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사문회(1)
가벼운 아침 식사 이후 베아트레아 대공은 병사들에게 연행되어 사문회장으로 이동했다.
재판장 같은 널따란 곳을 예상했지만 방 자체는 대공이 연금된 방보다도 작다.
말굽처럼 둥글게 대공을 둘러싸고 있는 테이블은 방 한가운데 놓여 가운데 의자를 내려 보듯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 뒤로는 각기 3명의 사내가 앉아 품평하듯이 그녀를 훑어보았다.
“어서 오시오, 베아트레아 대공.”
“인원은 이게 고작인가?”
“그렇소이다. 착석해도 좋소.”
사문관으로 입회한 것은 수석 사문장인 벨 공작을 위시로, 중앙 심문회의 의장인 솜즈 후작, 황태자의 오른팔인 하트펠트 상급대장이다.
대공과는 전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다. 황태자 측의 사람이었으니 모두 악연이었다.
어떤 용도로 설계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려 역모를 추궁하는 자리에 이렇게나 적은 인원이 모였다는 것에서 그녀는 두 가지를 추측할 수 있었다.
적어도 이 사문회가 공평하게 흘러가진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대공이란 작위가 이곳에서는 별 다른 의미를 갖지 않으리라는 것을.
“중앙 심문회에서 발신한 편지는 받았으리라 사료되오. 대공께선 지금 루블 왕국과 내통하여 국가 전복을 모의한다는 용의가 있소이다.”
“사실 무근한 일일세.”
자신의 직분을 밝히는 것도 없이 사문회는 시작되었다. 다짜고짜 시작된 그녀의 사문회는 과거 약력을 훑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몰락한 가문에서 군의 참모로 전향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워 작위를 받고 허허 벌판인 북해로 파견되기까지.
스토킹 저리가라 할 정도로 자신의 과거가 상세하게 나열되는 것을 보며 아슌푸틀은 꺼림칙함을 느껴 어깨를 떨었다.
무려 한 시간이 지나서야 솜즈는 떠벌이기를 멈추었다.
“…이렇듯 귀공은 전례 없는 나이로 대공이 되었고 황제 폐하의 은총을 받아 한 지역의 패자로 군림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 피땀 어린 노력을 고작 행운으로 치부하며 빈정대는 솜즈 후작의 말투에도 아슌푸틀은 평정을 유지했다.
저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자신이 감정적으로 격양되어 실수를 하게 하는 것.
아주 작은 꼬투리라도 있다면 냉큼 빼와 둘둘 포장해, 결백한 사람을 순식간에 대역 죄인으로 만들 것이다.
“귀공의 행적엔 수상쩍은 부분이 너무 많소. 고작 작위하나를 가지고 북해로 들어가 고작 3년 만에 그들을 통합시킨 것도 상식적으로는 납득 할 수 없는 부분이오.”
“따라서 우리 중앙심문회는 귀공이 루블 왕국의 은밀한 지원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심증 밖에 없으니 표면으로 떠오르게 할 수는 없었죠. 그러나.”
솜즈는 턱하고 아슌푸틀에게 한 장의 사진을 내밀었다.
그것은 창밖에서 찍은, 토프키센과 아슌푸틀이 첨탑에서 비공식회담을 하던 모습이었다.
“대공께선 일고도 없이 적국의 수장을 비밀스레 불러 들였을 뿐 아니라 그를 무사히 보내주었습니다. 우리가 심증을 굳히게 된 것은 이 탓이죠. 허나 황태자께서 최후의 은덕을 베풀어 북해를 쑥대밭으로 만들기 전 귀공을 불러 들여 사실 관계를 확인토록 하셨습니다.”
“묻겠소. 귀공이 적국의 왕 루블 토프키센을 불러들여 밀담을 나눈 사실을 인정하겠소?”
“인정하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시인하는 아슌푸틀의 모습에 사문관들의 얼굴이 굳었다.
더불어 무언가를 저들끼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월척을 낚았다는 뜻인지 아니면 너무 쉽게 사냥감이 덫을 밟자 당황하는 모습인지 알 수 없었다.
“토프키센과의 만남은 일방적이고 즉흥적인 그의 기행이었네. 이 몸은 그와 어느 접점도 없었으며 겨우 이 정도로 역모라는 죄를 들먹거리는 그대들의 속내를 알 도리가 없군.”
“그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말하시오.”
“몇 년 뒤의 선전포고를 예고했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면 북해를 전초기지로 제공하라는 말과 그 대가로 슐레스비 제국 전체의 통치권과 자율권을 넘겨준다는 제의도 받았네. 물론 거절했네만.”
담담한 표정으로 어마어마한 사실을 말하는 아슌푸틀에게 하트펠크가 큰 소리로 외쳤다.
“아무런 접점도 없었다던 루블 토프키센이 어째서 귀공에게 그런 좋은 제안을 했다는 말이오! 사리가 맞지 않소이다!”
“좋은 제안이라? 하트펠크 상급대장은 조국을 등 돌린 대가로 받는 앞선 조건들을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하나?”
“그런 말이 아니오!”
고묘하게 말꼬리를 잡는 아슌푸틀의 화술에 하트펠크는 당황했다.
이래서야 누가 사문관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아슌푸틀이 기억하기로 그는 굉장한 다혈질이었고 자신이 예상한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며 짜증을 내는 성급한 사람이었다.
노련한 정치가들을 굽고 삶으며 기반을 다졌던 그녀에게, 혈통을 빌어 직급을 따낸 하트펠크 정도야 상대가 아니었다.
“이 몸에 대해 조사하기 이전에 그에 대해서도 알아보지 그랬나? 온갖 기행과 알 수 없는 도락가적 행보를 반복하는 사내일세. 그의 변덕에 대한 책임을 이 몸에게 묻는다는 것은 부조리한 일일세.”
“이렇게 뻔히 보이는 정황 속에서도 발뺌을 할 셈인건가! 반반한 얼굴로 따낸 작위답게 혀 놀림도 매섭구나!”
“그러한 그대는 자제력도 재주도 없어 연줄로 출세한 벼락 귀족답네만.”
“뭐야!”
권위와는 동떨어지게 진흙탕 싸움으로 흘러가려는 것은 사문장 벨 공작이 만류했다.
“정숙! 정숙! 하트펠크 상급대장 진정하시오. 이곳은 베아트레아 대공을 심판하는 곳이 아니오. 대공도 사문회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언동은 자제하시오.”
“사문과는 별도로 이 몸은 상급대장에게 무례한 취급을 받았네. 이 모욕은 결백함이 증명되고 나서 바로 잡을 것이야.”
상황을 관조하던 솜즈 후작이 입을 열었다.
“지금 하트펠트 상급대장의 격분은 위대한 슐레스비 제국의 규범과 질서를 어지럽히려는 정치범에게 향한 정당한 것입니다. 사문 외적으로 사문관을 겁박하는 것은 그만두시죠.”
“고작 사진 한 장으로 대공인 이 몸의 명예를 실추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이제껏 제국을 위해 헌신해 왔네. 적의 농간에 휘둘려 피아식별도 되지 않은 채 허둥지둥 거리는 모습을 황제 폐하께서 달가이 여기시라 생각하나?”
“말했다시피 그간 무수히 많은 심증이 있었소. 귀공이 이제껏 보여준 충성의 증표가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사문회장이 아닌 지하의 고문실에서 귀공과 마주해 있겠지.”
황제를 끌어들이는 대공의 말에 벨 공작의 말투가 누그러졌다. 하지만 사문회의 열기까지 가라앉힌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더불어 질문하겠소. 토프키센은 우리 슐레스비 제국의 주적인 루블 왕국의 수장이오. 사전 통보도 없이 귀공의 영내로 들어왔다면 능히 사로잡아 혁혁한 공적을 세울 수 있었을 터인데. 귀공은 그를 무사히 돌려보냈지요. 동의하시오?”
“그의 호위로 온 자가‘신살자’ 토렌스였네.”
잠깐 공기가 무거워진다. 사문관들은 저마다 끄응 하는 괴상한 신음을 토해냈다.
루블 왕국과의 오랜 전쟁동안 토렌스가 남긴 공포감은 베아트레아 대공의 말로만 들어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이었다.
“이 몸이 준비한 전력으로는 결코 토프키센을 사로잡을 수 없었네. 행여 일전을 벌였다 한들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죽었겠지.”
“슈펜하우져에는 예의 마녀가 있지 않소?”
“그녀는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네.”
다시 한 번 언성을 높인 것은 하트펠크였다.
“본관이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결코 물러서지 않는 용맹함을 보였을 것이오! 슐레스비 제국의 대공이라는 자가 고작해야 일신의 무사를 챙기기 급급해 싸워보지도 않고 꼬리를 내리다니! 하긴! 어차피 내통한 사이에 두려워할 것이 무엇 있겠소?”
다른 두 사문관은 하트펠크를 보며 ‘저 새끼 왜 데려왔지’싶은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황태자에게 어떻게든 베아트레아 대공의 유죄를 받아내라는 명을 받았다.
조금씩 몰아 붙여 올가미로 목을 꽉 죄야 할 상대에게 이리저리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 주고 있다.
“5년 전 가장 먼저 뱃머리를 돌려 도망치던 비겁자에게는 과분한 자기평가로군.”
“네 년이 진짜…!!”
“그와 대면했던 첨탑의 외벽엔 토렌스가 던진 뇌정(雷霆)의 창이 빗겨간 흔적이 있네. 내통한 상대라면 굳이 일수(一手)를 주고받을 필요도 없었겠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하크펠트를 무시하며 대공은 말을 이었다.
“큼큼, 그런 것은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이 정도의 시간이 있으면 대공께서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그대들도 더 제대로 된 증거를 제시해 주었으면 싶군.”
몇 가지 추궁을 이어가던 벨 공작은 막힘없이 대답하는 아슌푸틀의 모습에 신음을 흘렸다.
“오늘 사문회는 폐회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숙소에서 대기해 주시죠.”
“알겠네.”
날카로운 신경전이 오갔던 사문회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 ◈ ◈
“그래서 아무것도 건져내지 못하였다?”
슐레스비 제국의 황태자, 지금은 노환으로 거동이 어려운 황제를 대신해 대리청정 중인 그는 제국의 실세이자 곧 황위를 이을 남자였다.
그의 앞에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것은 벨 공작.
곧 칠순을 눈앞에 둔 공작은 이제 40대가 된 황태자에게 사문회의 보고를 하는 중이었다.
“실망스럽네요. 숙부님이라면 잘 처리하실 줄 알았는데.”
“원체 약삭빠르고 심계가 여우보다 더한 인물입니다. 하루 만에 허점을 드러낸다면 도리어 그것이 흉계가 아닐지 의심해야 하는 여자죠.”
“무슨 일이 있어도 중앙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게 하세요. 베아트레아의 역모를 밝혀내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이 사문회 자체가 목적인 겁니다. 내외로 흔들리고 있는 북해는 그녀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황태자가 노리는 것은 애초에 그녀를 한 방에 골로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역모의 혐의가 걸려있다 한들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 그녀를 재기불능으로 만드는 것은 힘들다.
때문에 그는 대공을 중앙에 묶어 두는 것만을 생각했다.
시간을 끌고 끌어 한 달이 되고 반년이 되고… 그런 식으로 일 년 동안 사문회를 반복한다면 베아트레아 대공의 정치적 기반인 북해가 풍비박산 나는 것도 요원한 일은 아니리라.
“은여우같은 년이 그때가 되면 어찌 나올지 궁금하네요.”
“그건 그렇고 참으로 아름답더이다. 사문회를 하는 내내 눈길 둘 곳을 모르겠더군요.”
“그 미색으로 폐하를 홀렸겠지요.”
벨 공작의 말에 증오에 가득 차 말끝을 흐리는 황태자.
벨 공작은 그의 말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봐주어도 그녀를 향한 황태자의 열등감이 도사리고 있다.
베아트레아 대공의 정치적 능력과 화술은 적대관계인 벨이 보아도 현묘한 것이었다.
참석자들은 어느새 그녀의 페이스로 말려들어가고 말았다. 그녀는 불리한 질문에 대해서는 고묘히 회피하며, 유리한 주제에 대해서는 물고 놓아주질 않는다.
그 결과 3명의 추궁을 받으면서도 베아트레아 대공은 이렇다 할 약점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를 압박해 다시금 청혼이라도 할 예정인지, 아니면 이토록 무의미하게 끝나는 감정싸움인지는 모르겠다. 거기까지 벨 공작이 신경 쓸 문제는 아니다.
어차피 그가 정식으로 황제로 옹립되면 재상이 될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희번덕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벨은 황태자의 말에 적극 동조했다.
◈ ◈ ◈
대답이 다를 경우 책을 잡기 위한 반복되는 질문과 찌르는 듯한 시선. 양쪽 모두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무려 5시간 가까이 무의미한 언쟁을 주고받아야 했던 아슌푸틀은 저녁도 들지 않고 방으로 향했다.
목욕을 끝낸 아슌푸틀은 대충 가운을 두르고 침대 위에 앉았다.
애초에 이 사문회는 그녀에게서 진실은 원하지 않았다.
저 치들이 원하는 것은 날조되었으며 아슌푸틀에게 불리한 조작된 거짓이다.
앞으로 3일만 더 버텨주면, 모든 것은 계획대로다.
그녀는 원격 편지와 동시에 들어온 마정의 핵을 꺼내들었다.
‘손톱만한 보랏빛 돌멩이’로 밖에 보이지 않는 이것은 계획을 위해 타타라에게 받아온 것이다.
여기에는 무려 3000여명 분의 생명력과 마력이 응축되어있다.
즉, 아슌푸틀은 슈펜하우져에 감금되어있던-제대로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은- 포로 3252명을 처형했다.
고작 이 하나를 얻기 위해서.
새삼스러운 감회가 마음에 맴돈다.
아슌푸틀은 다음 날 있을 청문회를 준비하기 위해 마정의 핵을 숨겨 둔 뒤 곤히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