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순진의 여기사(1)
“조…조금만 쉴게요… 오랜만이라 안이 쑤셔요…”
“너는 그냥 착각을 하고 있는 거야.”
“네?”
“나는 네가 좋아할 그 어떤 요소도 없는 사람이야. 억지로 범해지기 싫어서 사랑을 배워버린 거 아니야? 다른 사람도 만나보고 그래라. 너를 위해서라도 하는 말이니까.”
내치는 듯한 말투로 머릿속으로만 뇌까리던 말이 튀어나온다.
어쩌면 녹아내리는 얼굴로, 행복감에 가득한 얼굴로 기쁜 듯이 호응해오는 리리엘이 못마땅해서였을 수도 있다.
혹은 진심으로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는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쯤에서 그저 달콤하기만 한 꿈을 깨줄 수 있다면 그걸로 나쁘지 않다.
“웃…!!!”
리리엘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부풀어 오르던 무엇인가가 푹 꺼지는 기분을 느꼈다.
거부당했다.
부정당했다.
기껏 용기 내었던 마음이 고작 착각 정도로 치부되었다.
거기서 리리엘은 수치를 느꼈다.
저도 모르게 끄트머리만 걸쳐있던 허리를 당기듯이 아래로 내린다.
몸 한가운데가 갈라지는 느낌과 매끈하고 오돌토돌한 것이 삽입되는 거친 자극이 느껴진다.
평소와는 삽입되는 깊이도 기세도 남달랐다.
배 가장 안쪽의 부드러운 수태기관의 입구까지 단번에 쿡 하고 쑤셔온다.
휘진이 잠깐 숨을 삼키는 것을 보고 리리엘은 이번에야 말로 한 치의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휘진을 노려보았다.
“아니에요.”
잔 물결치듯이 허리를 움직여간다.
팔을 펴 깍지를 끼고 그의 목덜미에 손을 두른 상태로 서로를 마주본다.
휘진도 리리엘도 서로 시선을 피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 자세였다.
“이 마음은 착각이 아니에요.”
어느 정도 조심스러움이 남아있던 허리의 움직임에 더 이상은 망설임이 없다.
질 내부의 끝부분, 말랑말랑한 고기 벽이 잔뜩 비벼질 때까지 거침없이 허리를 비빈다.
시트가 이지러지는 소리, 스프링이 삐걱이는 소리, 맨살이 비벼지는 소리, 애액이 찔꺽이며 떨어지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려온다.
“하읏…하윽… 세상 그 누구가… 부정한다고 해도…”
그 움직임을 선도하고 있는 것이 리리엘이라는 것이 또 새롭다.
신음소리의 중간 중간의 말을 섞으며 리리엘은 휘진의 정액을 쥐어짜듯이 허리를 그라인드 한다.
귀두 끝을 꺾어버릴 듯, 적당한 고통과 쾌감의 적당한 경계에서 체액을 섞는 느낌이 확실히 전해져온다.
삽입 될 때는 적당히 매끄러운 질벽의 저항.
뺄 때는 귀두의 굴곡에 얽혀 오는 끈끈함이 명품이다.
“알겠어.”
렉이 걸린 듯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허리를 움츠리는 리리엘의 허리춤을 단단히 붙잡는다.
어깨에 흘러내리는 탐스러운 금발이 간지럽다.
“그렇다면 이쪽도 진심을 보여줘야겠지.”
휘진은 쉼 호흡을 하고 허리를 쳐 올렸다.
“절경이네.”
휘진은 흐뭇한 표정으로 침대 위의 리리엘을 내려 보았다.
침대 위에 태아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는 리리엘.
당연히 의복이란 단 하나도 허락되어있지 않은 알몸의 상태이다.
측면으로 누워 무릎을 가슴까지 끌어올리고 두 팔로 그 무릎을 껴안는다.
머리를 누이고 편안하게 누워있는 자세에서 그 시선만큼은 힐끗힐끗 휘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적당히 가려지는 게 아름다운 법이지.”
“자꾸 헛소리만…”
저런 자세에서 내려다보면 흔히 19금 딱지가 붙을 곳은 확실하게 가려진다.
연분홍의 유두는 무릎에 바짝 붙어 가려지고, 다리를 모은 상태이기 때문에 은밀한 비소는 사각이 된다.
남자가 의상 페티쉬에 흥분하는 이유가 바로 상상력이 있기 때문이라면 이 자세야 말로 그것을 극한까지 자극한다고 말 할 수 있겠지.
무릎에 바짝 붙어 삐져나온 가슴의 옆태를 바라보고 있자면 당연하다는 듯이 주물거리던 젖꼭지도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급소로 의식하게 된다.
리리엘은 뜨거운 한숨을 내쉬며 상처 입은 짐승처럼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의 허리춤 위에서 몇 번이나 절정을 맞이한 결과 천상의 쾌감과 동시에 극심한 체력소진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의 몸 위에서 무게 중심을 잡으며 걸터앉아 있는 것도, 저항에도 관계없이 그의 물건을 받아 드리는 것도 모두 체력을 요구하는 일이다.
“이 자세… 뭔가 부끄러워요.”
“너는 그런 거 좋아하니까 잘됐네.”
“당신 앞에서만… 이런 거거든요?”
아까까지 바짝 밀착해 있었던 그와 떨어지자 새삼 공기의 차가움이 느껴진다.
스스로를 속박하고 있는 기묘한 자세로 침대 위에서 뱀이 기어가는 듯한 시선을 느낀다.
완전히 그의 사용품이 된 듯한 굴욕감이 역설적으로 리리엘의 뱃속을 간질여갔다.
“그럼 넣는다?”
“힉…!!!”
허벅지에 손이 얹어지고, 좁게 갈라진 틈을 향해 뜨겁게 그의 물건이 돌진한다.
이상한 목소리가 저절로 새어나왔다.
황급하게 입을 틀어막아보았지만 이미 컨트롤을 벗어난 성대는 달콤한 신음성을 내었다.
무릎을 꽉 잡고 있어야 하지만 이래서야 금방 손이 풀려버릴 것 같았다.
평소처럼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몇 번이나 겪었던 일이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진 않았다.
휘진은 휘진대로 좋은 감각을 느끼는 중이었다.
두 다리가 꽉 붙은 자세는 필연적으로 강한 조임을 동반한다.
비단 질벽 뿐 아니라 꽉 다물듯 좁아지는 꽃잎이 기둥의 양 옆에 찰싹 달라붙어 꺼슬꺼슬한 쾌감을 추가로 준다.
명기인 리리엘의 장점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체위라고 자부하겠다.
“하윽…하윽…!!”
“내가 그렇게나 보고 싶었다니까. 응해 줄 수밖에 없지.”
“누…누가 당신 따위를 히익…!!!”
또, 또 이제 와서 딴소리.
아까까지 그렇게 꿀 떨어지던 눈으로 바라보던 주제에 조금 밀어붙이자 곧바로 부끄러워한다.
그러면서도 육체는 확실하게 쾌감을 전달해주니 귀여워하지 않을 수가 없지.
삽입을 하면 할수록 꿀렁꿀렁 애액이 흘러넘친다.
이 좁은 공간 안에 얼마나 많은 물이 나올 수 있는 건지, 벌써 침대의 시트에 검은 얼룩을 만들어내고 있다.
온몸을 꿈틀거리며 쾌감의 저항하면서도 꽉 잡고 있는 무릎만큼은 놓지 않는 점이 사랑스럽다.
그때.
“실례합니다. 휘진경 안에 계신가요?”
“흐으읍…♡♡♡♡”
아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얼마만의 재회냐.
새삼스러운 가슴의 설렘도 잠시 리리엘의 내부가 꽉 하고 조여 오는 것이 느껴진다.
그야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싫겠지 싶지만 그 이상으로 새로운 상황에 흥분하고 있다는 건가.
역시 천성을 타고난 M이다.
“들어가겠습니다.”
아무리 평소 점잖고 여유 있는 아리스더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좀처럼 침착할 수 없었다.
자신의 부족으로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던 휘진이 돌아왔다는 말을 경비병에게 듣고.
지금껏 성 구석구석을 뒤지던 중이었다.
하지만 죄다 허탕.
타타라의 연구실에도, 식당에도, 욕실에도 그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그의 방.
문을 열고 들어선다.
평소의 아리스라면 이런 실례는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개인의 사적인 공간을 존중하는 아리스이고, 대답도 없이 방에 들어가는 무례한 행동은 아리스의 행동 양식에도 어긋나니까.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평소처럼 차분하게 행동하지 못한 스스로를 원망했다.
“아리스 오랜만이야.”
“힉…힉…!!!그만… 보여져욧…!!”
아리스는 머리가 아찔해져오는 것을 느꼈다.
어느 정도 정도 들었고 나름 서로 몹쓸 짓을 한 사이이기도 하다.
솔직히 그가 실종되었다가 다시 나타났다는 사건만 없었다면,
다시 얼굴을 마주할 면목이 없을 정도로 일탈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상대이다.
오랜만의 재회가 다른 여자와 몸을 섞는 상태에서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아리스는 곧바로 정색했다.
“다음에 뵙죠.”
“무슨 소리야 오랜만에 얼굴 보는데. 섭섭하네.”
“제가 이곳에 계속 있어야 할 이유라도 있습니까?”
힐끗 시선을 미끄러뜨리자 동물의 왕국을 방불케 하는 흐트러진 침대가 눈에 들어온다.
휘진의 밑에 깔려 버둥거리는 여자는 얼마 전 부터 타타라의 제자로 들어간 리리엘 후작 영애.
평소의 점잖고 단정한 기색은 간데없고 헐떡거리는 짐승처럼 부끄러운 울음을 흘리고 있다.
그 추잡한 갭에 아리스는 얼굴이 화끈거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와 함께 침대에서 뒹굴었던 장면이 스치듯이 뇌리를 지나간 것이다.
그 때는 실수에 불과했고 그걸 반복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와 탐닉했던 쾌감은 흔적처럼 몸 안에 기억되어있다.
“그거 참 섭섭하구먼.”
휘진의 거근이 뽕 소리와 함께 리리엘의 안에서 미끄러져 나온다.
전신을 바들거리던 리리엘은 이불로 몸을 숨길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축 늘어진다.
애액으로 반들거리는 거시기를 덜렁거리며 휘진이 천천히 다가왔다.
“…좀 가리던지 하세요.”
시선을 피하는 아리스에게 뚜벅뚜벅 걸어가며 얼음물을 마시는 휘진.
이상하게 섹스를 하면 침이 걸쭉해진단 말이지.
어쩌면 너무 흥분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나 안보고 싶었어?”
자연스럽게 아리스의 퇴로를 차단하며 그녀의 어깨에 슬쩍 손을 얹는 휘진.
사실 칼이라도 빼들면 어쩔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거부반응은 없다.
대신 순진한 처녀처럼 알몸에게서 자꾸자꾸 반대로 시선을 돌리고 있을 뿐.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질릴 정도로 섹스한 많은 사람들과는 다르게 아리스와는 공식적으로 한 번 정도 밖에 몸을 섞지 않았다.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만…”
“난 아리스 경이 너무너무 그리웠다고.”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게 굳어있는 아리스의 몸이 이번엔 석상처럼 굳어버린다.
휘진이 뒤에서 아리스의 목덜미에 업히듯이 그녀를 껴안은 것이다.
사실 절반쯤은 도박이었지만 아무런 생각 없이 한 것도 아니었다.
그녀의 주위를 슬슬 배회하면서 확실하게 시간을 멈추고 있으나 마나한 성적 자극을 가했다.
속옷 위로 유두 주위를 슬쩍 슬쩍 돌리는 정도의 아주 자그마한 자극.
팬티 위로 클리토리스의 주위를 살짝 스치는 정도의 아주 작은 자극.
피드백이 축적되더라도 아리스가 결코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작은 자극을.
비록 당황스러운 상황에 좀처럼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아리스이지만 그 자극만큼은 확실하게 그녀의 성감에 닿았다.
아직 상황 판단이 완벽하게 되지 않아 혼란스러운 아리스의 약점을 집중 공략한다.
아리스의 약점이란 무엇인가?
올곧음과 책임감이다.
자신에게 행해지는 부조리가 스스로의 책임에 의한 것이라면, 혹은 죄책감에 의한 것이라면 손 쉽게 수긍하고 만다.
완고해보이기만 하는 아리스의 애널을 손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 또한 그녀의 융통성 없음 때문이었으니까.
자신의 작전 도중 실종된 휘진.
그것도 크나큰 공헌을 올려 개선했다.
이토록 그녀를 협상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기 쉬운 조건은 없을 것이다.
잔머리까지 가지런하게 정돈된 아리스의 목덜미에 살짝 입을 맞춘다.
그것만으로 아리스는 호흡을 멎은 채 뱀 앞에 생쥐처럼 꼼짝도 하지 못했다.
“저…휘진 경…”
“나 이정도면 진짜 애썼는데. 칭찬 받고 싶은걸?”
“조금만 떨어져주십시오. 칭찬이라면… 얼마든지 해 드릴 수 있으니까…”
아까까지 위엄이 서려있던 아리스의 목소리도 단숨에 기어들어간다.
목에 오소소 돋아있는 소름이 아리스의 지금 심정을 짐작가게 해준다.
“지금 당장은 어떻게 안 될까요? 나 진짜 엄청 고생했었거든? 다짜고짜 적지에 남겨져서 말이야.”
“제가 분명 만류했습니다. 휘진경이 강행한 거 아닙니까.”
“응, 맞아. 아리스에게 부담을 줄여주고 싶었거든.”
“크윽…”
“조금의 포상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