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4화 〉각자의 대실소망(1) (84/107)



〈 84화 〉각자의 대실소망(1)

여자의 직감에 무서워 표정에 드러나려던 차, 녀석이 말을 돌린 덕에 어떻게든 넘어간 모양.

휴-.

녀석이 희진이에게 다가가니까 살며시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릴  있었다.

"아, 웅-. 베갯속은 있는데, 피만 없어서."

대화에 나를 잊어주니 다행이란 생각만 막연하게. 머릿속으론 희진이를 위한다니 뭐니 떠들어도, 막상 진실이 탄로 나려 하면 추잡한 본성에 아무것도  하고 무력하게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그건 내가 따로 빼놨는데…같이 가자."

말하는 사이 어느새 희진이에게로 다가가 능청스레 방으로 돌아가려는 녀석.

"어, 웅! 언니."

녀석이 사이좋게 희진이의 등을 미는데 기운찬 대답이라 그곳으로 다시 눈을 돌렸다. 새로운, 어쩌면 본래의 자신을 깨달은 것과 별개로 오늘 처음으로 살벌하게 화목한 자매를 보는 기분.

"…하하, 하-."

희진이가 희한하게 군 것은 얼추 녀석에 대한 견제가 아닐까 싶은 예상을 했으나, 녀석의 사연을 듣더니 이해하고는 밝아져서 여전히 헤아리기 어려웠어도 좋은 게 좋은 거지 싶어 그냥 웃기로 했다.

"하-아…."

그런데도 나오려는 한숨 겨우 내뱉어 진정시키는 속. 희진이가 있어 안심인 것이 아니라 녀석이 있어 염려스러움에도 녀석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단 사실이 분했지만, 이미 호랑이 굴에 들어온 사실을 뒤늦게 깨달아봤자 도움 되는 건 역시 속담처럼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게 과연 녀석에게 먹힐지 의아했어도.

"…제길."

나는 대체 여기까지 와서 뭘 하는 걸까? 그리고, 뭘 하고 싶은 걸까? 녀석의 농간과 이해하기 어려웠던 희진이의 행동. 그리고, 그런 둘 사이에서 농락당하기만 하는 자신….

"하-…!"

스스로 화를 내는 것도 한두 번이지, 변하지 않는다면 반성해도 무슨 소용이 있을까? 대책을 강구해도 소용없다면 차라리 희진이에게 사실대로 말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그건 최후의 수단이었다.

"…-."

지금은 어디까지나 녀석을 피해 다니며 대항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란 것을 다시금 상기해도 현실은 너무나 무참하게 놀아지고 있었다.
마치 장난감처럼….

"…아-!"

자괴감에도 적응해서인지, 와중에 딴생각이 나서 벽에다 뒀던 가방으로 이동하고는 가장 마지막에 챙긴 선물을 꺼내 테이블로 두었다.

"헤헿-."

그리곤, 받아 줄 상대방의 모습을 예상하자 괜스레 입꼬리가.

"큼큼…."

심각해질 뻔한 생각에 이런 웃음 지을 처지가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희진이 생각을 하면 감정이 이래저래 요동쳤다.

좋아해 줄까? 선물이긴 하지만, 너무 갑작스럽지….

문득, 나는 희진이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그런 보면 알  있는 정보 말고, 완전히 희진이에 대해서.

"-…."

두 모금 마신 주스를 다시 입에 대려다가 멈추고는 상념에 빠졌다.

나보다 두 살 어린 연하의 여자친구…씩씩하고 밝은데 다소 짓궂지만, 그게 전혀 기분 나쁘기는커녕 좋기만 해서 신기한. 육감적인 몸으로 스킨십을 장난삼아서 하는 주제에, 손을 마주 잡는다거나 하등 소녀소녀한 행동에 대해서 확실히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지닌…사랑스러운 여자애.

"……."

귀여운 것을 좋아하면서 내게 공포 영화를 보여주는 건 어디까지나 나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지, 본인도 조금 으스스한 듯하여 간혹 떨림을 느낄 때가 있다. 게다가 그걸 빌미로 나를 달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접촉은 몹시 만족하는 모양. 그리고, 오늘에서야 느낀 건…생각보다 질투심이 강하다는 거.

"…."

무슨 이유에서 그런 건지 몰라도, 녀석을 경계하는 투로 봤을 때 혹여나 비밀을 알게 된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냥 솔직하게 말할까?

용기를 내어 고백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도, 녀석을 상대함에 따라 희진이에게 면목이 없어져서 실상을 털어놓고 싶은 욕구가 강해졌다.

"어…고생했어."

생각에 그리 깊이 빠진 건 아니라서, 희진이가 방에서 나오자 바로 고생했다는 말. 이후 따라 나온 녀석과 눈이 마주치자 나도 모르게 눈을 피할 뻔한 걸 겨우 참았다.

"웅-! 오빠, 히히히."

평소와 다름없는 활기찬 표정에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건 역시 사랑해서일까? 그런 것치곤 녀석과의 대처가 무척 꼴불견이어도…. 사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에 괴로운 거였다. 변명할 생각은 없지만.

"이제 씻고  거야 오빠?"

다시 근심에 빠지려 하자, 감사하게도 그러지 않게 희진이가 물었다.

"어-…."

시계를 보면 벌써 주말을 넘긴 시각. 오후에 실컷 자뒀지만, 지각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누워야 하는 것이 맞았다.

"간단히 세안하고, 자야겠지?"

샤워하기엔 이미 자정이 지난 새벽. 녀석이 있어 아쉬웠지만, 말마따나 녀석이 없었다면 주체하지 못하고 희진이랑 뒹굴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실제로 그런 생각에 찾아왔다는 걸 묻는다면, 부인할 수 없을 테니까.

"헤헤…웅, 그래야겠지?"

아쉬운  나뿐만이 아니라서 방해물이 돼버린 녀석에게 몰래 눈길을 살짝 보낸 게, 필시 장난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졌기에 그런 거 같았다.

"그럼 씻고 올게."

입술이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우물쭈물하고 있어도, 시간을 낭비했다간 녀석이 또 위험한 발언을 해버릴까  컵을 놓고서 둘을 지나쳤다.

"어, 웅-. 다녀와 오빠."

그에 애교를 섞어 보내주는 희진이. 아직 테이블 위에 먹다 남은 음식이 남았지만, 먹고 싶은 맘은 없어서 나를 배려하여 편히 씻게끔 도와준 거 같았다.

"응, 읕…!"

비록, 고개를 돌리기 전에 녀석과 눈만 안 마주쳤다면 불만 없이 매우 좋았겠지만.

녀석이 씻으려고 지나가길래 이유 없이 눈웃음을 몰래 보내니까 그  수 없음에 당황한 표정이 재밌었다. 우연히도 희진이가 고개를 돌려 이런 우리의…나의 모습을 봤다면 다시 추궁할지 몰랐을 테지만, 이런 스릴이야말로 따분한 일상의 재미였으니까.

"쿠-쿡."

소파를 바라보자 이미 앉아 있는 희진이. 순진한 얼굴이 남자친구를 뺏겼단 사실을 안다면 과연 무슨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져서 음흉한 미소 감추기 어려워졌다.

"왜 그래 언니? 기분 나쁜 웃음을 하곤? 생리야?"

…야발련이?

버르장머리 없는 모습이, 그래도 이제는 가소롭기만 느껴져서 살짝 불쌍하기도. 녀석 앞에선 내숭을 떨더니만, 내가 어지간히도 거슬리는 모양이라 그간 숨기던 더러운 성질을 바로 내보인다. 녀석의 약점이 얘였던 것처럼, 얘도 녀석을 건드리니까 쉽게 흥분해서 둘을 골려주기가 이렇게나 쉬울 줄이야.

"쿻, 너야말로 야밤에 진득하니 하려고 남친이나 꼬드긴 주제에 잘도 떠든다?"

희진이랑 티격태격하는 것도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요즈음 조용하다가 녀석을 걸고넘어질 때마다 반응이 천차만별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고 있어도,  남친은 지 거라는 소유욕이 강해서 그런지 슬며시 탐을 내면 귀신같이 알아차리곤 철벽.

"어제도 했으면서, 그렇게도 니 남친이 따먹고 싶었니?"

이래서야 하나의 계획으로 남겨 둔 녀석과의 관계를 알려줌과 동시에 희진이는 애인 관계를 유지하며 나 또한 섹파를 그대로 이어 하는 작전은 손도 못 쓰고 파기해야 할 느낌이었다. 가장 이상적이지만, 어디까지나 나로 한정 지어 말 하면이니까.

"그건…! 그래서, 왜? 하면 안 돼?"

팩폭으로 말이 막히자 되려 막 나가려는 듯한 말투, 예상했다.

"안 되긴,  될 거야…없지."

대신, 구경 시켜 달라고. 너희의 그 풋풋하고 음란한 몸짓을 말이야.

"…정말!?"

심통 부리던 얼굴을 반색하며 화색이 돌아 정말이지, 녀석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어제 처녀를 깨지 않았나…?

내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음흉하다.

"물론, 내가 내민 조건을 수락한다면."

두  말하면 입 아프기에, 내가 제시한 것이 무엇인지 희진이는 알았기에 구태여 이어 말하지 않고 다무는 입.

"그…, 정신 나간 개소리?"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직설적이라는 것은 제법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어감이 틱틱거려서 말투가 상대방 듣기 좋지 않았으니까.

"-…."

샐쭉샐쭉 움직이려던 입꼬리를 겨우 틀어막자, 어금니만 굳건히 닫게 된다.

"언니…만화 너무 본 거 아냐?"

씁, 부모님에게서 듣던 말을 얘한테서 들을 줄은….

고리타분하긴.

부정할 수 없는 게, 그런 소설을 쓰고 그런 내용을 자주 접하다 보니 나도 현실과 망상에 분간이   될 때가 있다. 그래서 스스로 조금 그 위험성을 자각하고 있긴 했어도.

"난 언니가 그게 장난인 줄 알았는데, 진심이었어…?"

정색하며 심각한 얼굴을 하자,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기도 힘들어진다. 양심에 찔리게 이런 행동을 보이니까 마치 내가 진짜 이상한 거 같아서….

"너야말로 너무 보수적인 거 아니니? 요즘 세상엔 연인은 없어도 섹파는 한두 명쯤 있다잖아."

말싸움에 논리가 흐트러지기 시작하면 개싸움이 된다. 그렇다면, 최대한 뻔뻔스러운 얼굴로 태연하게 내 말이 맞는다는 듯이 팔짱을 끼우기로.

"쪼잔하게시리."

말도  되는 사족을 덧붙이며, 내가 옳다는 분위기를 내비쳤다.

"…섹파?"

큿-….

마음을 가다듬자마자 무심코 본심을 말해버려서 들통나는 건 아닐까 싶은 걱정. 듣기 껄끄러웠는지, 미간이 심히 찌그러져서 다시 생각해도 너무 어처구니없이 내뱉었다고 후회했다.

"네 남친도 그래, 내일 학교 가야 하는데. 그것도 야밤에 네가 보고 싶단 순수한 마음으로 부모님도 설득하고 여기까지 왔다고? 쿠후후훕!"

주도권은 말꼬리를 잡는 쪽에 있으니, 섹파란 단어에 의식하지 못하도록. 적나라한 둘의 태도를 지적했다.

"계기가 뭐? 알몸? 쿱!  동생이지만 너무 무대책인 거 아니야? 자기도 마찬…킥! 자긱킥킥킥!"

그거까진 좋은데, 무심코 녀석을 자기라고 부를 뻔해서 한 번도 보이지 않은 웃음소리를 보인 나머지 이걸 가지고 태클 걸지 않으면 좋을 텐데 하며 노심초사.

"으으읗…!!"

겉으로는 심히 무표정이려 노력하는데, 그게 맘처럼 되지 않으니까 더욱 조급해지는 거 같았다.

"있잖아 너, 저게 뭔지 알아?"

취미의 영역을 존중하기 어렵게 걸고넘어지면 어쩔 수 없이  말이 없어져서 다른 주제로 돌리는 화제. 그렇게 급히 눈알을 굴리다가, 테이블 위를 보니까 오늘…시간을 보면 어제 오후에 희진이에게 주려고  놓은 선물이 놓여 있는 걸 확인했다.

"…?"

당연히 희진이는 모르는 표정으로 보고 있어서, 알고 있다는 우월감에 씰룩이는 입가는 이제 다른 의미로. 단순히 아는 것에 그쳐서 웃음이 나오는  아니라, 이걸로도 희진이랑 녀석을 어떻게 골릴까 싶은 생각에 따라서였다.

선물해준 것과 같은 물건이 내게서 나온다면 대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의심? 당황?

도저히 우연이라고 하기엔, 정황상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적어서 자기만을 위한 선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희진이라도 알 수 있을 거다.

"…저게 뭔데 언니? 오빠가 가져온  아니야?"

척 봐도 선물이라고 광고하는 듯한 포장. 안의 내용물을 본다면 포장지의 색감에 비해 제법 초라해서 기대만 하다 실망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그런 사소한 변화를 시작으로 둘 사이에 금이 가고, 그런 녀석을 내게서 더욱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올가미를 매어 내게 의지하는 편도 괜찮겠지만.

"…그-을쎄?"

솔직히, 귀찮을  같았다. 내가 원하는  연인이 아니라 연인 행세에 가까운 섹파였으니까, 연애 같은 건 재밌어도 금방 식어서 번거로울 게 뻔하기도 하고.

"사실 맞아, 아마도 네게 주는 선물이겠지."

오늘 헤어지기 전에 그런 이야기를 했었으니까 틀림없었다.

"오빠가?"

그때 제대로 듣진 않았어도, 포장할 때 봤던 것과 똑같으니까 분명 맞겠지. 연인행세였지만, 애인에게 받았다는 가정하에 순진하게 기뻐해서 만지작거리느라 정신이  대로 팔렸었다.

"그래. 상명이가."

놀란 것도 있지만, 조금 감동한 눈빛. 그걸 녀석이 직접 말해주고 건네줘야 기대에 대한 보람이 배가  텐데, 가로챈 건 미안한 감이 없잖아 있었으나 입조심을 못 한 까닭에 나도 급했다.

"근데, 안의 내용물이 궁금하지 않아?"

내 거랑 똑같은  포장했을 테니 머리핀인 걸 알아도, 지금 중요한  정체가 아니라 다른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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