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베로니카(2)
무척이나 비루한 행색을 하고 있는 한 남자아이가 비척비척 사람들을 밀치며 다가왔다.
그 손에는 한 아름의 꽃다발이 들려있다.
“아가씨, 신사님 꽃 한 송이 사시지 않겠습니까? 아주 어여쁘고 향기도 좋은 꽃이랍니다.”
휘진은 이제 9살이 될까 말까한 소년을 내려 보았다.
덜덜 떨고 있는 몸은 비쩍 말랐고, 옷은 태어날 때부터 입고 있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더럽다.
다만 땅을 바라보며 시선조차 마주치지 못하는 행동에서는 필사적이기까지 한 간절함이 묻어나왔다.
주위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당장이라도 만류해야 할까 고민하던 와중이었다.
누가 보아도 고귀한 귀족 출신인 아가씨에게 더러운 천민 아이가 겁도 없이 말을 걸다니… 행여나 심사가 불편한 상태라면 경을 치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은연히 집중되는 와중에 아슌푸틀은 원피스의 자락을 접고 소년과 쭈그려 앉아 소년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네 말대로 정말 예쁜 꽃이구나. 어디서 땄느냐?”
“마, 마을 뒷산의 동산에서입니다.”
소년이 들고 있는 꽃들은 빈말로도 돈을 주고 살만한 것이 아니었다.
죄다 길거리나 뒷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들꽃이나 야생화들. 심지어 잔가지가 잘 정리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칫하면 손이 다칠 수도 있을 듯하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꽃이라니 꼭 사고 싶은데. 지금 내가 가진 돈은 이것뿐이구나.”
휘진은 눈치껏 준비했던 은화를 아슌푸틀에게 건넸다.
소년의 손을 쥐고 주변에서 보이지 않게 은화를 꽉 쥐어준 아슌푸틀은 화들짝 놀라는 소년에게서 꽃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였다.
“이 꽃은 한 다발에 동화 한 냥…”
“쉿.”
꽃다발을 받아 든 아슌푸틀은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고 말을 막았다.
연신 고개를 숙이는 소년을 둔 채 천천히 돌아서는 휘진과 아슌푸틀.
“대공님도 사람 엄청 좋네.”
“꽃이 마음에 들었을 뿐이라네.”
아슌푸틀의 손에서 꽃다발을 받아든 휘진은 그중 가장 소담하고 예쁜 한 송이를 골라 잔가지를 털고 아슌푸틀의 귓가에 꽂아주었다.
청량한 여름 햇살에 아슌푸틀의 은발사이로 쏘옥 들어간 분홍색 들꽃이 장신구처럼 잘 어울린다.
“내가 볼 땐 아슌푸틀이 더 꽃 같은데.”
“이 무슨 주책인가.”
휘진의 장난에 얼굴이 새빨개질 때까지 웃는 아슌푸틀.
휘진과 아슌푸틀은 서로를 바라보며 함께 웃었다.
소매 아래로 자연스럽게 파고든 손을 굳게 얽히고 휘진은 가느다란 손에 깍지를 껴 맞잡았다.
행여나 이 복잡한 길 위에서 서로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 ◈ ◈
“예배당의 모자이크 정말 아름답지 않았나?”
오전에 휘진이 귓가에 꽂아주었던 꽃을 소중하게 책 사이에 끼워놓은 아슌푸틀은 방방 들떠 있었다.
예배당은 물론, 주요 성곽이며 가판 거리, 성내의 분수를 낀 광장, 좁은 수로를 이동하는 곤돌라까지.
한나절 사이에 즐길 수 있는 것은 모두 즐겼다 싶을 정도로 만끽한 아슌푸틀과 휘진은 함께 저녁을 끝내고 방안에서 가볍게 술을 즐기는 중이었다.
휘진은 그녀를 만난 뒤 처음으로 아슌푸틀이 진심으로 웃는 모습을 본 것 같았다.
태양의 눈부심도 뒷전으로 만들어버리는 그 광량에 그만 눈을 가릴 뻔했다지 뭐야.
“하루만 더 늦게 출발할 수 있었다면 세레스 자매의 공연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네.”
못내 아쉬운 듯이 아슌푸틀은 와인 잔을 채워나갔다.
여행 내내 휘진의 손에 들려있던 꽃다발은 그 옆 물병에 가지런히 꽂혀 있다.
그 꽃망울들을 하나씩 손으로 톡톡 건드리며 아슌푸틀은 테이블 위에 턱을 얹었다.
“돌아오는 길도 있을 거니까 그때 들리자.”
아슌푸틀은 대답하지 않았다.
기실 휘진도 아쉽기 그지없었다.
루블 왕국에서는 그렇게도 길던 하루가 오늘은 이렇게 짧았나 싶을 정도로 찰나의 순간이었으니.
테이블보처럼 사르륵 펼쳐진 아슌푸틀의 은발을 가지고 장난을 치던 휘진의 손이 아슌푸틀과 맞닿는다.
오늘 이 조그만 손을 쥐고 하루 종일 돌아다녔던가.
하루간의 행복한 순간이 모두 꿈이었던 것처럼 어쩐지 현실감이 없다.
“오늘은 옆에 누워있어 줄 수 있겠나?”
“그럴까?”
아슌푸틀의 몸을 공주님안기로 번쩍 들자 아슌푸틀은 또 다시 웃었다.
아마 겨드랑이 사이를 파고든 손이 간지러웠을 수도 있겠다.
“무겁진 않은가?”
“에이, 이래보여도 기사야.”
“이렇게 술을 마시고 목욕까지 끝내야 진정한 극락인 것을. 조금 아쉽구먼.”
“목욕은 같이 하는 거지?”
“그대가 원한다면 못할 것 뭐 있겠나? 서로 부끄러운 모습 다 본 사이에.”
“근데 이런 거 밖에 들려도 괜찮나?”
침대에 대공님을 얹어 놓고 대화를 시작했다.
“그래서 속삭이고 있지 않는가? 조금 더 가까이 오게나. 내 침대보다는 훨씬 더 작군. 괜찮나? 떨어질 것 같네만.”
“그냥 더 가까이 있고 싶다고 말해.”
“나는 언제나 그대와 가까이 있고 싶다네.”
“….”
갑작스러운 공격에 휘진은 살짝 멍해졌다.
“어떤가? 그대 식으로 표현하자면 한 방 먹었는가? 나도 이제 당하고만 있지는 않는다네.”
“와, 이건 반칙이지. 졸라 귀여워. 아, 나 불 이제 꺼도 되지?”
“….”
“….”
“불을 끄니 잘 안 보이는 군. 그대는 잘 보이는가? 밤눈이 어두워서 말이네.”
“나도 희끗한 윤곽만 보이는 정도야. 여기가 코, 여기가 입술인 거 아는 정도?”
“모서리에 찧지 않게 조심하게.”
“오케이.”
더듬거리며 대공의 옆자리에 누워 그녀와 함께 마주보았다.
보이진 않아도 서로의 기척으로 알 수 있다.
“오늘 같이 있는 내내 정말 행복했네. 대공이 되기 이전엔 그럴 여유조차 없었고, 대공이 된 이후엔 그럴 시간이 없었으니 이렇게 여행을 하는 것도 얼마 만인지.”
“역시 여행은 밀회가 최고인 것 같아. 얼마나 좋아, 사람 눈치 안보고 손도 잡고.”
“베로니카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도시니까. 한 번쯤 와보고 싶었거늘. 언감생심 연인과 함께라니.”
“아슌푸틀.”
“왜 그러는가?”
“오늘은 키스해도 돼?”
“…새삼 허락 받을 게 무어있나.”
살짝 잠긴 듯이 뚝뚝 끊기는 아슌푸틀의 목소리.
“오늘은 키스만으로 못 끝낼 것 같아서 그래.”
“사랑하는 마음은 육체에도 불을 놓는다는데. 새삼 그게 진실이었다는 걸 깨달았네.”
“왜?”
“나도 그대와 손을 잡고 걷는 동안 밤에 어떻게 살을 맞댈지만 고민했으니 말이야.”
“그래서?”
아슌푸틀은 가볍게 숨을 삼키고 말을 이었다.
“일단은 부드럽게 키스먼저 부탁하네.”
◈ ◈ ◈
휘진은 섹스 속 미니게임에 열중해 있었다.
열차가 덜컹이는 소리를 넘어가는 순간 밖에 24시 대기 중인 승무원들에게 들린다.
자칫하면 북해의 대공과 그녀의 기사가 뜨거운 애인사이라는 염문이 떠돌 수 있다는 하이 리스크 게임.
평소라면 어땠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하루 종일 휘진과 달달한 데이트를 하면서 잔뜩 욕구 상승 상태인 아슌푸틀은 순순히 무대 위에 올라섰다.
달콤한 신음소리 대신 열띤 호흡소리, 침을 삼키며 서로의 몰래 간질이는 소리.
휘진의 섬세한 손길이 민감한 부분을 더듬을 때마다 아슌푸틀은 짜릿함을 느꼈다.
조금만 방심하면 교태 가득한 목소리로 알랑거릴 것 같은 자신을 강제로 억누르며 가슴을 주무르는 휘진의 손등에 자신의 손을 포갠다.
다리를 오므리지 못하도록 다리 사이에 무릎을 넣어 단단히 가드 하는 가운데 휘진은 키스와 애무를 섞어가며 정성껏 봉사중이다.
벌써 후끈한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푹 젖은 아슌푸틀의 내부엔 구부러진 손가락이 마음껏 꿈틀거리고, 뻣뻣하게 변한 유두를 지분거리는 손톱의 까칠함이 저도 모르게 허리를 튀어 오르게 한다.
“하아…”
휘진이 키스를 멈추고 떨어지자마자 아슌푸틀은 자신의 손목으로 입가를 가렸다.
평상시엔 장난기 많고 지고지순하게 부탁을 들어주며 가끔은 애교도 부려주는 휘진이건만 이렇게 침대에서 함께 뒹굴 때만 되면 마치 짐승처럼 거칠어진다.
그 차이가 아슌푸틀의 순정 가득한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육체의 구석구석을 남김없이 먹어치우겠다는 듯이 아슌푸틀을 덮어가는 휘진의 목덜미를 아슌푸틀은 살짝 깨물었다.
그리고는 쭉쭉 빨아댄다.
이 남자를 내 것으로 하고 싶다.
나만의 것으로 하고 싶다는 주제넘은 욕심이 이성을 무시한 채 키스마크를 남기는 것에 열중하게 한다.
지지난밤 그가 남겨주었던 꽃잎이 만개한 자국들이 아직도 자신의 몸의 구석구석 남아있으니 말이다.
그 간질간질한 감촉에 단단히 솟은 물건이 껄떡거리며 아슌푸틀의 새하얀 복부를 눌러댔다.
“이게 보여?”
그때 하복부를 채우던 이물감이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속삭이는 음량으로 휘진은 손목까지 타고 흐르는 아슌푸틀의 애액을 과시하듯 선보였다.
어둠에 익숙해진 아슌푸틀의 눈은 피부의 다른 곳과 달리 유달리 번들거리는 휘진의 손에 얼굴을 붉혔다.
“너…너무 어두워서 안보이네.”
아슌푸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휘진의 손가락이 아슌푸틀의 입 안을 파고든다. 그리고 입안 구석구석을 양치하듯이 누빈다.
자신의 애액을 입에 넣어버리다니! 평소라면 불쾌하게 여길 수도 있는 변태적인 행위였지만 이렇게 열심히 자신을 애무해주는 휘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봉사심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든 아슌푸틀은 그의 손가락을 젖을 빠는 새끼강아지처럼 빨아대기 시작했다.
짠고 약간 떫은 맛.
맛있냐고 하면 도리어 역해지는 맛을 가진 것은 분명했으나 아슌푸틀은 결코 입을 떼거나하지 않았다.
탐스러운 입술을 강제로 벌려가며 휘진의 손가락을 마치 남근처럼 자신의 입안에서 왕복한다.
아슌푸틀은 손을 뻗어 휘진의 하복부로 향했다.
‘이렇게 큰 것이 들어왔다니’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거대한 물건.
인간에게 달려 있는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부피와 온도를 가진 남근을 역수로 쥔 채 천천히 움직인다.
“빨리 넣어주게에…”
저도 모르게 안타깝게 늘어지는 말꼬리. 아슌푸틀은 그의 물건을 잡은 채 자신의 입구에 비벼댔다.
이 정도로는 기분 좋아지지 않는다. 아니 부족하다.
이제껏 남의 위에 군림하기만 했던 자신이 마치 음탕한 창부처럼 그를 유혹하고 있다는 자각이 아슌푸틀의 새하얀 피부를 수치로 덧그린다.
휘진도 더 이상 참을 이유는 없었다.
아슌푸틀의 허벅지를 다소 거칠게 벌리고 하반신을 끌어안으며 단번에 깊숙하게 자지를 삽입했다.
“꺄!”
아슌푸틀은 자신이 소리를 질러 놓고도 깜짝 놀라 입을 두 손으로 가렸다.
자그맣게 부스럭거리기만 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높아지자 그리 큰 소리가 아닌데도 방안 가득 울린다.
휘진은 아슌푸틀의 상체를 일으켜 꼭 안은 채 눈치를 봤다.
아슌푸틀도 놀란 토끼 눈이 되어 휘진의 목을 끌어안으며 문 밖을 살핀다.
-똑똑
조용한 노크소리가 울리자 휘진은 자신의 물건을 갑자기 꽉 조이기 시작한 아슌푸틀의 육벽을 느낄 수 있었다.
“필요하신 게 있으십니까?”
설마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깨어 있으리라 생각은 못했는지 승무원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방 밖에서 물었다.
오밤중에 비명소리를 들었으니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것도 당연할지 몰랐다.
“대답해야지 아슌푸틀.”
하지만 아슌푸틀은 아무것도하지 못한 채 허리를 움찔거리고만 있을 뿐이었다.
단숨에 자궁구까지 꾸욱 눌러오는 귀두의 자극에 지금 당장이라도 튀어나오려는 신음을 막고 있는 것이 고작이다.
섣부르게 대답하려 했다가 달콤한 목소리로 울어버리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대 참사이니까.
하지만 그런 상상이 이해할 수 없게도 흥분을 고조시키고 있다.
조금 전부터 징징 울어대는 몸속의 아기 방이 금세라도 저항 불가능할 쾌감을 토해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