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화 〉진짜 어질어질하다, 그죠? (3/84)



〈 3화 〉진짜 어질어질하다, 그죠?

“진짜 오래 걸리네….”

거대한 벽에가슴이 웅장해지기도 잠시. 도시 내부로 들어가는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걸렸다.

‘근데, 병사들도 전부 여자네. 뭐지? 루시가 나한테 설명 안 해준 게 있나?’

여자 모험가만 있는 것도 그렇고, 여자 병사만 있는 것도 그렇고. 뭔가 역할이 뒤바뀐 듯한 느낌이었다.

‘여기, 설마….’

생각이 결론에 도달하려고 할 때쯤, 약간 허스키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근에 이교도 때문에 많이 흉흉하기 때문에 꼼꼼하게 검사하는 것이다.”

고개를 돌리자, 붉은 머리가 맨 먼저 눈에 들어왔다. 고블린과 싸울 때, 가장 용감하게 싸웠던여성이었다. 내가 도와준 사람이기도 했다.

“아까 전에는 도와줘서 고마웠다. 하마터면, 고블린따위에게 당할 뻔 했구나.”

“제가 아니라도, 누구나 그렇게 했을 텐데요. 뭐. 그러고 보니, 함께 싸운 사이인데, 제대로  대화조차 못 나눴네요.”

“네 이름은 마차 안에서 들어서 알고 있다. 콰앙 민슥이라지? 강해보이는 이름이야.”

[여신 : 콰앙 민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허허.”

이젠 정정해 줄 마음도 사라진다.

“내 이름은 리오테르라고 한다. 반갑다.”

“네, 반가워요.”

웃으며 손을 내미는데, 그녀가 흠칫하더니 조심스레 손을 잡았다. 볼이 약간 상기 된 느낌이었다.

“흠흠. 들어보니, 자연인이라고 하던데. 도시에 입성하는  처음인가?”

“네. 그렇죠. 이렇게 큰 벽은 처음 봤습니다. 저는 좁은 나무 오두막에서 자란 게 전부인데….”

딱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이렇게 큰 빌딩은 본  있어도, 벽을  적은 없고 좁은 원룸에서 자랐으니까.

“하하, 신기할 만도 하지. 마을에서 온 사람들 대부분이 리벨룸의 크기를 보며 놀라니까. 그것보다 앞으로 어떻게  생각인가? 돈은 있나?”

“아, 네. 할아버지가 5실버 정도를 남겨주고 가셨어요.”

“5실버라… 아낀다면 한 달까지도 사용할 수 있겠군. 그러면, 그 돈이 다 떨어지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루시 씨한테 들어보니, 사람들의 의뢰를 들어주며 돈을 버는, 모험가라는 직업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거나 하려고요.”

애초부터 그거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현대 지식이 있긴 한데, 학교에서 암기식 교육만 받아  나한테, 그런 걸 응용 할 능력따위 없었다.

‘게다가,  문과라고!’

“그러면, 나중에 모험가가 된다면 나에게 찾아와라.”

“리오테르 씨한테요?”

“자연인 답게 사격 솜씨가 뛰어나더군. 그 정도면 브론즈 수준의 사격 실력이야.”

저쪽 세계에서도 골드였던 내가 고작 브론즈라니? 아, 물론 게임 이야기였다.

“대단한 겁니까?”

“대단하진 않지만, 그래도 1인분은 하는 실력이라고 할 수 있지.모험가를 시작하면, 아이언에서부터 시작하니까.”

그 게임과 비슷한 등급제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뒤에서 동료를 오인 사격하는 놈들보단, 확실하게 공격을 넣을 수 있는 사격수가 훨씬 낫지. 그러니, 함께 파티 맺을 사람이없다면 부디 찾아와주길 바란다. 구해 준 보답도 하고 싶으니까.”

“알겠어요.”

이것도 인연이기도 하고, 확실히 모르는 사람보단 아는사람이 낫긴 했다.

“그러면, 나는 일이 바빠 먼저 가보도록 하겠다.”

“네, 안녕히 가세요.”

그녀가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걸음을 옮겼다.

“아, 그리고. 콰앙 민슥.”

진짜 이름을 개명하던가 해야겠다.

“네.”

“루시가 보답으로 실프의 여관에서 술과 음식을 사주기로 했다지? 오면, 방도 무상으로 빌려주기로 하고?”

“네.”

거기가 어딘지 모르지만 꽤 유명한 곳이라고 하니, 찾기 쉬울 거라고 했다.

“자연인의 윤리 관념이 어떤진 모르겠지만, 가지 않는 걸 추천한다.”

“어째서요?”

그녀가 얼굴을 붉히더니 말했다.

“흠흠, 어쨌든 가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그럼, 난 정말로 가보겠다.”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시야에서 멀어졌다.

[여신 : 여러모로 착한 여자였네.]

“그러게요.”

처음 보는 사람한테 이런저런 조언을 아끼지 않는 걸 보니, 착한 사람인 거 같았다.

[여신 : 그럼, 이제 모험가 등록을 하러 가보자.]

“이때까지 꽤 많이 웃으시던데, 뭐 보상 없습니까?”

그 말에 앞에 창이 떠올랐다.

[퀘스트 : 모험가 등록.]
[모험가 등록을 하자.]
[보상 : ‘원하는 스탯 +1’]

[여신 : 됐지?]

“아, 당근 빳다죠 쉬바!”

“뭐야, 미친 놈인가?”

내가 폴짝 뛰며 말하자, 주변 사람들이 괴상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시선을 무시하고는 모험가 길드가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네비게이션처럼 앞에 안내가 있어,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건물 외관은  전형적인 길드 건물이었다.

“딱, 입시 건물 수준이네요.”

[여신 :딱, 입시 미술 수준.]

그런 생각을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무척이나 왁자지껄했는데, 주로 여자들이 탁자 근처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창구로 가자, 흰 머리에 근육질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웃는데, 무슨 사람이라도 하나 담군 사람처럼 보였다.

“아, 저. 모험가 등록을 하려고 하는데요.”

그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 몰리는 게 느껴졌다. 신입에 대한 관심인 걸까?

“모험가 등록을 하러 오셨다고요?”

“아, 예.”

“모험가가 되려면 최소한의 자격 요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조건이 뭔데요?”

“모든 능력치를 합쳐서 ‘15’를 넘겨야 합니다.”

‘그럼, 불가능인데?’

내 모든 능력치의 총합은 ‘13’, 무려 ‘2’나 부족했다. 퀘스트 보상을 받는다고 해도, ‘1’이 부족한 수준.

“하지만, 최근에 남성에게 너무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있어, 최근에는 신체 능력을 요구하지 않는 원거리 직업에 한해서는 기준을 낮추고 있습니다.”

‘남자가 더 높지 않나?’

어쨌든 간에, 내게 해당되는 사항이니. 이득이긴 했다.

“그러면, 몇이면 되나요?”

“전부 합쳐서 ‘10’만 넘으시면 됩니다.”

갑자기, 기준이 확 낮아졌다.

“그러면, 되겠네요. 제가 몸은  좋거든요.”

“그러면 밤일도 잘하겠네.”

“저 남자, 침대에선 어떨까?”

“미친년아, 와하학!”

비교적 창구와 가까운 곳에 앉은 여자들이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농담이라 그냥 넘겼다.

“그러면, 검사하시겠습니까?”

“네.”

“검사 비용은 1실버입니다.”

“1실버요?”

갑자기, 전재산의 20%를 내놓으라고 했다.

“예. 마력 장비를 사용하는일이라서 제법 비용이 듭니다. 아, 그리고. 만약, 기준을 통과하셨을 경우, 등록비로 3실버가 듭니다.”

통과한다고 해도, 전재산 대부분이 날아가게 생겼다.

‘그냥, 불법 노획이라도 해야 하나?’

“허가받지 않은 몬스터 사냥은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치 종업원이 생각을 꿰뚫어 봤다는  말을 이었다. 우락부락한 남자가 내려다보며 저렇게 말하는데, 절로 오금이 저렸다.

“아, 알겠습니다.”

주머니에서 1실버를 꺼내 내밀었다. 손이 바들바들 떨렸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그러면, 이쪽으로 오시죠.”

건장한 남자를 따라 내부로 들어갔다. 안에는 커다란 유리 구 같은  있었다.

“이 위에 손을 올리시면 됩니다.”

손을 올리자, 무언가 몸으로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화살을 쏠 때와 비슷했는데,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곧, 유리 구 위에 숫자가 떠올랐다.

[힘 : 4]
[민첩 : 5]
[체력 : 4]

“총합 수치는 ‘13’이군요. 그러면, 바로 다음 검사를 이어서 해보겠습니다.”

이번엔 건물 밖으로 나와, 넓은 운동장 같은 곳으로 갔다. 거기에는 표적과 함께 다른 여자들이이리저리 앉아 있는 게 보였다.

‘구경이라도 난 건가?’

별로 상관없겠다 싶어, 무시하고는 직원을 바라봤다.

“화살은 여기 있습니다.”

언제 챙겼는지, 우락부락한 남자가 화살 10발이 담긴 통을 내밀었다.

“원래는 드리지 않는 거 같은데, 화살 통이 없으셔서 특별히 드리는 겁니다.”

‘이 남자 세심하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굉장히 세심한 남자였다.

“가, 감사합니다.”

“이 화살을 10발 쏘셔서  표적을 5발 이상 맞추시면 됩니다. 모험가가 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남자들이 있어 하는 테스트이니,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말아주세요.”

“네. 이해합니다.”

그것보다 10발을 쏴서절반 이상 맞추라니.

‘쇠뇌는 고작 다섯 발 쏴본  전부인데?’

제대로  조준경도 없는 상태에서 가능할지 모르겠다.

“이거 검사에서 떨어지면 1실버는 돌려주나요?”

“이미 능력치 검사를 하셨기 때문에, 1실버를 사용하신 건가 다름 없습니다.”

돌려받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

“준비가 되셨으면 지정 된 자리로 가,  주세요.”

“야, 너는 쟤가 통과할 거라고 보냐, 통과 못할 거라고 보냐?”

“못할 거 같은데? 남자라서, 석궁을 들고 왔나 본데. 남자가 무슨 사격이야.”

“그럼, 내기하자. 나는 통과한다에 1실버 건다.”

“오케이. 그럼 나는 통과 못한다에 1실버.”

갑자기, 주변에서 도박판이 열렸다.

‘여기 여자들은 다 저런가?’

쇠뇌를 바닥에 향하게 한 뒤, 줄을 잡아당겨 힘들게 장전했다.

“장전도 제대로 못하는데. 사격은 무슨. 덕분에, 오늘은 공짜 술 얻어먹겠네.”

“집에서 여자나 기다릴 것이지, 크크.”

“아이씨, 생돈 날리게 생겼네.”

‘뭔가 말이 바뀐 거 같은데….’

신경 쓰이긴 했으나, 일단은 눈앞에 당도한 과제가 더 중요하기에 신경을 꺼버렸다.

자리에 선 다음 석궁을 대략 콧등 높이까지 들어 올렸다. 숨을 깊게 들이 쉰 다음 숨을 참았다.

“흡.”

석궁의 떨림이 잦아들더니, 곧 과녁이 선명하게 보였다.

투웅- 콱!

그대로 방아쇠를 당기자, 화살이 깔끔하게 날아가 과녁에적중했다. 그것도 정중앙.

“후.”

시작이 좋았다.

“오, 심상치 않은데?”

“잘 쏘는데?”

“운이지, 운.”

다시 장전을 하고는 과녁을 조준했다.

투웅- 콱!

이번에도 적중.

“아닌데?”

“뭐야?”

“오우, 심상치 않은데?”

투웅- 콱!

 적중.

콱!

또 또 적중.

“으아아, 심상치 않은데!”

“뭐야?”

“뭐 저리 잘 쏴?”

결국, 10발을 모두 사격했을 때, 과녁에는 총 8발이 박혀 있었다.

“나이스, 믿고 있었다고!”

“아, 이런 미친!”

근육질 남자가 놀랐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10발 중 8발이라니. 혹시, 명사수 특성이라도 가지고 계십니까?”

“없는뎁쇼.”

침착함을 제외하면 없었다.

“그런 것도 없이 여덟 발을 맞춘 거라면, 순수 실력이라는 소리인데… 대단하시네요. 같은 남자로서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면서, 근육질 남자가 초롱초롱하게 바라보는데.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이러면, 저 통과된 거 맞죠?”

“예. 바로 가서 등록 해드리겠습니다.”

길드 내부로 들어가는데, 여자들이 웃으며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돈을 딴 여자들인 듯했다.

‘이렇게 여자들한테 웃음을 받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

나도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고는 직원을 따라갔다.

“야, 방금 나보면서 웃는  봤냐?”

“지랄~ 나보고 웃은 거거든? 개 빻은 년이 뭐라는 거야?”

“응, 지랄 마~”

다시 안으로 들어가자, 직원이 철로 된 허접한 증표를 줬다.

“많이 낡았네요.”

“하도 많이 나가는 증표다 보니, 대충 제작하는 편입니다. 나중에 브론즈로 올라가시면, 그럴듯한 걸 가질  있으실 겁니다.”

브론즈라. 리오테르는 내가 브론즈급 사격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빨리 올라갈 수 있을까?

“아, 그리고. 10발 중 8발을 맞추셨으니, 명사수라는 타이틀을 경력에 넣으실 수 있습니다.”

“넣으면 좋은 게 있나요?”

“적어도, 아이언파티에서는 우선적으로 데려가려 할 겁니다. 오죽하면, 아이언에서는 아군만 안 쏴도 1인분 궁수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그 외에 경력 사항에 기입하실 만한 것들이 있을까요? 특성이라던가, 특기라던가, 스킬이라던가.”

침착함이 있긴 했으나, 굳이 밝혀야 하나 싶었다.

“없습니다.”

“네. 그러면, 모든 절차가 완료되었습니다. 공식으로 모험가가 되신  축하드리며, 부디 앞날에 복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마지막에 활짝 웃으며 엄지를 들어 올리는데, 그 모습이 퍽 친절해 보였다. 난 고개를 숙이고 길드 밖으로 나왔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엄청 친절하고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었네요.”

[여신 : 그러게.]
[여신 : 퀘스트 보상 지급해줄 게.]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원하는 곳에 스탯을 투자해주세요.]

나는 망설임 없이 힘에다가 투자했다. 적어도, 장전은 할  있어야 할 거 아니겠나?

시간이  지났는지, 밖은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마차를 타고 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나는 루시가 말했던 실프의 여관을 찾아 헤맸다. 도시에서  유명한 여관이었는지, 찾는데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자연인의 윤리 관념이 어떤진 모르겠지만, 가지 않는 걸 추천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기 직전, 문득 리오테르가 한 말이 머리 속을 맴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뭐, 별 일 있겠어?’

여자한테 강간을 당할 것도 아니고. 별  있겠나.

[여신 : 그 판단. 그 안일한 판단.]

“왜요?”

[여신 : 아니야 ㅎㅎ]

또, 뭔가를 숨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찝찝했으나, 물어도 안 알려줄 테니 일단 안으로 들어갔다.

깔끔한 내부와 함께 여자들이 술을 마시며 이리저리 놀고 있었다.

‘뭔가 헌팅 포차 온 느낌이네.’

맨날 친구들과 가던 술집은 남자로 넘쳐났었는데, 이렇게 여자가많은 곳을 오니, 기분이 묘했다. 물론, 헌팅 포차라고 해서 여자가 이렇게 많진 않았지만.

루시가 보이지 않아, 일단 구석진 곳으로 가, 앉았다. 이런 곳은 익숙지 않아, 저절로 기가 눌리는 기분이었다.

“주문하시겠어요?”

남자가 복장을 입으며 물어보는데, 뭔가 이상했다.

‘몬가, 몬가, 이상함….’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조금 있다 일행이 오기로 했는데, 그때 오면 시킬게요.”

“알겠습니다.”

메뉴판을 보는데, 특이한 메뉴가 많았다.

‘슬라임 스프? 오크 토막 구이? 파인애플 피자? 오우 쉣!’

이리저리 모두 충격적이지만, 무엇보다 파인애플 피자라니.  세계 사람들은 다 머리가 돌아버린 걸까?

[퀘스트 : 파인애플 피자 먹기.]
[파인애플 피자를 먹자.]
[보상 : ‘원하는 스탯 +1’]

“어흑! 마이깟!”

끔찍한 퀘스트 내용에 모르고 소리를 질러버렸다.

“뭐야? 왜 저래? 정신 나갔나?”

“오, 그래도, 얼굴은 괜찮은데? 작업이나 좀 걸어볼까?”

‘뭐야, 내 얘기야?’

괜찮은 얼굴이라니. 살면서 그다지 들어본 적이 없는 칭찬이었다. 그녀들의 대화에, 나는 저절로 귀를 기울였다.

[여신 ; 이게, 칵테일 파티 효과인가, 뭔가인가 그거냐?]

채팅은 무시했다.

“한 번 말이나 걸어 봐.”

“오케이.”

가까운 테이블에 있던 여자가 일어나더니, 나한테 다가왔다.

“저기요.”

“네, 네?”

여자가 먼저 말을 걸어오는 건 처음이라 깜짝 놀랐다.

“혹시, 혼자 오신 거면 저희랑 같이 마시실래요? 외로워 보이시는데?”

“네, 네? 그게….”

여자의 외모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가슴도 꽤 컸고 일행 역시 예뻤다. 한국에서라면, 나는 꿈도 꾸지 못할 여자였다.

“제가 일행이 있어서….”

하지만, 내겐 루시가 있었다.

“에이, 그냥 거짓말하는 거죠? 그러면,  곁에 없어요.”

“그게….”

생전 당해보지도 못한 대쉬를 당하니 머리가 조금 어지러웠다.

“그러지 말고, 가요~”

손목을 잡혀 끌려가려는 순간, 갑자기 손이 튀어나와 그 여자의 손목을 잡았다.

“죄송한데.  사람은 제 일행이라서요.”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금발에 커다란 가슴.마차에서와는 다르게 가벼운 드레스와 같은 복장이었는데, 가슴이 대놓고 드러나 굉장히 선정적이었다.

‘크네.’

앞에 있는 여자도 크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루시의 가슴이 훨씬 컸다.

“쳇.”

여자가 루시를 슬쩍 보더니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미안해요. 제가 많이 늦었죠? 저 때문에 불쾌한 경험을 하셨네요. 정말 죄송해요.”

“아니에요.”

당황스럽긴 했으나, 불쾌하진 않았다.

“대신에, 오늘은 제가 정말 제대로 대접해드릴게요. 먹고 싶은 것들 전부 시키세요.”

“정말요?”

“네.”

남자가 여자한테 얻어 먹는다니.

‘너무 좋고.’

안 그래도, 돈도 없었는데,  됐다. 메뉴판에서 봤던, 신기했던 메뉴들을 하나하나 골랐다.

“마지막으로 파인애플 피자도 하나 주세요.”

“히에에엑!”

남자 종업원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나를 바라봤다.

“그걸 드시겠다고요?”

“네. 신기해 보여서요.”

“아, 알겠습니다.”

종업원이 고개를 숙이고 가는데, 루시가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물론, 그래도 이쁘긴 했다.

“파인애플 피자라니. 어우.”

“맛 없나요?”

“어, 먹어보면 아실 걸요. 사람이 먹을   된다는 걸….”

이쪽에서도 파인애플 피자는 괴식으로 통하나 보다.

술이 먼저 나와, 둘의 앞에 내밀어졌다.

“술 드시는 건 처음이세요?”

“처음은 아닌데, 제가 알던 거랑 다르긴 하네요.”

“그러면, 나오기 전에 흥이나 올릴 겸 일단 한 잔 할까요?”

“그러죠.”

“건배!”

컵을 부딪힌 다음 술을 들이켰다. 알싸하면서도 시원한 느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어때요?”

“나쁘지 않은데요?”

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술을 홀짝였다. 곧, 음식이 나왔는데, 대부분이 먹음직스러웠다. 물론, 파인애플 피자 하나 빼고.

“오우 쉐엣….”

토마토 소스, 치즈와 함께 잔뜩 올려져 있는 파인애플. 새콤한 향기와 달콤한 향기가 동시에 코를 찌르는데.

“어질어질하네….”

“네? 뭐라고하셨어요?”

“아닙니다.”

루시도 눈앞에 있는 파인애플 피자를 믿기지 않는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일단 드실까요?”

“예.”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파인애플 피자 한 조각을 집었다.

“자, 잘 먹겠습니다….”

눈을 질끈 감고는 한 입 베어 물었다.

토마토의 새콤한 맛과 치즈의 느끼한 맛. 그리고 그걸 뚫고 들어오는 파인애플의 달콤함.

“구웨에에엑!”

이건 쓰레기였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세 개의 맛에 입안이 유린 당하는 듯한 느낌.

“어어, 여기요!”

나의 격한 반응에 루시가 앞에 있는 컵을 내밀었다. 그걸 받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후.”

물을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술을 줬다.그래도, 입안에 느껴지는 끔찍한 맛을 없애는 게 먼저였으니, 일단 끝까지 들이켰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맛없을 줄은 상상도 못했네요.”

사실, 알고 있었다. 어쩔  없이 먹은 거일뿐.

“이 여관에서도 제일 안 팔리는 메뉴 중 하나에요.”

“안 팔리는데, 왜 안 빼는 거죠.”

“몰라요. 주인장이 그냥 변태에요, 변태.”

변태라고 말하는 그녀의 입이 왠지 야해 보였다. 시선을 애써 돌리며, 대화에 집중했다.

술자리는 퍽 나쁘지 않았다. 루시가 주로 말을 꺼내고, 내가 그것에 호응하는 그런 형태였다.

‘뭔가 입장이 바뀐 기분이네.’

친구에게 끌려가   번 가본 헌팅 포차. 거기서 친구들은 앞에 있는 여자와 밤을 보내기 위해, 부단히도 입을 털었다.

그때의 친구 모습과 앞에 있는 루시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이유는 왜일까?

밖이 완전히 어둑어둑해지고, 여관 내부의 등불이 더 빛을 발할 무렵. 나는 거의 반쯤 맛이 가 있었다.

술이 그리 약한 편이 아니었는데, 파인애플 피자 때문에  들이킨 술이 화근이었나 보다. 오랜만에 마신 것도 컸고.

“괜찮으….”

앞에서 뭐라고 말하는데, 끊기듯이 들려왔다.

“저, 저, 잠시 화장실 좀….”

말도 약간 으깨지듯이 나왔다. 이거 이러다가 진짜로 필름이끊길 거 같았다.

찬물로 샤워해서 정신을 차려야겠다. 그리 생각하며 자리에 일어나는 순간.

쿵-!

정신을 잃었다.



###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낯선 천장이었다.

‘루시가 데려다준 건가? 근데, 루시는 어디 갔지?’

“우움. 쭈읍, 쪼오옥, 쯔릅, 후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하반신에서 따뜻한 느낌과 함께 은은한 쾌감이 느껴졌다. 추잡한 물소리.

‘뭐야?’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아래를봤다.

“하음, 응… 자지, 츄읍. 하아, 아… 오랜만에 자지, 너무 조하아….”

달빛이 은은하게 들어오는  안, 금발 머리가 내 하반신에 붙어서 고개를 움직이고 있었다.

‘뭐야, 씨벌? 나 이거 강간당하는 거야?’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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