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메이드 맛보기(4)
그럼 타타라 이 여자 나이가 최소 400살 + 알파라는 소리인가.
“할머니네.”
“용감하네요. 아신을 그렇게 말하다니.”
“뭐 어때? 듣는 것도 아닌데.”
“저라면 못할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육체 나이는 탱탱하기 그지없으니 불만은 없다.
기왕 이럴 거 로리캐였다면 ‘합법 로리’라는 현실에서는 레어한 속성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실없는 생각이다.
“그나저나 어제보다 사람이 적은데?”
“오늘은 공일이니까요. 제가 시간을 따로 낼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죠.”
공일은 한 주에 이틀 있는 휴식의 날이라고 한다. 이세계의 달력은 지구와 매우 비슷해서 일곱 날이 모여 하나의 주가 되고, 다시 네 개의 주가 모여 하나의 달이 되며 열두 개의 달이 모여 일 년이 된다고 한다.
그럼 실제로는 지구의 365일 보다 한 달가량 짧은 1년이다. 앞으로 나이를 계산할 때 고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갈 양복점은 성내의 최고의 디자이너의 양복점입니다. 사실상 북해 최고의 디자이너입니다.”
“그래? 기대되네.”
대공님도 타타라씨도, 성내의 메이드도 모두 이 분의 손을 거쳐 제작 및 디자인 된 옷을 입는다고 한다.
현대인의 관점으로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굉장히 고풍스러운 자태를 뽐내는 옷들을 비추어 보건데, 자신의 양복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이건 대공님으로부터의 약소한 선물입니다. 앞으로 달마다 생활비 및 급여를 지급하고 더 필요하신 부분이 있으면 얼마든지 지원하시겠다는 전언입니다.”
아리스가 건넨 주머니에는 짤랑거리는 동전 들이 들어 있었다.
3장의 금화와 30여개의 은화다.
판타지나 게임에서 많이 보았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또 처음이라 금화를 들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꽤나 큰 크기이다. 금화라고 해서 완벽하게 금으로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부는 백금으로 추정되는 금속으로 링을 만들고 그 안에 또 다시 금화가 박혀 있는 모양새다.
아리스는 이곳의 물정 아무것도 모르는 휘진을 위해 벌써부터 설명을 준비하고 있었다.
“베아트레아 령 북해 백금화 한 장은 기축은화인 슐레스비 제국의 은화 약 20개와 동등한 가치를 갖습니다.”
음,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아리스가 건넨 주머니에는 짤랑거리는 동전 들이 들어 있었다.
3장의 금화와 30여개의 은화다.
“북해에서는 오히려 슐레스비 제국의 금화보다 취급이 좋죠. 북해와 중앙대륙은 교류가 쉽지 않아 실제론 다른 나라나 다름없으니까요.”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돈이 얼마 정도 되는 돈인데?”
기축화폐인 슐레스비 은화의 가치를 정확히 모르는 이상 그 환원법이 이해 될 리가 없다.
“백금화 한 장은 슐레스비 은화로는 30장의 갖습니다.”
뭐 대충 많이 받는 거겠지 하고 있다.
“엄청나게 많이 주는 것 맞지?”
“그런 셈이죠. 그리고 이번 양복은 제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감사히 받을게.”
가도를 따라 나 있는 각양 각색의 상가 중에서도 가장 고급 져 보이는 구역에 들어섰다.
지금까지의 상점들이 노상이었다면 여기는 돔형의 지붕이 비나 눈을 막고 있다.
그러면서도 빗살로 층층이 구멍을 내어 태양 빛은 들어오는 형식이다.
쇼 윈도우에 진열되어있는 각양각색의 보석들이나 고급 원단들을 보다보면 여기가 중세가 맞는지 의구심이 든다.
백화점의 중세 가도 형식으로 테마를 짠 고급 부티크에라도 들어선 느낌이다.
“어?”
물가 같은 것 모르는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반 노동자가 버는 돈의 6.5배를 앉아서 벌게 된다니… 출세했다.
“엄청나게 많이 주는 것 맞지?”
“네. 그리고 이번 옷은 제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감사히 받을게.”
가도를 따라 나 있는 각양각색의 상가 중에서도 가장 고급스러운 구역에 들어섰다.
지금까지의 상점들이 노상이었다면 여기는 돔형의 지붕이 비나 눈을 막고 있다.
그러면서도 빗살로 층층이 구멍을 내어 태양 빛은 들어오는 형식이다.
쇼 윈도우에 진열되어있는 각양각색의 보석들이나 고급 원단들을 보다보면 여기가 중세가 맞는지 의구심이 든다.
백화점의 중세 가도 형식으로 테마를 짠 고급 부티크에라도 들어선 느낌이다.
“어?”
닫혀있는 가게의 문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리스.
“무슨 일이야?”
“여기에 있던 시나 씨의 양복점이 사라졌네요.”
대부분의 짐을 정리해 어디론가 떠난 듯한 모습이 유리문 너머로 보인다.
그 문 앞에 걸려 있는 아리스의 표정이 빠직하고 굳는다.
“뭐야?”
“아무래도 휫센 북해 상단 총협회주가 농간을 부린 모양이네요. 죄송합니다. 여기까지 헛걸음을 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아냐, 뭐 무슨 영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괜찮아.”
“휫센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설명을 드리도록 하고 오늘은 식사라도 같이 어떻습니까? 제가 근처에 잘 아는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나야 좋지.”
희희낙락하며 휘진은 아리스의 뒤를 따라 걸었다. 옷에 그리 신경을 쓰는 타입도 아닌데 맛있는 밥이나 먹는다면 오늘 성과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아 그런데. 오늘 아침의 일은 어떻게 된 거야? 어딘가 아파?”
대공님에게도 여쭈려고 했지만 묘하게 대답을 회피하며 가 버렸다. 타타라도 딱히 따로 말해줄 생각은 없는 듯하고.
아리스는 잠시 멈추더니 휘진과 눈을 마주쳐 왔다.
“그 이야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괜찮을까요? 식사를 앞에 두고 싱숭생숭하게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이쪽을 배려하는 말을 하며 조심스럽게 거절의 의사를 밝힌 아리스.
더 이상 파고 들지는 않기로 했다. 아리스는 분명‘다음엔 반드시 말해주겠다’라는 뜻으로 말한 눈치다. 약속과도 같은 것이니 믿어도 좋겠지.
식사 후 아리스와 단 둘이 성내를 둘러보거나 예의 부티크 거리를 쇼핑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여자와 오붓하게 놀다니 얼마만의 이벤트 인지 모르겠다.
여전히 공적인 관계를 의식하는 아리스이긴 했지만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은 것만 해도 얼마나 큰 관계의 진전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 ◈ ◈
아리스와 인사한 후 휘진은 방으로 들어와 심호흡했다. 이제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속 메이드 슈슈의 체벌 시간이다.
벌써 날이 저문 지 한참이나 시간이 지나 사위에는 적막만이 가득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슈슈를 기다리고 있자니 조심스럽게 문 앞에 종소리가 울렸다.
“실례하겠습니다.”
아침의 슈슈가 초심자의 긴장으로 쭈뼛거리는 모양새였다면 지금의 슈슈는 두려움과 거부감으로 인해 뻣뻣한 자세였다.
오늘 아침 출근 때처럼 흠잡을 곳 없이 깔끔한 메이드 복. 갈색 머리카락은 단정하게 정돈되어 어깨 옆으로 내리었다.
여전히 주눅 든 모습이다. 어찌 보면 아침보다 훨씬 웅크린 자세이다.
그럴 수밖에… 처음 보는 남자에게 그런 치태를 보이고 또 그것을 강요당했으니.
게다가 슈슈를 여기에 부른 것이 애초에 ‘못 다한 벌을 내리기 위해’이니 말이다.
“들어와.”
슈슈는 꾸벅하고 인사를 하더니 문 앞쪽의 이동식 티 트레이를 끌고 들어 온 뒤 문을 잠갔다.
물론 문을 잠그라는 것은 휘진의 지시이다.
휘진과 단 둘이 있는 것 뿐 아니라 외부의 개입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폐쇄된 공간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만들려는 얕은 수작이었다.
슈슈는 몸에 떨림이 있는 것인지 작은 체구를 더욱이나 웅크려 어깨를 억누르며 다부진 시선을 휘진에게 향했다.
그래봤자 휘진의 눈에는 언제든 가볍게 굴복시킬 수 있는 자그마한 저항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앉아. 같이 마시자.”
휘진은 자신의 맞은편의 의자를 슈슈에게 권했다.
예상과는 다른 휘진의 얌전한 권유에 슈슈의 눈이 살짝 당혹감에 흔들린다. 그 같은 귀족이 자신 같은 평민과 마주 앉아 차를 마시겠다고 선언한 것이기 때문이다.
억지로 권위를 몰아붙여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파렴치한으로 인식했던 사람의 행동치고는 아주 점잖은 편이다.
슈슈는 조용히 대꾸한 뒤 휘진에게 홍차를 대접하고 이어서 예비용 찻잔에 자신의 몫의 차를 따라 내었다.
아침과 같은 밀크 티이다. 서서히 저녁의 만복감이 가라앉을 때 입가심으로 딱 좋다.
“네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으련?”
무척이나 자상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살며시 미소를 머금은 채 휘진이 슈슈에게 말을 걸었다.
무시무시하거나 혹은 전혀 알 수 없지만 수치스러운 체벌을 예상했던 슈슈의 예상은 다시금 배신당했다.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는 슈슈를 향해 휘진이 선수를 쳤다.
“오늘 나에게 무례를 범한 것과, 봉사를 도외시하고 멋대로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려 했던 파렴치한 자태에 대해서는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너도 내 문화권에 대해 잘 몰랐던 만큼 실수가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기에 나 역시 너의 이야기를 들어두려고 해. 네가 왜 메이드를 하고 있는지부터 말해 줄 수 있을까?”
오늘 아침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에 대한 언급에 살짝 얼굴을 붉히는 슈슈였지만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살짝 표정을 풀었다.
미소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마음의 벽을 열은 모양인데… 어찌이리 순진무구한 아이일까.
“저는 휘진님의 전속 메이드이자 베아트레아 대공저하의 치하에 있는 슈펜하우져 성의 견습 메이드 슈슈입니다.”
“귀여운 이름인 것 같아.”
“우… 짓궂으세요.”
자기소개를 시작하는 슈슈의 긴장을 가볍게 풀어줄 겸 담배에 불을 붙이고 아무렇게나 칭찬을 해 주었다. 그랬더니 그녀는 다소 누그러졌다.
꽤나 긴 시간, 체감 30분 가량 슈슈는 자신이 메이드가 된 이유부터 가정사 까지 자세한 것을 털어 놓았다.
처음에는 조금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의외로 진실 된 태도로 사람 대 사람으로서 말을 들어주는 휘진의 태도나, 말 뒷부분에 질문을 던져 편하게 말을 이어갈 수 있도록 어시스트하는 모습에 어느 정도 마음이 풀린 눈치다. 그래도 가끔 울먹이거나 복 받혀 하는 부분에서는 조심스럽게 눈물을 떨구기도 했다.
슈슈, 평민 출신의 고아. 가족이라고는 두 살 아래의 남동생 하나가 전부인 천애 고아이다.
남동생이 희귀병에 걸려 약값으로 하루에만 은화 한 장을 써야하는 처지가 되자 그나마 의지하던 고아원의 원장님께 더 이상 폐가 되는 것이 싫어 스스로 동생과 함께 고아원을 나왔다.
이후 대공님의 저택에 취직해 메이드로서의 기량을 갈고 닦은 모양이다. 그나마도 간신히 약값을 부담할까 말까한 수준의 봉급이라 이곳저곳에서 돈을 빌렸고, 이미 상당히 많은 금액을 빚으로 지고 있는 모양이다.
설상가상으로 약으로 그나마 현상유지가 되던 남동생의 병세가 악화되었다. 이제는 약값으로 하루에 은화 두 장이나 써야하는 처지가 되었다. 마음이 혼란으로 가득 찬 슈슈 양은 견습 단계임에도 연거푸 실수를 거듭했고 이제 정말 메이드를 그만둬야 할 위기였다. 그런데 휘진이 손님으로 들어와 마지막 기회로서 시중을 하게 된 모양이다.
만약 휘진이 그녀를 거부하게 된다면 이대로 거리로 내쫓길 처지인 것이다.
‘소녀가장이었구먼, 에휴.’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 보려하는 슈슈의 모습이 기특해 보였다.
“죄송합니다… 슈슈가 고귀하신 분께 주제도 모르고 이런 말까지 털어 놓고 말았네요.”
고개를 숙인 채 송구스러워하는 슈슈의 모습이 다시 보인다. 서툴지만 열심히 하려는 그래도 밝은 모습의 견습 메이드가 아닌, 어둠 속에서도 어떻게든 한 줄기의 빛을 찾아 헤매는 처절한 발버둥이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떨어뜨리는 맛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흠 그래, 꽤나 차 맛이 떨어지는 구질구질한 이야기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