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화 〉볶음밥과 관음의 찬반토론(2)
겉으로만 봐도 좋아서, 프라이팬을 잡은 손으로 볶음밥을 자연스럽게 스냅. 해보지 않은 사람에겐 묘기였지만, 감을 익히게 되면 재밌는 기술이었다.
"엇-."
그러다 실수해서 흘린 한 젓가락 크기. 키친타월로 닦을까 고민하다, 아까 요리하기 전에 닦기도 했고 더럽지 않다 싶어서 우선 맛을 보았다.
"음, 쩝."
간을 보기도 애매했던 양이라 몇 번도 채 씹히지 않고서 꿀꺽. 맛은 그럭저럭 무난했다.
'화르륵-!'
다시 화력을 올리고 빙 둘러주는 참기름. 이걸 이제 다시 잘 섞어주는데,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숟가락을 사용했다. 쇠숟가락이라 조심스럽게 사용하다가도, 밑에서 올라오는 열기로 그리 오랫동안 밥을 볶을 수 없어서 가까이 당기는 프라이팬. 이걸로 어느 정도 뜨거운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슬슬 깨울까?"
방금 프라이팬을 당겼으면서 불을 줄이는 건 서서히 바삭해지라고. 위는 고슬고슬하면서 밑면이 딱딱하지 않고 누르게 되면 먹음직스러운 볶음밥 완성이었다.
"흐-음…."
여기서 이대로 두고 방문을 두드릴지, 아니면 아예 상을 차린 다음 깨울지 하는 고민. 전자는 상 차릴 때까지 상대방에게 몸가짐을 할 여유를 주는 거고, 후자는 좀 더 재우는 거였다.
"…다녀오자."
아무리 생각해도 전자가 옳은 거 같아 둘의 화력이 약한지 확인하고 옮기는 발걸음.
'똑똑똑'
이미 주방을 사용했지만, 남의 집이기도 하고 여자의 방이라서 그런지 막상 문을 두드리니까 긴장이 됐다.
"밥 먹어-."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뒤로 물러나자 금방 열리는 문.
"쿠-훟. 뭐야? 아침 했어?"
녀석이 시큰둥한 모습으로 나오는데, 딱히 자다 깬 건 아닌 모양새였다.
"어, 응."
녀석 앞에 설 때면 괜스레 주눅이 드는 몸.
"…메뉴가 뭔데?"
"볶음밥."
아무런 시비 없이 질문해서, 안도하며 알려주었다.
"킁킁, 쿻-. 맛있겠네."
이내 냄새를 맡다 완전히 개방하는 문. 안쪽의 침대에서 희진이가 자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쿳-, 쟨 내가 깨워서 갈 테니까 상이나 차려 놔."
하룻밤 재워준 보답 겸해서 해주는 요리지만, 어째 건방진 말투라도 녀석의 위치를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겠지.
"…알았어."
집주인이 그러라는데, 그러기로 했다.
"흐-흥."
주방으로 돌아와 요리가 무사한지 확인. 이미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가 퍼져 의심할 여지조차 없었다. 별다른 이상이 없었기에 국그릇을 꺼내 국자로 떠서 담는 국.
"뜨뜨-."
엄지와 새끼를 최대한 벌려 국그릇의 뜨거움을 덜 느끼려고 애썼다. 자칫 잘못했으면 안간힘을 썼어도 쏟았을지 모를 대참사. 방심하다 일을 그르치는 것이 대강 요리하면서 자주는 아니더라도 겪어봤기에, 오늘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은 없었다.
"좋아-."
식탁을 정리하고서 국을 옮기고는 다른 접시에다가 사 왔던 신김치를 배치. 반찬이라고 놓기엔 초라했어도, 밥이랑 같이 먹으면서 없으면 안 되는 핵심이기도 했다.
"쩝-…."
이러다 보니 식자재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이렇게나 아쉬울 수가. 김치찌개를 하기엔 김치가 없었고, 계란국이나 다른 것도 조미료가 본격적이지 않아서 힘들었다. 할 수 없이 인스턴트 북엇국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아, 오빠-."
냄비 안의 내용물이 없어져 불을 끄니까 뒤에서 희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잘 잤어 희진아?"
"웅-! 오빤 잘 잤어?"
몸을 돌려 희진이를 보자마자 활기차게 맞이해주는 모습. 복장은 어제 그대로인데, 생기로운 느낌은 마냥 밝아서일 지도 몰랐다.
"히히, 뭐 만들어 오빠?"
생글생글 다가와 머리를 쏙 내밀어 주방을 확인하는 눈길.
"응? 볶음밥."
냄새만 맡아도 알 수 있었겠지만, 그것보다 시각적인 확인이 익숙했을 거다.
"와-맛있겠다."
나쁘지 않은 감상은 예의상 당연하게 건네는 말일지라도 기분이 좋아서 힘이 들어가는 어깨.
"여기다 이제 깨를 뿌릴 거다-."
올라간 콧대로 어깨춤을 추면서 두 손을 살짝궁 교차하여 율동하듯 애교를 부렸다.
"정말? 이히히히히-."
사소하지만, 희진이의 반응에 흥이 올라서 가루 조미료가 있는 서랍장을 개문.
"…아, 없네."
잠시 집이랑 착각해서 있을 줄 알았던 볶음참깨가 보이지 않아 아쉬움을 내비쳤다.
"읗-, 에헤헿. 그동안 집에서 요리하는 사람이 없었으니까…괜찮아 오빠. 없어도 맛있을 거야. 웅-!?"
"뭐, 그렇긴 하지만…."
마무리로 장식을 할 수 없어서 안타까웠으나, 희진이의 위로가 힘이 되어서 넘기고 이제 밥그릇으로 옮길 차례.
"밥 다 됐으니까, 손 씻고 오세요-."
사실 막말로 도와줄 거 아니면 비켜줬음 해서 어색함에 존댓말이 나왔다.
"네-에, 이히히."
이를 받아주는 희진이가 사랑스러워서 흡족한 미소로 전송. 설마 일어나자마자 날 보러 온 건가 싶었지만, 그런 생각을 하기보단 얼른 상을 차리기로 했다.
"음-흐흥-."
왠지 신혼 생활을 하는 기분에 말끔히 사라지는 스트레스. 이대로만 행복하기를 바라서, 흥얼거렸다.
"흐응…."
녀석이 나타나기 전까진 말이지….
"쿻-, 제법 맛있겠네."
이전처럼 비아냥거리는 말투가 아니라서 괜찮았지만,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엔 녀석의 행실이 좋지 않았다.
"밥 먹을 거지?"
녀석의 몫까지 해놨지만, 이래놓고 먹지 않을 수도 있어서.
"그야…우리 자기가 이렇게 차려놨는데, 먹지 않을 수는 없잖아?"
히이익…!
방금 닭살 돋았다.
"…그래? 그럼, 다행이네…."
말로는 다행이라 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실정. 녀석은 항상 등장할 때마다 나를 위태롭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녀석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받아주기 거북한 것들뿐이었으니까 그런 거겠지. 실로 껄끄럽기 그지없었다.
"있지, 자기야…."
불쾌한 목소리로 다가와서, 이러다가 녀석이 허튼짓을 하는 건 아닐까 싶었는데.
"우리 모닝 키스나 할까?"
혹시나 했던 게 역시나였다. 개수작 부리지 말고 가줬으면.
"…희진이가 보면 어떡하려고?"
차라리 큰소리로 쳐서 희진이를 부를까?
묘할 정도로 친근하게 구는 녀석이 무척이나 짜증 났지만, 까칠하게 굴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안 보면, 되는 거야 자기?"
내가 다 자지러질 정도로 기상천외한 발언.
"아니야!"
처절한 거절에는 제발 상식 좀 가지고 대화했으면 싶은 간절함이 담겨있었다.
"쿠-훟, 까탈스럽긴."
누구 때문인데 이게….
"언니, 어때? 맛있어 보이지 않아?"
윽-!
츄릅하고 노골적으로 나를 쳐다보는 녀석…희진이가 옆에서 보고 있었음에도 간이 컸다.
"그러게…아-주 맛있어 보여, 쿠-훟."
볼 거면 차라리 얼굴을 쳐다보던가, 남부끄럽게….
"…언니! 지금 오빠보고 입맛을 다시는 거야?!"
맞아 희진아, 그러니까 대신 좀 혼내줄래….
녀석과 마주할 때마다 희진이 생각에 함부로 못 했는데, 역설적으로 녀석 또한 마찬가지라서 조용히 하려다가 희진이 입장에서도 이건 선 넘었을 거다.
"…아무렴?"
그럼에도 무슨 배짱인지 쿡쿡 웃는 녀석.
"그보다 너는 상명이랑 상의할 일이 있다고 했잖아?"
내심 희진이가 녀석에게 더 다그쳐줬으면 싶었는데, 화를 내다가도 얼마 안 가 잠잠해졌다.
"그거야, …."
"백만 원."
"웃-…!"
내가 더 반응하기도 전에 둘이서 무언가 속닥속닥. 나도 모르는 사이 모종의 일이 있었던 거 같았다.
"하-, 식겠다. 밥부터 먹자."
이래저래 더 따지자니 기운이 빠져서 식사나 하기로.
"그러게. 요리가 식으면 맛없으니까."
마주 보고 있으면서도 구태여 게슴츠레하니 흘겨보는 건, 소름 끼치라고 그러는 걸 거다. 이게 녀석이 장난치는 방식이란 건 조금이나마 적응한 느낌.
"…후우."
썩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먹자…."
자리도 각자 앉을 수 있는 형편이라 나랑 희진이가 맞은편에 앉고, 상석은 녀석이 차지. 혼자 반찬 놓고 수저랑 젓가락 두면서 볶음밥 따로 담은 그릇 세 개에 국까지 짝을 맞춰놨다.
"…이히히히, 맛있겠다 오빠."
요리한 고생에 보람 있도록 기뻐하는 희진이 덕분에라도 밥맛이 없을 리가 없겠지. 하물며 녀석마저 내게 보내는 음침한 눈길을 거두고서 흥미롭게 볶음밥을 바라봤으니까 말이다.
"후-웅…."
이러니저러니 띄워 줘도 평범한 볶음밥. 계란후라이라도 얹을까 했지만, 계란은 딱 4개만 팔아서 불가능했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을게 오빠-."
식사를 하기 전에 인사를 나누는 건 희진이와 나뿐.
"킁킁, 냠-."
녀석은 이런 우릴 아랑곳 하지 않은 채로 수저를 들어서, 볶음밥을 한 숟가락 퍼내어 코에 가까이 가져가는 것에 괜히 눈치만 봐야 했다.
"…음, 맛있네."
그런 다음 내뱉는 한 마디가 신경 쓰인 탓에, 그런 녀석을 보고 안도하는 자신이 안쓰러울 따름.
"으-음. 마시따-아. 어때 언니? 언니도 맛있지?"
녀석이 먼저 맛있다고 했는데, 목소리를 너무 작게 냈는지 되묻는 것이 돼버렸다.
"…어, 맛있어."
어쩌면 보채는 것처럼 보여서, 그런 희진이에게 적당히 끄덕이며 대답해주는 녀석.
"그치 언니? 오빠 요리는 맛있다니까-. 요리에 소질 있나 봐 오빠!"
이어지는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른다는 단어를 몸소 체험했다.
"헤헤 무슨. 난 그냥 설탕남님을 따라 했을 뿐이야."
겉치레가 요란해서 배운 대로 했다는 정형적인 대답으로 쑥스러움을 표현. 오늘 희진이가 너무 날 비행기 태워주는데, 정작 희진이도 내 요리는 처음 먹어 본 거다. 내 갤러리를 같이 보다가, 예전에 요리했던 사진들을 보고 먹고 싶다며 얘기하긴 했어도.
"아무리 그래도 요리는 할 줄 알아야 한다니까 오빠. 암만 레시피대로 따라 해도 꽝손은 요리 못하거든."
나를 치켜세워주면서 덧붙이는 한 마디에 사연이 있어 보였다. 예전에 자기가 요리하다 실패라도 한 경험이 있던 걸까? 아니면 녀석이 의외로 요리를 했는데 맛이 없어서 관두기라도 했던 거라면 얼추 이해가 갔다.
"어 응, 뭐…맛있다니까 다행이네."
희진이가 말하면서 눈초리로 힐끗 녀석을 보나 살폈지만, 그런 기색은 없었기에 자신에게 하는 말인가 싶은 생각. 아니면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한 아무말일지도 몰랐다.
…알게 모람.
"움-. 우물우물…."
머리가 지끈거리게끔 수상해진 유추는 그만두도록 하고, 내가 만든 요리가 어느 수준인지 직접 먹었다.
"나쁘지 않네."
제 딴엔 객관적인 평가를 내려야 한다고, 여태까지 중에 가장 잘 됐으나 재료만 충분했다면 더 잘할 수 있었기에 내리는 평가.
"에-, 충분히 맛있는데 오빠?"
그러니까, 재료만 충분했다면 더 맛있을 수 있어서 박하게 내린 거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흐흫."
맛있다 맛있다 해주는 것도 너무 자주 하면 별로라서, 각자 삼 분의 일 정도 먹을 때까지 차분하게 식사.
"우물우물."
"후르릅."
"꿀꺽-."
오롯이 먹는 소리만 서로에게 들릴 뿐이었다.
"있지, 희진아."
"웅-, 왜 언니?"
그러다 침묵을 깬 녀석.
"상명이하고 상의는 언제 할 거야?"
상의? 나 몰래 이야기가 오간 거 같긴 한데, 새벽에 보냈던 토-크가 이건가?
"지금이라면, 나도 있고 하니까 이야기가 잘 통하지 않겠어?"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단 말도 있거니와 떠들지 않고 먹는 것이 식사 예절이기도 했다. 물론 어른이 질문하시면 입안에 먹던 것도 내뱉고 대답하는 것이라고 배웠지마는.
"우-음, 그렇긴 한데…."
녀석의 집에서야 녀석이 가장 윗사람일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나랑 동갑내기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둘 뿐인 상황에서 위아래를 논하기가 참 어이없는 실태.
"재촉해서 미안하지만, 되도록이면 빨리 결정해줬으면 해. 왜냐하면, 나도 좀 급하거든…."
도대체 무슨 일일까 궁금해지면서도, 희진이가 알만한 내용이라면 그렇게 자극적이지 않겠구나 안심했다.
"음-그럴까?"
어떤 내용일지 너무나 궁금해진 까닭에 희진이의 입술로 집중하는 시선.
"오빠, 언니가 나한테 부탁을 했는데."
했는데?
"오빠랑 나랑 하는 거 구경하고 싶데."
"쿠-훕, 컥! 컥-! 콜록콜록…!"
덜그럭 소리를 내며 의자가 시끄럽게 들썩였다.
"괜찮아 오빠!?"
다 먹었음에도 사레가 들려 뒤로 물러나는 몸.
"커-흑 커 흑 컥 컥컥…괜찮아, 괜찮…."
다급하게 다가오려는 희진이에게 손사래로 진정시키고는 자신조차 달래야 했다.
"쿠후후훟-."
그 와중에 들리는 저 얄미운 목소리.
"콜록, 러-흑…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