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몽고메리 피닉스(2)
“아 진짜 더럽게 힘드네. 뭔 엘리베이터도 없냐.”
마력포대는 상공에 있는 공군함을 요격한다는 특성상 대체로 10층 이상의 높이를 자랑한다.
근사한 호텔이었더라면 승강기라도 있겠지만 군사시설에 그런 사치는 기대할 수 없다.
휘진은 땀을 뻘뻘 흘리며 묵직한 가방을 메고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이미 2개의 포탑은 무력화에 성공했다.
당연하지만 세계를 멈춘다는 손쉬운 치트로.
삼엄한 경계도 그의 능력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물론 능력을 최대한 들키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의 활약이 최대한 ‘현실적이지만 초인적인’ 업적이 되도록 하루 정도 유예를 두었다.
“고생들 하십니다.”
지금도 플레이트 갑옷으로 무장한 기사 둘의 어깨를 툭툭 치며 지나가는 휘진.
문을 비집고 들어가자 길이5M, 둘레 1M정도 되어 보이는 거대한 마력포가 보인다.
마력 코일로 둘둘 감겨 있는 총대가 사슴벌레의 뿔처럼 나란히 공중을 겨누고 있다.
이 흉악한 무기는 건물 지하의 마력노심으로부터 공급받은 마력을 가속화시켜 쏟아내는, 유일하게 대 군함전이 가능한 대공병기다.
“거참 칙칙하게.”
사실 이 작업을 하면서 반반한 여기사라도 발견했다면 음흉한 장난을 칠 생각도 가득한 휘진이었지만 다리털만 덥수룩한 기사들 뿐. 아리스같은 어여쁜 여기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새삼 아리스가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 깨달은 휘진은 조용히 눈을 감고 휴식의 시간을 가졌다.
정지능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거듭 강조했듯이 휘진의 육체는 일반인이다.
심지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마력회로 하나 없는 일반인 중의 일반인.
슈슈가 마력을 다루는 법을 배운다면 휘진보다 빨리 강해질 수 있을 정도로 범인(凡人)이다.
그런 그가 무거운 가방을 들고 보도로 총 5KM남짓한 거리를 걷고 또 10층 분의 계단을 올랐다.
북해에 비해 온화하다지만 아직 초봄인데도 땀이 셔츠를 적신다.
첫 포탑을 무력화 시킬 때 다리가 너무 아파 포기하고 돌아가는 것도 생각했지만 여기까지 따라온 이상 대공님께 가져갈 근사한 전리품 정도는 챙겨갈 셈이었다.
-끼리릭…
준비한 공구로 익숙하게 포대의 마력기관을 열어 재낀 휘진.
그 안은 교향곡 하나는 거뜬히 연주할 수 있는 오르골만큼이나 복잡한 기관들이 탑재되어있었다.
처음에는 그 정교함과 기능미에서 품어져 오는 기백에 숨을 삼킬 만큼이나 감탄한 휘진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 두 번이다. 지금은 빨리 끝내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열심히 만들었을 공돌이들에게는 미안해도 이쪽도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다.
도미노를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뜨리는 것은 한 순간인 것처럼 휘진은 거대한 병을 꺼내 리리엘 특제의 부식액을 마력기관에 콸콸 부었다.
대부분의 마공학 장비들의 코어부품이 금으로 만들어지는 만큼, 이 부식액은 금을 흙으로 역연금(逆鍊金)하는데 특화된 부식액이라고 한다.
노란 액체가 기계 구석구석 스며드는 것을 본 휘진은 병을 바닥에 던지고 기관부의 덮개를 다시 덮었다.
“좋아 이걸로 끝.”
이제 멀찍이 안전한 곳으로 벗어나 공선의 포격에 휘말리지 않는 곳에 도달하면 시간 정지를 풀 예정이었다.
“윽…”
그때 지끈지끈거리는 두통과 함께 휘진은 전에 느꼈던 불쾌한 감각을 느꼈다.
뜨거운 쇠가 관자노리를 관통하고 지나가는 작열감.
가까스로 붙잡고 있던 끈이 손 틈새를 빠져나가려는 상실감.
정지 능력이 풀리려는 전조였다.
원인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는 충분히 예상이 가능하다.
적진의 한 가운데에서 능력이 풀려버린다면 지하 감옥 확정이다.
어쩌면 곧장 갖가지 날아오는 날붙이에 꼬치 신세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겨우겨우 집중력을 되찾은 휘진은 황급히 계단을 뛰어내려와 안전하다 싶은 장소로 달렸다.
“이런… 개 같은…!!! 알려주려면 좀 자세히 알려주던가!”
한참 전에 받은 쪽지의 주인을 원망하며 우선 적당히 몸을 숨긴 휘진.
어쩐지 오버 파워니 뭐니 하면서 너무 설친 감이 있다.
슬슬 밸런스 조절이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겠지.
어찌됐건 지금은 임무 속행이 우선이다.
휘진은 신호탄을 하늘 높이 겨냥하고 라이터로 불을 당겼다.
-삐이이이익!!! 펑!!!
◈ ◈ ◈
“포격 개시!”
하늘로 높이 솟은 신호탄을 본 엘프의 유일무이의 공군함 ‘라데피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법진 기동(起動)-거울나라(Looking-Glass House)]
리리엘의 자성 마법진 거울나라는 동화(同化)를 주축으로 삼기에 본래 대지를 딛고 서 있어야만 발동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배를 이루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뿌리를 내린 생목.
그리고 그 갑판 위에 충분히 덮여있는 흙은 리리엘이 이 함선을 ‘대지’로서 인식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만족시켰다.
순식간에 배 위로 뻗어나가는 주홍색 마력의 촉각들.
그녀가 사용할 마법은 단 하나.
거울 나라 중에서도 최고의 시퀀스인 ‘붉은 기사’이다.
함선의 마력노심으로부터 공급받은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이 리리엘의 몸에 연결된 노즐을 통해 공급된다.
-위이이이잉…!!!
새파랗게 달아오른 마력.
리리엘의 피부에 선명하게 떠오른 마력 과부하의 기색.
거친 물결이 몸 내부를 헤집는 고통에도 리리엘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붉은 기사와 함께 잡고 있는 마상창을 내밀었다.
진즉에 정조준을 완료해 놓은 루블 왕국의 함선.
뒤늦게 거대한 마력을 감지한 적 군함이지만 이미 대응은 늦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마력의 섬광이 장갑의 측면부를 관통한다.
◈ ◈ ◈
잠시의 쉴 시간도 없이 휘진은 시간도 멈추지 않은 채 수중 감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원래라면 엘프의 개별적인 돌격조가 수중감옥에 진입하는 것이지만, 만에 하나라도 제지당한다면 백업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다.
여기서도 보일 정도의 성대한 폭발.
엔진 기능이 완전히 정지해도 이미 부여되었던 마력은 남아 있는 것인지.
천천히 호수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하늘에서 가라앉는 루블 왕국의 공선이 보인다.
“적군의 침입이다!!!”
“전군 위치로!”
분주히 움직이는 루블 왕국의 병사들.
귀를 찢을 정도로 시끄럽게 울려대는 경보음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원래대로였다면 대공 포탑으로부터 시작되었을 무차별적인 대공사격은 이미 무력화 당한 상태이다.
저 멀리 수중감옥이 보인다.
그리고 그 앞에서 제지당하고 있는 엘프 기사들도.
“와, 진짜 병신들인가?”
완벽한 양동작전이 2번이나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수중 감옥을 지키는 기사들에게 붙들린 엘프의 돌입조를 보고 휘진은 혀를 찼다.
애초에 정박해 있는 다른 공군함들이 전부 이륙한다면 승산은 소수점도 없는 제로이다.
그 배들이 이륙하기 전까지 주어진 시간이 겨우 30분.
어쩔 수 없이 휘진은 시간을 정지하고 수중 감옥의 입구로 들어갔다.
수중감옥.
몽고메리 피닉스의 힘은 불을 매개로 더더욱 강하게 발현한다.
강철도, 그 어떤 마법 봉인도 풀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불길을 스스로 발하는 그녀를 막기 위해서는 사방이 물로 둘러싸인 물 감옥이 필요했다.
수중감옥이라기에 적당히 물 안에다가 지은 이색 호텔 정도를 기대했던 휘진은 그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강가부터 강의 중심까지 홍해의 기적처럼 물길이 나있다.
마치 아쿠아리움을 구경하는 기분으로 아치형으로 뚫린 강 한가운데를 걸어가는 휘진.
강 아래로 나 있는 계단은 습기하나 없이 건조하다.
유리 통으로 길을 낸 것도 아니지만 마법이니까 이런 게 가능하겠지.
길이로는 150M정도.
수심으로는 50M정도 아래로 들어왔을 때 좁디좁은 아쿠아리움 복도가 끝이 나고 거대한 아치형의 광장이 등장했다.
그 가운데에는 물방울 모양으로 모여 있는 강물.
그 안엔 소녀가 태아처럼 무릎을 껴안고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옷가지라고 말하기에도 뭐시기 한 넝마를 두르고 평화롭게 유영하는 소녀. 두 눈은 지그시 감은 채 이 세계의 혼란과는 동떨어진 관찰자 같다.
그 아름다운 모습에 휘진은 순간 여기에 온 목적을 잊어버릴 뻔했다.
“윽…”
너무 오래 시간을 지체한 모양이다.
아까처럼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나중에 타타라에게 건강검진이라도 부탁 해야겠다 생각하며 휘진은 조심스럽게 물방울의 감옥으로 다가가 소녀의 손목을 끌어당겼다.
차가운 강물 속에 비정상적으로 뜨거운 소녀의 몸을 끌어낸다.
시간이 멈춰있기 때문에 여전히 둥그렇게 몸을 말고 품에 푹 안기는 소녀.
슈슈만큼이나 작다.
이런 몸으로 엘프니 뭐니 하는 녀석들을 위해서 싸워왔다는 건가?
아직 그녀에 대한 것은 이름밖에 모르지만 딱한 마음이 앞선다.
그때… 툭툭.
소녀의 가슴 부분이 붉게 물든다.
상처라도 난 것일까?
“어라?”
아니다.
이건 소녀에게서 나오는 피가 아니다.
“코피네…”
소녀의 하얀 옷을 붉게 물들고 있는 것은 자신의 코피였다.
고요했던 세상에 초대받은 적 없던.
“저쪽에 침입자다!”
“감옥의 문을 닫아라!”
소음이 파고들기 시작한다.
-쿠구구구궁…!!!!
그와 동시에 일제히 허물어진 수중감옥의 거센 물길이 휘진과 피닉스를 휩쓸었다.
◈ ◈ ◈
“이제 퇴각해야 합니다.”
“….”
팔짱을 낀 채 전장을 내려보고 있는 아리스에게 카푼이 다가와 말한다.
애초에 예정된 시간은 30분.
수중 감옥은 엘프 특무대들이 다가서기도 전에 허물어졌다.
승강기를 내린 채 재 합류를 기다리고 있는 라데피아였지만 휘진이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대공포탑의 무력화는 성공적으로 해냈지만 결국은 빠져나오지 못한 걸까?
가슴에 첩첩이 쌓이는 후회.
조금 더 치밀하게 작전을 짰더라면.
그의 호언장담을 조금만 만류했더라면.
하다못해 그가 잠입하기 전에 상냥한 한 마디라도 해주었더라면.
“퇴각합니다.”
“승강기를 올려라!”
[잠시 만요! 아직 그 사람이 안 보이는데…]
지나친 마력 사용의 반동으로 숨을 헐떡거리고 있던 리리엘의 무전이 들려왔다.
“한 사람을 위해 전부 희생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 적 공군함이 전부 이륙하고 나면 라데피아가 벌집이 되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
[….]
사실 두 척 째 적함과 교전 이후 리리엘도 극심한 소모 상태였다.
본래 인간이 사용할 수 없을 만큼의 힘을 몸을 통로로 사용했다는 것.
이건 수명을 단축시킬 정도로 무리한 행동이다.
속마음이야 어떻든, 칼같이 단호한 아리스의 명령에 라데피아는 전속력으로 전장을 이탈했다.
◈ ◈ ◈
검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수중이라는 것은 피부에 와 닿는 감촉으로 알 수 있다.
설마 이렇게 죽어버린다니 상상도하지 못했다.
시간 정지가 뜬금없이 풀려버린 것이 너무 좋지 않았다.
괜히 나댔다.
적당히 가만히 있었으면 중간은 갈 수 있었을 텐데.
답답해서 직접 뛰다가 이런 일을 겪을 줄이야.
역시 느긋한 관전모드가 답이었던 걸까하는 뒤늦은 후회가 뼈아프게 가슴을 울린다.
“에라이 시발.”
빛 한 점 들지 않은 수중인데도 이상하게 숨이 전혀 막히지 않는다.
그걸 깨달은 휘진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설마 여기가 생전의 죄업을 치루기전 대기한다는 연옥인가 뭔가 하는 그런 건가?
[눈을 떠라 우매한 자여]
그 검은 공간 속 커다란 붉은 눈동자가 주변을 환하게 밝히며 눈을 떴다.
“뉘…뉘쇼?”
[나는 ‘깊은 잠든 자’ 오호트란. 너에게 힘을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