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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에 넘어가자 시간정지 능력이 생겼다-114화 (114/154)

114화 사문회(3)

“나는 베아트레아 아슌푸틀의 자랑스러운 기사 쉬펜 아리스다! 부끄러움을 아는 자라면 내려와 검 끝을 맞댈 지어다!”

아리스를 한줌의 재로 만들기 위해 마포에 마력을 응집시키던 함선들이 잠잠해졌다.

그녀의 목소리가 닿은 것이다.

아리스는 베아트레아 아슌푸틀의 오른팔, 반드시 사로잡아야 할 귀중한 포로이다.

-고오오오!!!

아리스는 피부가 저릿저릿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말도 안 되는 범위의 마력이 한 곳으로 뭉쳐가고 있다.

상식적인 범위를 아득히 초월한 마력의 자기화 현상에 의해, 하늘을 가득 매운 공군함들이 통제를 잃고 비틀거리는 것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이다.

-파츠츠츠츠!!!

물리법칙의 폭거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거센 폭풍에 대기가 비명을 지른다.

신을 죽인 자, 토렌스.

루블 왕국의 수호신이 용의 표호와 같은 뇌광을 온 몸에 두른 채 천천히 내려온다.

그의 등 뒤에서 사방으로 뻗는 뇌전(雷電)은 한 줄기 한 줄기가 공군함의 마포에 비견된다.

최악의 적이 그곳에 있었다.

인간 중에서는 최상위에 속하는 기사 아리스라 하더라도 당해낼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의 몸을 둘러싼 뇌광은 아리스가 뽑아낸 검기를 손도 대지 않고 바스러뜨렸다.

그의 움직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눈으로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빨랐으며. 그의 가벼운 일격은 최고의 집중으로 임한 아리스의 방어를 순식간에 뚫어내었다.

인간과 아신에게는 넘나들 수 없는 두터운 벽이 존재한다.

하물며 아신 중에서도 당연 최강이라 거론되는 토렌스를 상대로 30 초 이상 응전했다는 것만으로 높게 평가 받을 만했다.

돌계단을 울리는 철제 부츠의 소리. 잘그락 거리는 쇠사슬이 좁은 옥실 안에서 메아리친다.

거미줄에 칭칭 묶인 나비처럼 아리스는 양 팔을 사슬에 묶인 채로 감옥의 벽에 매달려 있었다.

찰랑거리는 금발이 땀에 의해 뺨에 매달려있다. 서늘한 감옥의 습기가 살갗에 달라붙어 불쾌하다.

“으으음…”

아리스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토렌스와 격돌하며 생긴 마력회로의 부하 탓인지 몸을 움직이는 것이 자유롭지 않다.

고작 고개를 드는 단순한 동작 하나만으로 온몸의 근육이 끊어지는 피로감에 휩싸인다.

별빛 하나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옥내는 네다섯 개 정도의 촛불을 조명삼아 어둠을 밝힐 뿐 어떠한 편의 시절도 존재하지 않았다.

저기 구석에 쌓여있는 짚더미가 화장실인 모양이다. 아무리 보아도 중요한 귀족포로를 대접하는 곳이 아니다.

국제법에 따르면 남작 이상의 작위를 갖고 있는 포로에게는 아무리 못해도 제대로 된 세끼 식사와 잠자리, 별실이 제공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돼지 같은 우리를 보았을 때 토프키센은 그녀를 정중히 대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철컥 끼이익

쇠가 돌바닥을 긁는 거친 소리, 경쾌한 발걸음과 함께 화려한 금발의 남자가 등장했다. 그 뒤에는 갑주를 입은 토렌스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아리스를 내려 보고 있었다.

“이데아 협약 3항에 의거한 포로의 인도적인 대우를 요구합니다.”

아리스는 바싹 갈라지는 입술을 간신이 달싹이며 두 사내에게 말했다.

그 중 앞에 있는 것은 불과 몇 개월 전에 슈펜하우져에서 만났던 루블 토프키센.

이 폭군도 손수 사로잡은 대공의 오른팔에게는 어지간한 관심을 품고 있는 모양이었다.

고작 포로의 얼굴을 보겠다고 이런 곰팡내 나는 장소까지 친히 내려올 정도이면 말이다.

토프키센이 건성으로 손을 흔들자 토렌스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한 여자가 나타났다.

토프키센에 의해 완벽한 성노예로서 조교된 전 엘프 왕녀 슈렐리아.

엘프답게 170이 넘는 신장과 늘씬한 육체가 한 없이 작아 보일 정도로 위축되어있다.

아리스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찰랑거리는 백 금발을 지닌 엘프 여성은 그 어떤 의복도 걸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그 육신을 빼곡하게 매운 것은 유려한 글씨체로 써진 천박한 문신과 여성의 소중한 부분을 죄다 관통하고 있는 보석 피어싱 뿐이다.

토프키센의 가학 행위에 대해서는 익히 전해 들어왔던 아리스로서도 치를 떨게 할 정도로 잔혹한 행위였다.

아무리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그녀의 모습이 미래의 자신과 겹쳐 보이는 것은 근거 없는 불안감의 발로가 아닐 것이다.

아무 말도 없이 총총 걸음으로 아리스에게 다가온 슈렐리아는 새의 부리처럼 생긴 병 부분으로 조심스럽게 아리스에게 물을 먹였다.

오랫동안 기절해 갈증이 극에 달했던 아리스는 천천히 물을 받아 마셨다.

그 모습을 흥미로운 듯이 지켜보는 토프키센은 아리스가 병에서 입을 떼자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슈렐리아의 목에 걸린 목줄을 잡아 당겨 그녀를 뒤로 보낸 토프키센이 아리스의 바로 앞에 섰다.

“오랜만이야. 이름이 뭐였지?”

“루블 토프키센 공. 다시 한 번 요구하겠습니다. 슈펜하우져의 베아트레아 대공께 통고 해주십시오.”

“나는 알고 있어. 피닉스를 빼돌렸던 소동 네 짓거리지? 너 덕분에 얼마나 골치가 아팠는지 알면 넌 지금 내 앞에서 그렇게 꼿꼿하게 있지 못할 텐데 말이야.”

친구에게 말하듯이 친근한 말투이지만 그 웃음 속에는 잔인할 정도의 광기가 어려 있다.

무언가 대답하려던 아리스의 말문이 턱 막힐 정도로 말이다.

그 불길한 기류에 아리스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일단 이거 받아.”

“쿠흡…!!!”

무자비하게 휘둘러진 토프키센 주먹이 무방비 상태의 아리스의 복부에 꽂힌다.

아리스의 몸이 공중에서 꺾인다. 마치 반쯤 매달린 상태에서의 일격은 고통에 익숙한 아리스의 정신마저 순간 아득하게 만들 정도로 위력이 있었다.

등뼈가 삐걱인다. 신체가 한 가운데로 오그라드는 호흡곤란이 순식간의 아리스의 얼굴을 새파랗게 물들였다.

“발버둥 쳐봐야 소용없어. 네가 매달린 사슬은 모든 마력의 작용을 차단하는 물건이니까.”

조금은 속이 후련해 진 것인지 토프키센은 산뜻한 얼굴로 자신의 금발을 쓸어 올렸다.

누가 보아도 미남자의 화보 같은 장면이지만, 여성의 복부에 진심펀치를 꽂은 뒤 저런 행동이라니 또라이라는 생각 외에는 들지 않았다.

“이건…쿠흑…!!!”

“입 다물어.”

아리스가 입을 열려는 찰나 이번엔 토프키센의 앞차기가 가슴에 처박힌다. 벽과의 공간 때문에 뒷머리를 심하게 찌었는지 가벼운 뇌진탕이 일어났다.

“진정하시죠.”

토프키센의 폭력행위를 만류한 것은 다름 아닌 토렌스였다.

단순히 폭행을 근처에서 보는 것만으로 사시나무 떨듯이 파들거리는 슈렐리아의 모습. 그녀가 얼마나 가혹한 폭력에 노출되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아무런 마력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나도 알아. 단련된 기사의 신체는 이 정도로 부서지지 않는 다는 것도 알지. 경험이야 경험.”

아리스의 뺨을 가볍게 툭툭 치며 장난스럽게 받아치는 토프키센. 고통 이전의 굴욕감이 아리스의 마음에 번진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제한된 상황에서 아리스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그의 손길에 이리저리 얼굴이 돌려지는 것 밖에 없었다.

“그러게 처음부터 좋게 제안을 받아들였으면 참 좋았을 텐데. 베아트레아 대공도 어리석지.”

“슈펜하우져에는 연락을 하시겠습니까?”

“그래, 가능한 빨리 답신을 주지 않는다면 가련한 여기사의 최후는 우리의 손으로 결정 짓는다고 전해줘.”

공적인 얘기는 이쯤하고, 라고 중얼거리며 토프키센은 아리스의 상의 단추에 손을 가져댔다.

갑주는 어느새 전부 벗겨져 있어 아리스의 몸을 감싸고 있는 것은 부드러운 재질의 셔츠와 속치마뿐이다.

그 마저도 격전 중에 속치마의 절반이 날아가 무릎께까지는 불타 있다.

상상도 못했던 토프키센의 행동에 아리스는 눈을 부릅떴다. 뻣뻣하게 경직되는 아리스의 모습에 토프키센이 설명했다.

“만에 하나 이상한 물건이라도 숨겨왔으면 곤란하잖아? 소지품 검사니까 긴장 풀어.”

손쉽게 풀려나가는 단추와 함께 아리스의 앞섶이 풀어헤쳐진다. 징그러운 눈길로 그 사이를 훑은 토프키센은 빈정거렸다.

“여기사로 있기엔 아까운 깨끗한 몸인데. 제법 가지고 노는 맛이 나겠어.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비릿한 토프키센의 목소리에서 아리스가 느낀 것은 단순한 욕정 따위가 아니었다.

자폐아가 끊임없이 마음에 드는 것을 망가뜨리는 것처럼, 어딘가 깊숙하게 일그러진 공감 결락(缺落)이었다.

남자와 살을 섞는 경험은 휘진 밖에는 없는 아리스이지만, 본능적으로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휘진은 어디까지나 성욕을 우선시하는 쾌락지상주의의 인간이다.

성욕을 해소하는 이상의 위해나 위협은 가하지 않으니 최소한의 안전선은 지킨다고 볼 수 있다.

반면, 토프키센이 관심을 갖는 것은 파멸 그 자체였다.

여성을 육체적으로 능욕하는 것은 그 수단에 불과하다.

때문에 두렵다.

아무리 각오를 세워도 인간인 이상은 감정을 품기 마련이다.

“우선 여기엔 없는 것 같고.”

토프키센은 마치 도축할 돼지를 검사하는 것처럼 주머니에서 꺼낸 단도로 아리스의 상의를 찢어내고 브래지어마저 뜯어버렸다.

아리스의 잘 익은 참외만한 유방이 매혹적인 자태를 드러낸다.

그 끝에 위태위태하게 매달린 유두가 어스름한 조명에 빛났다.

아리스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휙 돌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외간 남자에게 속살을 보이는 것은 결코 겪고 싶지 않은 수치다.

고운 입매를 굳게 닫고 있는 아리스를 보며 토프키센은 옷을 찢은 단도로 유두의 첨단을 쿡쿡 찔러댔다.

꾸욱 유두를 눌러오는 칼날의 예리함과 공포감은, 아리스를 묶고 있던 사슬이 철컹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무례한 검사에도 이토록 적극적으로 협조해주다니 감사할 따름이지.”

당장이라도 유두를 도려낼 것 같이 매섭게 단도를 놀리던 토프키센은 가볍게 단도를 휘둘러 나머지 의복도 벗겨내었다.

그간 많은 여성의 몸에 익숙해졌던 토프키센이지만 아리스의 몸매에는 감탄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매끈한 복근과 부드러운 여성의 피부의 완벽한 조화. 지나치게 울퉁불퉁하지 않고 11자를 그리는 라인과 운동선수 같은 신체의 라인은 조각상을 연상시킬 정도로 부족한 구석이 없었다.

마스터 피스를 감상하는 조각가처럼 황홀한 표현을 짓는 토프키센은 단도의 끝으로 아리스의 신체 구석구석을 누볐다.

마치 그 칼날이 자신의 감각 기관의 연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칼날이 음부로 향할 때 쯤 아리스는 표독스럽게 외쳤다.

“더 수치를 줄 생각이면 죽여라.”

매섭게 눈을 치켜뜬 아리스의 시선에도 토프키센은 위축되지 않았다.

거미줄에 걸려든 먹잇감에게 겁을 먹는 거미는 없다.

토프키센의 입장에서 아리스는 언제나 폐기할 수 있는 버림 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럴 순 없지. 네게서는 많은 것을 알아내야 하거든. 슈렐리아.”

그의 부름에 총총 다가온 슈렐리아는 살짝 염려하는 모습으로 아리스를 훑어보았지만 곧장 고개를 숙이고 토프키센에게 무엇인가를 건넸다.

그것은 투명한 액체를 주사바늘 끝에서 뿜어내고 있는 주사기였다.

“자결하는 것은 곤란하니 한 번 더 실례하겠어.”

아리스가 무언가를 할 틈도 없이 날카롭게 복부에 꽂힌 주사기는 아리스의 뱃속에 차가운 액체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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