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정의(3)
몰트케에게 이끌려나간 아슌푸틀.
몰트케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역시 이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는 인물이다. 베아트레아 대공의 역모는 어디까지 황태자 측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대공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황태자에게 고개를 숙이고 무고를 입증 받는 것.
그렇지 않으면 영지가 개박살날 동안 사문회라는 명목뿐인 모임에 잡혀 스스로 무고를 증명하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북해로 돌아가던가.
그녀는 현명한 인물이다.
아니, 그것은 어쩌면 몰트케의 맹신이었던가.
“한 가지만 부탁해도 되겠는가?”
아까의 당당함이 어디 갔는지 베아트레아 대공의 어깨는 푹 꺼져있었다.
그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아까 그녀의 발언으로 이젠 돌이킬 수 없다는 것.
지금의 그녀는 일국의 대공도, 하물며 살아 있는 몸도 아니다.
재판에서는 반드시 그녀에게 사형판결을 내릴 것이며 최대한 빨리 형을 집행할 것이다.
“왜 그러셨습니까.”
아까 베아트레아 대공과 소소한 해프닝이 있었던 회랑에 이르자 몰트케는 침울하게 물었다.
그녀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제껏 황태자가 말하는 대로 그녀를 무서운 여자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예전처럼 마냥 거리를 둔 채 바라보기 힘들었다.
“한 가지 부탁이 있네. 감옥에 가기 전 혼자만 조용히 술을 마실 수 있게 해주게나.”
“…알겠습니다.”
통상적으로는 들어주지 않을 부탁이었다.
만약 자신을 데리고 도망쳐달라는 말이었더라면 단호히 거절했을 것이다.
죽기 직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 정도는 도와줄 수 있지 않는가?
그녀가 갇혀 있는 곳은 허술해 보여도 벽 내부까지 철심이 박혀있고 온갖 마법을 무효화시키는 연금처리까지 되어있다.
몰트케는 적당한 술과 함께 아슌푸틀에게 30분의 시간을 주었다.
◈ ◈ ◈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아슌푸틀은 원격 편지를 꺼내들었다.
[이틀 뒤, 황궁에서 재판이 있을 것이라네. 사전에 건네주었던 물건을 잊지 말고 챙겨오게나]
하나는 휘진에게 보낸다.
온갖 고위관직들이 모여들 재판장이야말로 그들을 뿌리 뽑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그것을 위해서는 방대한 양의 마력이 필요하다.
가지고 있어봐야 빼앗길 것이 분명한 마정의 핵은 휘진에게 넘겨두었다.
[아리스 경이 예정대로 루블 토프키센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현재 트리니다드에서는 관함식을 준비 중입니다]
‘예정대로’라는 펠릭스의 전언에 아슌푸틀은 가슴을 찌르는 통증을 느꼈다.
자신을 따르기로 약속했던 사람들이 자신이 내세우는 정의를 쫓아 죽어간다.
익숙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순간들은 여지없이 깊은 상처를 남겼다.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진정 어린 슬픔에는 언제나 눈물이 따른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가식이 아닐까? 자신은 어딘가 망가져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되돌리기엔 모든 것이 너무 늦었다.
적어도 8년은 늦어버렸다.
모든 것을 짊어진 고고한 결의를 다시세운 아슌푸틀은 마법으로 원격 편지를 일소하고 당당한 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 ◈ ◈
체크인 시간을 지연하면서까지 휘진은 아나스타샤의 마지막 육체를 탐닉했다.
밤새도록 이루어진 거센 성교가 거듭될수록 그녀는 눈에 띄게 타락해 휘진을 갈구해왔고, 휘진은 이에 전력으로 응해 몇 번이고 질내 사정을 해주었다.
어차피 계속 중앙에 남아 있을 것도 아니고 아슌푸틀을 따라 북해로 돌아가게 된다면 아나스타샤와는 빠빠이다.
걸쭉하게 정액이 눌어붙는 자지를 질 내에서 빼내며 휘진은 땀범벅인 아나스타샤의 등에 키스했다.
“고생했어, 아샤.”
“하앙…하아…♡”
몇 백번인지 이제는 셀 수 없는 절정에 녹초가 되어버린 아나스타샤.
시간정지 능력마저 백분활용하며 즐기게 한 탓에 그녀는 호텔 층 하나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크게 비명을 지르며 자지러졌었다.
방음 시설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다면 신고가 몇 번은 들어왔을 것이다.
“더…더…넣어줘어…”
아기처럼 칭얼거리며 자신의 양 엉덩이를 벌려 보이는 아나스타샤.
모양이 바뀔 정도로 충혈 되어 뻐끔거리는 음란한 구멍에서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것 같다.
사람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구나라고 무심코 휘진은 생각했다.
아무런 협박도 없는데도 요녀처럼 허리 위에서 춤을 추던 아나스타샤의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휘진의 자지라는 듯이 행복해하던 그녀의 모습에 괜히 코를 쓱 문지르는 휘진.
“이젠 됐어. 약속대로 3일도 지났고 곧 미카엘도 돌아올 거잖아?”
“미카엘 같은 거 몰라… 자지…자지 더 넣어주세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아는 걸까? 밤새 섹스를 하고도 부족하다니 약간 잘못 개화시켜버린 느낌도 난다.
휘진은 앙탈을 부리는 아나스타샤를 매몰차게 뿌리치고 옷걸이에 걸린 양복 주머니에서 알약을 꺼냈다.
너무 많이 해버린 탓에 오랜만에 현자타임이 와서 벗은 아나스타샤를 보고도 아무런 기분이 들지 않는다, 사실.
그래도 이 정도까지 어울려 주었는데 방치해버리는 건 아니다 싶다.
“뭐 또 언젠가는 만나겠지?”
“그냥 갈 거야…? 나… 여기서 기다리고 있는데…”
“너도 이제 제자리 찾아가야지. 여기 좌약식 피임약 있으니까 지금이라도 써. 난 간다. 언젠가 또 보자.”
안 그래도 대공님에게 연락을 받았다.
앞으로 이틀 뒤라고 했으니 적당히 호텔에 방이나 잡고 잠이나 자두기로 한 휘진은 아나스타샤를 남겨두고 방을 나섰다.
문이 닫히자 아나스타샤는 허망한 표정을 지으며 그가 나간 방문을 바라보았다.
뜨거운 신음으로 가득했던 스위트 룸은 차디찬 적막이 자리를 대신했다.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어보인 아나스타샤는 샤워를 하고 옷가지를 챙겼다.
“곧 있으면 미카엘이 돌아올 시간이네…”
빵이라도 구워놓을까.
광란의 밤이 한줄기 꿈처럼 느껴졌다.
허망하게 사라져버리는 일장춘몽.
하지만 아나스타샤는 그게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분명히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남기고 갔다는 것 또한.
아나스타샤는 샤워로 몸 군데군데 새겨진 휘진의 향기를 지워냈다.
어제 입었던 창녀 같은 옷을 다시 걸치고, 문밖을 나선다.
◈ ◈ ◈
“다녀왔어?”
배를 타고 돌아온 미카엘을 아나스타샤는 현관에서부터 뜨겁게 끌어안았다.
몸에선 짙은 땀내가 묻어나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갑자기 왜 이래. 나 옷 더러워. 갈아입고 안아.”
“괜찮아. 나도 더러워.”
애정표현이 서툴기 그지없던 아나스타샤의 적극적인 환대에 미카엘은 멋쩍은 듯이 웃으면서도 그녀를 꽉 안아주었다.
아직은 아가씨라는 표현이 더 입에 익긴 하지만 그래도 어엿한 부부가 되었으니 멋진 남편의 모습도 보여주어야겠지.
아나스타샤의 허리를 단단히 붙잡은 미카엘이 그녀와 농밀하게 혀를 섞어나갔다.
이런 풍만한 몸매에도 가냘픈 허리.
한때는 꿈도 못 꾸었던 아리따운 그녀가 지금은 어엿한 자신의 신부이다.
그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끼며 미카엘은 만연의 미소를 띠웠다.
“저기… 씻을까?”
“응…”
키스가 끝나자, 눈이 마주치는 것도 부끄러운지 고개를 끄덕이는 아나스타샤.
당장이라도 그녀를 안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며 아나스타샤와 번갈아 씻었다. 드디어 미카엘은 부부 침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앙…하앙… 좋아앗…!!”
오랜만에 안게 된 아나스타샤.
정상위로 다리를 벌린 그녀를 아래서 위로 쳐올리듯이 정성껏 박음질한다.
배에서 함께 지낸 형님들의 조언대로 30분 정도 공들여 애무를 해주자 확실히 평소와는 반응이 달랐다.
한번 가볍게 쑤셔주는 것만으로도 애액이 물처럼 넘쳐나고 평소에는 점잖게 신음을 숨기던 모습과는 다르게 앙앙거리는 그녀의 모습.
이게 바로 기술의 힘이라는 건가!
충족되는 남성성과 자부심을 느끼며 미카엘은 움직임에 박차를 가했다.
“하아아앗…!!!”
절정의 순간 아나스타샤의 다리가 뱀처럼 미카엘의 허리를 휘감았고, 뺄 타이밍을 놓친 미카엘은 그대로 그녀의 몸에 씨를 뿌리고 말았다.
머리까지 아찔해지는 질 점막의 감촉.
아직은 시기가 아니다 싶어 조절해 왔었는데, 오늘따라 그녀의 돌발 행동 탓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왜 그랬어? 갑자기.”
그대로 아나스타샤 위로 엎어진 미카엘의 등을 상냥하게 쓰다듬는 손길.
아무 말 없이 아나스타샤는 미카엘에게 키스를 시작했다.
“나한테는 당신만 있으면 돼.”
“나도 그래.”
어쩐 일인지 내숭 없이 사랑가득한 말을 해주는 아나스타샤의 모습에 미카엘은 아직도 질 내부의 담구고 있던 물건이 다시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 ◈ ◈
오늘아침까지 다른 남자의 씨앗을 받았던 질 내에 지금은 미카엘의 것이 몽글거린다.
목욕을 하겠다며 잠이 든 미카엘을 남겨두고 홀로 욕실에 들어선 아나스타샤는 자신의 배를 어루만졌다.
이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분명 휘진은 그녀의 몸을 멋대로 더럽혔지만, 중간부터는 아니었다.
부정할 여지없이 스스로도 그의 악행에 동조해 즐기고 있었다.
그 증거가 여기에 있다.
느끼고 있다.
“부족해…”
미카엘의 사랑 가득한 섹스는 아나스타샤의 마음에 따뜻함을 주었다.
그러나 성욕은 전혀 채워지지 않았다.
비교하는 것 자체가 죄악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나스타샤는 끝없이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존엄을 부정하듯이 절벽으로 몰아붙이는 휘진의 잔악함과 그로 인한 수치심이 주는 농염한 쾌감을.
온몸의 세포가 이것을 위해 태어났다라고 소리 지르는 궁극의 엑스터시를.
거울을 마주보며 심란한 표정을 지어보이던 아나스타샤는 스스로의 손길로 마저 채워지지 못한 몸뚱아리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가슴을 주무르며 섬세한 손가락 끝으로 클리토리스를 문지른다. 지금 당장의 자기혐오보다 쾌감의 충족이 중요했다.
그 남자가 이렇게 만들었다.
“하응…!!”
입술을 꽉 물어 신음을 삼키며 아나스타샤의 손가락은 어느덧 뜨겁게 달아올라있는 질 내부를 파고든다.
오돌토돌한 육벽을 파헤치고 문고리를 잡듯이 G스팟에 손가락을 고정하자 다리가 파르르 떨렸다.
“좋아…하응…!! 너무 깊어…!! 더…박아줫…”
무의식적으로 누군가를 향해 중얼거리는 아나스타샤의 애처로운 신음이 한참동안이나 새어나왔다.
◈ ◈ ◈
북해의 꽃 베아트레아 대공이 역모 죄로 처형당한다.
광장에는 벽보가, 복잡한 골목에는 호외를 뿌리는 청년들에 의해 이 소식은 일파만파로 퍼졌다.
정치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는 평민들일지라도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누구나 들어보았다.
천상에서 내려온 미모를 지녔다 전해지는 여공작.
기이한 사술을 부려 마음을 현혹하는 마녀.
피도 눈물도 없는 철혈의 정치가.
강철조차 녹여버리는 요부.
그녀를 수식하는 말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은 그녀가 슐레스비 제국에서 어떤 입지를 갖고 있는지를 짐작케 했다.
이 어마어마한 소식에 순식간의 황궁의 재판장으로 인파가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