어요. 응?”
[여신 : 어우 씹.]
[여신 : 토할 거 같네.]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근데, 어쩌겠나. 애교만큼 효율적인 것도 없을 텐데.
“……내가 귀엽다고?”
실제로, 이렇게 반응이 오지 않나?
“네. 외모만 보면, 약간 차가운 미인인데. 놀리니까, 얼굴이 빨개지면서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잖아요.”
그 말에 다시 얼굴이 붉어지는 게 보였다.
빈말은 아니었다. 정말로 귀엽다고생각하고 있으니까. 아마, 이런 걸 보고 갭 모에라고 하는 거겠지.
“이때까지 놀려서 미안해요. 그러니까, 화 풀어요. 누나. 네? 네네?”
내가 얼굴을 들이밀며 웃으며 말하자,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아, 알겠다. 그러니까. 그만 좀 다가와라.”
“알겠어요, 누나. 아, 막상 말한 김에 앞으로 계속 누나라고 불러도 돼요?”
“마, 마음대로 해도 좋다.”
그렇게 말하지만,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게, 누나라는 호칭이 마음에 든 듯했다.
‘남자로 치면, 귀여운 여자애가 오빠라고 부르는 거랑 비슷한 건가.’
내가 귀여운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어쨌든 화가 풀렸으면 그걸로 만족이었다. 호칭에도 발전이 있었고.
“이곳 주변이 다인 약초가 주로 자라는 곳이다.”
30분 정도 걸었을 때, 약초가 있다는 곳에 도착했다.
“다른 종류의 약초도 이곳을 중심으로 자라고 있으니, 위치를 기억해두면 도움이 될 거다.”
“알겠어요.”
“약초는 어떻게 캐는지 알고 있나?”
“어… 손으로 뽑아야 되는 건 아니죠?”
“손으로 뽑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약초는 뿌리 약초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 뽑을 것 역시 뿌리 약초고. 그래서.”
그녀가 품을 뒤지더니, 괭이를 꺼냈다.
“이런 도구가 필요하다. 지금의 너는 없을 테니, 일단 내 예비용을 하나 빌려주겠다.”
“감사합니다.”
“약초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지금 우리가 캐는 건, 뿌리를 깊게 내리지 않으니, 채취가 어렵지 않다. 잘 봐라.”
그녀는 약초로 다가가더니, 아래를 파서 뿌리를 캐냈다.
“와.”
무슨 슥-하고 삭-하고 탁! 하니까 약초 하나를 캐는 게 끝났다.
“이렇게 하면 된다. 할 수 있겠나?”
“한 번 해볼게요.”
그녀가 보여줬던 대로 땅을 판 다음, 약초 뿌리를 조심스레 캤다. 그리고 뽑자, 온전하게 뿌리가 올라왔다.
“이렇게 하면 되나요?”
“잘했다. 역시, 자연과 친근한 자연인답게 아주 익숙하군.”
평생 자연과는 먼 도시에서 살아왔는데, 익숙하기는 무슨. 그냥 캐기 쉬워서 그런 것이다.
“그럼, 내가 오른쪽을 맡을 테니, 네가 왼쪽에 있는 것들을 캐라.”
“네.”
바닥에 쭈그려 앉아, 약초를 하나하나 캤다.
“허허.”
기껏 판타지 세계에 왔는데, 약초나 캐고 있다니.
[여신 : 이것이 판타지다! 절망편!]
그래, 딱 채팅과 같은 기분이었다.
역시, 게임은 게임이고, 소설은 소설이다. 판타지 세계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니, 비슷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 어제는 어떻게 됐나?”
그렇게 묵묵히 뿌리를 캐고 있을 때, 리오테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보기엔 묵묵해 보였는데, 의외로 조용한 분위기를 못 참는 듯했다.
“어제라면?”
“루시가 부른 여관에 가서 술을 마셨나?”
“아. 그거요. 네, 마셨어요. 도시의 음식은 엄청 맛있더라고요.”
“그런가….”
그녀의 목소리가 약간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혹시, 그 뒤에는 아무런 일도 없었나? 필름이 끊겼다던가, 루시가 이상한 짓을 했다던가….”
“이상한 짓이 뭔데요?”
이미 알고 있었지만, 굳이 물었다. 리오테르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 그게… 키, 키스라던가.”
섹스도 아니고 키스라니. 생각보다 훨씬 순진한 거 같았다. 아니면, 부끄러워서 순화한 건가?
“에이, 그런 거 안 했어요.”
키스 빼고 다 했지만, 사실이었다. 말 그대로 키스는 안 했으니까.
“정말인가?”
“네. 처음 마셔보는 거라서 술은 좀 많이 마시긴 했는데, 필름이 끊기진 않았어요. 루시도 일이 있다고 해서 먼저 갔거든요.”
대부분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왜요?”
“남녀 둘이서 술을 마시는데, 아무런 일도 없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게다가, 그녀는 척 보기에 뭔가 굶주린 듯한 느낌이었다.”
확실히, 남자한테 술까지 먹인 다음, 따먹은 걸 보면 그렇긴 했다. 말투나, 행동도 그렇고.
‘근데, 그걸 보는 것만으로 알아차리다니.’
이게 여자의 감이라는 걸까? 아니, 여기선 남자의 감인가? 잘 모르겠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니, 다행이군.”
진심으로 안도하는듯한 모습에, 약간 죄책감이 들긴 했다.
“그러면 말이다….”
크르르-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할때, 어디선가 낮은 울음소리가들려왔다. 리오테르는 손에 들고 있던 괭이를 던지더니, 재빨리 검을 뽑았다.
“조심해라, 콰앙 민슥!”
‘돌아가면, 이름 정정해줘야겠다.’
분명, 긴장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름을 들으니 힘이 다 빠졌다.
나도 손에 들고 있던 괭이를 내려놓고는 등에 매고 있던 석궁을 손에 들었다.
‘미리 장전해두길 잘했네.’
곧, 수풀을 헤치고 늑대처럼 보이는 짐승이 뛰쳐나와,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 밀었다.
“포레스트 울프다!”
그녀가 재빨리 달려가, 늑대를 베어냈다.
촤아악-!
깔끔한 실력이었다. 역시, 브론즈 모험가는 괜히 다는 게 아닌가 보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화살은 아껴둬라, 콰앙 민슥!”
“알겠어요!”
리오테르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늑대들을 하나하나 모두 베어냈다. 마치, 자신을 넘어설 수 없다는 듯이.
컹컹!
하지만, 숲이라는 장소가, 한쪽만 막으면 되는, 그런 형편 좋은 장소가 아니었다. 뒤에서 짖는 소리와 함께 또 다른 무리가 등장했다. 세 마리의 늑대.
“이런 뒤에도 있었나!”
늑대들은 망설임 없이 내게 달려들었다.
“어흑, 마이깟!”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초록빛 털의 늑대가 내게 달려드는 모습은 꽤 공포스러웠다.
[여신님이 미션을 등록하였습니다!]
[늑대 3마리를 혼자서 처리하기.]
[제한 시간 : 5분.]
[보상 : ‘원하는 능력치 +1’]
[수락/거절]
‘미션?’
퀘스트와 비슷한 거 같았다.
“아, 당근 빠따죠 쉬바!”
수락하자, 다시 늑대의 모습이 드러났다. 다리가 후들거리기도 잠시, 곧바로 떨림이 잦아들었다.
‘침착함!’
진짜 도움 되는 특성이었다.
나는 침착하게 석궁을 들어, 달려오는 늑대의 머리를 조준했다.
투웅- 콱!
화살이 깔끔하게 머리를 꿰뚫었다.
‘등에서 화살꺼낼 시간 없어.’
난 곧바로석궁을 바닥으로 향하게 한 다음, 발로 밟아 줄을 잡아당겼다.
이전보다 힘이 올라서인지, 훨씬 수월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오른다면, 팔 힘만으로도 장전이 가능할 것 같았다.
마력 화살을 만들어 낸 다음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콱!
바로 뒤에 있던 늑대도 화살에 머리를 맞아 바닥을 뒹굴었다.
‘나이스!’
하지만, 아직 한 마리가 더 남아 있었다. 놈과 나의 거리는 50m 남짓. 장전하기도 전에 공격할 것이다.
“덤벼, 이 새끼야!”
석궁을 내려놓고는 허리춤에 착용하고 있던 단검을 뽑았다. 근접전으로 들어선 것이다.
크르르륵!
침착하게 달려오는 늑대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놈이 몸을 바짝 숙이는 순간.
화악-!
오른쪽으로 몸을 확 틀었다. 늑대의 신형이 직선을 향해 뛰어올랐으나, 난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날카로운 이빨이 허공을 헤맸다.
“뒤져!”
푹!
역수로 쥔 단검을 목덜미에 박아 넣었다. 놈이 그대로 추락하더니, 바닥에 축 늘어졌다.
“허억… 허억….”
[여신 : 와, 이걸 성공하네.]
[미션 성공!]
[투자하길 원하는 능력치를 선택해주세요.]
난 망설임 없이 힘을 선택했다.
[힘 : 7]
이걸로 이제, 여자들의 평균이라는 스탯이 만들어졌다. 조금이라도 더 강해졌겠지.
촤악!
그녀가 마지막 늑대마저 베어내고는, 곧바로 나에게 달려왔다
“괜찮나, 콰앙 민슥!”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거렸는데,이름을 듣자마자 곧바로 긴장이 확 풀리는 게 느껴졌다.
‘아, 진짜 이름 때문에 힘 빠지네.’
완전 웃음벨이었다.
“괜찮나? 어디 다친 곳은 없나?”
“네, 괜찮아요.”
아직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는데,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미안하다, 내가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뒤에서 온 건데 어쩔 수 없죠. 그런데, 원래 이 주변에서 이런 놈들이 나오는 건가요?”
“포레스트 울프는 숲에서 자주는 아니어도 흔히 볼 수 있는 짐승이긴 하다. 아마, 단일 개체로만 본다면 아이언 급이겠지. 하지만, 무리를 지어 다니면 브론즈급까지 올라간다.”
“그럼, 그냥 재수가 없었다는 거네요.”
아이언급 의뢰에서, 브론즈급을 조우하다니. 리오테르가 아니었다면 아마 아무것도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뭐, 그래도. 포레스트 울프의 모피는 하나당 3쿠퍼는 받는다. 상태가 좋다면, 5쿠퍼까지도 가격이 올라가지. 내건 2쿠퍼도 받을까 말까지만, 민슥, 너의 거라면 괜찮은 가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아, 근데. 저는 동물 해체를 해본 적이 없는데.”
지식이 없는 사람이 해체를 하면, 모피가 상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괜찮다. 내가 할 줄 아니까. 게다가, 원래 이런 건 여자가 하는 거 아니겠나?”
“그래도….”
“정 미안하면 술이라도 사주면 된다.”
“알겠어요. 고마워요, 누나.”
내가 웃으며 말하자, 그녀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럼, 나는 해제를 하고 있을 테니, 잠시 쉬고 있어라.”
“넹.”
주변에 있는 나무를 등받이 삼아 앉아, 해제 장면을 구경했다.
촤아악-
리오테르는 단검으로 능숙하게 모피를 능숙하게 떼어냈다.
‘이게 걸 크러쉬인가 뭔가하는 그거냐?’
확실히, 망설임 없이 해제하는 모습이 믿음직하고 멋있었다. 그런 리오테르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아까 전의 전투가 다시 떠올랐다.
‘멋있었지.’
기사처럼 믿음직하게 앞을 지켜주는 그녀의 모습은 무척이나 멋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나도 그렇게 믿음직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런 소망도 들었다.
이세계에 오고나서 아무런 목표도, 목적도 없었는데, 조금이나마 마음이 동한 것이다.
‘아무리, 남자가 부양받는 세계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조금 더 강해질 필요가 있지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