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엿보기 구멍
“어디요?”
나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여신 : 뒤에서 아주 뚫어져라 보고 있는데 안 보여?]
느끼기 쉬우면서도, 느끼기 어려운 게 시선이었다.
[여신 : 대놓고 돌리면 눈치채니까, 자연스럽게 돌려.]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뒤로 천천히 몸을 돌렸다.
[여신 : 저기, 벽 중간에 있는 무늬 사이에 좀 이질적이게 구멍 하나가 뚫려 있잖아. 안 보여?]
여신의 안내에 따라 시선을 옮기자, 정말로 구멍 같은 게 하나 나 있었다. 아주 교묘하게 무늬와 섞여 있어, 말하지 않았다면 절대 몰랐을 거 같았다.
구멍 너머, 녹색빛 눈이 노골적으로 내 몸을 바라봤다. 그 시선이 어찌나 끈적한지.
‘이게 진짜 시선 강간인가?’
정말로 시선만으로 범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눈동자 색깔을 보아하니, 주인장인거 같은데. 5쿠퍼를 깎아 준 이유가 다 있었던 것이다.
‘이래서,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거구나.’
근데, 생각한 만큼 불쾌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약간 흥분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여자가 내 몸을 보며 발정한다니?
“하아, 하아.”
얕게 들려오는 숨소리에, 왠지 모르게 장난끼가 동했다.
‘한 번 놀려볼까?’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몸을 씻었다. 생각보다 훨씬 시설이나 물건이 좋았다.
“흐흐흠~”
머리를 감고는 손에 거품을 냈다. 그런 다음, 내 몸을 아주 천천히 닦았다. 마치, 유혹하듯이.
그녀의 시선은 내 손이 향하는 곳을 따라 움직였다. 내가 어깨를 닦으면 어깨에, 가슴을 닦으면 가슴에, 그리고 자지를 닦으면 자지에.
“하아… 하아….”
특히나, 아래를 닦을 때에는 거친 숨소리가 대놓고 들려왔다.
‘다 들리는데.’
흥분해서 뇌가 이성적인판단을 못하나 보다. 아마, 그녀는 자기 입에서 그렇게 거친 숨소리 나오는 것조차 모를 것이다.
찌걱찌걱-
온몸이 거품으로 뒤덮였을 때쯤, 끈적한 물소리가 목욕탕에 울려 퍼졌다. 자위를 시작한 것이다.
“헤엑… 하아… 헤윽… 하아….”
신음을 참는다고 하지만, 이미 대놓고 새어 나오고 있었다.
노골적인 신음과 애액 소리. 여자가 날 보고 흥분해서 자위하고 있는데, 어떻게 발기를 안 할 수가 있겠는가?
자지가 빠르게 부풀어 올랐다. 그러자, 구멍 너머의 눈이 부릅 떠졌다. 마치, 지금 장면을 하나하나 새기겠다는 듯이.
“하응! 으응! 하아! 헤에엑!”
찔걱찔걱찔걱찔걱.
발기한 자지에 시선이 몰리는 듯한 느낌과 함께 자위 소리가 더욱더 격해졌다.
찔꺽! 찔꺽! 찔꺽!
“흡! 흐읏… 흐으읏! 흐옷! 흐끄으읍……!”
자위는 끝을 향해 달려가더니 곧,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이성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는지, 마지막에는 입을 틀어막았다.
‘그래봐야, 의미는 없었지만.’
몸에 묻은 거품들을 모두 물로 씻어내고는 탈의실로 걸음을 옮겼다.
쿠당탕-!
구멍 너머에서 무언가 떨어지고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내가 가는 걸 보고 급히 움직였을 것이다.
‘찝찝하네.’
몸은 깨끗했는데, 옷이 어제 입던 거 그대로라서 조금 그랬다. 빨리 돈을 모아서 옷을 사던가 해야겠다.
옷을 입고는 밖으로 나왔다.
주인장은 들어갔을 때와 마찬가지의 모습이었는데, 얼굴이 빨갛고 숨소리가 거칠었다. 땀 때문에 머리카락이 이마에 붙어 있었는데, 그게무척이나 색정적이었다.
“목욕 잘했어요. 시설이 좋네요.”
내가 씩 웃으며 말하자, 그녀가 움찔거리더니 고개를 숙였다.
아까는 무슨 강간할 것처럼 쳐다보더니, 지금은 또 숫처녀처럼 행동했다. 아마, 부끄러운 거겠지.
“그러면, 다음에 또 올게요.”
내 말에 그녀가 침을 꿀꺽 삼켰다. 마치, 다음이 기대된다는 듯. 아마, 그녀는 또다시 내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릴 것이다.
찌걱찌걱-
여관 내부, 또다시 음란한 물소리가 울려 퍼졌다.
###
여관에서 나온 나는 곧바로 모험가 길드로 향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돈!”
이제 남은 돈은 1실버 95쿠퍼. 이걸로 얼마나 생활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딱 봐도 적은 금액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가서 리오테르가 있으면 파티를 맺자고 하고, 그게 아니면 혼자서라도 해봐야지.’
기왕이면, 그녀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름답기도 했고, 숙련자가 있으면 배우기 수월할 테니까.
[여신 : 그것보다 하루 사이에 짓궂어졌네. 원래는 이런 성격이 아니었던 거 같은데.]
“그러게요.”
아까 전에 목욕탕에서 한 행동. 그건 나조차도 놀랐다. 내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으니까.
“저보다는 여신님이 더 변태이지 않나요.”
굳이, 누군가 훔쳐보고 있다는 걸 말했어야 했을까?
[여신 : 재밌잖아.]
진짜 재미에 미친 사람, 아니 여신이었다.
[여신 : 덕분에 즐거웠다고?]
“그러면, 뭐 없습니까?”
[여신 : 어딜 날로 먹으려고.]
“쳇.”
이번에도 뭔가 보상을 받을 수 있나 했는데, 아쉬웠다.
어제 방문했던 모험가 길드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어제처럼 왁자지껄했다. 아직 낮인데, 술을 마시는 사람도 꽤 있었다.
“남자다.”
“남자가 여기엔 무슨 일로? 의뢰라도 하러 온 건가?”
“그것보다 괜찮은데? 한 번 꼬셔볼까?”
“네 와꾸로? 포기해, 이 새끼야.”
들려오는 대화를흘려들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리오테르는 없나?’
그녀의 붉은 머리칼은 눈에 띄는 색깔이라, 못 찾을 수가 없었다.
‘하긴, 거의 점심시간인데. 이미 의뢰하러 떠났겠지.’
딱 봐도 근면 성실해 보이긴 했다. 아마, 아침 일찍 의뢰를 떠났을 확률이 높지 않나.
“어? 콰앙 민슥?”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돌리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붉은 머리에 날카로운 눈매. 적당한 볼륨의 가슴과 넓은 골반. 거기에 붉은 입술이 인상적인 미인. 리오테르였다.
“어, 리오테르 씨. 안녕하세요.”
“다시 만나니 반갑구나. 그것보다 모험가 길드는 무슨 일로 온 건가? 혹시, 모험가가 되기 위해?”
나는 품에서 아이언 증표를 꺼내 보여주었다.
“모험가 등록은 어제 했어요.”
“그렇다면, 오늘은 의뢰를 하기 위해 온 건가 보군.”
“네. 정확히 말하면, 리오테르 씨랑 의뢰를 하기 위해 온 거지만요.”
그녀의 눈이 의외라는 듯 커졌다.
“나랑…말인가?”
“네. 어제 말씀하셨잖아요. 모험가가 되면 찾아오라고. 설마, 그냥 해 본 말이었나요?”
내가 짐짓 침울한 표정을 짓자, 그녀가 손사래를 쳤다.
“그, 그런 게 아니다. 단지, 남자 모험가가 나한테 먼저 찾아와서 의뢰를 함께하자고 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서, 당황했을 뿐이다.”
“처음이라고요?”
“그래.”
“왜요? 이렇게 예쁘신데, 남자들이 줄을 서지않나요?”
그녀가 얼굴을 붉히더니 고개를 저었다.
“거짓말 하지 마라.”
“진짜인데.”
“그, 그래. 일단, 이 이야기는 넘어가겠다. 그것보다 정말로 나와 의뢰를 하러 온 게 맞나?”
“네. 기왕이면, 안면을 튼 사람과 함께 하는 게 좋잖아요. 게다가, 리오테르 씨는 믿음직해 보이고.”
찰나였으나,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살짝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빈말이라도 고맙다. 그러면, 곧 바로 퀘스트를 수주하러 가는 게 좋겠군.”
퀘스트!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단어였다. 뭔가 게임 같기도 했고, 진짜 판타지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니까.
‘이미 판타지 같은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나긴 했지만.’
“일단, 퀘스트와 의뢰의 차이는 알고 있나?”
“아니요.”
“퀘스트는 길드릍 통해 받을 수 있고, 의뢰는 게시판을 통해 받을 수 있다.”
“무슨 차이점이 있나요?”
“퀘스트는 수수료 때문에 보수가 살짝 줄어드는 대신, 신뢰성이 높다. 사기먹을 일이적다는 거지. 그에 비해 의뢰는 수수료가 거의 없는 대신, 신뢰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잘못하면 의뢰만 들어주고 사기를 먹을 수도 있겠네요.”
“그래, 심하면 물건만 받고 죽이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신뢰성은 어떻게 판단하나요?”
“그 사람의 직업이나 과거 이력 같은 것들이 참고된다. 그게 충족이 되면 길드에 퀘스트를 낼수 있지.”
대출 시스템과 비슷한 듯했다.
“근데, 그러면 의뢰자 입장에선 퀘스트보다는 의뢰가 낫지 않나요?”
“뭐, 그렇긴 하지만. 그들 입장에서도 의뢰는 도박일 수 있다. 생판 모르는, 이상한 사람이 의뢰를 받을 수 있으니까. 그에 비해, 퀘스트는 길드에서 적합한 사람을 찾아 추천해주는 거니, 달성률이 높지.”
이리저리 장단점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 외에도 길드에서 따로 맡기는 특별 의뢰나, 지명 받아서 할 수 있는 지명 의뢰가 있으나. 우리와 같이 낮은 등급의 모험가들에겐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다.”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그러면, 우리는 퀘스트를 받나요, 의뢰를 받나요?”
“아무래도, 처음하는 일이니 퀘스트가 낫겠지. 처음부터 의뢰를 했다가 사기를 먹으면, 갑자기 의욕이 떨어질 테니까.”
“그렇네요. 그러면, 가보자~ 가보자~”
이세계에 오고 첫 퀘스트. 드디어 판타지스러운 일을 하나 했다.
“그래서, 어떤 걸 받겠나?”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아이언급이 받을 수 있는 퀘스트는 그리 많지 않았다.
[1. 약초 수집.]
[2. 마을의 밭을 갈아주세요.]
[3. 와서 집 좀 수리해주세요.]
[4. 숲의 낡은 교회 정찰.]
“허허.”
받을 수 있는 퀘스트 목록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이것밖에 없나요?”
“그러면, 아이언 급에 뭘 바랐나?”
“브론즈 급을 받으면….”
“아직 퀘스트 하나 완료하지 못한 아이언과 브론즈급 퀘스트를 함께 하라니, 너무 무모한 행동이지 않나?”
맞는 말이었다.
“비겁하게 팩트로 승부하다니, 너무 하시네요….”
내가 고개를 떨어뜨리며 말하자, 그녀가 안절부절 못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런 의미가 아니라… 나는 널 믿는데, 그게 퀘스트를 맡긴 사람들이 납득하지 않을 거라는 얘기였다.”
당연히 알고 있었다.
‘아, 재밌네.’
왜 이렇게 놀리는 게 재밌는지, 나도 내가 이런 성격인 줄 몰랐다.
“농담이에요, 농담.”
그녀가 안도하는 게 보였다.
“그러면, 약초 수집으로 할까요? 유용한 약초 지식을 얻을 수 있으면 좋을 테니까.”
“자연인인데, 약초에 대해 잘 모르나? 듣기로는 자연인은 약초와 짐승, 그리고 산길에 무척이나 해박하다고 들었는데.”
그런 설정인가 보다.
“어차피, 필요 없을 거라고, 안 알려주시더라고요.”
“그런가. 그럼, 알겠다. 약초 수집으로 하도록 하지.”
창구로 가, 퀘스트를 수주했다.
“이렇게 두 명 파티, 약초 수집으로 부탁할게요.”
접수원은 어제와 같은 근육질의 남자였다.
“등록을 하신 게 어제인데, 벌써 파티원을 구하셨군요. 그것도 남자와 파티를 거의 맺지 않는 리오테르 씨와 함께라니. 능력자이신가 봅니다.”
그 말에 나는 시선을 돌렸다. 리오테르는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으나, 귀가 약간 빨개져 있는 게 보였다.
“리오테르 씨의 앞에도 이제 봄날이찾아온 거일지도 모르겠군요.”
남자의 말에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저었다.
“그, 그런 게 아니다! 난 단지 드문 남자 모험가가 앞으로 잘 활동했으면 하는 마음에 이러는 거다! 결코, 음심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정말이에요?”
내가 짓궂게 웃으며 리오테르를 바라보자, 그녀의 얼굴이 더 빨개졌다.
“그, 그래!”
리오테르는 당당하게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이나 얼굴색 때문인지 영 미덥지는 않았지만.
“와, 리오테르 저년. 이때까지 깨끗한 척, 고귀한 척, 다 하다니, 초보 모험가한테 접근해서 작업하는 거 봐라.”
“여자는 다 똑같다니까. 안 그래?”
목소리 탓인지, 이미 시선이 몰려 있었다.
“그것보다 부럽다. 나도 저런 초보 모험가 잘 안내해줄 자신 있는데.”
“아서라, 너였으면 숲에 끌고 가서 따먹었을 거잖아.”
“뭐, 리오테르 저년이라고 다를 거 같아?”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그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
“빠, 빨리 가는 게 좋겠다!”
그녀가 내 손을 잡더니, 길드 밖으로 뛰어갔다.
“허허.”
참 재밌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