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4화 〉자기 차례(2) (104/107)



〈 104화 〉자기 차례(2)

오후 8:09_[그럼 내일 학교 끝나고 곧장 집으로 와]

이에 대답을 보내면서도 이야기가 짧게 끝나서 속마음은 짜증이 물씬 올라왔다.

함상명
[그냥 다음에 받으면 안 될까?]_오후 8:09

"…."

내일 오지 않으면 의미 없는 일. 혹여나 희진이랑 상의할 생각인지, 아니면 같이 있을  오려는지 아주 조심스럽다.

[안 돼]
[무조건 내일 와]
오후 8:09_[학교 끝나고 곧장]

둘의 영상을 보면서 혼자 위로하는 건 질색이니까 절대로.

오후 8:09_[희진이한테 비밀로 하고]

"하-…."

일단 희진이에게 알리면 안 돼서 몰래 해내야 했다. 반대로 생각하면, 희진이한테 얘기해서 의심만 증폭시킬  있는 자충수. 애초에 토-크 내용만 까발려도 위험했지만, 꼭 그게 아니더라도 희진이 몰래 불러냈다는 사실은 상명이가 오기 전까지 본인에게 유리한 내용이었다.

일부러 희진이 이야기를 안 하려 했는데….

상명이라면 자신에게도 불리할 수 있는 상황을 굳이 떠벌릴 만큼 저능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보다 남에게 해가 될 거 같으면 가타부타를 따져 알리려 했겠지.

"킇-."

아무리 대책 없이 일을 저질렀다 하여도, 상상 이상으로 상명일 의식해서 안달이 난 거 같았다.

함상명
[봐줘..]_오후 8:09

"쿠-훟!"

여기서 설마 조를 줄이야….

이제는 무턱대고 거절하기보다 앙탈 부리며 거부하는 모습을 망상해서 귀여웠지만, 이거랑 섹스는 별개.

[안돼]
오후 8:09_[지금  따먹으면 언제 또 하겠어?]

싫다고 그냥 놓아주고 다음을 기약하기엔 내가 조급한 상태였다.

오후 8:10_[계속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이제 우리 집에서 못할 줄 알아.]

이렇게 되면 오히려 나까지도 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사실 우리 집 말고 편히  수 있는 공간이 없어 선택지가 부족해지는 건 서로 똑같은 상황.

오후 8:10_[집주인인 내가 오지 말라고 거부하는데, 어디  데나 있을 거 같아?]

기왕에 저지른  대책 없이 밀어붙여서, 이러나저러나 끝은 공교롭게도 협박으로 이어진다.

[너희 신분을 잘 생각해 봐]
[모텔?]
[멀티룸?]
오후 8:10_[가당키나 할  같아?]

정말 이런 방법밖에 없었는지 스스로 껄끄러워하면서도, 막힘 없이 잘만 움직이는 손가락.

오후 8:10_[그러지 말고, 정력에 좋은  먹여줄 테니까]
오후 8:11_[넌 몸만 와서 먹고, 자지만  세우면 돼]

이러면서 만일에 대비하여 살살 달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오후 8:11_[장어 사다 줄까?]

사족으로 우스갯소리도.

"…."

상명이가 대답할 시간조차 주지 않은 채 너무 일방적이었던 건 아닐까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어차피 여태 이래왔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함상명
[..괜찮아]_오후 8:12

"으-훟!"

드디어 긍정적인 답변이 들려왔다. 이것을 기회 삼아서 계속 설득하려다 잠시나마 고민할 수 있게끔 할애.

[알았어]
[내일 갈게...]_오후 8:14

이번에는 조금 인내하여, 오겠다는 응답을 확인했다.

오후 8:14_[몸만 와 내가 다 해줄 테니까]

설렘에 찬 토-크를 보낸 다음, 답을 확인할 필요 없이 침대로 달려들어 와락. 기쁨에 심취해서 발을 동동 굴리며 침대에다 발길질했다.

어제는 뭐가 그렇게 좋은 일이 있어서 그런 표정이냐고 말씀하셨는데, 오늘은 무슨 근심이 있어 그러냐고 선생님께서 물어보셨다. 부모님께조차 알리지 못한 비밀인지라, 그냥 장래에 대한 일이라고 얼버무려서 언제라도 상담하라며 어깨에 손을 툭. 평판도 좋으시고 의지 되시는 선생님이시지만, 이런 고민을 누구에게…적어도 나와 가까운 사람일수록 터놓기가 무척 꺼려졌다.

"킁킁."

엘리베이터에서 배가 고파지도록 풍기는 냄새에 무거웠던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지만.

…고기 같은데,  시간에?

요리할 사람이 없다거나 혼자 살면은 그리 이상할 것도 아니지만, 내가 신경이 쓰이는 건 바로 무슨 고기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워서였다.

"…킁."

마지막으로 냄새를 맡아 유추해보지만, 최대한 짐작해보는  아마도 물고기 종류가 아닐까 싶은 생각.

"쩝…."

곧 내릴 층에 도착해 남의 점심 메뉴에 대한 잡생각은 여기까지 했다.

"…??"

설마 설마 아니겠지. 배달하시는 분과 같은 층에 내려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딩-동'

"아, 잠시만요."

층당 3세대에 가장 큰 구역을 차지해서 그리로 이동하시니까 비밀번호도 알기에 직접.

"…얼마죠?"

배달한 집의 관계인이란 걸 알리기 위해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열었다.

"이미 결제됐습니다."

지갑을 꺼내려다 들리는 대답에 안심하며 받는 음식물이 든 봉투.

"감사합니다."

잘 받아서 돌려보내 드렸다.

"…끙."

남의 집에서 이래도 괜찮은 건지 싶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려봤자 의미 없었다. 솔직히 잘했다고 생각하는 게, 희민이가 나올 때까지 뒤에서 기다리다가 뒤늦게 들어가는 것도 무안했으니까. 물론 배달하시는 분이랑 같이 도착한 건 우연이었다.

"자지 왔어?"
"뭣?!"

안에서 열어줄  들어가겠다고 어젠가 얘기한 거 같은데, 그거 의식하다가 희민이의 이상한 발언에 잘못 들었나 싶어 내 귀를 의심.

"쿻, 어서 와 자기."

자기…라고 했겠지?

분명 그랬을 거다, 그래야 했다. 어차피 나를 부른 건 그게 목적이란 것을 모르진 않았어도.

"…어, 고마워."

일단 환영해주니까, 예의상 감사 인사로 대응했다.

"들어와."

이후 신발장에서 별다른 대화 없이 보이는 등.

"실례하겠습니다…."

앞으로 있을 일에 신경이 쓰여 잘 못 들었던 자지가 진짜 움찔거리지만, 최대한 생각에서 배제하며  대처해야 했다.

"후우."

나흘 내내 그렇게 해댔는데 말이지….

나름대로 쉬고 나니까 다시 불끈해지는 성욕이 어이없어 이따금 자신에게 야속해졌다.

'부스럭'

…이거 설마 진짜로 장언가?

어제의 대화가 장난인지 진담인지 몰라서 반신반의했는데, 정작 배달하시는 분과 같은 엘리베이터를 탈 줄은 생각조차 못 했다.

"자기, 점심 안 먹었지?"

희진이가 없다고 금세 친한  굴며 연인 행세를 하는 희민이.

"어,  먹었지…."

어째 내용물이 연상돼 답하기가 껄끄러웠다.

"쿠후훟."

더불어 나를 보면서 히죽히죽 웃기까지.

"그거 자기 먹으라고 사 온 거니까, 바로 먹자."

냄새로 이미 음식물이란 것을 알았기에 주방의 식탁에다 봉지를 놓은 채로 돌아가려니까 나보고 풀어헤치게끔 하라는 듯한 말투였다.

"나, 나 손 씻고…."

아니나 다를까, 이대로면 위험할 거 같아서 빠져나가려니까 어느새 뒤를 잡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막은 길목.

"씻어? 같이 욕조에 들어갈까?"
"힉!"

둘만 있을  무척 거리낌이 없어져 주의했어야 했는데, 이미 코앞까지 다가와 가슴 위로 얹은 손가락에 두려움이 증폭됐다.

"아니아니! 손만 씻을 거야 손만!"

저절로 뒷걸음질 치며 좌우로 치는 손사래.

"쿠-훟. 그래. 손만 씻어 자기."

다행히 다가오지 않은 채로 오른손의 검지 마디로 입을 가리며 가냘프게 웃는다.

"…어."

그렇게 지나가라고 자리를 비켜주지만, 불안함을 떨치지 못한 채로 지나갈 때까지 희민이에게 떼지 않는 눈길.

"쿻."
"읗-!"

마치 희진이가 "왁-!"하고 놀라게 하는 것처럼, 과도하게 웃음을 흘려버려 창피해졌다.

"끙-…."

또래의, 겉으로는 나보다 연약한 여자애한테 겁을 먹고 이리저리 불려 다니는 한심한 꼬락서니.

"윽…!"

거의 다 지나가서 등을 보여줄 때쯤 와락 하고 등줄기에 기댄 것이 느껴졌다.

"보고 싶었어 자기…."

어제도 봤으면서 너무나 뜬금없는 행색. 희민이의 행동 양상을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

섣불리 떠들었다간 또 무슨 말을 꼬투리 잡힐지가 벌벌 떨려서 침묵. 욕실로 움직이던 발길이 멈춘 것도, 내게 기대어 머리까지 맞닿은 탓에 이동하면 넘어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스러워서였다.

"나, 손부터 씻고 올게…."

매몰차게 굴어야 하는데, 정작 입에선 나긋나긋한 대답만이.

"자기 등 근육."
"히이익!!"

최대한 의사를 전하여서 놓아줬으면 했는데, 애초부터 그런 기대감을 배신하듯이 자유롭게 상의 안으로 손길이 들어와 버렸다.

"긋, 그만…!"

하지 말라고 소리쳐도 멈추지 않는 더듬거림에 소름이 끼쳐 펴지는 허리. 특히나 몸이 차가운 탓인지 손도 차가워서 절로 고개가 올라갔다.

"아, 자기…."

머리부터 발끝까지 얼어붙어서 옴짝달싹  한다는 의미가 이것일까? 뒤에서 막힘 없이 안아 드느라 온몸이 뻣뻣해졌다.

"하아, 앙-."
"큭…!"

더군다나 끈적한 목소리로 귓불을 깨물어서 느껴지는 혀의 감촉. 희민이가 주문한 점심을 먹기도 전에 내가 먹힐 판이었다.

"꺅-?"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황급히 앞으로.

"그만…!"

내게 완전히 기대길래, 나라는 지지대가 없어지면 넘어질 거 같아서 가만있었다.

"하아, 하-."

그러나 넘어지기는커녕 금방 중심을 잡아 서로를 멀뚱멀뚱.

"너무해…."

마치 가련한 여주인공처럼 나를 나무라는데, 진짜 너무한  희민이였다.

"…손. 씻고 올게."

기가 막힌 행보에 어이가 없어져 상대해주기 피곤해서 돌리는 등.

"칫-, 좀 받아주면 어디가 덧나 자기?"

역시나 그런 연기를 하는 거여서, 내심 매정하게 구는 것에 조바심을 느꼈다가 먹혀들어서 안심했다.

"…킁."

사실 가냘픈 척 구는 것이야 여태 그래왔기에 어느 정도 파악한 의중. 긴가민가하게 의도적으로 외로움을 내색해 살짝 애처로운 느낌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지금껏 벌려왔던 거리감을 좁히기란 쉽지 않았다. 하물며 희진이가 있는데 바람피우는 실정이라 더욱이.

내가 또 덮칠까  서둘러 도망가는 상명이.

'딸각'

"……칫-!"

욕실 문이 닫히자마자 문까지 잠가서 뒤늦게 혀를 찼다.

깍쟁이 같아서는….

외모도 곱상해서 계집애 같긴 했지만, 실제로 쓸데없이 세심했다.

"후-…."

이토록 거부하느라 얄미워 더욱 괴롭히고 싶어졌지만, 달리 시점을 바꿔보면 조금은 애처로운 처지. 나랑 희진이에게 쌍으로 시달리다 보니까 살짝 핼쑥해진  같은 기분도 들었다.

오늘은 좀 편하게 대해줄까….

보다  심적으로 여유로웠으니, 걱정만 달고 사는 상명이를 편안하게 해준다면 필시 날 되돌아볼지도 몰랐다. 그러기엔 이미 너무나 먼 강을 건넜음을 알아도.

"…쩝."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자, 우선은 거실로 돌아가 식탁 위의 도시락부터 펼쳐서 바로 먹을 수 있게 해놨다.

"쿠후훟."

대개 혼자서 먹었었던 점심도, 상명이를 만나고  이후부터 제법 화색이 돋는 자리. 희진이야 자기가 알아서 먹었고,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여서 내가 먼저 과자만 먹었었다.

"…쿳."

그러다 느닷없이 떠오르는 과거. 재성 오빠에게 심한 짓을 저지른 후, 희진이와의 관계마저 비틀어버려 여기까지 왔었다. 이번엔 반대로 희진이가 남자를 데려와 내가 뺏으려는 상황. 이 얼마나 우습고도 어이가 없는 운명인지 웃음조차 안 나왔지만, 그때처럼 우발적 일을 구태여 되돌릴 수 없게끔 하는  변함 없었다.

"…큼."

한창 옛날 생각에 사로잡혔다가, 상명이의 기척에 애써 정색하는 표정.

"어서 와 자기. 먹자."

아까보단 저돌적이지 않은 상태로 부르면서 의자를 빼줬다.

"어, 고마워…."

나를 피하려 이러니저러니 해도 기본적으로 성실한 탓에 빼먹지 않은 감사. 희진이는 용케도 이런 남자를 낚아 왔다.

"쿠-훟."

살짝 주저하긴 했어도 차분하게 앉는 모습이 절로 미소가.

"자기-배고푸지? 쿻-, 어서 먹어."

식기까지 다 차려놔서 수저를 들기만 하면 됐다.

"응. 잘 먹을게."

내가 맞은편에 앉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젓가락을 사용해 장어를 집으니까 그제야 대답.

"아, 자갸! 아-."
"어엉?"

마침 상명이도 젓가락으로 장어를 집으려고 하길래 급히 입에다가 손을 뻗었다.

"끙, 아-."

예상보다 순순히 받아들여서 벌리는 입. 예전에 수면제까지 탄 상대가 주는 음식을 의심 없이 받아서 너무 순진한  아닌가 싶은 정도였다.

"압, 우물우물."

아무렴. 의심 없이 먹어준다면 그걸로 됐지.

"쿠-훟. 맛이 어때 자기?"

생각보다 비쌌지만, 이따가 있을 예정을 위해 나름 정력의 대명사인 장어를 큰맘 먹고 주문했다.

"음음…제법 맛있네."

예의상 맛을 물어보니 긍정적으로 해주는 대답.

"키히힣."

눈으로 봐도, 코로 맡아도 맛있음을 뿜어내느라 쓸데없는 질문이었을 거다. 어차피 대화를 이어나가려는 예의상의 표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