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메이드 맛보기(1)
휘진은 당장이라도 손에 든 밀크 티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윽박지를까 생각했지만 그만 두었다.
지금이 밤이라면 망설이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혈압이 현저하게 낮은 아침인 데다가 피곤하다. 이런 상태에서의 연기는 혼신의 것이 되지 못한다.
휘진은 자신이 이세계에 온 뒤로 스스로의 모습이나 현재의 상황을 객체화 해 바라본다는 사실을 은연중 자각했다.
현실감이 워낙 떨어지기 때문일까? 본인의 행동에도 자꾸 호기심이 든다. 마치 영화나 만화의 주인공의 행동에 기대를 갖는 것처럼 자신의 행동과 결과물들이 궁금해 졌다.
“아직은 모자라지만 처음이라면 괜찮은 맛이야. 장래를 기대해도 좋겠어.”
어른스러운 말투로(어른이지만) 휘진은 나지막이 말하며 멋지게 담배를 빨아 올려 창밖으로 뱉었다.
비록 멋지게 밖으로 흩어져야 했을 연기들이 방안으로 몰려들었고 담뱃재는 죄다 휘진의 얼굴에 부딪히긴 했지만.
“아…예! 감사합니다!”
우물쭈물하며 손을 꼼지락 거리던 슈슈는 휘진의 칭찬에 기쁜 듯 눈을 빛냈다.
사실 밀크티를 먹어보는 건 이게 처음이나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후한 평가를 줘 버리면 여기서 만족하고 안주해 버릴 것이 아닌가.
이건 슈슈가 메이드로서 제 몫을 하기 전까지 실력 상승에 대한 동기를 주기 위함이지 결코 모종의 오기 같은 것이 아니다.
“그럼…”
휘진은 촤악하고 가운을 젖혔다.
가운의 앞자락이 풀리면서 팬티 차림의 모습이 사이로 드러났다.
“---!!!”
소리가 되지 못한 비명을 필사적인 프로 의식으로 삼켜낸 슈슈이지만 고양이들이 놀랄 때처럼 갈색 빛의 머리카락이 쭈뼛 섰었다.
리액션이 좋은 녀석이다.
겨우 이거보고 이렇게까지 놀라는 건가도 싶다. 이 세계의 정조 의식 같은 거 아직은 정확한 기준을 모르니 말이다.
입을 뻐끔 거리며 무언가 말을 하려하지만 지나치게 쇼크를 먹은 것인지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하는 슈슈를 향해 휘진은 뻔뻔하게 말했다.
“목욕 시중을 해줘.”
“아으우아우…”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눈을 질끈 감은 슈슈. 지금은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어차피 밀어 붙이면 할 수밖에 없게 되어있다.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상관없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어차피 자신은 이방인.
누군가 추궁하더라도 고향에선 다 이렇게 한다고 말하면 그만 인 거 아닌가?
휘진은 휘파람을 불며 가운을 욕실 앞에 벗어놓고 물을 틀었다.
어제 확인한 사실이지만 이세계는 마법인지 뭔지 하는 것으로 샤워 시설은 물론 화장실도 수세식, 심지어 방에서도 목욕이 가능했다.
마법 만세다.
나무 욕조 사이로 뚫린 구멍에서 뜨거운 온수가 콸콸 쏟아져 나오길 3분도 되지 않아. 휘진 같은 사내 3명은 대자로 뻗어 누워있을 수 있을 욕조가 물로 가득 찼다.
뜨거운 수증기가 피어오른 욕실 안에서 휘진은 팬티도 훌훌 벗어 던진 채 욕조 안으로 들어가 입욕제를 풀었다.
향긋한 냄새.
아직까지 남아 있는 전날의 피로를 모두 녹여 버리는 것 같다.
“이봐? 슈슈 양 뭐하는 거야?”
최대한 아무런 사심이 없다는 것을 가장하며 자신의 전속 메이드를 불렀다.
자기주장이 약한 아가씨이지만 사명감 하나 만큼은 올곧다. 휘진 같은 신사에겐 아주아주 이용하기 쉬운 먹잇감이다.
“저…그… 원래 목욕 시중이라는 게… 있는 건가요?”
“우리 고향에선 다 이렇게 한다고! 나 같은 고귀한 귀족이 혼자 몸을 씻게 할 샘인가?”
고귀하지도 않고 귀족도 아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의 허세라도 그를 모시는 일개 신참 메이드에게는 굉장한 압박으로 다가올 것이다.
자신의 앞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남자는 무려 베아트레아 대공님의 손님이니 말이다.
“그… 아닙니다.”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마는 슈슈.
그래도 멀리서만 들려온 목소리가 가까워진 것을 보면 일단 어떻게든 해 보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들어와. 빨리.”
살짝 힘을 주어 말한 것뿐인데도 짧게 체념하는 소리와 함께 슈슈가 욕실 안으로 들어왔다.
“수증기가 나가니 문을 닫아줘.”
쌍 여닫이문인 다른 곳과는 다르게 욕실은 미닫이 문이었다. 슈슈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조심스럽게 문을 닫는다.
아마 남자의 알몸을 보게 되는 것은 처음인 가보다. 눈을 마주치기는커녕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도 거부한 채 미닫이문 손잡이를 꽉 잡은 채 계속 문만을 바라보고 있다.
“업무일 뿐인데 왜 그렇게 부끄러워하는 거야?”
계속해서 의뭉을 떨며 부끄러워하는 슈슈를 놀려보았다. 반응을 보아하니 숫처녀라는 것이 뻔히 보인다.
입욕제는 짙은 장미 빛의 색깔로 목욕물을 물들인데다가 수증기가 짙어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텐데도 저런 반응이라니.
게다가 어제 휘진은 뭔가 엄청난 능력을 얻었음에도 이리저리 휘둘리기만 했다. 오늘이 돼서야 드디어 자신의 말에 벌벌 떠는 사람이 나타나니 잠들어 있던 S로서의 본성이 다시 눈 뜨는 느낌이다.
“옷을 입고 목욕을 도울 생각이야?”
“하…하지만 슈슈는 이런 건 처음이라…”
“내가 벗겨줄까?”
휘진이 짐짓 일어나는 시늉을 하자 문고리를 잡고 심호흡을 계속하던 슈슈가 꺄아~ 하는 귀여운 비명을 들려주며 황급히 한 손으로 눈을 가렸다.
“안 돼요, 외간 남자에게 알몸을 보이면 안 된다고…!!!”
오히려 당황하니 말을 더 제대로 하는 것 같다. 아까만 해도 주춤하던 모습이 거짓말 같이 황급히 말 하는 슈슈. 여전히 리액션이 좋다.
“누가 알몸이래? 속옷차림이면 충분해.”
“그…그게 알몸인거 아닌가요?”
간신히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까지는 생각했지만 눈물도 그렁그렁, 얼굴은 금방이라도 폭발해 버릴 것처럼 새빨갛다.
“뭐, 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난 목욕 시중이 없으면 불편하거든. 대공님에게 부탁드려서 다른 메이드에게…”
“안돼요!!!”
깜짝이야. 욕실에서 소리 지르지 말라고.
귀가 울린단 말이다.
슈슈는 지금까지의 우물쭈물한 반응을 단숨에 뒤집는다. 소리를 지르나 싶더니 다급하게 옷을 벗었다.
뭐여, 이렇게 격한 반응을 기대한 적은 없는데.
슈슈는 자신의 메이드 복을 벗어 던졌고 이내 드로워즈와 손 브라만 남았다. 이쪽 세계에선 가슴이 작으면 아예 브라조차 차지 않는 걸까? 대공님도 그렇던데.
슈슈의 가슴은 굳이 말하자면 이제 막 발육을 끝낸 빈유였다.
매우 유감이게도 더 이상의 성장 가능성을 두지 않는 듯 보인다.
가녀린 슈슈의 팔에 양 가슴이 전부 가려지는 것을 보면 말 다 했지.
저런 체형도 나름의 수요가 있는데다가 전체적인 캐릭터와 맞아 떨어져 시너지를 주는 듯도 하다.
아까 봤던 것과 같이 몸 전체의 선이 가늘다.
그녀가 성적인 매력을 어필하려면 그저 몸의 라인을 그림자로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할 정도로.
조각과 같다면 가장 이해가 편할까? 군더더기 없는 몸의 라인이 최적의 비율로 뻗고 들어가고 나온다.
순진해 보이는 귀욤상에 이런 몸매, 마치 발레 내지는 체조를 할 것 같은 몸이 아닌가?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필사적으로 한 손으론 가슴을 가리고 바싹 달라붙는 드로워즈의 너머로 보이는 도끼자국을 가리는 슈슈의 모습은 필사적이었다. 그래서 더 좋은 거다.
휘진은 만족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며 욕조 밖으로 나왔다.
욕조의 바로 앞에는 걸터앉을 수 있는 나무 의자가 있었다. 휘진은 그곳에 뜨거운 물을 두어 번 뿌려 덥힌 뒤 앉았다.
“자, 안마 부탁해. 그렇게 부끄러워 할 필요 없어 일이니까.”
“네…흐흑…네…”
그렁그렁 맺혔던 눈물을 뚝뚝 흘리며 슈슈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아차차, 울릴 생각까진 없었는데 미안하네. 소녀의 순정에 너무 강한 대못을 박아 버린 것일까? 아니 난 브라 안차고 있었을지는 몰랐으니 정상참작을 해줬으면 한다.
사실 아무리 다른 문화권이더라도 슈슈가 우는 모습을 보면 대충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이유라도 물었을 테지만 휘진은 그조차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상황 자체가 노린 것이었고 만약 손을 대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아이라면 몇 번이고 맛을 봐줄 예정이다.
사실 그렇게 까지나 흥미가 동하진 않았었는데, 슈슈의 반응과 몸매가 호기심을 끌었다.
휘진의 양 어깨에 바들바들 떨리는 슈슈의 양 손이 닿았다. 지나치게 긴장한 탓인지 이런 따뜻한 곳에 있으면서도 손이 얼음장처럼 차다.
지금 뒤를 돌아본다면 슈슈의 가슴을 시선 강간할 수 있을 테지만 아직은 좀 더 참아볼 예정이다.
휘진은 슈슈의 경직된 안마를 받으며 욕조 옆 선반에 진열 되어있는 각종 목욕용품들을 살펴보았다.
모빌처럼 생겨서 욕조에 던져 놓으면 효과가 발생하는 입욕제들부터, 샴푸처럼 보이는 거품이 많은 비누… 그 중에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끈적끈적하고도 투명한 액체였다.
뭐야 이거 러브젤인가? 감촉 비주얼이 완벽하게 일치한다.
“저기 슈슈, 이건 뭐야?”
한동안은 계속 서럽게 눈물을 떨구던 슈슈도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을 한 것인지 천천히 울음을 그치고 안마에 집중을 하고 있다. 당장 자신에게 손을 대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어떻게 생각하든 딱히 상관은 없지만 말이다.
“보습제입니다. 목욕 중 수분을 피부에 가둬줍니다.”
억지로 가장한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하는 슈슈이지만 울음 뒤여서인지 목에서는 떨림이 멈추질 않는다.
정말이지 가학성을 자극하는 아이이다.
“그래? 그럼 지금 발라줄 수 있겠어?”
“네 어렵지 않아요.”
슈슈가 별 다른 생각 없이 보습제를 건네받으려 할 때였다. 휘진은 자신의 손에 뿌직하고 러브젤을 짜내었다.
정말 저런 소리가 났으니 이상한 생각은 말아 주길 바란다.
그 모습에 슈슈가 흠칫했다.
“우리 고향에선 러브젤, 아니 보습제를 바를 땐 가슴과 가랑이로 발라주는 것이 예의라고.”
그나마 표정을 유지하던 슈슈의 등 뒤로 번개가 치면서 표정에 금이 갔다.
마치 세계의 종말을 미리보고 온 예언자의 표정이다.
가슴을 가리는 것도 잊고 멍하니 휘진의 어깨의 손을 올린 슈슈의 가슴에 보습제를 치덕치덕 바른 손을 뻗었다.
“싫어요!!!”
슈슈는 휘진의 손이 가까이 다가가기 전 손사래를 치며 뒤로 쭈뼛 쭈뼛 물러갔다.
이 정도의 저항은 있어줘야 재미가 있지. 하지만 앞으로 관계의 편의를 위해서라도 조금은 겁을 주기로 했다.
“앞으로 와.”
갑자기 중저음으로 목소리가 낮아진 탓에 놀랐나보다. 슈슈는 잠깐 눈치를 보듯이 휘진의 얼굴을 살폈다.
딱딱하게 굳어 있는 표정에 울상을 지으면서도 슈슈는 조심조심 앞으로 걸어왔다.
“손을 깍지 껴서 머리 뒤로 넘겨.”
“…네…”
경찰이 신체검사를 할 때와 같은 포즈를 주문했다.
당연히 상체가 알몸인 상태에서 그런 자세를 취하면 고스란히 자그마한 가슴이 전부 드러나 버린다. 슈슈는 정말 큰 저항감을 느끼면서도 슬슬 짜증을 내려는 휘진의 표정을 읽은 눈치다. 천천히 가슴을 개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