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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에 넘어가자 시간정지 능력이 생겼다-120화 (120/154)

120화 피학 속에 피는 꽃(3)

머리를 마비시키는 모멸감과 배덕감.

미카엘이 이런 자신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죄스러운 기분이 되었다.

잔뜩 흥분한 기색으로 아나스타샤의 치마에서 기어 나온 벨보이는 불룩해진 자신의 바지를 가리켰다.

“이제는 못 참겠습니다, 형님.”

“그도 그렇겠지. 이런 몸을 보면서 아무런 기분이 들지 않는다면 이상한 걸 테니까. 아샤 입으로 해줘.”

“제 정신이야?”

아무리 그녀라고해도 이런 모욕은 참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몸 깊은 곳에서 쑤셔 박혀 있던 분노의 감정들이 되살아난다.

“당신이 하라는 대로 다 했잖아! 이런 창녀 같은 옷도 입고, 당신이 원할 때까지 몸도 내줬잖아!”

“그래서 안 하겠다?”

“우욱…”

끝내 또르륵 흐르는 눈물이 뺨을 적신다. 아나스타샤는 울먹이는 목소리를 한 차례 헛기침으로 가다듬고는 벨보이의 바지를 주섬주섬 내렸다.

갑자기 눈앞에서 벌어진 말다툼에 조금 작아졌던 벨보이의 물건은 아나스타샤가 주섬주섬 사타구니를 더듬자 다시금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허억…”

매력적인 두툼한 입술이 귀두를 푸근하게 감싼다. 립글로즈가 입술 위를 얇게 덮은 탓에 쫀득쫀득한 느낌이 배가 되었다.

처음에 주춤했던 아나스타샤이지만 열심히 고개를 앞뒤로 흔든다.

금지옥엽처럼 자라왔던 자신이 지금은 호텔 뒷 계단에서 벨보이의 자지나 빨아대고 있다니.

그러나 그 뒤를 따라온 것은 알 수 없게도 흥분감이었다.

휘진이 자신을 험악하게 굴리면 굴릴수록 마음속에서 유혹하는 달콤한 속삭임.

더 영락하고 싶지 않은가?

스스로를 되돌아봐도 비참하기 그지없을 정도로, 그의 잔혹한 유희에 휘말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박탈당하고 모든 선택권을 그의 손에 쥐어주는 것.

육체와 본능은 해방과 추락을 원한다.

그럼에도 아나스타샤는 간신히 마음을 다잡는다.

그녀에게는 지켜야 할 것이 있다.

미카엘.

아무것도 남은 것 없는 자신을 받아준 남자.

자신 혼자였더라면 가벼이 마음 속 유혹에 몸을 맡겼을 것이다.

“진짜 잘하시네요.”

“내가 특훈 시켜줬어.”

아나스타샤의 반응에 그녀가 창녀가 아님을 재빨리 눈치 챈 벨보이는 어느새 공손히 말했다.

물론 거시기는 아나스타샤의 침으로 번들번들해지고 있었지만.

“크윽!!!”

“쿠훕…!!!”

얼마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지만 벨보이는 금세 아나스타샤의 구강에 사정했다.

최소한 이 상황을 빨리 끝내려는 듯 적극적인 아나스타샤는 현묘한 움직임으로 성감을 자극했던 것이다.

아나스타샤는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자신의 입에서 움찔거리며 퍼지는 탁한 액체를 받아 들였다.

반쯤 체념어린 콧소리가 축 처진 어깨사이로 들려온다.

“덕분에 좋은 경험하고 갑니다.”

바지를 추스르고 배꼽인사를 하는 벨보이.

계단의 구석에서 아나스타샤는 입안에 머금었던 정액을 내뱉고 옷을 다시 차려입었다.

“자, 이제 라운지로 좀 안내해 주실까?”

“넵! 맡겨만 주십시오!”

한결 높은 텐션이 된 휘진은 아나스타샤와 함께 라운지 바로 향했다.

◈          ◈          ◈

9층에 위치한 라운지 바는 말하자면 별천지였다.

전반적으로 어두컴컴한 분위기에 카운터에는 술을 흔들고 있는 정장 차림의 바텐더, U 자로 되어있는 소파들이 군데군데 자리를 잡고 있다.

벽 한 켠은 전부 유리인지라 화려한 야경이 불빛을 내고 있었다.

중세 판타지와, 야경. 잘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지만 무엇보다도 훌륭히 조화를 이루어내고 있다.

이 호화스러운 분위기 때문인지 대부분의 귀족의 교류는 이 라운지 바에서 이루어졌다.

깃털을 자랑하는 공작새처럼 서로 턱을 치켜들고 허영어린 술잔을 주고받던 라운지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또각 또각

유달리 차게 울리는 힐 소리.

고요해진 인파를 헤치며 등장한 여인에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다.

거기엔 새빨간 원피스를 두른 여인이 서 있었다.

가려진 곳보다 드러난 곳이 더 많은 원피스. 그마저도 딱 달라붙어 몸매를 강조하는 천박한 의상의 주인은 놀랍게도 전혀 천박해보이지 않는 여인이었다.

바에 있는 대부분이 남자인지라 그 시선에 순식간에 열기가 붙는다.

이곳은 마치 그녀가 아직 귀족이었을 때를 떠올리게 한다.

그때는 벽에 붙어서 있기만 해도 자신에게 다가와 빌빌 기는 남자들이 한 무더기였다.

고작 외모만 보고 달려드는 한심한 녀석들.

남자가 전부 이런 생물이라면 사랑 따윈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백안시하고 멍청하다고 생각했던 남자들 앞에서 윤락업소의 여자와 다를 바 없는 옷차림으로 활보한다.

수치심에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느낌이었다.

전신에 따가울 정도의 이목이 집중된다.

휘진 옆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걷고 있지만 아까부터 속옷을 입지 않은 하반신이 유달리 시려오는 느낌이었다.

노골적으로 엉덩이를 주무르며 금세라도 치맛자락을 들추려하는 휘진의 손길.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도 아까처럼 수치를 줄 생각인 걸까?

밉살스러운 그 옆얼굴이 여유로 넘쳐흘러 도리어 분했다.

빈자리를 찾아주고 팁을 받은 벨보이는 꾸벅 인사를 하고 떠나갔지만 휘진은 어째서인지 앉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설마 여기서 뭔가를 하려할 셈일까?

아나스타샤가 불안감에 휩싸일 때쯤 휘진은 자신의 가슴주머니에서 손수건을 툭 떨어뜨렸다.

“어이쿠 실수. 좀 주워줄래?”

아나스타샤는 드드드득 떨리는 목을 돌려 휘진을 바라보았다.

이렇게나 사람들의 눈이 집중된 상태에서, 이 꼬라지로, 손수건을 주우라고?

말로 표하지 못한 살기가 이글이글 눈에 집중된다.

하지만 휘진이 보기에 그 눈빛이란, 남은 것은 초라한 귀족의 자긍심뿐인 가엾은 여인의 반항일 뿐이다.

후 불어버리는 것만으로도 불씨조차 남기지 않고 꺼뜨릴 수 있는 자그마한 반항이다.

휘진은 담배를 꺼내 느긋하게 불을 붙였다.

자리를 잡고도 앉지 않는 한 쌍의 남녀에게 모두의 흥미가 어린다.

근처 테이블의 남자들은 아예 얘기도 멈춘 채 노골적으로 아나스타샤를 보며 히죽거리고 있었다.

한 차례 미간을 찡그린 아나스타샤는 무릎을 옆으로 접은 채 쭈그려 앉아 다소곳이 휘진의 손수건을 주어 들었다.

한 뼘보다 긴 힐을 신고 쭈그렸다 일어나는 것은 발목에 무리가 갔지만 적어도 부끄러운 곳을 전부 보이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후우, 다시.”

강아지를 조련하는 주인처럼 휘진은 아나스타샤가 곱게 접어준 손수건을 형편없이 땅에 팽개쳤다.

아나스타샤는 휘진의 의도를 완전히 이해했다.

참을 수 없는 치욕의 감정과 절망이 가슴을 답답하게 덮어간다.

“천천히 주워.”

망설이며 허리를 숙여가는 아나스타샤의 등 뒤로 냉랭한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재빠르게 손수건을 집어 낼 예정이었던 아나스타샤는 그의 웃음기 감춘 목소리에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편법을 쓴다한들 그는 다시 손수건을 집어 던질 것이고, 그의 마음에 들 때까지 아나스타샤는 몇 번이고 수모를 삼켜야 할 것이다.

쓸데없을 정도로 체통을 지키며 재미없는 대화를 이어나가야했던 라운지 내 대부분의 눈길이 아나스타샤에게 향했다.

그들로선 이런 고급 호텔의 라운지에서 뒷골목 스트립 바에서나 볼법한 퍼포먼스에 흥미가 동했을 뿐이다.

아나스타샤는 멈칫대며 허리를 천천히 숙였다.

둔부의 바로 밑에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던 짧은 치맛자락이 허리를 숙이며 서서히 들려나간다.

가뜩이나 늘씬한 다리에 힐까지 신은 아나스타샤는 본의 아니게 농염한 각선미를 자랑하며 그 이상의 치부까지 공연히 들추게 되었다.

“휘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캣콜링.

먹음직스럽게 야릇한 색향을 풀풀 풍기는 둥그런 엉덩이가 얇은 천을 걷으며 노출되자 관중은 다시 한 번 경악했다.

색기를 줄줄 흘리며 시선을 집중 시킨 아가씨의 엉덩이 사이에 그 어떠한 의복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매끄럽게 윤이 나는 푹 젖은 조갯살과 그 사이에 진주처럼 푹 박혀있는 유리 장식만이 금빛의 조명과 만나 반짝거린다.

한 치 발밑에 떨어진 손수건을 집어 올리는 짧은 과정이었지만 다시 고개를 들어 올린 아나스타샤의 얼굴은 창피함으로 후끈거리고 있었다.

“웨이터, 저기 신사 분에게 가장 비싼 샴페인으로.”

그 관경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던 테이블에서 금발의 귀족이 소소한 별풍선을 보내주었다.

더불어 여기저기서 웨이터를 찾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냥저냥 천박해 보이는 창녀를 데리고 저런 짓을 했다면 마음이 동하지 않았을 터다.

그러나 모처럼 안고 싶은 여자의 멋진 관경을 구경할 수 있던 귀족들과 상인들은 기꺼이 작은 선물을 보내왔다.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삐딱하게 물고 다리를 꼰 휘진의 옆에 옷차림을 최대한 단정하게 바로 한 아나스타샤가 앉았다.

테이블 앞에는 어느덧 한가득 각종 술과 칵테일들이 쌓여있었다.

그 우월감을 천천히 맛보던 휘진은 대충 제일 맛있어 보이는 술을 몇 개 들이켰다.

“덕분에 꽁술도 먹네. 너도 좀 마셔.”

“닥쳐…”

물 밖에 나온 생선처럼 안절부절못하는 아나스타샤의 모습이 오늘따라 귀엽기 그지없다.

귀여운 것은 가학심을 자극한다.

다른 여러 장르의 남자가 여자를 데리고 노출 플레이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렇게 예쁜 여자를 완벽하게 컨트롤하며 수치플을 강요하는 권력의 과시.

항상 꼿꼿한 태도의 아나스타샤가 허둥지둥거리는 몰골.

이 모든 게 휘진의 왜곡된 남성성을 만족시킨다.

“이제 슬슬 들어갈까?”

별 다른 플레이를 벌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는 휘진과 아나스타샤에게서 관심이 어느 정도 걷혔다.

물론 아나스타샤의 외모에 홀린 절반 정도는 아직도 기대감어린 눈길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 불편한 시선에 연거푸 독한 술을 들이 킨 아나스타샤는 반색했다.

이런 짓을 할 바에는 차라리 휘진에게 더럽혀지는 편이 훨씬 났다.

빨리 돌아갈 것을 재촉하는 아나스타샤의 몸짓에 휘진은 그녀를 허리를 끼고 느긋하게 객실로 발을 옮겼다.

◈          ◈          ◈

“미쳤어! 미쳤어! 당신은 진짜 미친놈이야!”

당장이라도 따귀를 한 대 올릴 기세로 아나스타샤는 객실에 도착하자마자 길길이 날뛰었다.

서럽게 잠긴 그 목소리에는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원통함이 묻어나왔다.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생각을 하는 거야? 사람이잖아? 아니 애초에 사람 맞아?”

좀 전 라운지 바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관심이 집중되는 판에 큰 소리를 내면 온갖 어그로를 다 끌 것이 뻔했다.

그렇기에 꾸역꾸역 수모를 인내해야했던 아나스타샤의 불만은 호텔의 객실이라는 사적인 장소에 도달하자 오버 풀 상태가 되었다.

머리를 띵하게 하는 알코올이 그 폭주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흑…”

손등으로 쓱 눈물을 훔친 아나스타샤는 아무대답도 않고 뻐끔 뻐끔 연기를 뱉는 휘진을 보며 까무러칠 것 같은 격노를 느꼈다.

“뭐라고 대답 좀 해봐!”

“미안해.”

“뭐?”

예상도 하지 못했던 휘진의 사과에 되레 기겁한 것은 아나스타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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