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대놓고 몰래 남친 희롱하기(3)
"…아."
이윽고 돌아가는 뒤태에 저항 한 번 못하고 그저 쳐다보기만 하다가, 초점이 돌아오자 눈에 들어오는 건 살랑이는 민소매에 맨살이 비치는 등이었다.
"펩-! 으으!"
뒤늦게 저항의 의미로 입술을 팔등으로 박박 닦았지만,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녀석이라 소용없는 짓. 특히 거기는 반응하여 발기해버린 까닭에, 이미 언제라도 상시 일어날 수 있는 상태라 꿀떡하고 목 넘기는 소리만 강렬하게 귓가를 울렸다.
"당했네…."
그렇게 현혹돼버린 자신에게 얼굴을 구기며 작게 불만을 독백. 본능이야 어쩔 수 없이 발기한 사실을 그리 숨기려 하지 않았어도, 눈 뜨고 코를 베이니까 사소한 반항조차 보여주지 못한 자신에게 화내지 않을 수 없었다.
"…제길."
밤중에 부모님께 허락도 받고 희진이랑 꽁냥거리느라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는데, 녀석이란 방해물이 생기자 어떤 식으로 농락을 해올지 경계해야만 해서 썩 좋지 않은 기분. 명백하게,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후-…."
때마침 전자레인지 알림이 들려 데워진 도시락을 꺼내곤 다음 것을 넣어 맞추는 시간. 조작하여 작동하자, 또 녀석이 수작을 부리는 건 아닐까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보았다.
"읗-…!"
그러자 소파 등받이에서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린 녀석과 눈이 마주쳐 흠칫.
"쿠-훟!"
그러면서 기분 나쁘라고, 가증스러운 눈웃음을 보였다.
"아, 하하…."
어디까지 읽혔는지 몰라도, 예상했다는 표정. 녀석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꼴이 아니었으면 하고 바라봤자, 애처로운 소망일 거다. 이래선 역설적으로 협박의 인질인 희진이랑 붙어 다녀야 녀석의 농간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를 일.
"움? 얼마나 남았어 오빠?"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희진이가 들어오자 녀석 때문에 발기한 것을 황급히 숨겼다.
"어? 응…!"
그렇게 화들짝 놀라며 몸을 돌렸다가 알맞게 소리 내는 전자레인지를 열고서 꺼내 탁자로.
"이제 하나."
세 개 사 온 것을 확인했기에 묻는 건 아마 시간일 테지만, 그래 봐야 겨우 이 분이 조금 되지 않아서 남은 하나를 데우려고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언니. 밥 거기서 먹을 거야?"
보아하니 밥상은 주방의 식탁인 이곳과 거실의 소파 앞 테이블을 사용하는 모양새. 들었으면서 티브이를 보느라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 걸 보아하니, 녀석의 뜻대로 꼼짝없이 식사하려면 저곳으로 가져가야 했다.
"…어."
녀석의 대답에 도시락 뚜껑을 벗기고 이동하는 희진이. 동시에 두 개를 들기엔 뜨거워서 나 하나 희진이 하나 들고 남은 건 아직 전자레인지 안에 있었다.
"남은 하난 내가 가져올게."
일 분이란 시간이 짧은 듯 길어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각을 확인하며 대기. 갓 나온 요리만큼은 아니었어도, 나름대로 구미가 당기는 냄새를 풍기길래 자연스럽게 군침이 돌았다.
"헤헿-."
다 됐다는 알람이 울리자 뚜껑을 탁자에 두고 도시락은 테이블 위에다 올린 뒤 소파로 앉으니까 드는 위화감.
"…응?"
"…."
"…쿻-."
어쩌다 보니, 가운데에 녀석이 앉아 희진이랑 내가 떨어지고 말았다.
"…쿠쿡-."
"……."
"머, 먹을까?"
내가 도시락을 데우는 틈에 희진이는 젓가락을 챙겨서 각자 앞에다 두었기에 먹기만 하면 되는데, 집주인인 둘 다 조용하길래 눈치 보다가 어쩔 수 없이 내가 먼저 먹자고 신호.
"…쿠-훗."
애매한 기류가 흐르는 것을 직감이 알려주고 있었다.
"웅, 그러자 오빠. 잘 먹을 게-."
녀석 너머로 싱긋 웃는 희진이를 보며 나 또한 미소.
"쿻, 나도 잘 먹을게."
그대로 먹으려다 녀석의 인사에 놀란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냠-."
그에 비해 이런 나를 흘깃 쳐다보고는 식사에 집중하는 희진이.
"…."
애초에 녀석은 우리 둘 사이를 갈라놓고만 싶었는지, 가운데로 들어와 원활한 대화가 어렵게 했다.
"웋…!?"
막 젓가락으로 밥을 집고 입에 넣으려니까, 옷자락 속으로 들어오는 손길이 옆구리를 간지럽히다가 금세 등허리로 이동해서 씹으려던 입이 멈칫.
"어? 왜 그래 오빠?"
희진이에겐 사각이라 보이지 않은 틈을 보란 듯이 이용해서 내 목소리에 반응해도, 희진이는 아마 이유까진 알 수 없을 거다.
"아, 아니야."
녀석의 성희롱에 내색하지 않으려 했어도 주저 없이 주물러대니까 왠지 부끄러워지는 기분.
"채널 딴 데 틀까?"
"괜찮아. 그냥, 반찬으로 하나 더 사서 중간에 놓으면 어땠을까 생각이 나서."
거북한 티를 최대한 안 내려고 해도, 희진이의 배려에 그럴싸한 다른 이유를 설명해줬다.
"끟…."
"쿡…."
먹을 때 개도 안 건드린다고 하는데, 희진이가 다시 식사하려 고개를 돌리니까 내게로 살며시 얼굴을 보이고는 히죽. 왼손으로는 나를 능욕하고 오른손으로는 잘도 젓가락질해서 아주 대단한 멀티태스킹이었다.
"끙…."
녀석의 행태를 희진이가 알지 못한다 해도, 바로 옆이나 다름없어서 불편한 신음조차 맘 놓고 낼 수 없는 상황. 간혹 쳐다보는 희진이에게 의심을 사지 않으려고 표정 관리에 힘을 썼다.
"쿻-."
그럴수록 녀석의 손짓은 더욱더 대범해질 따름. 그나마 다행인 건 드러나지 않게 척추와 등 근육 중심으로 손을 놀리는 거였다.
"흫…!?"
그렇게 상체에만 감촉이 느껴져서 안심하고 있다가, 금방 바지춤을 벌려 손을 집어넣으니까 곧게 펴지는 허리.
"…응? 오빠?"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놀란 음성을 내버려서 변명할 것을 신중하게 생각해야 했다.
"아, 좀 매워서…하하."
마침 주어진 양에 비해 많은 와사비를 날름 혓바닥에 올린 뒤 조심스레 휴지로 뱉어서, 눈물 글썽이도록 눈망울에 물기를 생성하니까 믿는 눈치.
"으이구! 조심 좀 하지 오빠."
녀석이 가운데 있어서 저기압이라 굳은 것으로 추정되던 희진이의 표정이 가벼워지자 속으로 안도했다.
"하하하하, 그러게…."
그렇게 다급했던 것치곤 차분하게 대답했으나, 엉덩이에 감촉이 자꾸 웃는 얼굴을 유지하지 못하도록 방해해서 눈꼬리가 부르르 씰룩.
"…!?"
대체 얼마나 괴롭혀야 속이 편할는지, 팬티 속으로 훅 들어 온 손길에 계속 심장이 뛰었다.
"쿻-."
그런 내 상태와 별개로 꾸준히 음흉한 눈가를 노골적으로 흘려서, 진심으로 싫었음에도 어쩔 수 없이 마주치는 눈길.
"읗-…!"
자연스럽게 먹으면서 희진이의 반응을 살펴봐야 했기에, 중간에 걸친 녀석을 볼 수밖에 없는 건 정말이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응응, 맛있네-!"
먹으면서 대화 없는 소통이란 의미가 다채로운 음식 여기저기 살피며 환호하는 눈빛이라던가, 음식물을 입가로 가져가기 전에 코를 가까이하여 살며시 꿈틀거리는 콧가라던가 하등 그런 거라서 마주 보지 않고야 알아보기 어려운 동태. 특히나 구태여 고개를 돌려가며 먹는 모습을 확인하는 것은 힘들었기에 입은 우물거리기보단 과장 된 표현으로 소리 낼 수밖에 없었다.
"히힣, 역시 우리 오빠야. 음식 고르는 센스 있다니까."
그게 통했는지 무색해지지 않도록 받아주는 희진이. 그렇다고 녀석의 희롱이 끊기는 건 아니라서, 표정 관리를 의식하며 입을 움직이느라 어금니 부분의 근육이 아파졌다.
"내일은…어렵겠지만, 나중에 집에서 오빠가 해준 음식 먹고 싶은데. 괜찮아?"
안 그래도 이젠 오른쪽을 넘어 왼쪽 엉덩이를 잡혔는데, 아랑곳하지 않고서 주물럭거리는 나쁜 손의 주인에게 보내는 시선.
"어, 으응. 물론 괜찮지."
이야기 자체는 나를 보면서 묻는 거지만, 어찌 보면 녀석에게 허락을 받기 위해 더욱 각도를 돌린 고개였다.
"…소바."
아무렇지 않은 연기가 생각 외로 나보단 녀석이 능한 건지 쉴 새 없이 볼기의 살집을 잡았다가 주무르면서도 태연한 척하며 넌지시 내뱉는 단어.
"응?"
허락 아니면 거절의 말을 기다렸는데, 얼핏 들었던 음식 이름을 말하자 그것이 무엇인지를 열심히 생각했다.
"만들어 주면."
아, 소바. 기억났다.
"만들 수 있어 오빠?"
녀석의 말에 곧장 받아서 가능한지 묻는 희진이. 그렇게나 내가 만든 요리를 맛보고 싶은 건지…의아했으나, 취미일지언정 누군가 내 요리를 맛있게 먹어준다면 좋았기에 딱히 상관없었다.
"어? 응…그야 뭐, 만들 수는 있지."
어려운 것도 아니고…더군다나 각별하게도 그 음식을 먹는 상대가 사랑하는 연인이니까, 거절할 수 있을 리가. 해달라는 사람은 따로 있었지만.
"헿-, 그럼 언제 가능해 오빠?"
요리해주기로 정해졌다는 사실에 기뻤는지, 불쑥하고 희진이의 어깨가 앞으로 나온 덕분에 녀석이 나를 괴롭히던 손을 거둬들인다.
"휴…음, 글쎄?"
시험도 끝났으니 오전 수업 이후 바로 집으로 가면 점심에 맞춰서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내일도 괜찮아 보였다. 그러나 집에 들렀다 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희진이의 집에 온다고 생각하니 왠지 석연치 않은 마음 한구석. 부모님께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나왔는데, 다음날마저 가족을 우선하지 않고 다른 곳에 들리니까 그런 거 같기도 했다.
"내일 점심은 어때?"
그러나 그런 생각이야 어디까지나 생각에 불과해서 본심은 숨길 수 없이 저절로.
"점심에 바로? 학굔 몇 시쯤 끝나는데 오빠?"
"열한 시 이십 분?"
시험이 끝난 까닭에 내일부터 방학을 대비하여 정리의 시간을 준다. 그렇기에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것이 우리가 할 일. 번잡스럽게 굴 거 없이 앞으로의 일정을 알고 자신만의 계획을 세우면 되는 거였다.
"나랑 비슷하게 끝나네?"
그야 학교는 달라도 틀은 어딜 가나 비슷할 테니까.
"그럼 내일 소바 해줘 오빠."
"알았어."
이걸로 내일 점심에 대한 일정이 정해졌다.
"히히히…."
"훟-."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다시 식사하는 모습에 괜스레 미소가. 녀석의 손길이 언제 다시 뻗칠지 몰라 불안했지만, 희진이의 즐거운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편으로는 한숨을 내뱉었던 양쪽 가슴이 가벼워졌다.
"근데 있잖아, 언니."
그런 기분 얼마 채 가지 않도록 녀석에게 싸늘한 기색의 말투를 뱉는 희진이.
"굳이 여기 앉아야겠어? 오빠 옆은 연인인 내가 앉는 편이 더 알맞지 않을까?"
나도 하고 싶었던 말을, 기어이 희진이가 꺼냈다. 그러면서 녀석이 과연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여 고개를 돌리니까, 어째선지 웃는 얼굴의 희진이가 섬뜩했던 건 눈만 웃고 있었기에.
"우물우물."
그걸 또 녀석은 태평한 얼굴로 무시하며 입에 든 음식물을 마저 씹고 있었다.
"…쿻, 그렇네?"
그러고선 한다는 소리가 고작 그렇네….
"…."
묘한 긴장감에 아까와 다른 의미로 표정이 얼어붙는 것을 감추기가 어려워졌다.
"알겠지? 그럼 자리 바꿀까 언니?"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이 희진이의 입에서 나와 혹시나 한 기대감.
"싫어."
하지만, 녀석은 간단하게 거부했다.
"…."
의미심장한 기류에 함부로 입을 열기 어려운 분위기. 여자들끼리의 은근한 신경전이라고 인터넷에서 본 기억이 났다. 그러나 희진이랑은 이미 연인이기에 나하곤 그리 관계없는 이야기라서 등한시했는데, 설마 자매 사이에 껴서 은근한 경쟁을 보게 될 줄이야….
"…왜?"
희진이가 본다면 그저 동생을 놀리는 짓궂은 언니로 볼 수 있어도, 희민이랑 몸을 섞은 탓에 이러한 심술은 농담 반 진담 반이라 가볍게 볼 수 없는 처지였다.
"바꾸기 귀찮잖아? 이제 와서."
여기서 희진이의 눈동자가 보이지 않더라도, 분위기가 마치 노려보는 듯한 착각이 드는 상황. 그런 무서운 얼굴을 할법한 희진이를, 희민이는 정말 간결하게 대답하고선 꿋꿋하게 우물거렸다. 이러한 여유를 보이는 건 아마 동생이니까 그리 무섭지 않아서겠지.
그게 아니면 대체….
"언니, 왜 자꾸 끼어들어?"
여기서 녀석에게 불만을 쏟는 건 희진이었다. 시작했다고 알 수 있었던 건 공기의 변화라던가 그런 추상적인 것도 있었지만, 말투가 확실히 공격적으로 변했다는 점에서.
"저번에도 그랬어. 오빠랑 단둘이 데이트하는데 언니가 굳이 옆에 있을 이유가 있어?"
저번이란 건 유월 즈음의 일인 걸까? 살짝 가물가물하지만, 녀석의 첫인상이 강렬해서 잊진 않았다. 중재해야 하는데, 잘못 끼어들었다간 불똥이 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렇다고 말리기엔 껴들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 있었다.
"어머, 너희 지금 이 늦은 시간에 우리 집에서 데이트하는 주제에 그걸로도 모자라 집주인인 날 내쫓을 셈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