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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6화 〉각자의 대실소망(3) (86/107)



〈 86화 〉각자의 대실소망(3)

"왜? 내 말이 틀려? 나이도 어린 것이 벌써부터 발랑 까져가지고."

이참에 희진이의 기를 누를 생각인지 반론할 틈을 주지 않았다.

"으으으으…!"

이에 희진인 반박조차 못 하고 그저 부르르.

"저, 어차피 각자 따로 자기로 했으니까, 밤도 늦었으니 이만 방으로 돌아가자."

더는 희진이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기 어려워 보였기에, 아예 중재해서 해산하기로 화제를 넘겨 봤다.

"하-, 상명이 넌 희진이 얘 하는 꼴 보면 몰라?"

그러자 불똥이 내게로.

"…모르겠는데?"

적나라한 언급은 피해서, 모르겠다 넘기는 편이 최선이었다.

"야바이 할 거잖아."
"…야바이?"

그게 뭐지? 일본어 같은데.

"그게 무슨 뜻이야 언니?"

가만히 듣고 있던 희진이도 물었다.

"…보쌈. 자는데 덮치는 거."

보쌈에 그런 속어가 있었다니….

"하하…."

어이가 없었지만, 희진이라면 그럴 거 같아 설득력이 있었다.

아니, 너야말로 전적이 있어서 그럴  할 처지가 아니지 않냐?

"…칫!"
"엫…?"

녀석에게 네가 그런  할 자격이 있느냔 눈빛으로 째려보다가, 부정하지 않고서 혀를 차는 희진이 탓에 뒤를 돌아보며 놀란 표정을 했다.

"아무튼, 얘 행동거지를 봐봐? 뭐…?    줄 알 아?"
"그, 그만해 언니-이…!"

내 반응에 헤헤거리다가도, 녀석이 쉴 새 없이 공격하자 부끄러운지 발끈하는 희진이.

"그럼 네가 선택해 봐. 셋이서 잘래? 아님, 희진이 넌 나랑 잘래?"

아까 내가 없을 때 둘이서 대화하는 걸 보면 희진이가 이긴 듯 보였지만, 지금 보니 이것을 위한 포석이었을지도 몰랐다.

"읏-…!"
"…끙."

둘만 있어서 방심한 틈을 타 약점을 포착하고 물고 늘어지기.

"…쿻-."

딱 녀석에게 어울리는 야비함이었다.



셋이서 잠들기엔 살짝 좁은 침대 크기. 그대로 누웠을 때 피부가 밀착해버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녀석을 가운데에 두고선 내심 그러길 바랐으나, 하는 수 없이 나랑 자기로 한 희진이.

"…쿡-."

같이 잠드는 건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이후로 손에 꼽을 정도였다. 제사를 지내고서 허전해진 집이라 혼자선 못 자겠다고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아이참-, 언니! 그렇게까지 감시해야 할 일이야?"

녀석을 불러내고 유혹하려다 실패해서 그런지 한층 짜증이 짙어졌다.

"너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해줄래?"

그렇다고 질세라, 우위에 서 있는 건 나란 사실을 재차 확인시켜주며 팔짱.

"으으으…칫!"

그제야 오늘은 대화 자체가 내게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순순히 욕실로 들어간다. 그렇게 희진이가 씻는  기다리고는, 나 역시 녀석에게 몰래 가는 걸 그만두기로.

"…칫."

준비도  된 채로 녀석과 대면해서 좋은 건 없었다. 하다못해 수면제라도 챙길까 싶었지만, 솔직히 오후의 일로 몸이 주접이라 섹스를 한다 해도 한 번이 최대. 심적으로는 희진이를 견제하느라 피곤한 것도 이유의 지분을 크게 차지했다.

"다 씻었어 언니."

몇 분인가 기다리니까 반쯤 감긴 눈으로 나오는 희진이.

"…어."

이렇게나 방해했으면 살벌하게 노려볼만한데, 도의적인 잘못을 인정하는지 뜻밖에 고분고분했다.

"훙…."

비록 살며시 삐쭉 튀어나온 입술이 지금 화 안 풀렸다는 걸 나타냈어도.

"…."

기다리는 동안 녀석이 훔쳐보나 싶어 안방 쪽을 쳐다봤지만, 특별히 그런 낌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에 잠들기 전 마지막 즐거움을 얻지 못한 채, 희진이를 데리고서 방으로.

"뭔가, 오랜만에 들어  기분이야."

남의 방에 들어와 놓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많은 생각이 들게끔 한다.

"…그렇네."

희진이가 내 방에 마지막으로 들어 온 것도 아마 녀석의 불알을 차버린 날.

"…."

오늘 자지가 잘 서긴 했지만,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아, 방에서 베개 가져올 게 언니."

생각해보니, 침대에 내가 쓰는 것들뿐이라 희진이 것이 필요한 상황.

"…같이 가."

이걸 핑계로 녀석과 밀회를 할지 몰라서 나가려는 찰나에 뒤로 붙었다.

"아니, 혼자서 가져올 수 있대도!"

그러자 내내 시달린 게 싫증이 났는지 신경질.

"혼자서 남친 만나러 갈 수도 있겠지."

이 정도야 봐줄 수 있지만, 언제 또 실컷 공격하나 싶어서 우선 제지부터 했다.

"진짜-아…! 금방 온다니까!"

진심으로 짜증을 내면서도, 간신히 인내하는 듯한 분위기.

"그래, 알았어."
"…힣."

흡사 별수 없이 허락했다는 투로 말하니까, 고작 이런 거로 좋아한다.

"다녀올게."

갔다 온다는 희진이에게 귀찮은 듯이 휘휘 손짓. 어차피 들키면  되는 물품을 제대로 숨겨야 하기에 잠깐은 없었으면 싶었다.

"쿠-훟…."

순진하긴.

희진이가 수면용품을 가지러 다녀오는 동안, 들키면 안 되는 물건들을 적당히 숨겼다. 특히 성인용품 위주로.

"금방 왔네…?"

서랍에 자물쇠를 걸자마자 희진이가 들어왔다.

"…훙."

마음에 들지 않는 태도를 고수하는데, 꼬우면 언니 하던가.

"쿻-."

자기 기분 안 좋다고 용을 써가며 광고해봤자, 그대로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자자…."

희진이의 방과 달리 내 방은 깨끗해서, 그대로 누우면 끝.

"…알았어 언니."

과거와 비교하면 많이 성장했어도, 베개를 끌어안은 채로 침대에 들어가는 모습이 흡사 나보다 키가 작던 시절을 보는 거 같아 감회가 새로웠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침대 속에서 희진이를 맞이한 것이 아니라, 희진이가 먼저 침대의 벽면을 차지했다는 거.

"…."

안쪽이 좋냐고 물으려다가, 좋으니까 들어간 거겠지 하고 불을 껐다.

근데 안쪽으로 가면 녀석한테 몰래  갈 텐데….

희진이가 녀석과 야밤에 만나지 못하도록 하는 건 어디까지나 보호자로서 대회적인 모습을 연출한 거였다. 실제로는 훔쳐봐도 좋으니까 배덕감을 탐미하여 격렬함도 탐닉했으면 싶은 바람.

"킇…."

아쉽지만, 만에 하나 있을 경우마저 차단한 거 같았다.

"히히히힣-."

그러다 느닷없이 웃어서, 기분 좋은 전조가 있으면 숨김없이 나타낼 때 이런 반응. 녀석과 같이 잘 기회를 뺏었는데, 그런 데도 좋은 걸까? 얘가 이러니까 밍밍해지려 한다.

"…잘자."

그래도 잘 자란 인사는 해야지.

"웅, 언니두 잘자."

실속 없는 말은 여기서 끝으로, 별다른 대화 없이 누웠다.

"………."

금방 눈을 감고, 옆에서 느껴지는 숨결을 감지. 쳐다보는 인기척이 느껴지긴 했으나, 그렇다고 상대할 마음은 없었기에 잠들려고 애썼다.

…너무 일찍 자나?

일반인과 비교하면 생활패턴이 박살 나, 바로 잠들긴 어려웠다.  그래도 녀석이 왔을 시기와 맞물려서 일어났으니.

'부스럭'

 자야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기에, 희진이가 잠들면 다시 소설이나 쓸까 해서 몸을 돌렸다. 물론 몸을 돌린 까닭이야 소설 쓰기 위함이 아니라 계속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부담스러워서.

"언니, 자?"

희진이가 나를 보고 있다 한들, 눈 마주칠 일 없이 돌았기에 눈을 떴다가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다.

"…아니."

누운 지 이제  분도 안 됐어 이 기지배야.

잠이 안 오는 건 희진이도 마찬가진지, 잠자리라고 진솔한 대화나 하려는 분위기였다. 마침 서로에게 한바탕했으니까, 슬슬 마음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꺼내도 좋을 듯싶은 생각.

"근데 언니, 오빠랑 나랑 하는  구경하겠단 말…진심이야?"

대화의 운을 떼는 것까진 좋았는데, 다짜고짜 정곡이다.

"…반은 농담이지."

여기서까지  고집을 부린다면 갈라질 수도 있을지 모를 불길함에 뒤로 무르는 본의.

"반은 진심이란 거네."

여전히 말장난이 존재했지만, 희진이 때문에 억지로라도 농이라고 했던 거였다.

"왜 동생의 남친에게 흥미를 가지는 거야?"

나도 탐탁지 않았지만, 자매랍시고 취향이 쏙 빼닮은 걸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그거 나쁜 거잖아."
"…."

아주 당연한 논리라서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세간의 시선도 그렇거니와 상식적으로 무척이나 지당한 소리. 남의 것을 탐내는 건, 나쁜 짓이다. 하물며 동생의 것이라면 두말할  없이.

"언니도 알지…?"

모를 리가 없었다.

"…."

모를 리가 없는데, 가족이기에  번 찔러봤던 시도. 남의 떡이  맛있어 보인다고, 먹음직스러워서 건드려 본 거다. 특히나 동생 거라 그런지 더욱 탐내고 있는 음탕한 속내.

"……."

이런 추악한 자신을 아예 모르는 건 아니라서, 등을 진 덕분에 껄끄러운 표정을 숨기며 괜히 부스럭거렸다.

…하-.

"있지…."

여기까지 온 이상, 진중한 이야기를 꺼내야 할 순간.

"조금 창피한 이야긴데, 내가 글 쓰는  알지?"

희진이의 보호자가  이후, 자금을 어디서 융통하냐면 부모님께서 남기신 재산으로 쓰고 있다고 알려줬다. 그러고선 추가적인 부분은 내가 글로써 번다는 대답. 어느 정도는 맞았지만, 희진이가 모르는 부분이 한 가지 있었다.

"응, 그걸로 용돈 벌이는 된다며 언니."

생활비 벌이라고 하기엔 부족하고, 용돈이라기엔 넘치는 정도.

"…쏠쏠하지."

사실 희진이에게서 나가는 비용이 컸다. 만약 둘이서 학교에 다녔다면, 대학에 졸업했을 즈음 부모님께서 남겨주신 재산을 탕진했을지도 몰랐을 미래. 더군다나 내가 알바하는  상상이 되지 않는 일이라 취미로 쓰던 소설이  좀 되길래 여기에만 매달렸었다.

"근데, 내용이 야설이야."

희진이도 야시시한 소설이란  얼추 알고 있겠지만, 관능소설인 건 몰랐겠지.

"…어, 응."

제 딴엔 용기 내서 고백했지만, 별로 개의치 않아 보였다. 하기야, 나도 본론은 다음으로 넘어가야 하지만.

"나 말야, 너한테 이런 이야기 하기 그렇지만…."

진짜 하기 싫었던 말, 이러니저러니 해도 굽히고 들어가게 되는 의미를 내포했다.

"남자 경험이 없어."

자존심에 관한 문제. 동생에게 너보다 내가 못났다고 자백하는 건, 몹시 추하고도 분해서 치가 떨렸다. 다 자조한 일임을 알고 있어도.

"그래 알아. 창피한 이야기인 거."

희진이의 같잖은 위로보단, 차라리 자조적인 말투로 떠드는 것이 나았다.

"동생은 자기 취향인 남자친구를 사겼는데,  언니라는 년은 남친은커녕 남사친 하나 없는 게 너무. 그렇더라…."

말을 하면서도 화끈거리는 얼굴은, 내게 아직 양심이란 단어가 남은 걸까 싶은 마음. 여기선 아집이란 표현이 떠올랐으나, 형편상 둘 다 그렇게 들어맞진 않았다.

"맞아, 열등감이야. 미안해."

희진이를 속이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필요했기에, 무릅쓰는 창피함.

"둘을 놀리고 싶은 거 이전에, …질투했어."

희진이가 지적했던 것처럼 일부는 사실이었다.

"나는 남자 경험도 없고, 집에서만 썩어가는데."

나름대로 감정적인 연기가 치달아서, 은근슬쩍 어깨를 떠는 꼼꼼함까지. 최대한 머리를 굴려 가며 말하면서도, 희진이의 시선이 등 뒤로 느껴지며 묵묵히 드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넌…!"

떨리는 목소리를 내는 동시에 주먹을 쥐고 움츠러드는 몸. 이제 말은 필요 없었다. 희진이가 어떻게 반응할지, 받아들일지가  도박. 여태 강하게 나가서 굴복시키려 했다면, 지금은 반대로 약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연민을 일깨우려는 작전이었다.

"…."

어쩌면 희진이가 나를 우습게 볼 수도 있는 최악을 초래할 수도 있었지만, 그거야 희진이가 나처럼 나쁜 마음을 먹었을 때의 이야기.

쿻-….

그래도, 급하게 생각한 것치고는 실패하지 않은 거 같았다. 그야 희진이가 상냥하게 어깨를 토닥여 줬으니까.

"미안해하지 마 언니."

쿠후훟…전혀, 미안해하진 않아.

"나야말로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래서 내가 이딴 싸구려 연극까지 해가며 구슬리고 있는 거다.

"…."

어깨로 얹은 손이, 살짝살짝 손가락으로 톡톡. 감동적인 장면을 부각하기 위해 뒤에서 끌어안는다거나 하는 점진적인 행동 양상은 없어서, 내게 간절함이 부족했나 싶었다.
하기야, 암만 가족이라도 자매끼리 이 이상의 스킨십은 꺼림칙하겠지.

"…언니."

여기서 무얼 더 해야 할지 고민하던 차, 희진이가 무언의 결심이라도 한 듯 말을 이었다.

"그러면, 내가 남소해줄까?"
"……."

다 넘어온 줄 알았는데, 그 방법이 있었네….

"그건, 나한테 좀 어려운 단계의 이야기 같은데…."
"아니야 언니. 이렇게 생각났을 때 확확 저질러 봐야 사회성도 생기고 남자도 생기지."

추진력을 운운하기엔 나도 한가락 해서 녀석을 자빠뜨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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