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사문회(4)
“무슨…!!”
“근육 이완제 겸 자백제야. 자살이라도 해서는 곤란해. 고집불통의 기사아가씨를 순하디 순한 인형으로 만들어주는 물건이지.”
손발의 첨단부터 천천히 저려오기 시작한 감각도 잠시 아리스는 곧이어 자신의 신체가 컨트롤하기 어려울 정도로 흐물흐물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실 여자에게 이걸 쓰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 이걸 주입해버리면 보지까지 헐렁해져서 박는 맛이 전혀 없으니까. 뭐 그럴 때 사용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지만.”
전혀 궁금하지 않은 사실을 떠벌이던 토프키센은 약물이 반쯤 남은 주사기를 바닥에 대충 던져놓고 뒤로 물러서 팔짱을 꼈다.
약효에 저항하지 못하고 꿈틀거리는 아리스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핥듯이 응시한다.
“포로로 사로잡은 기사에게… 이런 모욕을…”
아리스는 있는 힘껏 똑바로 서려했다.
하지만 약물이 천천히 퍼져나갈 때마다 제 몸도 가누지 못하고 휘청거리게 된다. 결국 아리스는 땅을 디디고 있던 다리를 힘없이 굽히며 사슬에 의존해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는 베아트레아 대공에게 제대로 된 답변을 받을 때까지 너에게 손을 댈 수 없지. 하지만 같이 수감된 포로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까지 어디서 떠벌릴 수는 없겠지? 여차하면 그대로 내 장난감이 될 테니 미리 길들여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여자라면 알 것 아니야. 구두 같은 것은 먼저 충분히 신어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토프키센의 박수와 함께 고개를 조아리고 있던 슈렐리아 주춤주춤 아리스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 손은 언제 묻혀 두었던 것인지 끈적거리는 오일로 점칠 되어 있었다.
“슈렐리아, 그녀에게 정성스러운 신체검사를 해줘. 여자라면 물건을 숨겨 올 구멍이 남자보다 하나 더 있잖아?”
힘이 풀려 휘적거리는 아리스의 가랑이사이로 슈렐리아의 섬세한 손가락이 쑥 침투했다.
“크윽…!!”
증오해 마지않는 적국의 왕 앞에서, 알몸을 보이고, 다른 여자에 의해 질을 쑤셔진다.
이런 수치스러운 상황에 아리스는 얼굴을 붉히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손가락을 이용해 한참이나 아리스의 질 내부를 휘젓던 슈렐리아는 겁먹은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토프키센에게 보고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가?”
토프키센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대뜸 슈렐리아의 목을 쥐었다.
사슴처럼 가느다란 목 줄기를 단단하게 움켜쥔 토프키센은 진심으로 분노한 기색으로 슈렐리아에게 물었다.
충혈 되어 핏발이 선 눈동자가 섬뜩하기 그지없다.
“내가 언제 그런 미적지근한 검사를 원한다고 했던가?”
“컥…커허헉…!!”
오랜 세월을 살았다지만 일개 여인에 불과한 슈렐리아가 그 힘을 버티는 것은 불가능했다.
토프키센의 힘이라면 수수깡 꺾듯이 그녀의 목을 부러뜨리는 것도 가능하리라.
치아노제로 입술이 새파랗게 변하면서도 손을 들어 반항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슈렐리아. 그 모습을 본 아리스가 다급히 외쳤다.
“그만둬!”
“허억, 하아!!하아!!”
깜짝 놀란 듯이 아리스를 바라본 토프키센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렇다네, 슈렐리아 이 고결한 여기사님은 네가 안쓰러워 견딜 수 없는 모양이야.”
“다른 지성체를 짐승 취급하다니! 쓰레기 같은 놈!”
적국의 왕에게 보이던 최소한의 경의조차도 벗어던진 아리스.
그녀는 엘프라는 이유만으로 저 여인을 핍박하는 토프키센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럼 정의로운 여기사님께 감사의 의미를 담아 마저 신체검사를 끝내도록.”
“…죄송합니다…”
슈렐리아에겐 저항의 의지가 거세되어 있었다.
딸의 목숨이 인질로 잡혀있다.
목숨이 문제가 아니다. 그의 손에 걸리면 슈미가 어떤 꼴을 당할지 무엇보다 자신의 몸이 가장 잘 알고 있으니.
고개를 푹 숙이고 다시 아리스에게 다가선 슈렐리아는 그녀에게만 들리도록 조그맣게 사과했다.
이어질 수치행각에 아리스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자신의 다리 앞에 무릎 꿇고 앉아있는 엘프 여성.
아리스는 그녀에게 아무런 악의도 품을 수 없었다.
같은 여성으로서 생각만 해도 참혹한 꼴을 당해온 흔적이 가득한 지워지지 않은 흉터를 보자면 강압에 떠밀려 자신을 모욕하려는 그녀가 딱하게 생각될 정도였다.
하지만 아리스는 자신이 너무나 안일하게 생각했음을 인정해야 했다.
지금은 남을 동정할 때가 아니었다.
토프키센이 슈렐리아에게 강제한 명령은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손등까지 오일로 치덕치덕 발려 있는 고운 손을 슈렐리아는 천천히 아리스의 틈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아까의 왕복운동으로 어느 정도 미끌거리기는 했지만 흥분을 일으키기엔 역부족인 움직임이었다.
때문에 바짝 말라있는 아리스의 내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슈렐리아는 최대한 한 손가락을 이용해 최대한 아리스의 내부에 윤활제를 도포했다.
슈렐리아의 배려아닌 배려를 불행 중 다행이라 여기던 아리스.
하지만 그 손가락이 하나가 되고, 두 개가 되고, 세 개가 되었을 때 아리스의 마음에 불쑥 불안감이 고개를 들었다.
미끈거리는 오일 탓에 입맛을 다시는 소리를 내며, 슈렐리아의 가운데 세 손가락은 아리스의 보지를 꽉 채워갔다.
근육 이완제의 작용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조임 탓에 이리저리 포개진 세 손가락. 이미 그것만으로도 한계를 표현하는 아리스의 질 내부에 구불구불 엄지손가락이 기어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흐윽…!!!”
슈렐리아의 심적 부담을 덜기위해 비명을 참아가던 아리스도 종국에 눈을 새하얗게 치켜뜰 수밖에 없었다.
무리하게 늘어지는 점막의 비명에 골반 뼈가 삐걱거리는 것만 같다.
성교의 경험은 몇 차례 없는 아리스이다.
아무리 휘진의 물건이 거대하고, 아무리 슈렐리아의 손이 작다지만 그 두께만큼은 애초에 비교가 무색할 정도로 차이난다.
“아아아악…!!!”
마침내 굽이굽이 새끼손가락까지 집어넣은 슈렐리아는 조심스럽게 토프키센의 눈치를 살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냐하는 조심스러운 제스쳐였지만 토프키센은 자비가 없었다.
슈렐리아는 이를 앙 다물고 아리스의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며 쫙 펴져있던 질 내의 손을 천천히 쥐었다.
“하으으으윽…!!!”
아름다운 나신의 두 여인.
후들거리는 다리로 땅을 딛고 선 아리스의 가랑이 한 가운데 손목까지 파고든 슈렐리아의 손.
그 음란하고도 가학적인 자태에 토프키센은 만족스러운 기색으로 입술을 핥았다.
아름다운 곡선이 맞부딪히며 나는 하모니.
여인의 살 냄새가 뒤섞이는 음란한 향기.
슈렐리아를 위해 고통스러운 내색을 숨기는 아리스의 절제력과, 그런 아리스를 고통스럽게 만들며 죄악감에 사로잡힐 슈렐리아의 죄책감이 농밀한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밀실을 가득 채우는 것만 같다.
손 전체를 조여 오는 뻑뻑한 살덩이 속에서 몇 번 손목을 지분거리던 슈렐리아는 살포시 손을 빼내었다.
“크윽!”
찔겅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아리스는 전신에 한껏 주었던 힘을 뺐다.
이완제의 효과 때문에 제대로 힘이 들어간 것도 아니긴 했지만, 지나치게 큰 이물을 강제로 받아들여야 했던 고통은 반사적으로 근육을 경직시켰다.
“일국의 군주라기엔 비열하기 짝이 없는 소인배로군요.”
아리스의 도발에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인 토프키센은 손가락을 튕겼다.
메마른 반향과 함께 마법과 연동되어있던 방안의 촛대들이 환하게 타오르며 방안을 밝혔다.
마음의 각오를 다졌더라도.
결코 굽히지 않을 신념이 있더라도.
인간이 처음으로 상식 외적인 것과 마주할 땐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갑자기 환해진 시야에 두 배는 넓어 보이는 방안.
어둑한 조명 탓에 구석까지 닿지 않았던 아리스의 시계(視界)가 방 곳곳을 훑는다.
그리고는 전율했다.
천장과 벽 한쪽을 채우고 있는 커다란 거울, 방 한구석에 놓여있는 형틀과 기괴한 형태로 여성을 고정하는 분만대, 정체를 알 수 없는 삼각 목마까지.
여자를 희롱하기 위한 온갖 준비를 끝낸 기구들이 즐비하게 나열되어있었다.
“죄수 슈렐리아가 슈펜아우져의 가련한 ‘푸른 매’ 쉬펜 아리스 경을 알지 못했던 환락의 세계로 인도할 시간이야.”
슈렐리아는 벽 한 켠에 있던 굉장히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질질 끌고 나왔다.
손잡이 부분까지 까맣게 도색되어있는 철제 가방은 돌바닥과 부딪히며 새된 소리를 내었다.
마치 호텔 개장식을 선언하는 사회자처럼 과장된 몸짓으로 손을 펼친 토프키센, 아리스의 정면에 있던 허리 높이의 가방이 열렸다.
슈렐리아는 마치 자동인형처럼 건조한 박수를 친다.
“앗!”
거기엔 아무것도 모르는 아리스가 보기에도 그 용도가 확실한 연장들이 공구 세트처럼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다.
주로 검은색 고무와 은으로 된 재질들의 도구.
흉악한 남성기의 모양을 한 것도, 인체에 행해져서는 안 되는 작동방식을 가진 도구도 있다.
꼼짝도 못하고 얼어 붙어있는 아리스의 뺨을 가볍게 쓰다듬은 토프키센은 조용히 귓가에 속삭였다.
“다음에 만났을 때는 충분히 숙성되어 있으면 좋겠어.”
철문이 닫히고, 아리스와 슈렐리아는 이 지옥과도 같은 고문실에 단 둘이 남았다.
토프키센이 나간 뒤 슈렐리아는 망가진 인형처럼 우두커니 철제 상자 앞에 서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아리스를 방치해두고 봐주고 싶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토프키센이 사랑해마지 않는 이 방의 별칭은 ‘진실의 방’.
이제껏 수 십여 명에 달하는 여성들이 이 방에서 최후의 숨을 뱉었다.
직접 고문을 할 시간이 없으면 전문적인 고문사에게 대행을 맡긴다. 그리고 이 방 곳곳에 설치된 수정구슬로 그 영상을 녹화해 술과 함께 즐기는 것이 그의 악취미중 하나였다.
당연히 이 방안에서 아리스에게 행해지는 모든 성고문은 생생히 기록될 것이며 슈렐리아의 손에 일말의 자비가 엿보이는 순간 슈미의 안전은 보장할 수 없어지게 된다.
“괜찮으십니까?”
고장 난 것처럼 우뚝 서 있는 슈렐리아에게 아리스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불이 밝혀지자 슈렐리아의 몸에 있는 문신과 흉터자국들이 더욱 자세히 보였다.
슈렐리아는 아무 말도 않고 아리스의 쇠사슬을 풀어주었다.
“가…감사합니다.”
자신을 풀어주는 슈렐리아에게 감사의 표현을 전한 아리스지만, 슈렐리아는 여전한 무표정이었다.
의도적으로 감정을 억누르는 것으로 보였다.
사슬에서는 풀려났다지만 아리스는 도저히 혼자 힘으로 걸을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마력을 뽑아내려 해도 어찌된 영문인지 전혀 사용할 수 없다.
“당신이 마신 물에는 ‘마각제(魔各劑)’가 들어있어요. 한동안은 마력을 사용하실 수 없을 거예요.”
생각보다 훨씬 유려하고 고급스럽게 대륙 본어를 구사하는 엘프의 모습의 아리스는 한숨을 지었다.
그 말씨는 그녀가 꽤나 높은 신분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유추하게 해 주었다.
“풀어주실 수는 없는 겁니까?”
아리스의 질문에 슈렐리아는 보일 듯 말 듯 미미하게 고개를 저었다. 대신 아리스의 팔을 붙잡고 거울 바로 앞에 놓인 평평한 형틀로 향했다.
이 여인도 도망칠 수 없는, 조력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것이리라. 그리 생각한 아리스는 오히려 슈렐리아가 이끄는 대로 잠자코 형틀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