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화 〉어질어질하네 (2/84)



〈 2화 〉어질어질하네

“와아아아아악!”

화들짝 놀라기도 잠시. 미친 듯이 뛰던 심장 박동이 조금씩 진정되더니, 벌벌 떨리던 몸에도 빠르게 안정이 찾아왔다. 그렇게 되자, 차분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냉정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침착함!’

이게 특성 덕분이라는 걸 바로 깨달을  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달려오는 고블린을 마주 봤다. 석궁을 들어 올리고, 침착하게 놈의 머리를 조준했다. 손에 떨림은 없었다.

‘제발, 맞아라!’

퉁-!

방아쇠를 당겼다.

후웅- 콰악!

화살은 매서운 궤적으로 날아가더니, 고블린의 머리를 정확하게 꿰뚫었다. 달려오던 놈의 팔다리가 힘을 잃더니 그대로 고꾸라졌다.

고블린의 시체가 바닥에 쭉 미끄러지더니 바로 앞에서 멈췄다.

“와, 씨벌.”

나는 조심스레 뒤로 물러나, 고블린을 발로 툭툭 건드렸다. 반응이 없는  보니 확실히 죽은 듯했다.

“와, 진짜 뒤지는 줄 알았네.”

판타지고 나발이고, 진짜로 죽는 줄 알았다.

‘생각보다 죄책감 같은 건 없네.’

괴물이라서 그런 듯했다. 그것보다 고블린이라니. 이곳은 판타지 세계인 걸까?

[여신 : 맞아!]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 채팅이 떠올랐다.

[여신 : 이곳은 꿈과 희망이 넘쳐나는 판타지 세계야!]

“꿈과 희망이요?”

채팅을 보며 앞에 있는 고블린 시체를 툭툭 건드렸다. 물컹물컹하면서 뭔가 기분 나쁜 감촉.

“이딴  꿈과 희망이라면 거절하고 싶은데요.”

[여신 : 사람이 이렇게 부정적이니?]

“잘 살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이런 곳에 끌려온다면, 누구나 저처럼 반응하지 않을까요.”

[여신 :  살고 있진 않았잖아. 회사 면접은 전부 떨어지고. 공무원도 시도했다가 떨어지고. 뭐, 하나 제대로 이루어 놓은 게 없던데.]

“비겁하게 팩트로 승부하다니. 서운하네….”

[여신 : 아니, 그게 아니라.]

축 처지는 모습을 보이자, 여신이 당황한 듯한 채팅을 쳤다.

‘신이라고 해서, 마음이나 감정 같은 건  읽는 건가?’

만약, 그게 가능했다면 내 생각을 읽고 개짓거리 하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안 그래도, 상황이 서운한데. 그렇게 말하니, 더 서운하네….”

[‘여신’님이 민첩 능력치 ‘1’을 후원하였습니다!]
[여신 : 이거 줄 테니까. 서운해 하지 마. 알겠어?]

“옙. 알겠습니다.”

곧 바로 허리를 피며 말했다.

[여신 : 뭐야,  속은 거야?]

“속였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여신: 미친 놈….]
[여신 : 내가 사실 너한테 한 번 속아준  알지? 응?]

“네에~”

[여신 : 진짜라고!]

“네에~”

석궁을 장전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그렇게 얼마나 내려갔을까?

“저기부터 막아!”

하이톤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저 멀리 나무와 수풀 너머를 뚫고 들려왔다.

‘사람?’

잘못 들은 건가 싶었으나,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그 소리는 더 명확해졌다.

콰앙-!

키게겍!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와 고블린의 울음 소리. 그리고 종종 들려오는 비명.

마침내 수풀 너머로 고개를내밀자, 고작 세 명이서 고블린과 격렬하게 전투하는 모습이 보였다. 특이한 건, 모두 여자라는 거였다.

“오똑해! 오똑해!”

마차 위에 남자가 있긴 했는데, 오들오들 떨며 똑같은 말만 내뱉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지?’

뭔가 상식에 어긋나는 상황에 당황하기도 잠시. 위급한 상황이니 일단 도와줘야겠다.

사격 실력이 서툴러, 사람을 맞출 수도 있기 때문에, 제일 뒤에 있는 고블린을 노렸다.

“흐읍.”

숨을 깊게 들이 킨 다음 참았다. 쇠뇌의 떨림이 미세해지자 가슴을 조준한 다음 방아쇠를 당겼다.

투웅-!

마력 화살이 고블린의 심장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놈들의 시선이 앞에 있는 적에게 고정되어 있어서 그런지 공격을 눈치채지 못했다.

다시 쇠뇌를 힘겹게 당긴 다음, 화살을 장전했다. 그리고는 조준해서 발사.

투웅-!

이번에도 고블린의 머리를 적중시켰다. 두 번이나 연속으로 적중!

‘나 사실 사격 천재일지도?’

“꺄악!”

장전을 하던 도중,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자, 붉은 머리의 여인이 고블린에게 밀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저건 도와줘야겠는데.’

마력 화살을 넣고는 여자에게 다가가는 고블린을 겨냥했다 상황이 급박했던지라, 세심한 조준은 불가능했다.

‘제발, 사람만 맞추지 마라!’

투웅-!

날카로운 화살이 깔끔한 궤적을 타고 날아가, 고블린의 목에 적중했다. 놈은 박힌 화살을손으로 잡으며 비틀거리더니 곧 쓰러졌다.

‘나이스!’

세  연속 명중이라니, 이거 정말로 재능이 있는 게 아닐까?

 도로에서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고라니마냥 여자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비명에 다시 일어나 전투에 합류했다.

키에엑!

마지막 고블린까지 쓰러지자, 상황이 종료되었다. 전투가 끝났으나, 여전히 여자들의 긴장은 풀리지 않았다.

‘나 때문이겠지.’

하긴, 전투하던 도중에 갑자기 화살이 날아와서 고블린을 죽인다면, 당연히 경계할 것이다.  화살이 내게 향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었으니까.

“활잡이, 나와라!”

 말에 쇠뇌를 등에 걸고는 손을 보이며 수풀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그, 안녕하세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살며시 웃자, 앞에 있는 여자들이 순간적으로 얼어붙는 게 보였다.

‘뭐야?’

마치,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듯한 반응이었다.

[여신 : ㄴㅇㄱ 상상도 못한 정체.]

눈앞에 뜨는 채팅을 무시하며 아래로 내려갔다. 마차와 가까워지자, 고블린의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역하네.’

화살로 죽일 때는 피가 별로 안 튀겨서 몰랐는데, 생각보다 냄새가 많이 났다.

“그게, 저, 그.”

맨 앞에 있는 여자가 횡설수설하며 말을 더듬을 때, 마차 천막을 걷고 여자가 밖으로 나왔다, 얼굴보다는 가슴에 먼저 시선이 가는 여성이었다.

‘미친. 뭐가 저리 커?’

족히, E컵은 돼 보이는 가슴이 블라우스에 의해 감싸져 있었다. 처음 보는 거대한 크기에 잠시 멍하니 바라봤다가, 다시 고개를 올렸다.

긴 금발이 허리까지 내려오는, 약간 푸근한 인상의 상냥해 보이는 여인이었다. 아마, 그녀가 이 마차의 주인인 듯했다.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그녀가 앞으로 다가오더니 고개를 숙였다.

“원래, 이 도로에는 고블린도 잘  나오고 산적도 잘  나와서, 호위를 조금 널널하게 가졌는데. 하마터면, 전부 죽을  했네요.”

커다란 가슴이 앞으로 다가오는데, 고블린에게서도 느끼지 못한 박력감이 느껴졌다. 가슴으로 가는 시선을 처리하느라, 애를 좀 먹었다.

“아아, 예.”

“대체 어디서 나타나신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이것들부터 처리한 다음 길을 가면서 이야기 나눌까요?”

“예, 그러죠.”

안 그래도, 올라오는 악취 때문에 대화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빨리 치우세요!”

그녀가 뒤에서 멍하니 있던 여자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옙!”

그러자, 그녀들은 들고 있던 검을 넣고 고블린의 사체를 한 곳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

나도 나서서 고블린의 시체를 만지려는데.

“아아아! 안 도와주셔도 돼요!”

마치, 몹쓸 짓을 맡겼다는 것마냥 옆에 있던 여자가 급히 말렸다.

“맞아요. 이렇게 도움을 주신 것도 대단한데, 그냥 마차에 앉아서 쉬시는 게 어때요?”

“아닙니다. 이런 건 같이 하면 빨리 끝나잖아요.”

“그, 그러면 알겠어요.”

고블린 시체를 한 곳에 모은 다음, 불을 붙여 모조리 태워버렸다. 스크롤 같은 걸 사용해 불을 붙이던데, 확실히 여긴 판타지 세계가 맞는 듯했다.

‘고블린 하나로는 그다지  와닿았는데.’

아직도, 마법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앞에서 검과 경갑을 입고 있는 여자들을 보고 있자니, 새삼스레 판타지 세계라는 걸 다시 깨닫는다.

그렇게 정리가 끝나자, 모두 마차에 올라타, 다시 길을 나섰다.

천막 안에는 남자들이 끌어 안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와, 존나 보기 싫네.’

싸우지도 않았고 시체를 치우는데 도움을 주지도 않았다. 근데, 대체 뭘 했다고 우는 걸까? 근데,또 웃긴 건 주변에서 여자들이 쩔쩔매며 위로하고 있다는 거였다. 뭔가, 입장이 바뀐 듯한 느낌이었다.

“허허.”

어질어질해지는 장면에 헛웃음이나왔다. 그렇게 웃고 있을 때, 아까 전의 금발 여자가 옆에 다가왔다.

“옆에 앉아도 될까요?”

얼굴도 얼굴이지만, 역시나 가슴에  시선이 가는 여자였다.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웅장해지는 가슴이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웃으며 옆에 털썩 앉았다. 튀어 오르는 가슴에 잠시시선이 갔다가 다시돌렸다.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하마터면, 저희 전부 죽을 뻔 했네요.”

“아닙니다.”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통성명부터 해야겠죠. 제 이름은 루시라고 해요. 보시다시피, 자그마한 상단을 운영하고 있어요.”

“저는 강민석이라고합니다.”

“캉민쑥이요?”

“강민석이요.”

“특이한 이름이네요. 등에 매고 있는 쇠뇌도 그렇고. 사격 솜씨도 무척 뛰어나시던데, 혹시 사냥꾼이신가요?”

“사냥꾼이 아니라, 어… 태어났을 때부터 산에서 살았어요.”

“산이요?”

“예.”

그녀가 잠시 고민하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혹시, 자연인이세요?”

그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 프로그램에 나오는그 자연인을 말하는 걸까?

[여신 : 설마, 자연인이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신 : 아, 개 웃기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올라오는 채팅을 보며 대답했다.

“자연인이 뭔데요?”

“세상과 단절하여 산에서 자신들만의 전통과 기술을 갈고 닦는 사람들을 말해요.”

내가 알고 있는 거랑 비슷하면서도 다르긴 했다. 그 프로그램에 나오는 자연인들은 휴대폰도 가지고 있고, 이리저리 밖으로 나오니까.

아니라고 대답하려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잠시만, 이거 자연인이라는 신분을 이용하면 되는 거 아니야?’

솔직히, 지금 나는 루시가 말하는 자연인과 지식 수준이 비슷했다. 아니, 오히려 더 떨어질 수도 있었다.

만약,여기서 아니라고 대답하면, 이 세계에 대해 물어볼 때의 명분이 없어진다. 물론, 그게 무슨 상관이겠냐만은, 기왕이면 부스럼 없이 가고 싶은 게 사람 마음 아니겠는가?

“비슷한 거 같은데요. 저는 할아버지랑 살았는데, 나무랑 동물, 괴물을 제외하면 딱히 본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나는  ‘자연인’이라는 컨셉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러면, 자연인이 맞으시네요!”

그녀가 손뼉을 치며 말하는데, 가슴이 출렁거렸다.

‘엄청나네.’

“그러면, 이 세상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겠네요?”

그렇게 말하는데, 아주 잠깐 음흉한 웃음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뭐지? 잘못  건가?’

너무 찰나라서, 그게착각처럼 느껴졌다.

“예, 잘 모릅니다. 그래서, 그런데 혹시 이 세계에 대해서 조금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생명의 은인에게  정도야 물론이죠!”

그녀가 옆으로  붙으며, 이런저런 설명을 시작했다.

여신이 말했던 대로,  세계는 검과 마법, 이종족, 모험과 괴물이 존재하는 전형적인 판타지 세계였다.

이종족도 있었고, 제국이니 왕국이니, 이리저리 설명해주긴 했는데, 솔직히 별로 귀에 들어오진 않았다.

“도시, 리벨룸이다!”

대략적인 설명을 모두 듣자, 어느새 마차가 목표로 했던 도시에 도달 해 있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마부의 외침에 고개를 내밀었다.

“이야….”

거대한 벽, 그 위로 푸른색 사자의 깃발이 휘날리는 게 보였다. 벽 위에는 병사들이 서 있는  보였는데, 가슴이 웅장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진짜 판타지네….”

이제야, 판타지 세상에 온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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