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무도회(1)
휘진은 리리엘의 귀를 잡고 고개를 뒤로 꺾은 채로 더 깊숙이 자지를 박아 넣으며 말했다.
참고로 이 귀를 잡는 건 굉장히 기분이 좋다. 보들보들하고 야들야들해서 마치 어렸을 적에 손에서 떼지 않고 주물럭거렸던 위안물 같다.
“하핫… 너무 좋아요오…”
벌써 허리가 풀려버린 리리엘의 몸은 물에 젖어버린 솜처럼 축 늘어졌다. 휘진으로서는 마치 죽어가는 사람의 신체에 박는 것처럼이나 반응이 없다.
“이젠 보지 조임도 쓰레기 같네. 네년 같은 열등한 오나홀이 만들어지기 위해 19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하다는 거에 경외감을 느낀다.”
“쓰레기…하앙♡ 보지라아…죄송합니다아아… 당신의 자지가 너무…강해에엣!!!”
둥그런 엉덩이가 완전 단단해 질정도로 조이고 있기 때문에 사실 굉장히 만족스럽지만 여기서 그걸 말해버리면 주도권을 뺏긴다.
액정에 눈을 고정한 시늉을 하며 힐끗 리리엘의 표정을 살피자.
마치 부모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안절부절 못하는 눈으로 이쪽의 얼굴을 보고 있다.
이리저리 떨리는 눈동자는 어떤 음어를 내뱉어야 휘진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 만을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더…더…잘 조일테니까…흣…어…어떠세요?”
엉덩이를 움찔거리며 휘진의 반응을 살피는 리리엘의 표정엔 이미 당당했던 그 모습을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다.
암컷으로의 본능에 스위치가 들어가 버린 지금은 그저 이 남자의 관심을 받고 사랑을 받는 것만을 원하고 있을 뿐인 고기구멍이었다.비록 그것이 왜곡된 형태일지라도.
“이제 좀 쓸 만하네.”
“하앙♡”
엉덩이를 팡 소리 나게 때리자 리리엘은 기쁜 듯이 몸을 비튼다.
그가 자신을 완전히 도구 취급 해버리는 그 상황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때문에 휘진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할 때만 이런 굴욕이 보상받는 듯한 기묘한 안정감을 받을 수 있었다.
보지를 사정없이 후벼 파며 욕설을 하는 것이 무관심보다는 나았다.
“네년이 틈만 나면 거짓말을 하는 병신년이라는 건 알았으니까. 문답 무용으로 안에 싸질러주마.”
“네에에♡ 자지에… 몇 번이고 패배한 한심한 보지년입니다아아…”
마침 대공의 공연도 막바지에 이르러 하이라이트이다.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뻗는 대공의 모습을 바라보며 휘진은 거세지는 점막의 저항을 강제로 뜯어내듯 리리엘의 안에 깊숙이 자지를 박아 놓고 새하얀 백탁을 푸슛 푸슛 쏴 넣었다.
◈ ◈ ◈
“과연 훌륭한 안무였습니다.”
트리니다드 펠릭스는 안무를 끝내고 백스테이지로 내려온 대공에게 따뜻한 물로 덥힌 물수건을 건네며 말했다.
아직 거친 숨결과 거친 춤 동작에 의해 흐트러진 머리카락, 발그레 상기된 볼.
펠릭스는 이번만큼은 그 어떤 과장도 없이 대공의 아름다운 모습에 탄복해야만 했다.
하늘에서 깃털이 흩날리는 듯한 춤사위 풍부한 표정의 연기와 손끝과 발끝마저 컨트롤하는 능숙한 움직임…. 게다가 선정적인 의상까지.
춤의 유래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지만 여성의 춤은 아무리 생각해도 남성에게 구애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할 정도로 마음이 크게 동한다.
“고맙네.”
이 남자는 언제까지 자신에게 들러 붙어있을 셈인건가.
불편하기 그지없는 감정을 품으면서도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하면 마냥 박대할 수도 없는 것이다.
어쩔 도리 없이 아리스가 건네는 양털 가운과 펠릭스로부터의 물수건을 받은 베아트레아 대공은 이마와 가슴골에 잔뜩 묻어 있는 땀을 조심스럽게 닦았다.
“먼 길을 오느라 피로도 쌓였을 터인데 연회 전까지 쉬어 두는 게 좋지 않겠나?”
“지난 1년간 학수고대하며 아슌푸틀 대공저하를 뵙기를 기다렸습니다. 오늘하루 이 생이 다하더라도 곁에서 있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지고의 행복일 것입니다.”
뭐, 서로가 좋아하는 연인사이라면 달달하게 들릴 수 있을 정도의 오버 리액션이다. 하지만 안 그래도 떨떠름하게 생각하는 상대가 그것도 연신 노출이 심한 자신의 몸을 샅샅이 훑어보며 말한다면 또 어떨까.
솔직히 부담스럽기 그지없다. 제발 좀 시야에서 사라져 주면 좋으려만…
“오늘은 푸른 달이 뜨는 날이라네, 달밤이 길면 연인의 밤도 길겠지…”
대공이 혼잣말처럼 내뱉는 말에 펠릭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탐욕에 절은 두 눈.
마치 바닥에 떨어진 금화자루를 발견한 구두쇠의 모습.
그러나 이내 순식간에 표정을 정리하더니 경박스러운 웃음과 함께 말했다.
“하하, 대공저하의 뜻이 그렇다면 저로서도 도리가 없군요. 곧 연회에서 뵙겠습니다.”
“그래, 제발 좀 저리 가라.”
“예? 잘 못들었습니다만.”
“후, 아니네.”
귀찮은 날벌레를 쫓아내는 대공의 모습을 보며 아리스는 남몰래 탄식의 한숨을 내쉬었다.
◈ ◈ ◈
연회는 슈펜하우져의 그랜드 홀에서 이루어졌다.
회색빛의 벽돌과 그 흔한 모자이크 공예조차 생략한 심플한 유리창으로만 구성되어있는 슈펜하우져 성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별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애초 대공이 머무는 궁전이 아니라 북해의 최전방을 지켜내기 위한 요새이기 때문에 그랜드 홀조차 없던 것을 벽과 방을 하나로 합치는 대 공사를 통해 개축해 낸 곳이다.
2개의 층을 이어주는 테라스와 중앙 계단.
번쩍이는 샹들리에는 그 유명한 조각가 세레스의 작품, 바닥에 깔린 것은 대륙 남부에서 공수해온 최고급의 융단으로, 그 가격을 듣는다면 밟고 있는 것이 미안할 정도의 고가품이다.
연회장의 곳곳에서는 시종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그들이 평생 벌어도 사먹지 못할 온갖 미주(美酒)와 진수성찬을 옮기고 있었고 귀빈들은 저마다 모여 이야기를 하거나 술을 음미하며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
휘진은 구석에서 급하게 지급받은 양복을 입은 채 ‘벽의 꽃’이 되어 연회를 구경하고 있었다.
임무는 이 연회의 치안유지이다. 사소한 분쟁거리가 발생한다면 직접 중재하라는 것이다.
사실 휘진 같은 평범한 중산층이 이런 귀족의 파티를 경험해 볼 일이 어디 있겠는가?
임무 상 한번쯤 입어보고 싶었던 연미복을 입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쉽지만 올백으로 깔끔하게 넘긴 머리로 벽에 기대어 샴페인을 마시고 있자니 그래도 좀 그림은 되지 않나 싶은 자신감이 생겨났다.
높아 보이는 귀족들을 똘마니처럼 따라다니는 기사 몇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 설마 사고를 일으킬까 싶다.
BGM처럼 흐르는 악공(樂工)들의 음악을 들으며 대공님의 모습이 보이길 기다렸다.
“북해의 여왕, 위대하신 얼음꽃의 통치자, 베아트레아 아슌푸틀 대공저하 납시오!”
그랜드 홀의 정문이 열리더니 쩌렁쩌렁한 위사(衛士)의 목소리와 함께 파티드레스를 입은 대공이 연회장으로 들어섰다.
순간 모든 궁중 안에 귀빈들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한다.
엄밀히 말하면 직접적인 상하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대공이라 한들 고개를 숙일 필요는 없지만 거의 망해가던 북해의 흉흉했던 정치적 알력들은 중재해준 그녀에게 조그맣게나마 존경의 의미를 비추는 것이다.
개중에는 물론 못마땅해 하면서도 고개를 숙이는 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자들조차도 지금 대공의 모습이 아름답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대공님이 들어서면 아는 척을 할 생각이었던 휘진도 압도적인 분위기에 조금 기가 죽었다.
다들 아닌 척 본인들이 하던 일을 계속했지만, 연회장 분위기의 전반이 대공으로 관심을 향하고 있던 것이다.
잠시 멈추었던 음악이 다시 흐르고 대공은 벽에 서 있는 휘진에게 다가왔다.
“이제는 인사하는 법도 잊은 겐가?”
지상에 강림한 천사의 모습이 이럴 것이다.
생각해보니 대공과 친해진 이후 독대한 적은 많아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한 적은 거의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놓이고 나니 새삼 자신과는 비빌 곳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낀다.
외모도, 태생으로 타고난 품위와 화려함도, 권력도 질적으로 양적으로 다르다.
그래서 뭔가 어색하게 느껴져 눈마저 피해버렸다.
“음, 예쁘시네요.”
“그대도 이렇게 보니 인물이 훤칠하구나.”
대공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휘진의 턱 끝을 받치더니 도발적인 시선을 보내왔다.
딱 봐도 놀리는 거지만 맞받아치지 못한다. 혼자서는 뻘짓 잘해도 남들이 보고 있으면 부끄럼을 타는 휘진은 뱀 앞에 개구리 꼴로 굳어 있었다.
그 와중에 향긋한 냄새가 잔뜩 풍겨서 행복하다.
이대로 끌어안고 싶다.
“그보다 임무는 안 궁금해?”
“그대라면 잘해냈겠지. 여기는 듣는 귀가 많으니 다음에 부탁함세.”
살짝 윙크를 한 대공님은 실크로 된 흰 장갑으로 머리를 슬쩍 다듬으며 휘진에게 물었다.
“그보다 오늘 내 공연은 어땠나?”
“흐으음, 아름다웠지.”
“그대는 애인에게 예쁨 받는 성격은 아니겠군.”
“왜.”
“빈말을 못하니 말이네.”
사실 리리엘을 오나홀 삼아 딸감으로 썼다는 말을 전할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해 망설였을 뿐인데 대공은 다른 방향으로 이해한 듯싶다.
입이 조금 삐죽 튀어나온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가보다.
귀엽구먼.
“아냐아냐, 정말 깊게 감명 받았어 뭐랄까… 한 마리의 백조…?”
휘진 스스로 생각해도 어설픈 칭찬에 대공은 후후하고 가볍게 웃었다.
“이 연회동안은 이 몸의 호위를 자네에게 맡기네.”
대공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는 여러 귀족들에게 둘러싸였다. 대공은 그들과 여유롭게 인사말을 나누며 연회장을 누볐다.
옆에 따라붙어 호위하게 된 휘진은 대화를 엿들으려 했지만 들어도 이해가 가지 않는 내용이 많았다.
관세, 누구 영지가 요즘 어떤 걸로 문제다, 단순한 자기 자랑 등등.
그냥 저냥 들어줄 수 있는 내용도 있었고 따로 약속을 잡아 다시 얘기하자고 할 정도로 복잡한 문제도 있었지만 대공님의 옆모습을 흘끗흘끗 볼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
“…요즘 휫센 상단에서 백금화를 사용해 대금을 지불하는 일이 많아졌더군요.”
“어차피 사용하고자 만든 화폐라네. 도리어 그 전까진 휫센 상단에서 지나치게 백금화를 쥐고 있는 경우가 많아 문제 아니었나?”
“네, 그래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북해 최대의 상단인 휫센 상단이 북해의 기축화폐인 백금화를 지나치게 푸는 게 조금 희한하다 싶어서요. 지금껏 휫센 상단은 고집스럽게 제국금화나 물품을 대금으로 지급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습니까? 어떤 심경 변화가 있었는지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고맙네. 그대의 조언 새겨듣지.”
백발이 성성한, 어딘가 남작이라는 할아버지와 말을 끝으로 대공님을 한숨을 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정도로 힘들어하는 대공님을 본 적이 없는 휘진으로서는 걱정하는 마음뿐이었다.
“괜찮아?”
“머리가 아프군. 조금 바람이 쐬고 싶네.”
이때까지 대공과 대화를 나눈 사람만 30명이 넘어간다. 그 많은 사람들과 일일이 정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기억을 하려면 머리가 아프지 않을 리가 없다.
게다가 연달은 격무로 이미 컨디션에 난조를 보이고 있는 대공에게 오늘은 조금 크리티컬할 정도의 일정이었다.
앞으로 이틀 연회가 끝이 난다면 적어도 하루는 시간을 내서 종일 잠을 자야겠다며 다짐한 대공은 휘진의 에스코트를 따라 그래드 홀 2층,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테라스로 향했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그 곳에는 선객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야 이곳을 찾으시는 군요, 대공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