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여기사 구하기(1)
지난 며칠간 겹겹이 의식을 개변당한 아리스는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극진한 포로에서 손님 정도로 격상한 아리스의 신분은 전적으로 토프키센의 태도에서부터 비롯했다.
그 어떤 왕궁 내 신하나 기사들도 토프키센이 가깝게 지내는 아리스를 건드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따라서 그녀는 루블 왕국의 중앙 도서관을 자유롭게 드나들 정도로 편리한 생활을 향유 중이었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요?”
여느 때처럼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던 중 아리스의 손끝이 멈칫했다.
자신은 왜 적국이 분명한 루블 왕국에서 이렇게 한가로이 지내고 있는 것일까?
아침에 일어나 가벼운 차를 마시고 도서관으로 직행해 해가 뉘엿뉘엿 질 때가지 독서를 하는 생활은 분명 그녀가 바라마지 않던 작은 행복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분명 베아트레아 대공에게 특수한 임무를 받고 루블 왕국에 잡혀들었다.
“으윽!”
그것이 무엇인지 떠올리려하자 뇌를 찌르는 듯한 통증이 머리를 가로지른다.
토프키센의 말에 따르자면 토렌스와의 일전 도중 두부(頭部)에 충격을 받아 기억이 분명치 않을 수 있다고 했다.
다른 말로하자면 베아트레아 대공의 지시를 전혀 떠올리지 못한 채로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평생을 부지런히 살아온 아리스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잊어버린 나머지 허송세월을 보낸다는 생각은 다소 초조함을 남겼다.
“괜찮으신가요?”
“아, 괜찮습니다.”
그녀의 주변에서 서성거리던 사서(司書)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며칠 전부터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한 그녀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약관의 청년이다.
처음에는 감시역인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저 순박한 얼굴을 보고 있자면 그런 의심이 도리어 허무하게 느껴지곤 했다.
“잠시 세수를 하고 와도 좋을까요?”
“그럼요! 제게 굳이 묻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리스 경.”
이마를 찌푸린 표정조차 아름답기 그지없는, 금발 벽안의 여기사를 홀린 듯 바라보던 사서는 깜짝 놀라 답했다.
애매한 웃음으로 그의 반응에 답한 아리스는 도서관 인근 화장실에서 세수를 한 뒤 거울을 보았다.
무엇인가 이상하다.
근거를 대라면 선뜻 대답할 수 없을 정도지만 아리스는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서 불쾌하게 맴도는 괴리감을 느꼈다.
그리고 찾아온 것은 또 다시 두통.
“윽…!!!”
그녀에게 걸려있는 것은 총 5가지의 왜곡.
슈렐리아의 성고문을 극진한 간호로.
토프키센의 취조를 정다운 회담으로.
그녀가 느꼈던 모든 부정(不正) 감정을 편안함으로.
목숨을 건 각오를 안일한 타협으로.
마지막으로 베아트레아 대공이 내린 지령을 망각의 저편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 항목.
실제로 그녀가 어떤 꿍꿍이를 가지고 루블 왕국에 잡혀 들어왔는지 알 수 없는 이상 토프키센이 가장 만전을 기한 왜곡이었다.
따라서 아리스는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다.
그렇게 되어있다.
고운 피부를 타고 흐르는 물방울을 망연히 눈으로 쫓던 아리스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갑자기 타오르는 붉은 기운을 느꼈다.
어째서인지 종종 이렇게 남에게 말 못할 음심(淫心)이 신체를 아우르는 것이 느껴진다.
유두와 음부, 그리고 애널에서 느껴지는 얼얼한 기운은 마치 한 시간 정도는 남의 손에 의해 주물러진 착각마저 들게했다.
입술을 꾹 깨문 아리스는 다시 한 번 세수를 끝낸 뒤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휘진이 밀입국 한 곳은 노브고로드의 항구였다.
내무경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부탁해 간신히 수배한 공선은 아슬아슬한 감시망을 뚫고 무사히 그 소임을 다했다.
사실 휘진이 가장 쫄렸던 부분도 이때였다.
아닌 말로 공선을 타고 가던 중에 난데없이 격추를 당하기라도 한다면 죽은 목숨이다.
다행스럽게도 아무 일없이 최단 기간 만에 도달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주일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아, 시발. 뒤질 것 같아.”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은 공선함 멀미에 벽을 잡고 괴로워하는 휘진.
하지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아리스가 그 광왕(狂王)에게 잡혔다.
느릿한 비행 탓에 시간을 너무 지체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처음에는 엘프들에게 협력을 요구할 생각이었던 휘진이었다.
엘프들에게는 나름 빚을 지워둔 것도 있고 아무리 자신이라도 도움이 있는 편이 아리스를 구하기 한결 수월할 테니까.
그럼에도 맨땅에 박치기로 노브고로도에 직행 한 것 역시 가장 문제되는 것이 시간이기 때문이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그의 선택을 옳았다.
지금 붉은 돌 왕국의 해방군은 애진즉 위치를 이동해 루블 왕국의 서쪽에서 왕국 군과 대치중이다.
만약 그가 우선순위를 잘못 두었더라면 공연히 시간만 날렸으리라.
그녀가 왕성에 잡혀있다는 확신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일단은 잠입을 결심한 휘진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성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루블 왕성으로 향했다.
사실 잠입은 어렵다 말할 것이 없었다.
경비병 하나를 족치고 그 복장으로 갈아입는 것만으로 충분하니까.
“쿠웁…!!!”
하품을 하며 어슬렁거리던 경비병 형씨를 으슥한 창고 방으로 빼돌린 휘진은 시간정지를 풀었다.
성인 남성이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있을 경우 그 무게가 장난 없다는 토막 상식을 얻었다.
“이렇게 입으면 되는 거지?”
이전 슐레스비 황성에 잠입할 때도 입어봤던 갑옷이지만 전부 걸치는데 30분은 족히 걸린다.
투구까지 완전히 갖춰 쓴 휘진은 구부정하게 경비병의 앞에 마주 앉았다.
“지금부터 질문할게. 솔직하게 답하면 살려줄 테니까 말해줘.”
경비병의 입장에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나 다름이 없다.
평소처럼 느긋하게 산책 같은 경계근무를 서며 돌아다니고 있었건만 정신을 차리니 손발은 꽁꽁 묶여 있고 갑옷은 빼앗겨 있다.
무슨 마법을 썼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자신의 앞에 느긋한 인상의 남자는 세련된 칼을 덜그럭거리며 시선을 맞춰왔다.
“일단 입마개를 풀어줄 테니까 소리 지르지는 마. 만약 소리를 지르려면 좀 고상한 말 부탁해. 왜냐하면 그게 니 유언이 될 거니까.”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경비병.
기사도 아니고 일반 병사인 그는 루블 왕국에 대한 충성심보다는 자기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사…살려주십시오. 소인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건 내가 판단할 일이고. 쉬펜 아리스가 누군지 알아?”
“아니요.”
“슐레스비 제국의 베아트레아 여황제의 최측근 최근에 여기 잡혀왔다고 들었는데 정말 몰라?”
“소인은 정말 금시초문입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입 꼭 다물고 있겠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름 극비 정보인 사실을 일개 경비병이 알고 있을 리 없다.
“그럼 이 성 대략적인 구조 좀 알려줘. 지도 같은 거 없어? 아니면 포로가 갇혀있을 만한 수용소라던가.”
“지…지하 감옥이라면 알고 있습니다!”
“그래?”
목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끔 성량 조절을 한 경비병은 한참을 떠벌이며 지하 감옥의 상세한 위치를 고했다.
현재 개축중인 대공 포탑 3개 중 남쪽 방향을 겨누는 성루의 지하.
성 외곽 새로 개축되어 검은 연기가 항상 피어오르고 있는 북쪽의 포로수용소.
일단 두 가지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덤으로 들려오는 살려주세요, 가족이 있습니다, 자식들을 먹여 살리는 불쌍한 가장입니다… 등등 목숨 구걸도 많이 듣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다.
휘진은 시간을 정지하고 아리스에게 받은 소태도를 경비병의 목에 겨눴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안일하게 굴 때가 아니다.
이전까지 같은 상황에서 고를 수 있던 ‘재워둔다 vs 기절 시켜둔다’ 등의 선택지는 어디까지나 휘진이 절대적인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는 아무런 지원하나 없는 루블 왕국의 왕성.
이전까지의 느긋한 조치는 불가능하다고 봐도 되겠지.
“미안해 아저씨.”
시간이 정지한 상태로 보니 얼마나 간절한 눈빛인지 더 생생히 보인다.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추를 느끼면서도 휘진은 경비병의 목 중앙에 검을 깊게 박아 넣다.
최소한 깔끔하게 끝내주는 게 마지막 자비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창고를 나와 시간 정지 능력을 푼 휘진은 우선 목적지를 포로수용소로 잡았다.
그곳이 지하감옥보다 더 가깝기도 하고 그 곳에는 많은 엘프들이 연금되어있다고 하니 그들을 풀어줌과 동시에 양동을 일으킨다면 한층 목표 달성이 수월해지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간 정지 능력을 낭비할 수는 없다.
두터운 철 투구를 뒤집어 쓴 휘진은 거의 30kg가까이 되는 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어기적어기적 포로수용소로 향했다.
엑스트라의 목숨은 고작 몇 글자의 묘사만큼 가볍다지만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이 분노는 오롯이 토프키센 그 씹새끼에게 풀어주면 되는 거다.
◈ ◈ ◈
포로수용소의 간수장 올레그는 탐욕스러운 남자였으며 그 이상으로 잔인하기 그지없는 남자였다.
본래 고문 기술자로 한직에 앉아 있던 그를 토프키센이 눈여겨보아 간수장으로 승진한 뒤에는 엘프들을 전문적으로 수용하는 포로수용소에서 자기 욕심을 채우는 데에만 열중했다.
결혼도 안했다.
특별히 큰돈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
젊고 매끄러운 육체 하나 뿐.
벗겨진 머리가 튀어나온 배, 심술궂은 코를 대낮부터 술기운으로 벌겋게 만든 그는 출렁이는 뱃살을 흔들며 엘프들을 강간 중이었다.
당연히 포로 강간은 전쟁법과 이데아 협약의 위반이었지만 애초에 토프키센은 솔선해서 위반하는 인물이었고 루블 왕국의 개정된 국내법상 엘프는 사람이 아닌 짐승으로 구분된다.
“흑…흐흐흑…”
오늘의 희생자가 된 것은 은은한 카키 빛을 띠는 금발을 지닌 엘프.
무려 두 자매를 한 침대에 올려놓고 돌려가며 범하는 중이다.
다른 자매의 목숨을 인질로 삼고 있었기에 엘프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가랑이를 벌려 그의 욕정을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안 빨아?”
검버섯이 가득한 엉덩이 사이에 얼굴을 처박고 있는 것은 엘프 자매의 장녀.
마치 자신의 여동생을 범하는 것을 돕는 자태로 역겨운 인간의 항문과 불알 뒤쪽을 정성스럽게 애무 중이었다.
잔뜩 늙어 악취를 풍기는 육체와 싱싱한 여체의 조화는 추악한 그림을 만들어낸다.
“똑바로 안하면 니 여동생의 하등한 보지에 인간 정자를 교배시켜 줄 거야. 알고 있어?”
“힉… 죄송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런 인간의 자식을 자신의 여동생이 갖게 된다… 그 끔찍한 상상은 언니의 혀놀림에 박차를 가했다.
몇 번이나 그의 변태적인 행위에 어울린 대가로 온 몸 가득 피멍과 흉터들을 갖게 된 두 자매는 올레그의 성노리개가 되어 수치를 감내해야 했다.
“크으, 앞에는 여동생 보지고 뒤에는 언니의 똥까시까지 받으니까 이게 진짜 천국이지 에라이 시부럴.”
욕설과 함께 허리 짓을 강하게 친 올레그의 추악한 엉덩이가 꿈틀꿈틀 움직인다.
그간의 경험으로 그것이 사정의 전조라는 것을 알고 있는 여동생이 발버둥 쳤다.
“아…안 돼요… 흑…”
그러나 꼼짝 없이 무게에 짓눌린 채 슈크림을 주입받는 달콤한 빵처럼 조그마한 엘프의 보지 안에 인간의 정지가 굽이친다.
“안돼요…!! 왜… 열심히 했는데도…”
“시끄러워!”
올레그는 자신을 떼어내려는 언니를 한 팔로 바닥에 내동댕이치고는 사정 직후 경련하는 자궁구의 뜨끈한 감촉을 느꼈다.
“정 싫으면 니가 입으로 빨아내면 될 것 아니야. 병신 같은 년이 어디서 손을 올리게 하고 있어.”
거부할 힘도 잃어버린 듯이 축 늘어진 여동생의 얼굴에 침을 뱉은 올레그는 번들거리는 물건을 흔들며 언니에게 다가갔다.
“야, 니 여동생 보지에 코 박고 빨고 있어. 그 동안 나는 뒤치기나 하려니까.”
엘프 여성의 힘은 인간과 별 다를 것이 없다.
게다가 이 남자에게 거스른다는 것은 볼모로 잡혀 있는 동포의 목숨마저 포기한 다는 것과 같다.
어쩔 수 없는 체념과 함께 눈물을 삼킨 언니는 비척비척 일어나 축 늘어진 자신의 여동생에게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