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자매랑 소바 번갈아 먹기(5)
사실 기다린다고 음주를 했다. 그래선지 약간 취기가 오른 상태.
"아, 언니…! 또 어디 인터넷에서 이상한 거 주워들은 거 같은데, 전혀 유쾌하지 않거든?"
얼굴에 드러나지 않아서 아직 술을 마신 건 모르는 듯해도, 개수작 부리는 건 들켰다.
"제발 적당히 좀 해줘, 오빠 보기 창피하니까."
구태여 욕먹기는 성공했지만, 역시 실제로 들으니까 특히나 나빠지는 기분. 노리고 하긴 했지만, 신경을 살살 건드는 것이 여간 만만치 않았다.
"설마 바깥에서도 그딴 짓을 하고 다니는 건 아니지?"
기지배 째잘 거리는 것이 꼭 엄마 같아서…어린 게 잔소리는.
"제부-. 동생이 괴롭혀어-."
"어어…?"
실없는 소리 하여 야단을 들이니까 위로해달라며 상명이에게 달라붙었다.
"아-, 야아…!?"
그제야 참지 못하고 말을 놓는 희진이.
"긓, 그만하고 놔줘…!"
덩달아 상명이도 거부하는데, 반응을 보아하니 여기까지가 한계인 거 같았다.
"…쿻-. 알았어 얘, 장난도 못 치니?"
희진이가 금방 달려들 것처럼 일어서자 물러나면서 치는 손사래.
"흥-! 재미없어 언니!"
상명이에 대한 소유욕이 장난 없어서, 아직은 간 보기조차 아슬아슬했다. 더욱이 만지는 것은 저렇게 울컥하니까 당분간은 신중해야지 싶어 스스로 경고.
"칫, 그래…?"
상명이와의 거리감을 줄여 스킨쉽의 강도를 높일수록 희진이가 보이는 거부감이 점점 엷어질 거다. 어차피 이따가 둘의 행위에 대한 건 별수 없이 승낙할 테니까, 나는 다음으로 넘어가기 위한 단계를 쌓아놔야지. 업계 용어로 빌드 업이었다.
"하 여 튼! 오빠 방해하지 말고 이리와 언니."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주며 째려보지만, 이럴 줄 알고 행동해서 어쩌라는 표정으로 웃으며 착석.
"휴, 다 됐어."
"아! 정말? 이히히, 고생했어 오빠-."
그러자 녀석이 음식을 옮기고, 나를 노려보던 희진이가 얼른 받아서 상을 차렸다.
"…맛있겠네."
애니에서 보던 모습이랑은 조금 달랐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애니였으니까. 일식집에서나 볼법한 일식 그릇은 집에 없었다. 그래선지 뭔가 부족한 구색. 대신에 오이라던가 김가루나 통깨 등 집에 없을 재료를 신경 쓴 흔적이 다분했다.
"와-, 진짜 맛있겠다 오빠아!"
내가 먼저 말했건만, 충분히 들렸을 텐데 독백이라고 느꼈는지 의미를 채가는 희진이.
"하하-거의 일 년 만이라 자신은 없지만, 맛있게 먹어."
그걸 또 상명이는 좋다고 받아준다.
"웅-!"
…이게 당연한 거겠지만.
둘 사이에 낀 내가 이상한 거다.
"치…."
잠시, 망각했었다.
"잘 먹겠습니다!"
식사 예절을 앞세우며 떠드는 사이, 우선 숟가락으로 뜨는 쯔유 소스.
"후-룹…음."
한 입 입 대서 마시니까 나름 괜찮았다.
"으-음! 맛있다 오빠."
"맛있다니 다행이네, 헿-."
맛이야 뭐…자주 먹던 건 아니지만, 충분히 합격점.
"파는 거니까 뭐."
속으로만 생각한다는 게 그만, 입 밖으로 나와버렸다.
"아…하하 뭐, 그렇지. 레시피대로만 하면 어려울 거 없어."
녀석과 있다 보니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던 것들이 나와 저지른 실수. 이게 다 술 때문인지, 아니면 헤퍼지게 만드는 녀석 때문인지…아무튼 내 탓은 아니다. 끼리끼리 즐거운 분위기에 초를 친다는 자각은 있었어도.
"그래도 오빠. 이렇게 얼음을 띄운다거나 김가루를 뿌린다거나 하는 건 레시피에 안 적혀 있지 않아?"
희진이가 어떻게든 상명의 노력을 띄우려고 하는데, 기특하다기보단 어째선지 꼴 보기 싫었다.
마음에 안 들어….
"그렇긴 하지, 그냥 조금만 생각하면 이렇게 먹었을 때 더 맛있을 거 같아서 살짝 추가했을 뿐이야."
어떻게든 폄하하려고 하기 전에, 녀석이 먼저 아무렇지 않게 스스로를 낮췄다.
"그래도 난 그런 발상이 좋은 걸 오빠. 덕분에 이렇게나 편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잖아."
상명이의 겸손이야 나도 그러려니 수긍이 가는데, 이상하게 듣기 싫은 희진이의 아양.
"거기다가 그런 것도 하나하나 정성 아니야?"
실제로 희진이가 하는 말이 옳았다. 나 역시 긍정하고.
"…맛있네."
상명이를 치켜세워주면서 은근히 나를 보는 희진이의 시선에 응답하기보단 어쩌라는 식으로 무시했다.
"그치 언니?"
이번에야말로 혼잣말이었는데, 이걸 놓치지 않고 공감을 요구하는 무언의 압박.
"…-그래."
마지못해 끄덕여줬다.
"헿, 알아줘서 고마워 희진아. 불기 전에 얼른 먹어."
맛있겠다고는 내가 종전에 말했는데….
실컷 미운털 박힐 짓을 해서 좋은 반응 끌어내지 못할 거란 건 알고 있었으나, 막상 둘이서만 시시덕거리니까 기분이 몹시 껄끄러웠다.
"…칫-."
그 뒤로 둘이서 이런저런 칭찬과 화색 오가는 것을 망연히. 아직 둘의 행위에 대하여 허락이나 다름없다 하여도, 이제 와서 희진이가 변심할 수 있기에 너무 건드렸나 싶었다. 살며시 후회가 들긴 했으나 그런 것치곤 무분별하게 히스테리 부려서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있지…."
누가 연인 아니라고, 벌써 자기들 세상이던 상명이와 희진이를 부르자 서로 똑같이 향해주는 눈초리.
"…부족한 살림으로 갖춘 모양새라던가, 수고로운 만큼 시원한 면발과 찰기. 소스와 과하지 않은 얼음의 비율."
그릇이라고 해봤자 일반 가정집에서는 한계가 있었다. 끽해야 국수 먹는 게 대부분이니까. 확실히 집에서라면 느낄 수 없는 면의 차가움은 아까 믹싱볼에 얼음을 넣어서겠지. 그다음 생수로 씻어 빨듯이 헹구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국그릇에 얼음을 넣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냉동실에 두었던 소스. 가벼워 보여도 하나하나 신경 쓴 티가 조리하면서 보였다.
"재료야 기성품이라고 했지만, 절반은 네가 준비한 거란 걸 알아."
처음에 나는 사 온 재료라 순전히 끓이면 그만이겠지 싶었지만, 식칼로 도마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바뀌어버린 태도. 고작 재료 하나 추가하는 거지만, 도구 하나 더 꺼내서 사용하는 건 확실히 귀찮다는 걸 알았다. 거기다 김가루까지 준비해, 알아서 먹으라고 고명으로 얹지 않은 센스.
"처음 먹어 보지만,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어…요리해줘서 고마워."
비슷한 음식이라면 아마 냉면일 거다. 냉면도 나쁘지야 않지만…다음엔 비빔냉면을 해달라고할까?
"어, 언니…?"
여태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다가 느닷없이 돌변하니까 오히려 당황해서 놀란다.
"어음 응…."
희진이나 상명이나 둘이서 같이.
"내가 너무 설쳤어. 미안해."
오늘부로 사과만 두 번째지만, 되려 이런 과정이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지금 쓰는 소설의 상황 중에 연인끼리 단란하게 식사하는 장면에서 눈치 없이 껴드는 등장인물이 있거든."
숨김없이 고하자면 이렇게 연기하는 게 슬쩍 긴장돼 아무쪼록.
"마침 지금이 그런 상황과 비슷하길래, 그렇게 굴어 봤어."
슬슬 다 먹었겠다, 이다음으로 할 이야기 때문에 일단 저자세로 돌아왔다.
"…하-, 그렇단 거지 언니?"
희진이의 못 말리겠단 기색도 오랜만. 이전엔 자주 아연실색하게 해버려서 이 정돈 애교에 불과했다.
"부탁이니깐 다음부턴 그러지 마…몹시 별로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란 말이야."
투정 부리듯 걱정하는 것도 예전처럼 여실히.
"아무렴, 너희니까 하는 거야."
어디 가서 이럴까 봐, 다시 한번 되새겨줬다.
"그러니까 내 말은! 밖에서도 그러면 쪽팔리니까 하지 말라는 거야."
잠잠한 척 굴어도 내면에선 많이 빡쳤는지 상명이 앞에서 결국 꺼내는 비속어.
"알아, 말했잖아. 너희 앞이니까 하는 거라고."
자꾸 같은 말 반복하는 거지만, 이런 도돌이표야말로 상대방 자극하기엔 제격이었다. 그나마 잇따라 겪어봤으니 참아보는 희진이.
"아아, 끟…."
그나저나 우리 사이에 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상명이가 귀여웠다.
너도 나한테 이목이 쏠리지 말고, 니 남친이나 봐 멍청아.
"그건 그거대로 짜증 나거든…."
나의 계략에 제대로 걸려들어선지 이쪽엔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서 대답한다.
"하-아…알았어 언니. 그치만, 부탁이니까 우리 앞에서도 제발 하지 마."
그러다 이내 졌다는 듯이 손짓하여, 이 주제에 관해서는 그만하자고 선언. 어차피 나도 끝낼 셈이라 희진이 입에서 먼저 나오기만을 기다렸었다.
"…자중은 할게."
마음과 다르게 끝맺음으로 싸움이 다시 피어오르게끔 불씨를 놓을 뻔했지만, 여기서 괜히 기 싸움을 이어가며 사족을 붙였다간 거래 자체가 불발될 수 있을 거란 직감에 참는 깐족거림.
"…후-우."
희진이도 이 이상 싸우기는 싫었는지 한숨을 끝으로 넘어갔다.
"휴-우…."
싸움이 끝나자 보란 듯이 안도의 한숨을 쉬는 상명이.
"쿠-훟."
그런 녀석의 모습을 관람하며 간신히 참아왔던 웃음소리를 흘렸다.
'팅-'
"후-룹."
희진이가 눈에 불을 켜고 째려보는 터라, 상명이를 너무 주시하는 건 관두고 사용하는 숟가락.
"우물우물."
"흐르릅."
먹는 소리와 식기 부딪히는 소리를 빼면 식탁에서 침묵을 동반한 평화가 찾아왔다.
"…맛있게 잘 먹었어."
그러기를 잠깐, 둘이서 절반 즈음 먹어가는 사이에 이미 한 그릇 뚝딱.
"어? 잘 먹었…."
"다음엔 비빔냉면 해줘."
상명이가 내 인사에 화답하려던 것을 막고서 내가 하고 싶은 말만 그대로 이어나갔다.
"어, 응…그래. 알았어."
너무 자기만 우선시하는 이기주의라 살짝 짜증이라도 낼법한데, 그러지 않고 마냥 성실하기만 한 상명이.
"후-응…!"
대신 희진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단 식으로 미간을 찡그리며 눈치를 줬다.
얘도 참, 이렇게 미리 기약을 해야 다음에 또 와서 요리해주지. 뭘 모르네.
"…아, 그렇네."
귀찮게 이럴 거 없이, 획기적인 발상이 떠올랐다.
"알바비 줄 테니까, 차라리 우리 집에서 요리사로 일해보는 건 어때?"
생각하고 말하는 것 따윈 잊어서, 되는대로 내뱉는 바람.
"업…므어?"
한창 면발을 입에다가 집어넣는 와중에 들은 제안이라 기침하면서 내뱉지 않은 것이 용했다.
"그거 괜찮다 언니. 오빠, 오빠 생각은 어때?"
나랑 한참을 의식하던 희진이조차 녀석이 내빼지 못하도록 좋다고 공감. 협박도 잘 먹히지 않는 상명이에게 이런 쪽에서 희진이는 제법 든든한 아군이었다.
"……."
둘이서 아주 그냥 서로 없이는 죽지 아주….
"아니 그게, 난 돈 받고 해줄 만큼 실력이 되질 않아서…."
그렇긴 해도 일단 한 발 빼서 겸손도 좋지만, 노골적으로 요리보단 몸쪽을 원해서 사실 실력이야 어떻든 간에 상관없었다.
"실력이야 뭐, 그걸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 솔직히 희진이랑 너랑 하는 거 구경하고 돈 대주는데, 둘이서 반띵 할 거 아냐?"
요리에 관해서 떠들다가 갑자기 관음 쪽으로 선회. 그러면서 설파에 논리적인 설득력보단 명분을 중시하며 돈 이야기를 꺼냈다.
"희진이는 내가 용돈을 주고 있으니까, 너라도 더 벌어서 서로 비등하게 써야지."
수작 부리는 거란 건 스스로가 잘 알아서, 판단력 흐려지도록 서로를 언급. 이게 잘 먹혔는지, 반박하지 않고 조용히 들어준다.
"돈이란 건 말야, 생각보다 사람 치사하게 만든다? 조심하는 게 좋을걸."
충고를 한다면 얼마나 어른이라고, 동갑인 주제에 돈에 대해서 충고하는 녀석. 그러나 확실히 돈을 벌어본 사람의 발언이라 경시하기는 어려웠다.
"끙-…."
본질을 흐려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 가는 것이 희민이의 특기인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거 같아 기묘해진 기분. 이기적인 것처럼 굴다가도, 의식은 해서 신경 쓰는 모습을 보면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특히나 지금처럼 무엇을 중점으로 두어 떠드는지조차 애매한 의견들이라 종잡기가 어려운 실태.
"특히 너말야 너, 희진이 너."
나를 보고 돈에 관해서 충고하더니만, 느닷없이 희진일 다그쳐서…너무한 급발진에 변덕이 이렇게나 심할 줄은 몰랐다.
"아-아! 내가 머?"
슬쩍슬쩍 걸고넘어지니까 희진이도 슬슬 짜증. 이건 대놓고 뭐라 하는 희민이가 나빠 보이지만, 가족 문제다 보니 내가 낄 자리는 아닌 거 같았다.
"상명이는 모르니까 하는 말인데…너 요즘 너무 막 쓰더라."
요즘이라고 한다면 저번 주를 뜻하는 걸까? 오늘이 월요일이니까.
"그건 집에서 밥을 못 먹으니까 밖에서…."
"그러면 그래놓고 가계부나 제대로 쓰기나 해?"
"읗…!"
최근엔 나도 함께 먹으니까 그거대로 식비가 늘어난 건 희진이 편에 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