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여황제의 뒷사정(1)
노브고로드의 왕궁 지하에선 여느 때와 같이 쇠사슬이 짤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섞여 BGM처럼 들려오는 거친 호흡소리와 방울소리.
“흐잇…!! 흑!! 힛!!!”
개처럼 아리스를 엎드려 놓은 채 허리짓을 계속하는 슈렐리아.
거칠지 않는 무던한 움직임에 스트랩온 딜도의 콜라보는 아리스를 아득한 황홀경으로 이끌었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시간 이외에는 계속해서 범해진다.
다른 어떤 것을 떠올릴 여유도, 생각할 여유도 존재하지 않은 채 영원히 지독한 쾌락 속을 떠 돌아야하는 아리스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하아아악….♡♡♡”
먹이를 잡아채는 매의 발톱처럼 오그라드는 발가락과 단단하게 수축하는 허벅지 안쪽의 근육들.
휘진 때보다 충분히 개발되어 감도가 절정에 달한 아리스의 뒷구멍은 이제는 고작 10번 정도의 피스팅으로 소프트한 엑스터시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후장 근육이 지나치게 상하지 않게끔 잠깐 움직임을 멈춘 슈렐리아는 지친 기색도 없이 아리스의 몸이 진정되길 기다렸다.
뜸을 들인 이후에는 또다시 삽입, 왕복, 절정, 대기, 삽입, 왕복, 절정…
무간 지옥 같은 쾌락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여성의 신체는 정직하게 반응했다.
이미 홍수라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안의 안까지 푹 젖은 아리스의 보지에서는, 투명한 애액이 슬릿을 타고 금빛의 방울에 맺혀 뚝뚝 떨어지고 있다.
스스로의 반응에 진저리치며 숨을 고르던 와중 두터운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패션 화보의 모델처럼 말끔하게 차려입은 토프키센은 아리스의 모습을 보고는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네놈…”
증오스러운 눈길에도 아랑곳 않고 마치 산책이라도 하듯이 천천히 아리스에게 다가오는 토프키센.
“누가 이런 끔찍한 짓거리를…”
전쟁 중 학살당한 민간인을 보는 눈길처럼 안타까운 시선을 향하던 토프키센의 왼손이 별안간 흐릿해졌다.
-퍼석!!!
그 끝에 가볍게 걸리는 정도였을 것이다.
엘프의 왕녀로 이미 죽은 딸아이를 살리기 위해 토프키센의 굴욕적인 명령을 받아야 했던 슈렐리아는 끝까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눈치 채지 못했다.
날파리를 쫓는 손동작에 그대로 머리가 터져나간 슈렐리아의 아름다운 육신이 차디찬 돌바닥에 나동그라진다.
고장 난 스프링클러처럼 흘러내린 선혈이 돌바닥의 틈새를 메우며 독한 향기를 풍긴다.
“무슨 짓입니까!”
눈을 부릅뜨고 그 광경을 지켜본 아리스는 속박된 상태에서 거칠게 몸을 꿈틀거리며 반항했다.
“내 불찰이야. 설마 한 감방에 가두어 두었던 포로가 다른 포로를 범할 줄이야.”
천연덕스럽게 손에 피를 털어낸 토프키센은 핏빛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그 모습이 마치 웃음을 참고 있는 악동처럼 보여 아리스는 짙은 구토감을 느꼈다.
비록 자신을 고문하고 괴롭혀온 슈렐리아지만 아리스는 여전히 그녀에게 일말의 동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 역시 토프키센의 잔학한 손속에 희생당한 피해자일 뿐이니 말이다.
자신을 어떤 눈빛으로 바라보든 토프키센은 개의치 않고 그녀를 풀어 준 뒤 의복을 건네주었다.
그것들을 받아들이지도 않은 채로 아리스는 토프키센에게 달려들었다.
아무리 감정을 제어하려 해도 이 악한을 눈앞에서 보내주어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마각수와 약물로 힘을 잃은 아리스가 그에게 저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곧바로 손쉽게 제압당한 아리스는 토프키센의 밑에 깔려 버둥거렸다.
“우선은 옷 좀 입어. 나도 네 알몸을 보고 참는 건 힘드니까 말이야.”
“네놈은 왕 따위가 아니다. 혼돈이 즐거워 견딜 수 없는 악한일 뿐이야.”
토프키센으로서도 아리스를 이렇게 방치할 생각은 아니었다.
최소한 베아트레아 대공과 대화할 수 있는 창구 내지는 협박 재료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계획에 커다란 차질이 생겼다.
설마하니 역모에 대한 혐의로 잡혀 있는 상태에서 그대로 쿠데타를 일으켜 황조를 전복시켜 버릴 줄이야.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토프키센과 베아트레아는 체급이 다른 상대였다.
한 국가의 왕과 일개 공작은 그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여황제가 된 베아트레아가 아리스를 구출한다는 명목, 혹은 다른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 전쟁을 시작한다면 굉장히 곤란해진다.
따라서 토프키센은 아리스를 순순히 베아트레아 대공에게 보내줄 생각이었다.
정면 승부라면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다.
루블 왕국은 8개의 함대가 있고 최강의 아신인 토렌스가 있다.
그러나 그녀가 쿠데타를 일으키는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미지의 마법.
일개 함대를 공간도약 시켰던 마법은 당장 토프키센으로서도 전쟁의 승산을 장담할 수 없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요새 공선함과 피닉스를 대동한 엘프들의 변란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내부의 적을 확실히 정리하지 못한 상태로 슐레스비 제국과 정면충돌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 토프키센의 판단.
그는 미치광이였지만 대책 없는 감정파도 아니었다.
지금은 물러서야 할 때라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 아리스의 한 달 정도의 기억을 지우기만 한다면 충분할 것이다. 그렇다면 베아트리아와 아무 문제없을 것이다.
계속해서 버둥대는 아리스 탓에 어쩔 수 없이 약물을 주입한 토프키센은 뒤처리를 간수장에게 맡기고 지하 감옥을 나섰다.
◈ ◈ ◈
오랜만에 재회한 아슌푸틀의 육체에 휘진은 마른침을 삼켰다.
침대에서 노닥거리다가 자연스럽게 이어진 키스.
일주일 넘게 독수공방을 해야 했던 휘진 주니어는 고작 그 정도의 흥분만으로 ‘뭐야? 섹스하는 거야?’라고 말하듯이 고개를 껄떡 거리기 시작했다.
“하음…”
“그럼 이제 아슌푸틀이랑은 무슨 관계가 되는 거지? 정부(情夫)라도 되는 건가?”
“그런 셈인가?”
“설마 대공님 다른 남자랑 결혼하는 건 아니지?”
꾸욱 하고 허벅지 안쪽을 꼬집혔다.
장난 아니게 아프지만 살짝 심통 난 듯이 입술을 삐죽이는 아슌푸틀.
빨리 자지를 물려주고 싶은 표정으로 아슌푸틀은 툴툴 거렸다.
“내가 그렇게 문란한 여자로 보였나?”
“여기는 엄청 문란하잖아.”
“앗…!!”
휘진의 손가락이 아슌푸틀의 하얀 드레스 자락과 팬티를 젖히고 가녀린 꽃잎에 닿았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촉촉하게 이슬을 머금은 채 뜨겁게 꿈틀거리는 구멍.
제 아무리 대단한 여황제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야한 구멍을 가지고 있는 거구나, 라고 무심코 생각해버렸다.
“여황제의 내연남이 되다니 나로선 상상도 못했던 출세네.”
“너무 심술궂은 말은 하지 말게나.”
가벼운 한숨에 섞어 달콤한 콧소리를 내는 아슌푸틀. 어느덧 옷깃을 꽉 잡은 채 적극적으로 몸을 비벼오기 시작했다.
섹스의 힘은 위대해서 아슌푸틀에게도 그럭저럭 괜찮은 스트레스 풀이를 해주는 모양이다.
“아 아슌푸틀, 궁금한 게 있는데 하나 물어봐도 돼?”
“무엇이든 물어보게나. 이젠 숨기지 않을 테니.”
“여황제가 되려고 했던 이유는 뭐야?”
귀족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소탈한 모습을 자주 보여주던 그녀가 단순히 권력이 탐나서 그런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기엔 어렵다.
무엇보다 휘진은 유리정원에서 나누었던 아슌푸틀과의 대화를 기억하고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악하다네.”
중2병스러운 말이지만 대공님의 입에서 나오자 뭔가 굉장히 분위기 있게 들린다.
“만물의 영장으로서 그 어떤 생물보다 안정적인 세계를 구축했음에도 불구하고 속내를 들여 보면 정글과 다를 바가 없지.”
“그렇지.”
“그 이유는 통제가 없기 때문이네. 본능적인 사악함을 제어할 수 있는 강대한 힘을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지. 이제부터는 내가 그 역할을 맡으려하네. 누구나 나를 두려워마지 않고 악행을 행할 때도 나를 떠올릴 수 있도록 새로운 법규가 되고, 새로운 통제장치가 되어야하지.”
아슌푸틀이 갖게 된 힘은 일반적인 아신의 강함이 아니다.
아신조차도 공군함대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공군함을 즉각적인 전투태세로 운용할 수 있는 그녀의 힘은 무릇 일반인들 뿐 아니라 수많은 귀족들에게도 어필되었을 것이다.
즉, 핵무기와 같은 비대칭전력을 통해 강제적인 평화와 올바른 정치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슌푸틀의 목적인 것이다.
“언제까지?”
“더 올바른 정의가 나를 죽이기 전까지.”
씁쓸하게 중얼거리는 그녀의 목소리.
아슌푸틀도 이것이 미봉책이며 임시방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제 아무리 그녀가 억압하려 한 들 인간들은 그 본성을 들이 밀 것이다.
영원을 살다보면 언젠가는 옥좌에서 강제로 끌어내려져 그 목을 새로운 통치자에게 건네주어야 할 것이다.
그것에 두려움은 없었다.
휘진은 고요하게 선언하는 그녀의 말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도대체 정의가 무엇이길래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걸까?
그녀는 자신을 새로운 세상의 기계장치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다.
수명이 다하면 교체될 그런 부품 말이다.
“아슌푸틀이라면 분명히 좋은 통치자가 될 수 있을 거야.”
“빈말이라도 고맙네.”
진지한 분위기는 여기까지면 됐다.
휘진이 다시 손장난을 시작하며 아슌푸틀의 성욕을 간질간질 자극했다.
“그래도 나 잊으면 절대 안된다?”
“그런 일… 하응…”
무언가 답하려던 아슌푸틀의 말끝이 말려들어간다.
일평생 외면해오다가 휘진의 손에 의해 각성당한 여성의 욕구는 그간 착실하게 아슌푸틀의 몸에 쌓여왔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성욕이 치솟아 오른다는 것 역시 그 덕분에 알게 되었다.
요 일주일은 스트레스의 농축액이라 표현해도 될 정도로 힘든 시간들이었으니 그의 음행에 몸과 마음이 크게 동한다.
그의 손이 활개 치기 쉽도록 허리를 살짝 들어주며 천천히 휘진 양복의 버클을 제거해나간다.
아직까지 정리되지 못한 여러 가지 일들.
지방 귀족들이라던가, 역모에 반기를 든 채 남몰래 뭉치는 귀족이라던가, 루블 왕국의 건에 대해서도 해결되지 않은 일이 많지만.
지금은 휘진이 곁에 있다.
그거면 충분하다.
먹이를 탐하는 뱀처럼 천천히 아슌푸틀의 클리토리스를 매만져가던 그의 손길이 오늘따라 조금 더 깊게까지 그 입을 벌렸다.
“힉…!!”
볼썽사나운 소리까지 저도 모르게 내면서 떨리는 눈동자로 휘진을 바라보는 아슌푸틀.
그의 손가락이 다름 아닌 오밀조밀한 그녀의 국화꽃 근처를 쓰다듬었기 때문이다.
아신이 되었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 그 어떤 환경보다 청결한 애널 섹스가 가능하다는 것.
아슌푸틀의 구멍이란 구멍은 전부 더럽히고 싶은 휘진이 이것을 결코 간과할 리 없었다.
“아슌푸틀 우리 기분 좋은 장난 해볼까?”
“장난…?”
씨익 입꼬리가 올라간 그의 미소에 아슌푸틀은 얼떨떨하게 화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