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대공님과 첫날밤(8)
한참동안이나 욕화(慾火)속에서 엎치락뒤치락 구워지던 아슌푸틀은 휘진의 행동에 의아함을 표했다.
조금만 더 계속하면 확실히 보장된 극락에서 허우적거릴 수 있었을 진데.
자기도 모르게 꼬리를 남기는 마음의 아쉬움이 낯설게 느껴진다.
“복잡하게…라면 무슨 의미인가?”
“나는 아슌푸틀의 여러 가지 모습이 알고 싶거든.”
“잘 의미를 모르겠네.”
이런 치태까지 속속들이 봐버린 주제에 또 무슨 면모가 알고 싶다는 것인지 아슌푸틀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휘진은 그녀의 말에 답하지 않고 조금 진정이 된 아슌푸틀의 내부를 천천히 애태우듯이 쑤시기 시작했다.
“아핫…!!”
이런 미미한 움직임만으로도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는 흥분도.
롤러코스터가 경사의 최고봉에서 멈춰선 것처럼 절정을 억제당한 아슌푸틀의 육체는 조금의 흔들거림만으로 안타까울 정도의 간질거림을 느꼈다.
“왜에… 어째서 이렇게 크흣… 천천히 움직이는 겐가…하아…”
애달픈 한숨이 목소리에 섞여 나오면서도 아슌푸틀은 저도 모르게 엎드린 자세 그대로 발을 동동 구른다.
지금까지 짐승과 같은 기세로 자신의 몸을 낱낱이 먹어치우던 그가 돌연 느긋한 초식동물처럼 태세 변환을 해버렸으니.
깊게라도 삽입해 준다면 이 애달픔이 조금은 사라지련만 그의 동작은 질구의 입구 쪽에서 깔짝거리는 정도의 작은 움직임뿐이다.
“말했잖아? 아슌푸틀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싶다고. 고고한 모습보다, 언제나 위엄을 지키는 모습보다. 육욕에 허덕이며 애원하는 모습이 지금 당장 몹시 보고 싶어.”
“흐읍…!!!”
그제야 아슌푸틀은 휘진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그는 의도적으로 그녀가 절정에 도달하는 것을 방지하고 있는 것이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달콤한 과실을 눈앞에서 흔들며, 과실을 원한다면 나무를 흔들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 부끄러운 일 할 수 있을 리 없지 않는가!”
토라진 듯 칭얼거리는 아슌푸틀.
지금 그의 커다란 물건이 미지근하게 성감대를 스치는 것만으로도 환희의 전조를 느낄 수 있다.
극도로 민감해져 쾌락을 갈구하는 자신의 몸, 얼굴이, 강제로 들려진 탓에 거울을 통해 고스란히 보인다.
“나는 자신 있어. 한 시간이라도 이렇게 있어줄게.”
“쿠후후후…”
입술을 잘근거리며 갈등하는 아슌푸틀의 모습 역시 휘진은 비쳐볼 수 있었다.
야속하다는 듯이 몇 번이나 입술을 핥으며 휘진을 흘겨보는 그 눈꼬리도 원망이라기엔 지나치게 교태 넘치는 색기로 가득하다.
몇 번인가 아슌푸틀 쪽에서 허리를 움직이려 들었으나 휘진은 그 만큼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가해지는 자극의 총량은 같다.
아슌푸틀의 고민은 무려 15분간이나 지속됐다.
이렇게까지 몰아붙였는데 그렇게 긴 시간을 버티다니.
시간정지 능력이라도 활용해야하나 고민하던 즈음 아슌푸틀이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부탁하네…넣어주게.”
“뭐를?”
“…지를…”
“안 들리는데?”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 크게 말하려던 아슌푸틀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다.
이러다 터져버리는 거 아니야 싶을 정도이다.
“자…자…자….지를…”
“어디에?”
“일 절만 하게! 일 절만!”
“근데 내 고향에선 성교육을 제대로 해주지 않아서 난 그쪽은 문외한이라고.”
능글거리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는 휘진에게 아슌푸틀은 악을 지르듯이 외쳤다.
“내 머리카락을 고삐처럼 붙잡고 그대의 물건을 내 구멍에 박앗…!!!”
솔직히 전부 듣고 싶던 마음도 있었지만 이정도면 충분하다.
휘진은 가벼운 움직임으로도 빡빡하게 떨려오던 아슌푸틀의 구멍에 그대로 물건을 쑤셔 넣었다.
“하아아앙…♡♡♡♡”
순식간에 백익스텐션 자세처럼 솟아오르는 아슌푸틀의 상체, 아담한 가슴이 흔들거리며 유두가 튕길 정도의 거센 반응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유열(愉悅)을 모은 악마의 창이 몸을 관통하는 느낌.
몇 번이고 미뤄지며 계단을 밟아왔던 아슌푸틀의 의식이 허공에서 낙하한다.
“하아앗…♡ 하아아앗….♡ 꺄아아아!!!”
여기서 휘진이 선택한 것은 콤보 커멘드는 시간정지 피스팅이었다.
한 번 삽입 후 시간을 멈추고 즉시 5번을 박는다, 다시 시간 정지를 풀고 한 번을 박는다
라는… 그의 경험상 여성에게 최상의 쾌락을 선사하는 최고의 섹스 테크닉.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버둥거리며 날뛰는 아슌푸틀을 억제하기 위해 단단하게 어깨를 눌러 잡은 휘진은 비명처럼 내질러지는 아슌푸틀의 신음 속에서도 결코 그녀를 놓지 않은 채 질벽의 꾸불거림을 몸에 새긴다.
“그마아안…!! 그마아아안♡♡♡♡♡…히익…히이익…으그극…!!!”
“하아…하아…”
더 이상은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몸부림치는 아슌푸틀에게서 물건을 쑥 빼낸 휘진은 숨을 고르며 절정에 자지러지는 아슌푸틀의 알몸을 내려 보았다.
아슌푸틀은 휘진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즉시 태아처럼 몸을 웅크리고 절정에 저항하고 있었다.
극한에 달한 쾌감과 고통의 한 끗 차이를 느끼며 천지분간이 안 되는 오르가즘의 폭풍 속에서 하염없이 가련한 몸을 꿈틀인다.
“흐흐…후우우욱…!!”
성능이 떨어지는 컴퓨터가 잔뜩 밀린 프로세스를 연이어 시행하는 것처럼 아슌푸틀의 육체는 더 이상의 자극이 없는 와중에도 정신없이 절정을 느껴가고 있었다.
결국 침대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은 아슌푸틀.
단정하던 머리는 잔뜩 헝클어져 이마의 땀 덕에 찰싹 달라붙어 있고 매끈하게 군살 없는 복근은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찔움찔 경련한다.
“아…아아…흐흐흑…”
아무래도 아슌푸틀은 절정을 느끼면 울어버리는 모양이다.
힘없이 고개를 숙인 채 울음 섞인 호흡을 재촉하는 그녀의 턱을 조심스럽게 들었다.
눈이 흐리멍덩하다.
뭐야 이러면 내가 나쁜 사람 같잖아. 기껏 최고의 봉사를 해줬는데.
의식이 거의 나간 상태로 울먹거리고 있는 아슌푸틀의 얼굴 위로 새하얀 백탁이 날아든다.
마치 소변기에 오줌을 싸는 자세로 휘진이 용두질을 계속하던 자신의 물건을 들이민 것이다.
-투둑!! 투두둑…
새빨간 그녀의 얼굴을 더럽히며 미끄러지는 정액들의 장식을 본 휘진.
여성의 얼굴에 사정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배덕감이 드는 행위이다.
야동이나 야설, 각종 성적인 장르에서 너무 쉽게 다뤄져서 흔한 상황이라고 오해받기 십상이지만, 현실에서는 허락해주는 여자도 별로 없다. 게다가 여성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얼굴에 끈적거리고 불쾌감을 줄 수 있는 탁한 액체를 뿌린다는 정신적인 만족감이 아주 극상이다.
속눈썹 탓에 눈가와 선이 고운 콧날, 앵두 같은 입술,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뺨과 유려한 각도로 뻗어있는 쇄골 구석구석까지 밤꽃 향을 물씬 풍기는 정액이 뚝뚝 흘러내린다.
“모처럼 고운 얼굴이 엉망이네.”
립글로스를 발라주듯이 귀두의 끝부분으로 아슌푸틀의 입술에 정액을 발라주는 휘진.
정신없는 와중에 따뜻한 호흡이 요도부분을 간지럽힌다.
“자, 그럼 또 갑니다.”
그 이후 엉망진창 섹스했다.
◈ ◈ ◈
따사로운 아침 햇살을 받으며 일어났다.
또 다시 연거푸 섹스.
인생이 소설이라면 결말로 ‘주인공은 복상사 했답니다!’라는 결말이 나와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실컷 즐겨두었다.
북해의 아침, 태양의 축복으로 이런 행복을 맛보는 것이 감사하지.
더불어.
“퓨우…”
어제 아슌푸틀과의 폭풍 섹스 이후.
일찍이 제 정신을 잃었던 아슌푸틀, 그리고 휘진 역시 새벽쯤엔 뻗어버렸기 때문에 곧바로 같은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얼굴로 햇볕이 내리쬐는데도 잘도 잔다.
단정한 얼굴 위로 아름답게 흩뿌려진 은발, 마치 요정 같다.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는 아슌푸틀을 보니 마음속에서 꿈틀꿈틀 성욕이 치솟았다.
어젯밤 목이 쉴 정도로 신음을 내뱉었던 만큼 힘들었겠지.
얇은 이불 아래는 어제 그녀가 질질 흘렸었던 애액과 아직도 눈에 아른거리는 새하얀 나신이 있다.
연분홍빛으로 반짝거리는 입술에 입술을 포개고 힘껏 혀를 섞었다.
모닝 키스 입 냄새난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좋아하는 여자라면 오줌도 마셔줄 수 있는 휘진은 그런 거 없다.
무엇보다 분위기는 현실을 이기는 법이지.
-츄릅츄릅츄릅
“우움…우웁…”
키스와 동시에 엉덩이 뒤로 손을 뻗어서 보지에 손가락을 넣어주었다.
이 압박감. 좋구먼.
어제 여기에 마음껏 자지를 넣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들뜬다.
“아야야얏!!!”
“뭐하는 겐가?”
혀를 물렸다.
피가 나올 정도로 꽉 문 것은 아니다. 어쨌든 그녀의 눈빛은 어제와 같은 고혹적인 눈빛이라기보다는 악당을 발견한 정의의 용사의 것.
“아슌푸틀이야말로 뭐하는 거야.”
“잠자는 아녀자의 입술을 탐하는 파렴치한을 검거하던 중이라네.”
아슌푸틀은 쓱 몸을 일으켰다가…
“!!!”
재빨리 몸을 가렸다.
이제 와서 이런 걸 부끄러워하나 싶지만…
밤의 달빛과 아침의 햇살은 분위기가 다르다.
새벽 2시에 썼던 일기가 아침에 일어나서보면 이걸 내가 쓴 게 맞나 싶은 것처럼.
아슌푸틀 역시 같은 심정일 것이다.
“왜? 보기 좋은데.”
“하여간…”
침대 위에 너부러져 있던 자신의 옷을 챙겨 입는 아슌푸틀.
베이비 돌을 입고 팬티를 입으려다 점액이 굳어 각질처럼 하얗게 굳은 끔찍한 몰골에 경악하며 조용히 침대 밖으로 던져버렸다.
“좋은 아침이구나. 휘진.”
장난기 가득한 그 모습은 이미 하루 전의 대공이 아니다.
남녀 사이라는 것은 단 하나의 계기로도 이렇게 변해버릴 수 있는 것이다.
“오빠라고 부르래도? 어젯밤엔 귀엽게 잘 불러줬잖아?”
휘진의 장난 섞인 놀림에 삶은 문어처럼 얼굴이 빨개진 아슌푸틀은 재빨리 이불을 얼굴까지 끌어 올렸다.
그런 작은 몸짓까지도 사랑스러울 따름이다.
“부…부끄러운 기억을 잘도 들춰내는구나.”
“몸은 어때 아프진 않아?”
체구를 생각했을 때, 그녀 입장에선 확실히 무리를 한 것 일 것이다.
게다가 한 번도 아니고 정력제로도 물건이 서지 않을 때까지 계속된 강행군이니.
“아픔을 참는 것이라면 익숙하지만, 쾌락은 또 다르더구나.”
“아슌푸틀.”
여전히 이불 안에서 웅얼거리는 아슌푸틀.
이 대공님 누가 진짜 안 잡아 가나?
심장폭행도 폭행이라면 광화문으로 끌려 나온 매국노처럼 두들겨 맞은 기분이다.
빼꼼하고 눈 부분만 내밀은 아슌푸틀의 눈에는 반달 같은 눈웃음이 지어져 있었다.
“그대를 기쁘게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참으로 행복하구나.”
이렇게 오글거리는 말도 둘에게는 그 어떤 시구보다 감동적이다.
아슌푸틀이 갑자기 일어나 휘진에게 이불을 덮어씌우고 진하게 키스해왔다.
입술의 키스라면 사랑의 키스라고 어제 휘진이 가르쳐주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주겠다는 서로간의 맹세.
엄밀히 따지자면 손과 손의 접촉과 다를 것도 없겠지만 이 호흡을 교환하는 느낌은 가슴을 뛰게 한다.
한참이나 이불이 뒤척이고 숨이 가빠졌을 무렵에야 휘진과 아슌푸틀은 침구를 정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