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볶음밥과 관음의 찬반토론(1)
그러니 희진이에겐 작전을 바꿔 동정심 유발하려는 기도가 삐끗하여 빗나가버린 예상.
그렇지, 그렇겠지…이게 정상적인 반응이겠지.
"그, 고맙지만…당장 야설 쓰는데 자료가 부족해서 너랑 상명이가 하는 거, 그걸로 충분하거든?"
견실한 의견 제시에 황급히 뒤를 도니까 놀란 눈초리로 희진이와 마주 보게 되었다.
"이제 와서 남자를 사귄다니, 언니 그런 귀찮은 거 질색이야."
건전하게 사귈 생각 없이, 단물만 쪽 빼먹고 싶은 욕심. 그에 상응하는 대가라면 지불할 용의가 있었다.
"그렇지만, 너희가 도와주면 굳이 힘들 것도 없고. 구태여 돈을 들인다면 차라리 너희한테 소비하는 게 맞지."
망가적인 망상도 해봤지만, 하나같이 결과가 썩 좋지 않아 보여서 그냥 희진이가 데리고 온 남친을 쏙 빼먹는 편이 여러모로 낫다고 느껴진 계산.
"맞아, 투자. 너희한테 언니가 투자할게. 그런 다음 소설이 완성되면 언니도 나가서 연애를 하던가 할 테니까."
여기까지 와서 무르기엔,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설득할 수 있다면 조금 과해도 괜찮았다.
"지금은 소설 쓰는 데 집중하고 싶어. 이게 완성되면 소설가로서도 제법 성장하는 거 같거든."
본연의 생각을 토대로 떠드는 거라 일말의 절실함이라도 느껴졌으면. 방법이라던가 방식이 다소 무식했지만, 희진이가 원하는 대로 사실투성이었다.
"들어서 알겠지만, 맨입으로 해달라는 거 아니야. 금전적으로 지원해 줄게."
어차피 녀석에게 돈을 쥐여주는 건 그른 거 같으니까, 차라리 이번을 계기를 통해 희진일 회유하기로.
"데이트하느라 돈 많이 쓰지 않아? 아니면, 상명이가 전부 부담해?"
희진이가 대답할 여유도 주지 않은 채로 계속 내 할 말만 해갔다. 쓸데없이 희진이에게 답할 시간을 준다면, 내 궤변이 통하지 않을 수 있었기에.
"이제 하고 싶은데 돈이 부족해서 속으로 삼킬 일 없이 해. 대신에 내게 알려주기만 해줘. 너가 상명이랑 있었던 행복한 일들을."
설명하면서도 속으로 어처구니없는 걸 간신히 진정시켰다. 스스로를 달래는 일…본인이 생각해도 얼마나 어이가 없었으면, 이따가 이불을 뻥뻥 찰지 걱정이 들었을까.
"………얼마까지 가능해 언니?"
그렇지만, 뜻밖에 권유가 통한 거 같은 희망이 생겼다.
"음, 백만 원."
더 큰 돈도 써 봐서 녀석과 희진이에게 줄 수 있는 한계치가 이 정도였지만, 학생에게 백만 원이란 혹하지 않고서 이상할 금액이겠지.
"허-억…!? 백만 원?"
희진이가 흥정을 할 줄 모르기에 넘어올 법한 액수를 말한 다음, 해주는 단계에 따라 가치를 매길 거다.
"물론 가장 높게 측정했을 때의 이야기야."
계약할 때 제대로 읽어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것과 비슷한 일례로써 대비하여 덧붙이는 사항.
"백만 원…."
역시나, 어려서 그런지 돈에 약한 듯싶었다. 이럴 거면 녀석한테도 처음부터 크게 부를 걸 그랬나 싶은 아쉬움. 그러나 지난 일이었다.
"돈 걱정 없이 둘이서 어디 여행 가고 싶지 않아?"
학생 신분으로 어디 갈 엄두가 나지 않겠지만, 그렇기에 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겠지. 녀석의 성격상 희진이가 해달라고한다면 최대한 해줄 녀석이고, 희진이는 그런 녀석의 성격을 잘 알아서 자신이 절제하며 만났을 거다.
"다다음주면 방학인데, 젊을 때일수록 하고 싶은 거 해야지."
겨우 두 살 차이지만, 오히려 이 차이가 적당한 지점. 고민할 거 없이 좋을법한 이야길 해주면 넘어오는 건 순식간일 거다.
"헤헤헤…."
아직 준다고 하지 않았는데, 무슨 행복한 상상을 하는 건지 헤퍼진 얼굴. 그래도 객관적으로 귀엽고 예뻐서, 언니인 내가 봐도 남정네들이 꼬일만했다.
"…괜찮은 제안이지 않아?"
혼자 즐거운 미래를 그려보는 것도 좋으나, 그렇다고 너무 풀어주기엔 지루해서 중간에 부르는 희진이.
"앗…!?"
그제야 정신이 돌아와서, 희진이의 욕망이 그렇게나 짙었었는지 몰랐다.
"그…오빠랑 내일 상의하고, 알려줄게."
그나마 마지막으로 녀석과 대화하여 여지를 남기겠다는 걸까? 그래봤자 녀석은 이미 내 손아귀라서 그리 걱정할 건 없어 보였다.
"그나저나 언니, 오빠가 준 선물 있잖아. 분홍색 커플링이더라?"
"음? 분홍색?"
달곰한 상상은 끝났는지, 다른 화제로 넘어가는 대화.
"언니 말처럼 초록색은 아니더라고."
"…그래?"
그래서?
어쩌라고…라고 말하려다가 공연히 심기를 건드려서 가까스로 성사되기 직전의 계획이 무산될까 봐 조용히 긍정해줬다.
"히히힣-."
질투하라고 되는대로 지껄였던 것이 그렇게나 마음에 담아 둘 일이었는지, 틀린 사실을 말하고선 히죽히죽.
"는실난실 아주 그냥…."
"이히히히히…."
솔직히 내가 원하는 건 녀석과의 찐득함이지, 희진이가 기뻐하는 건 보기 좋으면서도 오묘하게 신물이 났다.
희진이가 행복감에 젖어 있는 사이, 물 좀 마시고 오자 잠들어 있었다. 이걸 기회로 녀석에게 장난을 칠까 하다가, 혹시 함정이면 곤란해서 그만두기로. 이미 내가 이루려는 계획이 거의 완성 돼가는 와중이라 끝나기도 전에 그르친다면 타격이 어마어마했다.
"쿠-훟."
이런 부류의 이야기를 많이 읽은 덕분에 인내라는 교훈을 되새기며 컴퓨터 앞으로 이동하고 착석. 이 시간대야말로 글이 잘 써져서, 소설을 쓰기엔 적합한 상황이었다.
오후에 잠을 실컷 잔 거 같은데, 유난히 피곤한 느낌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하듯 잠이 들었던 거 같았다.
"끄-응, 끟-!"
찌뿌드드함을 물리치려 쭉-하고 켜는 기지개. 일어나자마자 낯선 천장에 주변을 둘러보니까, 희진이의 집에서 외박했단 사실이 떠올랐다.
"…후-."
혹시 녀석이 이상한 짓을 하진 않았나 둘러봤지만, 다행히도 그런 기색은 전혀. 하룻밤이지만, 뭔가 충실한 하루였던 기분이었다. 그대로 스마트폰을 보고 시간을 확인.
"…아-!?"
아직 새벽 다섯 시라는 부분보다 코-톡으로 온 두 개의 연락이 신경 쓰였다.
그러고 보니 어제 어머니께 제대로 연락 드렸어야 했는데….
희진이랑 희민이를 상대하느라 그럴 여유가 없었다. 서둘러 어머니께 답장하고 이어서 희민이에게 온 토-크를 확인.
─2019년 7월 8일 월요일─
by특별공수
[내가 겨우 희진이 설득했거든?]
[너랑 상의하고 대답한다 했으니까, 말 잘해라]_오전 1:40
"……?"
뭘…, 뭘…!?
대체 뭘 설득했다는 거고, 희진이는 나랑 무엇을 상의해서 잘 대답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일어나자마자 이딴 토-크를 보니까, 상쾌했던 기분도 사라져 깨져버린 산통. 모처럼 아침으로 볶음밥이나 해주려고 했는데, 고민부터 하게끔 해버린다.
"하…편의점이나 다녀올까."
그렇다고 하지 않을 건 아니라서 가볍게 스트레칭. 어젯밤 대충 둘러본 조리도구를 봤을 때 간단한 요리는 가능했다. 일단 재료가 없으니 편의점에서 사 오기로 하고, 점심은 마트에 들리기로. 편의점이 가깝고 편하긴 했지만, 가격대는 친숙하지 못해서 잡은 일정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요리를 하는 건 제법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께서는 우리를 위해 그렇게나 부지런하셨으니까.
"큼-…."
편의점에서 사 온 재료들을 탁자에 두면서 가볍게 상념하였다. 주방을 둘러보니, 다행스럽게도 깨끗한 상태. 이게 자주 청소해서 이런 것이 아니라, 그저 사용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점이 아쉽긴 했다.
"…쩝."
혹시나 해서 다시 열어본 냉장고는 썰렁 그 자체. 배달 음식들로 너저분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깔끔하다기엔 무리가 있었다. 싱크대를 기준으로 위의 서랍장은 그릇. 다른 곳은 뭐가 있을까 열어 본 오른쪽 위는 가루로 된 조미료들이 있었고, 아래에는 액체류의 조미료들이 존재하긴 했다.
"흐-음…."
유통기한을 보니까 아슬아슬한 기름통.
"킁킁킁."
그럴 리는 없겠지만, 상하지 않았을까 싶어서 냄새를 맡았다.
실제 소비기한은 더 길 테니까 먹어도 되겠지.
설탕은 덩어리가 되어서 부셔야 했지만, 곰팡이라도 피지 않은 게 어디야 싶었다. 혹시나 싶어 간장도 유통기한을 보는데, 여기 있는 조미료들 얼른 사용해서 없애야겠다고 마음먹게끔 했다.
'스으윽-'
가스레인지 아래에는 냄비라던가 프라이팬이 있어서 구색은 갖춘 상태. 프라이팬을 가스레인지 위에다 올려놓았지만, 불은 켜지 않았다. 볶음밥이란 음식은 금방 데워지기 때문에 재료부터 손질한 다음 하는 것이 보편적이라 꺼내는 도마.
'쏴-아'
파를 씻고, 식칼을 쥐어 파기름 내기 좋게 자르기로 했다. 손목을 사용하여 파의 물기를 털고는 도마 위로. 자셀 잡기 위하여 왼손은 주먹을 약하게 쥔 상태로 손가락 마디를 앞세워 식칼의 옆면과 마주 보도록 했다. 그러면서 대각선으로 비트는 몸. 식칼을 놓치지 않도록 하여 검지는 위를 잡아주고, 나머지는 손잡이를 쥐어서 오른발을 뒤로 뺐다.
'닥닥닥닥닥닥닥닥'
도마 위에서 퍼지는 경쾌한 식칼 소리. 이게 얼마만의 요리인지, 감상하면서도 솜씨를 발휘했다.
'토닥, 투-욱'
밥공기 하나에 쌓일 만치 썰어 둔 파. 세 사람분의 몫을 해야 해서 두 단 정도 잘랐다. 어차피 편의점에서는 딱 이 정도로 소분하여 판매했지만.
"흐흥-."
시험 때문에 공부하다가 오랜만에 요리하니까 기분이 좋아졌다. 차분해진다고 해야 할까, 마음이 놓이는 느낌. 특히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하는 요리란 사뭇 행복해서 맛있게 먹어줬음 싶은 소망과 정성이 함께 담겨져 있었다.
"…끙-."
물론 녀석도 함께 자리한다는 점은 유감스러웠어도.
'부스럭'
계란도 네 개를 꺼내 파 옆에다 두고서 즉석밥을 뜯었다. 나오면서 밥을 올리지 않았기에 선택한 방법. 쌀이 어딨는지 모르기도 하고, 즉석밥으로 하는 것이 편했다.
'띠리리링, 징-'
전자레인지에다가 하나만 넣고 돌리는 밥. 세 개를 다 하기엔 좁았고, 몇 초를 돌려야 할지 몰라 시간을 세 개 전부 맞춰서 하기에는 자신이 없었다. 어차피 볶을 거라 알알이 떨어지도록 데워지면 됐지마는.
"흐-흥."
먼저 밥부터 돌렸어야 했는데, 행복감에 이러니까 시간을 낭비해도 나쁘지 않았다. 이참에 국도 끓일까 싶었지만, 그냥 인스턴트를 사 온 거로 만족. 냄비를 꺼내 설명서에 쓰인 순서대로 넣었다.
'타다다다다닥 화르륵-'
앞서 놓았던 프라이팬보다 빨리 열을 받아, 옆에 있는 처지가 조금 웃기기도. 이제 간장하고 설탕을 꺼내 준비하니까 밥이 다 돼서 전자레인지를 열었다.
"음-."
즉석밥의 열기를 조심하며 손질한 재료들 옆으로 이동. 나머지 두 개는 공간이 충분해서
이 넣고 돌렸다.
'후와아아앙-'
화기로 인해 뒤늦게 환풍기를 틀고서 달구는 프라이팬. 기름을 두르고서 프라이팬의 손잡이를 잡아 잘 퍼지도록 좌우로 가볍게 흔들었다.
"으-흥."
프라이팬 위로 손바닥을 펼쳐서 온도가 어떤지 감지하니까 적당해서 그대로 쏟아 넣는 파. 팬 바닥이 긁히지 않도록 나무젓가락으로 휘적거리다가 프라이팬 손잡이 잡아 흔드는 것을 반복했다.
"…좋네."
부드럽게 올라오는 감흥. 파기름 향이 좋아서 한껏 코를 들썩이다가, 한쪽으로 몰아놓은 뒤 톡톡 계란을 깨뜨렸다.
'지글지글'
대강대강 달걀노른자를 콕콕 찍어서 휘젓다가, 흰자 주변의 기름을 빨아들이길래 파랑 위치를 변경. 그렇게 익으려 하자 파랑 섞이지 않게 옮기고 자리를 만들어 거기다가 간장을 네 숟가락 정도 뿌렸다.
'타아아악-'
바로 간장 타들어 가는 소리와 함께 퍼지는 불향. 타지 않고 수분만 날아가게끔 하기 위해 불과 떨어뜨리면서 손목을 잘 사용했다.
"흥흥-."
이윽고 불을 줄이며 간장에다 덧씌우는 계란. 마치 얼룩을 닦는 것처럼 비벼대면서, 남은 자리에다 설탕을 뿌려주었다.
'띠리로리 띠로-리'
마침 남은 밥도 익어서, 먼저 꺼냈던 밥을 넣고는 나머지도 똑같이. 그렇게 밥이 들어가니까 조금 빈곤해 보였던 프라이팬이 꽉 차 보였다.
"후-아."
이제 이것을 잘 섞어 볶아주면 그게 볶음밥이라, 바로 손목을 이용하기 전에 밥풀 하나하나 잘 뒤섞이도록 젓가락부터. 가능하면 나무 수저를 쓰고 싶었지만, 찾으려고 하기엔 늦어서 어렵사리 젓가락질했다.
'보글보글'
마늘이랑 다진 마늘이라도 있었으면 풍미를 더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던 차에 끓고 있는 국. 프라이팬의 가스레인지처럼 냄비도 불의 세기를 약하게 했다.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