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위폐와 역모(1)
냄비에 들어간 개구리는 아주아주 천천히 물의 온도를 올리면 탈출하지 않고 죽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탈출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의 온도가 40도가 되는 순간 개구리 다리는 응고되고 그 뒤부터는 조금씩 죽어갈 뿐.
아슌푸틀은 휫센 상단에 대한 자신의 판단이 너무나도 우유부단했음을 깨달았다.
아직은 괜찮으니 그들을 이용할 가치가 있다는 판단 역시 근거 없는 오만임을 확인했다.
“뭐?”
“시중에 유통된 백금화의 약 4할 가량이… 위폐(僞幣)인 것으로 확인 되었습니다.”
새벽 6시.
거칠게 방문의 종을 울리는 소리에 아슌푸틀은 옷차림을 제대로 정돈하지도 못한 채 비척비척 문을 열었다.
그리고 기관총처럼 말을 쏟아내는 재무경의 보고에 아슌푸틀은 머리에 찬물을 뒤집어 쓴 듯이 정신을 차렸다.
“대공께서 추진하셨던 화폐 개혁안에 휫센이 시작부터 농간을 부렸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백금화의 내부가 특수 연금된 합금으로 7할 가량 채워져 있었기에 무게로도 비중으로도 구별할 수 없다고 합니다.”
“휫센은 어디 있는가?”
“가족과 상단의 주요인사 모두 야반도주한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이런…”
북해의 백금화 사업에 아슌푸틀이 가장 큰 비중을 들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복잡하기 그지없는 슐레스비 제국의 중앙 환율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북해만의 기축통화를 만들어내어 북해의 단합과 원활한 거래에 윤활제를 바르는 것.
이를 통해 중앙의 견제에 개의치 않고 북해가 경제적 자립권을 갖게 되는 것.
자존심 강한 북해의 가문들이 아슌푸틀에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 것도 이 때문이 적지 않았다.
“은행이 열리자마자 환전을 요구하는 상인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 수요를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서 창구를 막아 놓은 상태입니다. 더불어 상인간의 거래도 완전히 마비되어 이대로라면…”
“부족한 분량만큼 슈펜하우져 성 앞으로 어음을 발행해 지급하게.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 이상 무역에 지장이 생겨서는 안 되네.”
“알겠습니다. 더불어 프로로븐, 뤼겐, 보나 등 3가문을 위시로 온 가문에서 맹렬한 항의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처음일 테니. 그들로서는 주도권을 잡은 좋은 기회인 셈이야.”
화폐란 신용이 생명이다.
지구에서 고작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지폐 한 장이 그 수천수만 배의 가치를 가지듯이 북해의 백금화 역시 실제 주조에 들어가는 비용은 그 가치의 2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그만큼 신뢰를 바탕으로 통용되던 백금화 중에서 위폐가 발견되었다면, 그것도 그것이 베아트레아 아슌푸틀 공작에 의해 발행되기 시작한 백금화라면 그것은 그녀의 신용에도 치명적인 손상이 갔음을 의미했다.
“루돌프 함대장에게 휫센을 쫓게 하게나. 항로는 루블 왕국으로 향하는 제 2, 6, 12 항로. 남서풍이 불고 있는 지금 가장 빠른 길을 택했을 게야. 이 몸은 지금 즉시 준비하겠네. 타타라에게 원격 편지를 준비하도록 일러주도록.”
아슌푸틀은 이 소행을 루블 왕국의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휫센 상단이 아무리 거대한 상단이라지만 이런 일을 독단으로 벌일 수 있을 정도의 규모는 아닐 터.
반드시 그 윗선이 존재할 것이다.
피닉스를 구출해온 지금 이런 난관에 봉착했다는 것.
타이밍이 너무나 잘 맞아 떨어진다.
“아리스.”
“네, 대공.”
어느새 흐트러진 차림하나 없이 정복(正服)으로 갈아입은 아리스는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피닉스와 함께 루블 왕국으로 밀입국할 준비를 하게. 모든 것은 예정대로 행하게나.”
“명을 받들겠습니다.”
고작 이 정도로 끝날 리가 없다.
견제에 가까운 가벼운 잽이 이 정도이다.
그 초조함에 마음을 불태우면서도 아슌푸틀의 두 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이글이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 ◈ ◈
“하움…푸하…”
휘진은 창틀에 기대어 담배를 피며 슈슈의 펠라치오를 만끽 중이었다.
간만에 느긋하게 낮잠을 잘 생각이었건만 성내로 창밖으로 들려오는 소란에 일찍 잠을 깨고 말았다.
그 김에 방을 청소하던 슈슈에게 정중한 아침봉사를 요구했음은 물론이다.
“뭐지? 폭동이라도 일어난 건가?”
“네?”
“아니야. 계속해.”
너무 멀어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는다만 허둥지둥 대는 사람들 투성이다.
슈펜하우져가 기본적으로 꽤나 붐비기는 하지만 그들의 행색에서 느껴지는 초조함과 불안감은 멀리 있는 휘진마저도 마음이 흔들리게 했다.
매끄럽게 휘진의 물건을 위 아래로 빨아들이는 슈슈의 입.
가끔씩 아래까지 내려오는 섬세한 혀 놀림이 아주 일품인 것은 변함이 없다.
특히나 아침에 이 무딘 성감을 파고드는 솜씨는 모닝 펠라를 수십 번 씩 반복한 슈슈 이외에는 불가능한 기교였으니까.
능숙한 움직임에 독촉된 걸쭉한 액체가 슈슈의 입 안으로 쏟아진다.
슈슈는 콧소리를 내며 정액을 받아 마시고는 목울대를 울려 꿀꺽 삼킨다.
“여전히 양이 많으시네요. 주인님이 건강하신 것 같아서 슈슈는 기쁘답니다.”
어린 아이가 사탕을 아껴먹듯이 아주 소중하게 청소 펠라까지 끝낸 슈슈는 조신하게 입을 닦고 기대감어린 눈빛으로 휘진을 올려보았다.
아마 포상을 바라는 것이리라.
머리를 쓰다듬으며 상냥한 목소리로 해주는 칭찬이나 고마움의 표시, 혹은 심지(心志)를 녹일 정도로 뜨거운 섹스를.
아니면 둘 다 이던가.
“계십니까?”
하지만 들려온 노크소리에 슈슈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댓발이나 내밀었다.
휘진의 요청에 의해 단추를 풀러 노출했던 가슴을 여미고 옷매무새를 확인한다.
“어 들어와.”
마찬가지로 가볍게 정리를 끝낸 휘진.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리스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랜만에 보는 정복 위에 갑옷차림. 그러고 보니 저 강철치마도 참 잘 어울렸었지.
“대공의 명을 받아 루블 왕국으로 피닉스 님과 함께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뜨거운 키스라도 받고 싶어서 왔어?”
“…”
대답 대신 아리스의 시선이 방 한 구석의 슈슈에게 향한다.
슈슈는 황급히 걸레가 든 통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움직임을 제지한 휘진이 아리스에게 물었다.
“잠깐만 슈슈는 내 메이드야. 그녀가 들어선 안 되는 일인건가?”
“지금은 부디, 부탁드립니다.”
드물게 단호한 아리스의 기세에 턱짓을 하는 휘진과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빠져나가는 슈슈.
문이 닫히는 것을 확인한 아리스가 입을 열었다.
그 내용은 지금 북해가 처한 상황의 전반이었다.
대학시절 교양으로 들었던 경제전(經濟戰)이 중세에선 이런 식으로 구현이 되는 모양이다.
감회가 새롭지만 사실 휘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갑자기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하나의 생각.
이거라면 타타라가 힘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너는 루블 왕국으로 다시 간다고? 거기 더럽게 할 것 없던데 딱하게 됐네…”
“제가 없는 동안 대공님의 보필을 부탁드리러 왔습니다. 당신만큼 대공님이 의지하는 분은 따로 없으니까요.”
“그럼 당연하지. 이래 뵈도 내가 너랑 같은 기사가 되어버렸거든.”
아리스는 조용히 자신의 허리춤에 있던 검 중 작은 것을 풀었다.
40cm정도 되어 보이는 소태도이다.
검집부터 요란하지 않게, 그러나 고급스러움이 느껴지게끔 잘 꾸며진 그것의 가치는, 못해도 휘진의 연봉은 가볍게 넘을 것처럼 보였다.
“이건 휘진 경이 맡아주세요.”
“오, 고마워.”
공짜라면 당연히 받아주는 게 인지상정인지라 냉큼 받았다.
여기서 용건은 끝인 줄 알았는데 아리스는 문 앞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다.
“휘진 경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뭐죠?”
“나야 당연히 섹스지.”
솔직함이야말로 자신의 미덕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다 쳐도 이 정도의 정신공격엔 눈썹하나 까딱 않는 아리스를 보면 참 모자란 모습을 보이며 살아왔구나 싶다.
“제가 부탁을 드리는 입장이니. 저도 휘진 경의 원하는 것을 하나 들어드려야겠죠.”
무뚝뚝한 표정을 가장한 채로.
그러나 잔뜩 상기된 얼굴인 채 아리스는 치마 갑옷의 위를 둘러싸고 있던 요대를 풀었다.
“시간이 없으니 빠르게 부탁드립니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전혀 아리스답지 않은 행동에 당황하기도 전에 아리스는 비척비척 무거운 갑옷을 허리춤까지 들어올린다.
아리스와 몸을 섞은 것은 오래되지 않은 일이었다.
사실 성심성의껏 봉사 섹스를 해서 쾌락을 각인 시켜 놓는다면 어느 날부턴 그녀가 알아서 몸을 섞을 것을 요청해오리라는 빅빅빅 픽쳐는 그리고 있었다만.
그게 이렇게 빠른 시일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장르가 장르고, 시간 정지 능력이 주는 쾌감이 크다지만 이건 좀 이상하지 않나?
아리스는 정조 관념이 투철한 정의로운 여기사이다.
그런 그녀가 고작 하루 만에 먼저 몸을 요구 한다고?
“저기… 너무 부끄럽게 하는 것 아닌가요…”
벽에 손을 얹고 살짝 엉덩이를 내민 상태였던 아리스는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보며 투덜거렸다.
상기된 얼굴과 특히나 붉게 달아오른 귀가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하다.
어쩌면 이번에 임무를 떠나면 오랫동안 맛보지 못할 테니까 조급해 진 것일 수도 있겠다.
훈련소 들어가기 전에 줄담 피웠던 과거를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공감은 간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불편한데?”
허리를 두르고 있는 갑옷을 끌러내자, 청색의 정복이 들어난다.
무릎께까지 내려오는 얇은 치마, 갑옷이 살에 직접 쓸리는 것을 막아주는 용도겠지.
옷이 타인에 의해 벗겨지는 감각에 흠칫한 아리스를 두고 비척비척 치마를 접어 올린다.
종아리를 거쳐 매끈하고 탄력적인 허벅지를 타고 올라간 치마.
이대로 둘둘 말아 허리춤에 고정시키자 아리스의 동그란 엉덩이와 순백의 팬티가 고스란히 장관을 연출했다.
“너무 빤히 보진 말아주시길.”
무언가 더 말하려던 아리스는 엉덩이를 파고드는 차가운 휘진의 손길에 몸을 떨었다.
마치 품평하듯이 새하얗고 부드러운 살덩이 위에서 굴러다니던 휘진의 손.
그의 채근하는 손길에 아리스는 다리를 천천히 열었다.
“샤워는 방금 전에 끝냈으니까 걱정 마세요.”
“상관없어. 팬티 벗긴다.”
엉덩이 골과 팬티의 면 사이에 손가락을 건 휘진은 천천히 최우의 보호막을 그대로 벗겨내었다.
뺨이 달아오른다.
이렇게 환한 곳에서 그에게 부끄러운 곳을 전부 보이고 있다는 자각이 심장을 쿵쾅거리게 했다.
아리스의 꽉 다물린 그곳은 아주 살짝 촉촉하게 되어있다.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그 틈을 살짝 벌리자 입맛을 다시는 소리와 함께 선홍빛 점막이 야하게 벌어진다.
휘진은 그 틈에 손잡이를 잡듯 엄지를 밀어 넣었다.
“흣…”
“벽에서 손 떼지 마. 너가 먼저 하자고 했다?”
아직까지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 이물감.
체내를 구불구불 침투하는 억센 손길이 저도 모르게 욕정을 불러일으킨다.
이 자세라면 엄지를 살짝 아래로 눌러주는 것만으로 G스팟의 자극이 쉽게 가능하다.
아리스의 곧은 다리가 파들파들 떨리기 시작하는 것을 감상하며 내부를 상냥하게 휘저어 주었다.
“어….음…”
쾌락의 중추를 꿀단지에 담가 몇 번이고 헹궈내는 느낌이다.
그의 손길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안타까울 정도로 유린당하기를 바라게 된다.
“오늘은 어디에 쑤셔줄까?”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