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남의 떡이 더 맛있다(4)
피닉스 이외의 방해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던 휘진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뭐야?”
“….”
커다란 남자의 목소리에도 아나스타샤는 잠잠하기 그지없었다.
상식적으로 괴한에게 속박 당해 마음껏 수치를 보기 직전이라면 설령 모르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하더라도 도움을 청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나스타샤는 입술을 꽉 깨물기만 할 뿐 그 어떤 반응도 없었다.
휘진은 그녀의 말들을 반추했다.
‘네 주인에겐 분명 제안을 수락한다는 뜻을 비쳤다. 빛나는 니콜라 가문을 이 지경까지 몰아넣은 장본인들이 이제 와서 동아줄이라니. 천박한 것도 정도가 있느니라.’
달갑지 않은 손님이다.
“친한 사람은 아니구나?”
“…크윽…”
아나스타샤의 입장에선 앞에는 늑대 뒤에는 호랑이인 상황이었다.
지금 당장 자신의 앞에서 수치를 주고 있는 이 남자에겐 당장이라도 정조를 위협당할 처지였으며, 밖에서 자신을 부르는 남자는 가문의 몰락을 가속화한 장본인이다.
“내가 해결해줄까?”
“네놈 따위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부탁할 것도 없다.”
그녀의 말에 불길하게 웃는 남자.
“신중하게 생각해. 너는 마신의 램프를 문지른 거야. 밖에 저 녀석을 죽여줘? 네가 처한 곤란한 상황을 해결해줘? 뭐든 말 만해. 네 몸을 시식하는 대가로 처리해 줄 테니까.”
“허세로 헛소리를 하는 것은 남자들만의 특징인가?”
아무래도 믿지 않는 아나스타샤의 모습에 조금은 오기가 생긴 휘진.
“침대에 누워있던 여자애. 누군지 알아?”
“알까보냐.”
“그 녀석은 몽고메리 피닉스야. 초주검이 되어가던걸 내가 단신으로 구출해왔지.”
“뭣?!”
친 엘프파인 아버지를 둔 아나스타샤인만큼 피닉스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엘프 해방군의 구심점 역할을 하던 유일한 아신.
얼마 전 토렌스에게 격파당해 호수에 가라앉았다는 말을 들었건만 이 남자가 구출했다는 건가?
“저 녀석은…”
이젠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 되어 자신의 비극적인 스토리를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아나스타샤.
그녀의 말에 휘진은 기가막힌 스토리를 떠올렸다.
◈ ◈ ◈
“어디 있소? 한시라도 빨리 그대의 얼굴이 보고 싶구려!”
홀 내부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치는 카를 남작.
흥분으로 상기된 푸들거리는 볼을 잔뜩 부풀리며 아나스타샤를 찾는다.
“오랜만이네요.”
복도의 휘장을 걷어내며 곱디고운 아나스타샤의 모습이 드러났다.
휘진에게 그녀의 옷차림이 선정적이었듯이 그 모습은 카를에게도 자극적이었다.
카를은 대답도 잊은 채 멍하니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돈으로 작위를 산 카를과 루블 왕국의 명망 높은 후작가의 영애.
본래라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지만 오랜 공작 끝에 만들어낸 오늘의 성과.
그 달콤한 과실을 맛보는 날이다.
“오늘은 약속했던 대가를 받으러 왔소.”
“알고 있어요. 어길 생각도 없고.”
평소대로 쌀쌀맞은 목소리였지만 카를은 괘념치 않았다.
오히려 그런 그녀의 태도가 고고함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 같아 흥분을 재촉할 뿐이었다.
제 아무리 기가 쎄고 성격이 드세다 한 들 오늘밤 그녀는 순순히 다리를 벌려야 할 것이니 말이다.
“오늘이 지나면 저희 아버지를 풀어주시는 건가요?”
“그렇소. 간수장에게 처형 직전 다른 죄수와 바꿔치기해달라고 부탁을 해놨소. 다른 신분으로 다른 나라에서 살 수 있을 것이오.”
내전과 찾은 전쟁으로 행정이 개판이 되었기 때문에 돈만 있으면 불가능한 일은 거의 없었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카를.
그에 맞춰 아나스타샤는 조심스럽게 뒷걸음질 쳤다.
이제 와서 저 역겨운 얼굴을 보는 것이 힘든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 자신의 옷차림은 남에게 보여줄 만한 것이 아니었다.
젖꼭지가 그대로 드러난 천박한 옷차림.
가슴 위를 절묘하게 가리는 밍크 숄이 유일한 희망 줄이다.
조금이라도 각도가 틀어지거나 숄이 틀어진다면 이런 몰골을 가장 증오하는 저 남자에게 보여야 한다.
“일단 차라도 마시면서 이야기 할까요?”
“허허, 좋소. 그대와 함께하는 차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니.”
게다가 호언장담했던 이 남자는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최대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도 일단 응접실로 안내하려는 아나스타샤와 기꺼이 응하는 카를.
응접실에 들어서자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어디서 구했는지 정체불명의 천으로 얼굴을 칭칭 감싼 괴한.
“네놈은 뭐냐!”
갑작스러운 불청객에 카를은 침을 튀기며 외쳤다.
“나? 패션 디자이너지.”
“패션 디자이너?”
“어때? 이번 쇼에 나갈 작품인데 얼굴을 칭칭 감싸는 목도리야.”
의뭉을 떨며 껄렁거리던 휘진의 모습에 카를은 분개했다.
비단 아나스타샤와의 시간을 방해 당했기 때문이 아니다. 어쩌면 애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눈썹을 찌푸리게 만든 것이다.
희번덕거리는 눈동자로 아나스타샤를 쏘아보았지만 그녀의 얼굴에도 당혹스러운 기색만이 가득했다.
“저 놈은 누구요?”
“말했잖아. 패션 디자이너라고. 짜잔~”
눈앞에서 사라져 아나스타샤의 옆으로 순간 이동한 남자는 순식간에 숄을 걷어내었다.
곧이어 마치 같이 댄스를 추듯이 뒤에서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천천히 스탭을 밟는다.
“….!!!”
졸지에 가슴을 드러낸 아나스타샤와 상황 판단이 되지 않는지 입을 떡 벌린 카를 남작.
“내 작품은 마음에 드시나?”
“네…네…네놈…”
수치로 얼굴을 붉히는 아나스타샤의 저항에 아랑곳 않고 남자는 그녀의 목덜미를 깨물었다.
“당장 그녀를 놓아주어라!”
“싫은데?”
그녀를 파멸로 몰아넣은 장본인인 주제에 히로인을 인질로 잡힌 주인공 대사를 하는 남작.
‘어쩔 생각이죠?’
‘말했잖아 몸은 대가로 받아가겠다고.’
카를의 눈이 뒤집어진 틈을 타서 귓속말을 해오는 아나스타샤.
그녀로서는 기왕 몸을 더럽힐 바엔 원수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생각하나에 휘진을 택한 것이다.
그녀로서는 이런 유희에 어울려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네 놈을 재로 만들어주마! 나의 사랑 조금만 기다리시오!”
카를은 품에서 간도를 꺼내들고 불길을 일으켰다.
형편없어 보이지만 그는 나름 실력 있는 ‘원소술사’였다.
물론 특출 난 재능이 있다기보다는 현금을 바탕으로 각종 엘릭서와 최고급 마법도구를 이용한 편법 투성이었지만.
잠시 후.
“끄허…”
휘진은 피떡이 된 카를 남작을 내려다보았다.
그 옆에는 창백한 얼굴이 된 채 질린 표정을 짓는 아나스타샤가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비록 말석이라지만 ‘학자’의 칭호를 갖고 있는 카를을 가지고 놀듯 두들겨 팬 이 남자.
아까 피닉스를 단신으로 빼돌렸다는 말이 허풍이 아닐지도 모른다.
피거품을 문 채 꿈틀거리는 남작의 모습에 속이 후련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말대로 자신이 ‘마신의 램프’를 문질러 버린 것이 아닐까하는 후회에 이어 두려움이 밀려왔다.
옛 설화부터 악마의 힘을 빌린 자는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니까.
“살집이 많아서 타격감이 좋네.”
“끄어어억…네…네놈…”
“한 번만 더 지껄이면 불알 찌그러뜨릴 거야.”
“…”
몇 대만 툭툭 때려줘도 입을 다물 정도로 한심한 생김새와는 다르게 제법 기개가 있었다.
어쩌면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멋져 보이고 싶은 버프가 들어간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것 신경 안 쓴다.
어차피 오래 살려둘 예정도 아니고.
“자 그럼 약속대로 대가를 받아갈래?”
“여기서 당장 말이냐?”
“그럼? 장미 욕조라도 기대했어?”
비웃음을 머금은 휘진은 아나스타샤가 소파에 손을 지탱하게하고 드레스의 자락을 올렸다.
옷감이 비벼지는 소리와 함께 둥그런 그녀의 엉덩이가 드러났다.
“자…잠깐? 저 녀석 앞에서 이 짓거리를 해야 한다고?”
“남자가 가장 마음 찢어지는 때가 어떤 땐지 알아?”
“….”
“좋아하는 후배가 웬 복학생 선배랑 모텔에서 손잡고 나오는 걸 볼 때야.”
악마의 말처럼 감미롭게 귓가를 파고드는 남자의 목소리.
“최고의 복수를 원한다며.”
마침내 체념하고 고개를 푹 숙인 아나스타샤의 시야에 피 웅덩이 가운데 누워있는 카를의 모습이 들어온다.
몸을 섞을 생각에 희희낙락 달려온 원수가 충격에 빠진 표정을 짓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어쩐지 비웃음이 나왔다.
저 남자에겐 이것조차도 사랑의 형태였을까?
새까만 드레스와 완벽한 흑백 대비를 이루는 엉덩이를 움켜쥔다.
마치 상품취급 받는 듯한 모멸감이 발끝부터 전신을 휘감아 돌았다.
“팬티도 아주 야한데. 원래 이런 속옷만 입어?”
“큭…”
휘진의 말대로 아나스타샤의 팬티는 국부만 간신히 가릴 정도의 티 팬티였다.
기왕 몸을 버릴 것 완전히 카를 남작을 휘어잡을 생각에 만반의 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기껏 저 녀석을 위해 준비한 것 같은데 나만 보긴 아까운 걸?”
휘진은 조금 자리를 비켜 카를 남작의 시선이 그녀의 엉덩이를 관람할 수 있게끔 배려를 해줬다.
키가 170은 되어 보이는 그녀답게 늘씬하고 하얀 다리가 로우 앵글로 카를의 눈에 들어온다.
“머…멈춰라…”
“모처럼 특등석까지 양보했는데 계속 찡찡거리면 진짜 섭섭한데.”
“네 더러운 손으로 모욕해도 될 여자가 아니다…”
“그렇다는데?”
이죽거리는 휘진의 미소에 아나스타샤는 그가 원하는 것을 눈치 챘다.
그리고 마지못해 입을 연다.
지금 다른 것은 잊어야 한다.
자신의 수치가 저 원수에게 절망이 될 수 있다면 기쁘게 몸을 불사를 의지가 있다.
“빠…빨리 평소대로 괴롭혀줘.”
어설프게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교태를 부리는 아나스타샤.
솔직히 거기서 웃음을 터뜨릴 뻔한 휘진이었지만 꾹 참았다.
저렇게 딱딱한 목소리로 남자를 유혹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형편없는 연기력과 다르게 그녀의 몸은 여우주연상급의 매력을 뿜어내고 있다.
휘진은 탐스러운 엉덩이 골에 파묻힌 팬티의 끈을 잡아 당겼다.
“히익…!!!”
고간의 틈을 탐욕스럽게 파고드는 팬티의 천에 당혹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까치발을 들고 고무줄의 장력에 저항하는 아나스타샤의 엉덩이가 단단하게 뭉친다.
얇은 천이 밀착하면서 둔덕의 형태가 고스란히 비쳐 보인다.
쫙쫙 조여 줄 것 같은 애널이 그 겨를에 방긋 눈인사했다.
“일단 애널은 합격~ 그럼 앞부분도 볼까?”
팬티를 젖히고 엉덩이를 쭉 내뺀 그녀의 하반신에 시선을 맞춘 휘진.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더라도 따라올 수 없는 리얼의 현실감.
완숙한 여인의 생김새와는 다르게 솜털 같은 음모가 돋아나 있는 둔덕.
꽉 다물린 틈으로 당연하지만 애액은 없다.
리리엘 같은 초 마조가 아닌 이상에야 이런 상황에서 젖어올 리가 없지.
하지만 어차피 여자는 자극과 반응의 동물이다.
휘진은 억지스럽다 싶을 정도로 엄지손가락으로 좁디 좁은 틈을 후볐다.
“흐읍…”
뻑뻑하다.
입구부터 지나치게 물어주는 감각이 전해져 올 정도로 조금의 틈도 없어보였다.
‘빨리 끝내.’라는 원망스런 눈빛으로 돌아보는 아나스타샤.
섹스의 기쁨을 아직까지도 모르다니.
인생 절반 손해 보는 여자다.
“그럼 단맛 쓴맛 다 본 레전드 자지를 맛보여주지.”
“병신…”
돼지한테 들릴 정도로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휘진은 정말 신사이다.
이 저항감 넘치는 보지를 억지로 범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공리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하나만 기분이 좋은 것보다는 둘이 기분 좋은 게 더 좋지 않을까?
시간을 정지한다.
눈썹을 모은 채 거부감이 역력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나스타샤.
저렇게 젖꼭지만 빼 놓은 의상에 엉덩이까지 이런 야한 티 팬티까지 입고 있는 주제에 저런 사람 깔보는 표정이 마음에 든다.
그럼 아신조차 저항하지 못했던 극상의 쾌락을 안겨주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