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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에 넘어가자 시간정지 능력이 생겼다-49화 (49/154)

49화 음모(4)

12명 중 전투 불능이 된 자는 5명.

순식간의 전력의 절반에 가까운 숫자가 무력화 되었다.

암살대장은 이미 이 임무를 실패한 것으로 판단을 내렸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조속한 전장의 이탈.

암살대원들은 임무에 앞서 독이든 주머니를 삼키고 그 주머니에 연결된 실을 이로 물고 있었다.

대원들이 의식을 잃었으니 이에 걸려있던 줄을 놓아버릴 테고, 주머니는 식도를 타고 내려가 목숨을 앗아갈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생포당해 정보를 토해내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퍼져오는 마력의 파동.

대기를 떨게 할 정도의 거대한 마법진이 골목 사방을 둘러싼다.

벌써?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짧은 시간이었고, 이렇게 짧은 시간 만에?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크고 촘촘한 마법진이다.

연금술사와 암살자의 상성에서 암살자가 앞선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본격적인 마법진이 전개되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도망칠 수 없어요.”

리리엘의 손에 들렸던 트럼프 카드 뭉치가 공중에 떠오르더니 사방으로 비산했다.

순간 흩어진 카드들은 곳곳에 뻗쳐 있는 옅은 주홍색의 마법진의 선에 꽂혀 들어갔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마법의 결계.

연금촉매의 역할을 하는 트럼프카드는 결계와 반응해 즉시 주변의 마력을 끌어 모으며 거대화 했다.

땅에서 끌어올려진 철사는 1M정도의 높이를 갖게 된 트럼프 병정의 손과 발, 그리고 삼지창이 되었다.

종잇장으로 되어있는 얇은 몸에 가늘기 짝이 없는 철사를 꼬아 만든 손발, 일반적으로 생성되는 골렘의 크기가 2M정도인 것에 비해 왜소하기 짝이 없는 모양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숫자.

통상 2~3체, 많아야 10~12체인 것에 비해 언뜻 보아도 30체가 넘어가는 숫자는 술식이 발동하기 전까지 시간을 벌기 위한 골렘이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 공격력을 갖춘 전투용임이 분명하다.

순식간 대원 하나당 5체 정도의 트럼프 병정이 달려든다.

마치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는 양 날렵한 움직임으로 지면을 박차는 병정들은 그 움직임이 지극히 자연스럽다.

단순한 알고리즘으로 정해진 패턴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적을 인지하고 그에 대응한 공격을 하고 있다.

정신없이 찔러오는 창을 피하는 와중 곳곳에서 부하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이것이 리리엘의 자성마법진(自成魔法陳)-거울나라의 첫 번째 기동마법인 ‘트럼프 병정’이다.

리리엘 특제의 트럼프 병정들은 빠른 템포로 적을 몰아치는 것에 특화되어있다.

연금술사가 전장에 나섰을 때 기동력이 느린 골렘들이 적의 움직임을 쫓지 못해 결국 우회한 적의 공격에 당하곤 했다. 이에 술자 본인이 노출되어 격침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개체수와 속도를 늘이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개발 되었다.

암살자들도 필사적인 저항을 하고는 있지만 조금도 빈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이는 트럼프 병정들의 맹공에 의해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협공을 중점으로 사냥에 특화된 암살자들이 뿔뿔이 흩어진 채로 각개 격파 당하는 상황이 오자 무기력하게 무너져가는 것이다.

리리엘에게 있어선 시시하기 짝이 없는 상대였다.

애초에 ‘대학자’의 칭호를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연금술사라는 것은 현대전으로 치면 전차나 다름없다.

기사, 마법사와 더불어, 공군함이라는 압도적인 마공학의 이기가 등장하기 전까진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결전병기 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런 그녀가 완벽하게 마법을 전개한 상태에서 아무리 잘 훈련되었다 한 들, 암살자에 불과한 무리에게 패배할 리가 없다.

고작 첫 번째 시퀀스인 트럼프 병정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그 뒤의 승부는 뻔한 것이었다.

“너 꽤나 강하네?”

“제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요. 그렇다 쳐도 시시하네요. 지원 마법조차도 필요하지 않다니.”

휘진 앞에서 모처럼 체면이 선 것이 신나는 모양이다.

제압한 암살자들의 신체를 철사로 꽁꽁 구속하는 병정들을 보며 리리엘은 귀를 쫑긋거렸다.

“엇? 저기 한 명이 도망치는데?”

“앗?! 어느새?!!”

“역시 허술하네. 지원마법조차도 필요하지 않다면서.”

“제…제가 책임질게요! 여기서 기다리세요.”

모두가 손쉽게 제압당한다고 생각한 게 함정이었다. 그건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다른 대원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저항하던 암살대장이 전력을 다해 도주하기에 앞서 깔아둔 밑밥이었다.

휘진과 리리엘이 대화하는 틈을 타 암살대장은 어둠속으로 몸을 숨겼다.

◈          ◈          ◈

아무리 도망친다 하더라도 그건 리리엘의 손바닥 안이나 마찬가지이다.

이 일대는 이미 리리엘의 마력의 촉각이 곳곳에 뻗어있다. 발목에 GPS를 달고 도망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리리엘은 트럼프 병정들이 즉석에서 서로를 쌓아 만든 가마를 타고 있었기에 추적속도 또한 굉장히 빠르다.

“크허헉!!!”

이 일대가 이미 리리엘에게 동화되어있기에 영창조차 필요하지 않다.

바닥과 벽에서 순식간에 솟아오른 돌기둥에 의해 암살조장은 배를 얻어맞고 땅을 나뒹굴었다.

리리엘은 곧장 가마에서 뛰어내렸고 그와 동시에 트럼프 병정들은 가마 전열을 해체시키고 리리엘의 주위를 둘러쌓았다.

암살조장을 생포해 감히 자신을 습격한 죄를 물으려던 찰나, 리리엘은 촉각에 걸려든 무엇인가에 오한이 드는 것을 느꼈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다는 듯, ‘그것은’ 거기에 있었다.

햇볕이 들지 않는 골목의 그림자가 한숨마저 무겁게 가라앉는 그 귀퉁이에 덧없이 매달려있다.

리리엘이 오한을 느낀 것은 그토록 가까이 그녀가 접근 할 때까지 그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리리엘이 뒤를 돌아보는 그 짧은 찰나에 암살대장은 몸을 돌려 저 멀리 뛰어갔고 그녀는 몇 기의 트럼프 병정에게 추격을 지시한 뒤 곧바로 제 2전을 준비했다.

리리엘이 감지한 존재는 검은색 무장을 하고 있었다.

은은한 광택을 띠는 천이 굴곡진 신체를 휘감고 내려오고, 얼굴을 전부 덮는 여우가면 뒤로는 검푸른 머리카락을 포니테일로 묶어 내리고 있다.

이 와중에도 리리엘이 조금 질투를 느낄 정도로 볼륨감 넘치는 몸매였다.

가면으로부터 리리엘은 상대의 출신을 유추해 낼 수 있었다.

자신의 가문보다 훨씬 동쪽 바다를 건너면 있는 동부 제도(諸島)에서 유명한 암살자 집단 ‘낙월(落月)’.

‘대륙 곳곳에 퍼져있다고는 하지만 북해까지 의뢰를 받을 정도로 발이 넓을 줄이야…’

다소의 낭패감을 느끼면서도 리리엘은 신체를 바짝 긴장시킨다.

낙월은 암살자 집단이면서도 한 명 한 명이 절정의 기량을 가진 정예.

이미 마법진을 전개시켜놓은 상태가 아니었다면 이미 죽음을 각오했을 정도로 어려운 상대였다.

먹이를 기다리는 거미처럼 도사리던 사냥꾼은 기름방울처럼 조용히 지면으로 착지했다.

10M는 되는 높이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소리도 없다.

옷자락이 휘날리는 소리도, 지면과의 충돌음도 없이 완벽한 정적 속에 행동한다.

착지를 위해 고개를 숙였던 가면녀가 고개를 들어 올림과 동시에 매섭게 도약한다.

양자 간의 거리는 약 40M. 대충 눈대중으로 속도를 헤아려도 보통 빠르기가 아니다.

심해 속에서 움직이듯 재빠른 동작에도 완벽한 무음속이라는 것이 위화감을 불러 일으켰다.

리리엘은 주체하지 않고 주변에 전개시켰던 트럼프 병정으로 앞을 막아선다.

가면녀의 손에는 어느덧 기묘한 양식의 단검이 들려있었다.

양손에 각기 단검의 칼날받이 부분이 U자로 되어있는 단검을 하나는 역수로, 하나는 정수로 쥐어 든 상태.

날카롭게 번뜩이는 철사의 창을 보고도 가면녀는 조금도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트럼프 병정과 격돌한다.

가냘픈 생김새와는 다르게 일격이 묵직하고 빠르다.

아까까지만 해도 암살자들을 상대로 강력한 검과 방패가 되었던 병정들은 가면녀와 격돌하는 순간 속절없이 찢겨 날아갔다.

가면녀는 엘보우와 니킥을 동시에, 병정들의 자율 반응 속도를 아득히 뛰어넘는 가속도로 일격에 처박는다.

리리엘도 상대가 이 정도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뒤늦지만 가면녀의 돌진과 동시에 이미 2가지 마법을 동시에 전개시켰다.

하나는 트럼프 병정의 몸체 뒤편에 문양처럼 새겨졌던 마법진을 시동진으로 삼은 유화(流化)의 연금술.

트럼프 병정들은 그저 골렘으로서만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리리엘이 거울나라 안에서 즉각적인 마법진의 발동하는 것을 돕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도 겸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대지의 창’.

가면녀가 딛고 있는 바닥이 순식간에 물처럼 변해 흐물거린다.

만약 그대로 서 있었다면 그 꼴로 지하 깊숙이 가라앉아 허우적거리다가 죽었을 것이다.

가면녀의 반응은 실로 경이로웠다.

아주 미약한 마력의 파동이 느껴지자마자 몸을 공중으로 띄워 점프한 것이다.

“걸렸어요!”

그런 가면녀의 반응마저 리리엘에겐 상정 내였다.

공중에 떠 있는 가면녀를 향해 흐물거리던 땅에서 주조된 철갑기사의 모습을 지닌 흙골렘들이 나타나더니 일제히 날카로운 마상창을 찔러갔다.

일격과 이격의 날카로운 연계.

만약 이것이 일반적인 기사를 상대로 한 싸움이었다면 여기서 결착이었을 것이다.

상대가 ‘일반적인 기사’였더라면.

가면녀는 흘끗 뒤를 둘러보고는 교차해 날아오는 마상창의 측면부를 정확하게 밟아 옆의 벽으로 도약했다.

공중에서 몸을 틀어버린… 그야말로 균형감각의 극치에 달하는 기예를 보여주었다.

가만히 서 있다간 꼬챙이가 되어버릴 정도로 날카롭고 빽빽한 마상창 들의 일제 공격을 흘려내며 정확하게 피한 것이다.

이후 가면녀는 초인적인 운동신경으로 종횡무진, 움직임의 축을 바꿔가며 변칙적인 움직임으로 접근하기 시작한다.

리리엘의 공격이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해 카운터 친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접근 방식을 바꾼 것이다.

신체 능력 뿐 아니라 상황에 맞춰 전술을 유연하게 변경하는 임기응변까지.

리리엘은 비로서 상대가 ‘체술의 레벨’에 있어 자신과 맞상대가 될 정도의 기량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두 번째로 병정들에게서 소환된 것은 불의 거인 키가 2M정도 되는, 평범한 흙을 가연성의 점성체로 바꾸어 쌓아올린 골렘이다.

그러나 그 조차도 가면녀에게는 방해가 되지 못했다. 땅을 부수는 진각과 함께 골렘의 신체 중앙을 두들기는 가면녀의 정권이 폭발음을 내며 거인을 뭉개버린 것이다.

흩날리는 불꽃들의 향연사이로 리리엘과 가면녀의 눈이 잠깐 마주친다.

더 이상의 지체는 좋지 않다고 생각한 리리엘은 결단을 내렸다.

시퀀스 2로는 저 여우 가면녀를 제때 막을 수 없다. 시퀀스 3단계로 갈 것이다.

기술을 연거푸 사용한다면 마력은 고갈될 테지만 이대로 소모전이나 접근전이 되어버리는 것이 가장 최악이다.

리리엘의 주변으로 흙먼지가 휘날리며 마력 반사광이 두 눈에서 주홍색의 광채를 발했다.

극한까지 끌어올린 마력이 터질 듯 맥동하며 마치 불똥처럼 사방으로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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