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소꿉친구 빼앗기(2)
어차피 저항해도 의미가 없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일지, 아니면 오랜 숙원이 해소된 해방감에 불의에 관대해 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깨에 걸쳐져있던 드레스의 끈은 어느덧 가슴께까지 내려와 그녀의 윗 가슴이 전부 드러난다.
서로 거칠어진 두 짐승의 호흡이 사뿐하게 유두를 훑는다.
처음 본 남자의 성행위와 지독히도 음란한 일련의 행동들.
이제껏 후작가의 영애로서 품위를 지켜오기 위해, 억압하고 옭아매야 했던 과거의 속박들을 멸시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묘한 희열.
추락하는 스스로의 모습은 전신에 오소소 소름이 돋을 정도로 해방감을 선사했다.
“아까는 피닉스가 방해해서 끝까지 못했었네. 너도 아쉬웠지?”
“아쉽기는 개뿔…”
“네 젖꼭지는 굉장히 아쉬웠나 본데?”
어느덧 훌렁 내려 온 드레스는 이제 가슴 밑에서 말려있다.
풍만한 가슴 위에 얹어져있는 분홍색 살덩이를 휘진은 젓가락질을 하듯 천천히 문질렀다.
목이 탄다.
침을 넘기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금방이라도 야릇한 목소리로 갸르릉 거릴 것만 같았다.
“이제껏 이런 것도 못해봤지?”
“당연…하지… 나는 니콜라 후작가의 금지옥엽이었으니까. 아버지가 복권하시면 반드시 당신 명줄을 끊어달라고 부탁드릴 거야.”
“정말 그걸로 만족해?”
당연히 그렇다, 라고 대답하려던 아나스타샤의 말문이 막혔다.
걸음걸이는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게, 보폭은 드레스자락의 절반 정도로, 웃을 때는 이를 보이지 않고, 어느 곳에서든 위엄과 절조를 잃지 않게…
니콜라 후작은 아들을 두지 못했다.
아나스타샤는 데릴사위를 데려오기 위한 예쁘게 장식된 인형일 뿐이었다.
온갖 규칙과 법칙 속에 목이 메여 웃음조차 강제로 띄어야하는 꼭두각시.
이 남자는 그걸 꿰뚫어보고 있는 것일까?
불현듯 그의 눈과 마주친 아나스타샤는 조그마한 공포를 느꼈다.
유두를 입에 물고 눈웃음을 짓고 있는 휘진의 두 눈이, 마음 안에 일그러져있는 검은 공간을 직시하는 것만 같았다.
“침대로 갈까?”
“착각하지 마.”
아나스타샤는 탁하고 휘진을 밀어 낸 뒤 스스로 드레스를 벗어던졌다.
가느다란 허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살덩이가 위아래로 흔들거렸다.
손목에 껴 두었던 머리끈으로 허리께까지 내려왔던 머리를 둥글게 올려 묶은 아나스타샤는 마치 모델 워킹처럼 휘진의 앞으로 당당히 섰다.
“당신에게 몸을 허락했다고 해서 연인 행세를 할 생각이면 곤란해.”
“나도 너랑 연인이 되고 싶다 한 적 없거든?”
주제를 모르는 것도 정도가 있다.
어디까지 가지고 놀다가 적당히 방생시킬 계획이었는데 기어오르고 있어.
하지만 그런 도도한 태도가 너무나도 휘진을 자극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어차피 아나스타샤가 어떤 스탠스를 취한다고 해도 그녀는 휘진에게 안길 것이고 또 다시 애달프게 신음을 자아낼 것이다.
기왕이면 정복욕을 충분히 충족시켜주는 그녀 쪽이 더 먹을 맛이 났다.
“자, 이제 마음대로 해.”
침대에 누운 채로 파라오처럼 공손하게 손을 모은 채 눈을 감은 아나스타샤.
색기 넘치는 몸을 한 주제에 행동에는 색기라곤 하나도 없다.
“미안한데 그 침대 아닌데?”
“뭐?”
…
또 다시 이런 현상이다.
아주 짧은 시간 만에 위치가 바뀌었다.
원래 아나스타샤의 방에서 손님을 재우기 위한 별실로 순간이동.
원래 누워있던 자신의 몸은 어느새 휘진의 손에 부축된 채로 서서 침대를 내려 보고 있다.
“내가 말한 침대는 여기였어.”
“…미친 새끼…”
그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는 아나스타샤였다.
왜냐면 지금 별실에서 잠을 자고 있는 것은 한 명 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녀의 친구인 미카엘이다.
많은 일을 겪은 탓에 피곤에 찌든 것인지 코를 드르렁 골면서 세상 편하게 잠을 자고 있다.
이 낯선 남자는 추잡한 짓거리를 다름 아닌, 자신을 사모한다는 소꿉친구의 앞에서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만약 깨어난다면 어쩔 생각인거지?
“전부터 궁금했는데 너도 쟤 좋아하냐?”
“딴 곳으로 가자… 들키면 당신도 좋을 것 없잖아.”
“나는 상관없어. 저 친구는 나를 도와서 자기 직장 상사를 죽였잖아? 어차피 같은 배를 탄 처지라고. 자기가 날 배신하거나 한다면 너도 마찬가지로 죽은 목숨이라는 건 알 테니까 말이야.”
재미없는 농담정도로 받아들이려했지만 몇 번이고 눈을 마주쳐도 휘진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심지어 밖으로 빠져나가는 기색을 보이기는커녕 대담하게 엉덩이를 꽉 쥔 채 엄지손가락으로 꽉 다물린 꽃잎을 지분거린다.
“왜 이런 짓거리를 하는 건데?”
속삭이는 목소리로 묻는다.
“내 질문에 먼저 대답해줘. ‘거짓말은 금지한다.’”
강제적인 속박이 몸에 조여 드는 감각. 아나스타샤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적어도 어렸을 땐 좋아했어.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땐 주변에 유일한 사내 아이였으니까.”
애초에 아버지가 카를 남작에게 미카엘을 보내버린 것도, 둘 사이에 흐르는 특이한 분위기를 캐치했을 확률이 높았다.
우수한 종마를 물어 와야 할 딸내미가 빈민가에서 주워온 어디서 굴러먹었는지 모르는 놈팡이에게 빠지는 것이 무서웠겠지.
“잘했어요~ 그럼 이제 침대에 엎드려. 상으로 꼬추 줄게.”
“정말로? 진심이야? 다른 좋은 곳도 많잖아.”
“이 편이 더 재밌잖아.”
“재미없거든?”
필사적으로 버티려했지만 아나스타샤의 몸은 저절로 씨를 받기 위해 준비하는 암컷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엉덩이를 높게 들고 허리를 낮춘 후배위 자세.
엉덩이에 살집이 많은 편이라 잘 보이지 않던 뒷 보지의 형태와 애널도 이런 자세라면 숨길 수 없다.
어차피 거부는 용납되지 않는다.
게다가 말은 저렇게 해도 ‘유사시 이상한 순간이동 능력으로 이동할 것이다…’라는 기묘한 확신이 들었다.
다만 거부감이 있다면 다름 아닌 미하엘의 앞에서 다른 남자의 씨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정도.
그는 어릴 때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있었다.
성격도 비슷하게 자랐다면 분명 의지가 되고 함께 있는 즐거운 사람이 되었겠지.
단단한 그의 물건이 엉덩이를 툭툭치는 것이 느껴진다.
오늘 처음 느껴보았던 쾌감.
모든 섹스 하는 사람들이 그런 거대한 쾌감을 느끼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도 안 되게 기분 좋았던 행위였다.
순백의 우주로 영혼이 두둥실 떠올라 행복한 회전을 반복하는 기분.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씁쓸한 조소였을까? 아니면 어이를 상실한 그의 행위에 대한 비웃음이었을까?
-찌걱…!!!
“아흡…!!!”
이미 조금의 애무만으로 깊숙이 젖어있던 아나스타샤의 질 내부의 휘진의 물건이 침투한다.
억지로 넓히는 듯한 감각.
전혀 손대중도 없었던 격렬한 꽂아 넣기에 아나스타샤는 갑자기 터져 나오는 신음을 찾았다.
-찔걱 찔걱 찔걱 찔걱!!!
아무리 침대가 넓고 좋다고 해도 그 흔들림은 전달되는 법이다.
삐걱이는 침대에서 배덕감에 젖은 채 뒤로 휘진을 받아들이는 아나스타샤.
성대가 제멋대로 움직이려하는 것 같다.
간질간질 목 뒤가 간지러워 금방이라도 기쁨에 겨운 탄성을 내지를 것 같다.
입술을 꽉 깨문 채 신음을 참는 아나스타샤의 엉덩이에 휘진은 몇 번이고 허리를 부딪쳐갔다.
“하으으읍…♡♡”
가벼운 절정.
신음을 참느라 안간힘을 쓰던 아나스타샤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입술을 꽉 깨물고 소리를 억눌렀다.
“아가씨…?”
잠에서 깬 미카엘이 본 것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얼굴에 복사꽃 같은 홍조를 띤 아나스타샤의 얼굴이었다.
달빛이 마저 걷어내지 못한 어둠 뒤로는 허리를 움직이는 남자가 있었고, 아나스타샤는 마치 강아지처럼 엎드려 그 남자의 성기를 받아내고 있었다.
“아가씨??!!”
믿을 수 없는 관경에 미카엘은 눈을 부비고 다시 앞을 보았다.
“어?”
하지만 다시 앞을 보았을 때, 아나스타샤는커녕 개미 한 마리조차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서늘하게 불어오는 밤바람이 창문을 덜컹거리고 있을 뿐이다.
“에라이 꿈을 꿔도.”
아무래도 카를 남작을 배신한 일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터인데, 반나절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그가 자신을 챙겨주었던 일들이 생각났다.
신분이 별거냐, 호형호제 하자!라며 기꺼이 어깨동무를 해주던 사람이었는데…
“씨발…”
잠들기 전까지 반병은 넘게 마신 럼을 콸콸 들이마신 미카엘은 이번에야 말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가 코를 골기 시작하자 테라스 쪽에서 봇물이 터지듯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다…당신 뭐하는 거야!!”
“뭐 하긴… 몰래 섹스 중이지.”
만약의 순간 그가 어떻게든 조취해줄 것이라는 것은 믿고 있었지만 이동한 위치는 겨우 테라스.
커튼이 바람에 살짝만 흔들렸더라도 고스란히 유리벽에 부벼지는 그녀의 가슴이 보일 위치이다.
아니, 하다못해 미카엘이 조금만 제정신이었고 창문을 바라보았다면 그 음란한 실루엣이 전부 노출됐을 것이다.
그 상태에서 조용히 있던 것도 아니라 그대로 피스톤을 계속하다니.
그 탓에 한껏 숨을 죽여야 했던 아나스타샤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휘진을 째려보았다.
물론 그 정도의 저항 따위 휘진이 아랑곳할 리가 없다.
“자자, 이제 술도 먹고 푹 자는 것 같으니까 다시 입실합시다.”
“싫어…이거 놔… 아 쫌!”
“칙칙폭폭 칙칙폭폭.”
아나스타샤의 양 손목을 뒤로 빼 잡고, 교접부가 연결된 상태로 사족보행을 시작한 남녀.
애초에 명령권이 있는 이상, 휘진의 의도는 전부 실현되었다.
비록 꼴 사나울지라도 휘진의 물건은 확실히 그녀의 안에 안착되어있다.
비척비척 걸음을 옮길 때마다 미묘하게 좌우로 내부를 휘젓는 탓에 아나스타샤는 흠칫흠칫 몸을 떨었다.
“아윽…♡♡”
“자자, 우회전 우회전. 정지이.”
대략 10걸음 정도를 옮겨 침대에 도착한 아나스타샤.
사람 마음이 참 연약한 것이, 아까까지만 해도 그녀는 제법 상황에 몰입하여 미카엘의 기습적인 기상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가 한 번 깨어난 뒤로는 무척이나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비상회피 수단이라 믿고 있었던 이 남자는 걸리든 말든 딱히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이다.
“근데 아나스타샤. 나도 나지만 너도 변태 끼 다분하다.”
“또 무슨 개소리를…”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할 때 휘진이 건넨 한마디에 아나스타샤는 열이 확 솟는 것을 느꼈다.
“아니, 아까 몰래 떡칠 때 엄청 조여 주더라고.”
“크윽… 니 꼬추가 오죽 작아야지.”
워낙 급박했던 상황인지라 사실이 어땠는지는 그다지 생각나지도 않았다.
다만 그의 말을 인정하는 것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던 탓에 얼추 둘러댄다.
부드럽게 쿵쿵, 한 곳만을 집중 공략하자는 심정으로 아나스타샤의 속살을 쑤시던 휘진의 움직임이 문득 멎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