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이세계요?
띠링-
“뭐야, 씨발….”
사방에서 울리는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숨을 들이키며 몸을 일으키는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아으….”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보다.
띠링-
띠링-
띠링-
일어나자, 갑자기 알람 소리가 더 격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대체 어디서 들리는 거야.’
연락 올 사람이라고 해봐야, 같이 술 마신 친구밖에 없는데. 대체 누구인 걸까?
지끈지끈 아파오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눈을 떴다. 근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칠흑 같은 어둠. 그것에 당황하기도 잠시. 눈앞에 떠오르는 또 다른 것이 나를 더 당황하게 만들었다.
띠링-
[시청신 : 1명]
[여신 : 와, 일어났다!]
이제는 귀에 익은 알림 소리. 그것과 함께 채팅창 같은 게 눈앞에 떠올랐다.
[여신 : 드디어 일어났네, 혼자 채팅 치느라 심심해 죽는 줄 알았어. 뭐, 지금이라도 일어난 게 어디겠냐만.]
벙쪄 있기도 잠시, 이어서 올라오는 채팅에 나는 무심코 말을 내뱉었다.
“씨발,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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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 날도 다른 날과 여타 다를 게 없는 날이었다.
2020년 1월을 맞이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샌가 바짝 다가온 신년에 우울함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년도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허망하게보냈기 때문이었다.
“야, 잘 될 거야. 뭐, 언제는 나빴냐. 내년에는 취업하겠지.”
“그래, 그래.”
그래서, 친구들을 불러 술을 진탕 마셨다. 오랜만에 마셔서 그런지, 우울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결국 과음을 해버렸고, 필름이 끊겼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떠보니 이런 상황.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혼란스러워하기도 잠시, 창문을 넘어 불어온 차가운 바람에 시선이 돌아갔다.
칠흑 같은 어둠. 창문 너머에서 주황빛이 들어 와, 내부를 천천히 밝히고 있었다. 나는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앞으로 다가갔다.
작은 나무창, 그 너머로 우거진 나무들과 함께 석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마치, 물감으로 세상을 칠하듯, 세상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복잡했던 머리가 조금은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까 하셨던 설명 좀 다시 해주시겠어요?”
[여신 : 네가 이렇게 사느니, 제발 어디에라도 취직됐으면 좋겠다고말했잖아.]
[여신 : 그래서, 내가 네 소원을 이루어준 거야. 마침, 심심하기도 했고.]
“이게 취직이라고요?”
[여신 : 응, 너는 여신 전용 스트리머로 취직한 거야!]
[여신 : 기쁘지? 박수 짝짝짝짝짝!]
진짜 하나도 안 기쁘다.
“대체 뭐가 좋은데요.”
[여신 : 이세계에서 쌓은 업적과 카르마에 따라, 저쪽 세계에서도보상을 줄 거야.]
“그러면, 저는 언제 돌아갈 수 있는데요?”
[여신 : 어, 그건 몰라?]
채팅치는 꼬라지를 보아하니, 소원을 이루어지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심심풀이가 필요했던 걸로 보인다.
“아니, 그것보다 술 마실 때, 헛소리 한걸 소원으로 들어주는 신이 대체 어디 있습니까?”
[여신 : 여기 있네.]
“허허.”
말이 안 통하는 양반, 아니 여신이었다.
“제가 여기 있는 동안, 제가 원래 살던 곳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여신 : 시간을 동결시켜놓았어. 이곳에서 아무리 오랜 시간을 보내도, 그곳은 그대로일 거야.]
그런 거라면 다행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그래서, 대체 여기가 어딘데요?”
[여신 :여기가 어디냐면….]
“네.”
[여신 : 네~ 알려드렸습니다.]
‘미친년.’
자기가 마음대로 보내놓고는 설명조차 해주지 않는다.
[여신 :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 여기서 한 한 행동들에 따라서, 저쪽 지구에서 그만큼의 보상을 줄 테니까. 원한다면 여기서 계속 살 수 있게도 해줄게.]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 같은데요.”
돈만 있다면 한국만큼이나 살기 좋은 나라가 없었다. 게다가, 현대 문물에 익숙해진 사람이 어찌 다른 세상에서 잘 살 수 있겠나?
‘물론, 나야 돈이 없어서 살기 좆같긴 했지만.’
[여신 : 그것보다 너 나한테 살갑게 대하는 게 좋을 거야.]
“왜요.”
[여신 :이때까지 무척이나 안전한 세상에서 살아오던 네가,지금 아무런 능력도 없이, 낯선 세상에 떨어진 거야.]
[여신 : 너 여기서 죽지않고 잘 살아갈 수 있어?]
없다. 평생 싸움이라곤 해본 적도 없고, 운동은 걷기 운동과 숨쉬기 운동을 한 게 전부였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나 진짜 좆된 거잖아?’
물론, 그건 그거고이건 이거다.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인데요?”
[여신 : 내 닉네임 안 보여?]
“보여요. 여신.”
[여신 : 지금 네가 대화하고 있는 사람은 신이라고, 신.]
“아, 예. 그렇겠죠.”
그거야 닉네임이나, 설명해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물론, 채팅치는 게 너무 커뮤니티 중독자 같아서 그다지 믿음이 안 갔지만.
[여신 : 난 너의 삶을 관망하면서 후원을 할 수 있어. 능력치 창을 보고 싶다고 생각해볼래?]
[이름 : 강민석.]
[능력치]
[힘 : 3]
[민첩 : 3]
[체력 : 3]
[특성]
[침착함.]
생각을 하자, 앞에 정말로 능력치 창이 떠올랐다. 마치, 게임에서 보던 거 같았다.
“이건 높은 겁니까. 낮은 겁니까?”
[여신 : 정말 형펀 없는데. 신체와 관련 된 평균 능력치는 ‘4’거든. 물론, 그것도 현대인 기준이고, 아마 이 세상에선 ‘6’ 과 ‘7’ 사이야.]
“애매하게 그게 뭡니까.”
[여신 : 일반적인 여자 기준으로는 ‘6’이라고 생각하면 될 걸?]
“남자 기준이 아니라 여자 기준이요?”
자신도 남자이고, 남자의 신체 능력이 더 뛰어나니, 남자 기준으로 말해야하는 게 옳지 않나?
[여신 : 이 이상 말해주면 재미 없으니까, 그 다음은 네가 알아 봐.]
[여신 : 어쨌든, 앞으로 잘 살고 싶으면 처신 잘하라고. 알겠어?]
그저 채팅일 뿐인데, 눈앞에서 손가락을 들며 웃는 여신이 보이는 건왜일까.
“아, 예. 알겠습니다.”
한숨이 푹 나오긴 했으나, 이미 벌어진 일 어쩔 수 없었다. 여기서 불만을 내뱉는 것보다는, 이 세계에대해서 최대한 알아보고 적응하는 게 중요했다.
‘특성에 있는 침착함때문인가. 뭔가, 되게 침착하네.’
정말 말 그대로 침착하다는 뜻인 듯했다.
‘일단 정보라도 얻어볼까.’
가장 먼저, 나무 집 내부를 둘러봤다.
단검 두 자루와 쇠뇌. 가죽 주머니가 하나 보였다.
‘쇠뇌.’
옆에 있는 단검도 그렇고 중세 시대에서나 쓸 법한 무기였다. 물론, 중세식은 아닌 거 같았다.
‘무기를 줬다는 건, 바깥에 위협이 있다는 소리인가.’
쇠뇌를 직접 들어봤다.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다. 실제로 그런 건지, 아니면 여신이 준 거라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근데, 이거 볼트는요?”
무기는 있는데, 정작 발사할 투사체가 없었다.
[여신 : 장전해 봐.]
쇠뇌의 줄을 잡아 당겨 걸려고 했는데, 도무지 당겨지질 않았다.
“안 되는데요.”
[여신: ㄴㅇㄱ 상상도 못한 약함!]
“아니, 놀리지 말고. 이거 어떡해요.”
[여신 : 이럴까 봐. 앞에 등자를 달아놓았지.]
확실히 앞을 보니, 받침대 같은 게 있었다. 그걸 밟고 양손으로 당기자, 그제야 줄을 걸 수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힘이 빠지는데요.”
[여신 :활 줬으면 진짜 쓰지도 못했겠네.]
만약, 검을 줬다면 제대로 들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비틀거리다가 넘어지지 않았을까?
“이 다음은 어떻게 해요.”
[여신: 화살 놓는 곳에다가 손을 올려 봐.]
시키는 대로 손을 올리자, 몸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느낌과 함께 볼트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이게 뭐에요?”
[여신 : 마력화살.]
마력 화살?
“그 뭐냐, 게임에서 궁수들이 화살 없이 활 쏘는 거랑 비슷한 겁니까?”
[여신 : 대충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어쨌든, 이렇게 되면 무거운 볼트를 직접 들고다니지 않아도 된다.
“근데, 마력을 사용하는 거면. 언젠가는 고갈되는 거 아닙니까?”
[여신 : 그렇지.]
“지금 제 마력 수치로는 얼마나 쏠 수 있는데요?”
볼트를 만들어 낼 때는 몸에서 뭔가 느껴졌는데, 지금은 하나도 모르겠다.
‘이런 이상한 게 내 몸에 있는지도 몰랐어.’
[여신 : 음, 한다섯 발?]
“다섯 발이요? 너무 적은 거 아닙니까?”
[여신 : 네 부실한 마력을 탓해야 하지 않을까? 애초부터, 네가 살던 지구는 마력이 희미한 곳이라서 어쩔 수 없어.]
“방법은 없습니까?”
[여신 : 뭐, 지내면서 구르다보면 쌓일 수도 있겠지. 그래도, 2시간에 한 발 정도는 충전할 수 있을 거야.]
결국 마력이 일정 수치를 넘을 때까지 볼트를 들고 다녀야 한다는 뜻이었다.
“허허, 씨벌.”
잘 풀리는 일이 없다.
“일단은 알겠습니다.”
그렇다 하니, 일단 내려놓고는 다른 걸 살폈다. 주머니를 들자, 잘그락 소리가 들려왔다. 열어보니, 은색 동전이 다섯 개 들어 있었다.
“은화 다섯 개라.”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걸까. 아마, 그것도 도시에 가면 알게 될 것이다.
“그래도, 양심은 있나 보네요.”
이리저리 부실하긴 했으나, 기본적인 것들은 모두 있었다.
[여신 : 당연하지.]
“뭐 좀 더 안 줘요?”
[‘여신’님이 모든 능력치를 ‘1’을 후원하였습니다!]
그 창과 함께 몸이 약간 상쾌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름 : 강민석.]
[능력치]
[힘 : 4]
[민첩 : 4]
[체력 : 4]
모든 능력치가 올라서, 이젠 현대인기준 평균 능력치가 되었다.
이게여신이 말했던 후원 시스템인가 보다. 채팅도 그렇고 후원도 그렇고. 아마, 인터넷방송과 비슷한 듯했다.
[여신 : 됐지?]
“감사합니다.”
구걸로 능력치를 모두 ‘1’ 올렸다면, 그걸로 만족이었다.
[여신 :앞으로 재밌는인생 부탁해.]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채팅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 여기서부터는 그냥 지켜 볼 의향인가 보다.
‘나가볼까.’
단검 두 자루를 허리춤에 꽂아 넣고 가죽 주머니를 품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쇠뇌를 들고는 밖으로 나왔다.
바깥으로 나오자, 시원한 바람이 몸을 스쳐 지나갔다. 숨을 들이키자, 상쾌한 느낌이 들었다.
‘미세 먼지가 없으니, 어색하긴 하네.’
지구와는 정반대의 공기가 느껴지니 뭔가 어색하긴 했다.
“그래서, 어디로 가야 하나.”
나무 집 하나만 덩그러니 있고, 주변에는 그냥 간간히 나무가 박혀 있었다. 길 같은 건 보이지도 않았다.
‘막막하네.’
일단, 산에서 벗어나야지, 마을이든 뭐든, 사람 사는 곳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 아래로 내려가기로 했다.
다행히, 그리 가파른 산은 아니었는지, 내려가는 길이 완만했다.
이른 아침, 우거진 나무 사이를 걷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여유롭네.’
이래서, 사람들이 시끄러운 관광지가 아닌 여유로운 휴양지로 가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그 여유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키기긱-
어디선가 들려오는 불쾌한 울음 소리. 고개를 돌리자, 초록빛 피부의 괴물이 웃고 있었다.
왜소한 덩치에 비열한 외모. 낼름거리는 혀와 날카로운 손톱까지.
“고블린?”
그건, 창작물에서나 보던 고블린과 퍽이나 닮아 있었다.
“와, 진짜 존나 징그럽게 생겼네.”
민석의 목소리에 고블린의 시선이 돌아갔다. 둘의 시선이 마주쳤는데.
“케게겍?”
고블린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민석이 그렇듯, 저 놈 역시 당황한 듯했다.예상하던 습격이 아니라는 소리다.
둘은 멀뚱멀뚱 서로의 눈을 쳐다봤다. 마치, 눈싸움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키겍….”
놈의 훤한 이마에서 땀이 삐질삐질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이쪽도 마찬가지로,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숨 막힐 듯한 침묵을 깨뜨린 건, 고블린이었다. 놈은 몸을 바짝 숙이더니 갑자기 네 발로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키게에에엑!”
“와아아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