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대놓고 몰래 남친 희롱하기(2)
"쿠-훗. 좋겠네, 젊어서."
겨우 두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주제에 어른인 양 유세를 부린다.
"그래서, 이 밤에 난 어디로 가야 할까? 아직 밥도 못 먹었는데…."
넘어가 주기만 해도 천만다행인데, 설마하니 또 비워주려는 걸까?
"아니야, 언니. 가긴 어딜 가…."
미안해서라도 뻔뻔하게 그러진 못 하겠다.
"뭐야? 둘이 밤새 질펀히 할 생각으로 만난 거 아니야?"
저자세로 언니를 말리니까, 기세등등한 표정이라 연기였다는 것을 의식. 그래봤자 항변할 처지가 아니란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언니도 참-! 너무 그러지 마…."
은근한 질책과 비아냥에 정곡이라 더욱 할 말이 없어지는 실정.
"쿻-, 그래."
그래도 뜻밖에 겨우 비웃음 한 번으로 끝내주고는, 등을 돌리고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휴-."
놀렸다면 한참을 실컷 놀렸을 텐데, 성격이 많이 누그러진 건지 예전처럼 무섭지 않아서 안도. 이렇게 되자 오빠에게 얼른 전화해 도시락 세 개랑 과자, 케이크 등 언니가 좋아할 만한 거로 사 오라고 해야 했다.
"여보세요, 오빠?"
다름이 아니란 소리와 함께 서둘러 추가적인 사항을 말해주니 알았다며 대답하는 오빠. 설명이 짧았어도 이해하고 믿음직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끊어서인지, 괜스레 안심되었다.
"…진짜 알몸으로 기다리려고?"
때마침 언니가 나와 계속 현관에 서 있는 나를 보고 야유.
"아, 아니야!"
언니에겐 오빠가, 내게는 언니가 불청객인 상황에서 언니를 거실로 이끌고 소파에 앉혔다.
"저녁 주문했어?"
"아니, 별로 먹고 싶은 게 없어서…오빠보고 도시락 사 오라고 했어."
테이블 위의 배달 책자를 보고 묻는 거 같길래 콘돔 이야기는 빼고 대답.
"그래? 그럼 난 과자 먹어야지."
"으-음 언니. 안 그래도 언니 것도 같이 사 오라고 했으니까, 같이 먹자. 히-힛."
어깨를 잡은 두 손으로 느끼는 피부 감촉이 조금 민망한 복장이라 거슬렸어도, 오빠를 불러놓고 저녁까지 챙기지 않았다는 사실이 들통나면 누구라도 삐진다. 저번에 깜짝 생파 관련해서 오해로 냉전이 있었던 터라 그런 분위기가 꺼려지기에 곤란해도 최대한 맞춰주려는 기분. 분명 오빠도 부모님께 비슷한 느낌으로 설득했을 거다. 그걸 생각하니 쉽사리 낼 수 없는 반항심.
"…알았어."
조금 생각하다 이내 수긍하면서 의외로 조용히 넘어가 준다. 건수 잡았다고 벌써 몇 번은 타박하고 남았을 텐데, 진짜 배려해주는 걸까?
아니면, 무슨 꿍꿍이라도….
"히히힛, 고마워 온-뉘."
딴소리 나오기 전에 얼른 감사하고서 리모컨은 건네자 냉큼 받더니 바로 애니를 튼다. 취향이야 그러려니 하겠지만, 밥 먹는 자리에서까지 남자끼리 투덕거리는 모습을 보고 싶진 않은데…. 특히나 입에 뭘 씹고 있는 도중 헐벗은 남자들이 부둥키는 모습을 오빠랑 본다고 상상하니까 내가 다 민망해진다. 상상하기도 역해서 언니가 티브이에 집중하는 사이 한껏 찡그리는 미간.
"요즘 뭐 봐?"
"어? 나?"
뭐 보다니? 하고 물으려다 의도를 깨닫고 조금 놀랐다.
"나야 뭐 틀다 보면 나오는 예능 재밌는 거. 공중파에서 하는 건 웬만하면 다 재밌거든."
혹시 애니 말고 다른 걸 볼까 하는 바람에 서둘러 설명. 재밌다는 단어를 강조하여 은근히 언니에게 채널을 좀 다양하게 보라는 뜻을 전했지만, 너무 돌려 말해서 알아차릴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래…?"
흥미 없단 식으로 대답하고는, 애니 채널에서 내려놓는 리모컨. 이럴 거면 왜 물어본 건지, 살짝 어이가 없었다.
"너 보고 싶은 거 봐."
팔짱을 끼고서 등받이에 기대더니 넌지시.
"진짜?"
뜻밖의 허락에 언니가 맞나 싶은 생각도 잠시라, 테이블에 놓인 리모컨을 잡으려고 손을 뻗자 그새 가로채서 얼굴을 쳐다봤다.
"아니."
초딩도 아니고 유치하게 놀리는 언니.
"치-!"
황당함에 기가 막혀서 이내 고개를 돌렸다.
"장난이야. 여기."
내민 손을 또 회수하여 장난을 치는 건 아닐까 의심하면서 조심스럽게 가져가니까, 기분 나쁘게 쿠쿻 웃으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모습. 사실 나도 볼 건 없어서 적당히 재밌어 보이는 채널로 옮겼다.
"근데 쟨 어디서 재울 거야?"
"응? 오빠?"
겉으론 갓 중학교에 입학한 것처럼 보이는 주제에 장난친 거 치곤 현실적인 질문. 어쩌면, 사소한 장난을 친 것도 내가 기죽지 말라고 그런 것인지 몰랐다.
"내일 학교 갈 건데 밤새 몸 섞느라 등교하지 못하면 그것도 웃기지 않니?"
"웃-!"
…그럴 리가.
"안방 생각하고 있었는데?"
가능하면 내 방에서 같이 자고 싶었어도, 청소가 전혀 안 돼 있어 들이는 것조차 꺼려졌다.
"쿻-, 그렇구나."
비록 사용하지 않아도 언니가 자주 청소하니까 장롱 안의 이불만 꺼내면 사용하는 데 지장 없겠지.
"이불이랑 내가 꺼내줄게."
느닷없이 친절을 베푸길래, 이런 모습이 오히려 불안했다.
"아니야 언니. 그런 건 내가 할게. 내가 억지를 부려 부른 거니까, 이 이상 언니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조심할게."
어제 집을 비워준 것도 굉장한 부탁이었는데, 오늘마저 그러면 심장에 무리가 가는 것이 분명.
"아니, 손님이 왔는데 그럴 순 없지. 거기다가 앞으로 뭐 할 것도 아니고 그저 자. 기. 만. 하고 갈 거잖아?"
유난히 잔다는 말을 부각하여 쳐다보는 눈길에 무언가 속셈이 비쳤다.
"부-우."
현관에서 다 놀렸나 싶더니만, 보아하니 이제 시작. 이 상태로 얼마나 키득거릴지가 문제였다. 설마 오빠가 돌아와도 쉬지 않고 입을 놀릴까? 그러면 이제껏 좋았었던 분위기가 전부 허사로 돌아갈 거다. 한 번 더 도와달라고 사정해야 하는 걸까?
"그게 아니면, 같이 자려고 한 거야? 정말 순수하게?"
성적인 농담을 관련해서 자극하는데, 보호자의 존재가 이렇게나 방해일 줄은 몰랐다. 사실 관점을 바꾸면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지만, 연인과 같이 있고 싶은 욕심에 눈이 멀어 어디 이해 할 수 있기나 할까?
"미안해 언니. 내가 잘못했으니까 그만해줘."
가족끼리 성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도 어려운데, 그걸 빌미로 꼬투리를 잡히면 밑도 끝도 없어진다. 특히 언니라면 더더욱.
"흠-, 어쩔까나…."
고민하듯이 천장을 바라보는 시선엔 망설임 따윈 전혀 담고 있지 않아서 생각하는 척하고 있단 걸 뻔히 알 수 있었다.
"…그럼 이건 어때?"
그러다 한 가지 방법이 떠오른 거 같아 말하려는데,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 언니에게로 집중.
"너희 둘이 하는 거, 구경하게 해줘."
"……뭐…?"
그리고, 내뱉은 한 마디가 너무 어처구니없어서 잘못 들었나 싶었다.
"어차피 섹스, 할 거잖아? 그러니까. 그걸 구경하게 해달라고."
아무리 심술궂은 언니라지만, 설마 이렇게나 무례하게 굴 줄이야.
장난…이겠지?
"언니, 잠 덜 깼어?"
이 정도면 충분히 곱게 말한 거다. 어디 동생의 성생활에 직접 관여하려고 말을 꺼낸 걸까? 이게 다 이상한 만화나 그런 걸 자주 봐서 그럴 거다. 괜히 어른들이 그러지 말라고 만류하는 것이 아니니까.
"전혀. 맨정신이고,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
도가 지나친 발언에 잠시 할 말을 잃고서…더불어, 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표정 굉장한데?"
"-……."
그 와중에 언니의 이죽거리는 모습이 짜증이 울컥.
"으으-!"
해도 해도 너무한 소리라 버럭버럭하고 신경질을 내지 않는다면 더한 요구를 해댈 거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날의 내가 언니에게 이것저것 해달라며 떼를 썼다는 명목으로.
"필요하다면 용돈도 얹어 줄 테니까. 관람비로."
"진짜 미쳤어 언니!?"
할 말이 많은데, 막상 논리적으로 반박이 생각 안 나서 입술이 근질거리던 찰나에 언성을 높였다.
"그게 지금 동생한테, 아야…!"
제정신이 아닌 말에 가만있지 못하고서 벌떡.
"할 마리야?"
그러다 정강이에 테이블 모서리가 찍혔어도, 아픔을 참은 채로 화냈다.
"너무 유난 떨지 마. 농담이니까."
진심으로 덤벼들려고 하니까 태평하게 하는 소리가 정말 열 받게…!
"이걸로 미안한 건 쎔쎔이지?"
내가 너무 저자세로 나가니까 그걸 무마하려 한다 쳐도 방법이 틀려먹었다. 내 기준…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언니의 방식. 어떻게 가족이라도 남의 성생활에 직접 관여하려고 하는 거지?
너무 외로워서 미친 건가?
"장난도 적당히 해 언니!"
전혀 미안하지 않은 표정으로 쌍방과실을 주장하니까 열불이 나는 상황. 특히나 부딪힌 정강이가 아파서 진정되지는 않고, 더욱 화날 수밖에 없었다. 애처로이 아양을 떨던 태도를 던져버리게 하는 방자함. 친언니지만, 사회에 나가게 되면 어떻게 생활할지가 진심으로 걱정되었다.
"진짜-아!"
그건 그거고, 지금은 장난이 지나쳐서 그 화를 가라앉게 하느라 씩씩거리는 것을 달래니 쳐다보기도 싫어져서 몸을 돌리고선 팔짱.
"…칫."
지가 뭘 잘했다고 혀 차는 소리를 내는지, 눈만 살짝 힐끔 쳐다보고는 완전히 돌려서 이내 무거운 침묵만이 맴돌았다.
집에서 나올 때 알몸이란 소리에 내심 기대 했으나, 녀석이 깨어났단 소식에 얼른 추가적인 물품을 까먹지 않게 메모하면서 잊은 거 없나 착실하게 확인하기까지 했다.
"…."
이제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서 들어가는 희진이네. 만에 하나 알몸의 희진이가 반겨주지 않을까 싶었어도, 녀석 때문인지 일말의 희망조차 가질 수 없었다.
"아, 어서 와 오빠."
짐짓 아쉬움에 한 아름 담긴 봉투째로 거실에 들어가니 그제야 받는 환영. 들어가기 직전 복도에서 희진이가 반겨주는데, 안내랄 것도 없이 테이블 위로 같이 가면서 무심하게 티브이를 보는 인영을 확인했다.
"…안녕."
어째 평범하게 인사하기가 껄끄러운 상대. 섹파라는 이상한 관계에 얽매여서, 보통이란 단어가 어울리지 않았다.
"어, 안녕…."
다행이라면 관심 없다는 태도로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말로만 인사를 받아, 희진이가 우리 사이를 의심하지 않을 거란 사실. 알리고 싶지도, 들키고 싶지도 않았다. 가능하면 아예 녀석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싶은 게 본심이라.
"헤헿…고생했어 오빠. 우리 같이 도시락 돌리러 가자."
녀석의 무심함에 가장 익숙한 터인 희진이기에, 녀석을 가벼이 무시하며 나를 떠밀었다. 그러자 테이블에 놓으려던 봉투를 든 채로 걸어서, 거실 탁자에다 놓으려 올리고 꺼내는 내용물들. 도시락 세 개와 디저트로, 괜찮아 보이는 조각케잌과 푸딩 등 간소하면서 부족하지 않을 만큼 사 왔다.
"이건 이따 언니 먹으라고 하고, 이거 세 개만 돌리면 되겠지."
지금 먹을 것과 나중에 먹을 것을 나눠주는데, 냉장고에 넣으려고 물건을 안아 드는 희진이.
"힣-이건 내가 할 테니까, 오빤 도시락부터 돌려줘."
"응, 그럴게."
도와주려다가 냉큼 사양하길래 비닐을 뜯으면서 전자레인지로 세 개를 쌓아 옮겼다.
"오빠, 나 잠깐 화장실 좀."
좋게좋게 분담을 나눠서 일하는가 싶더니, 냉장고를 닫고서 휑-하고 가버리는 희진이.
"어, 알았어."
어차피 큰일도 아니고, 시간을 맞추고 기다리면 끝이라 그러라고 끄덕여주곤 일 분 사십 초에 맞췄다.
"후-…."
조리 시작 버튼을 누르고 한숨…
"흫!?"
돌릴까 싶어 뒤를 돌자, 언제 다가왔는지 녀석이 대뜸 길을 막고선 얄밉게 입술을 내밀고 있었다.
"…베-."
정확히는 입술을 삐쭉 내밀더니 혀를 빼꼼.
"…?"
약을 올리려는 건지 놀리려는 건지 몰라서 순간 의아함이 치솟았다.
"…뭐해? 키스 안 하고."
내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으니까 입술을 거둬들이고서는….
"뭐?"
예상하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오자, 혹여나 희진이가 들을까 녀석의 뒤쪽을 쳐다보니 다행스럽게도 희진이가 보이지는 않았다.
"내가 그걸 왜벱…."
어이없음을 충분히 토로하고자 하려던 계획이 무산.
"쯉, 츄-븝!"
입술에서 부드러움이 느껴지자, 앙증맞은 감촉이 다가옮을 깨닫는 건 너무나도 뒤늦은 반응속도였다.
"헤-븝, 읍-!"
짧은 시간 동안 들락날락하는 혀의 요동침은 가히 헤아리기 어려운 횟수. 그래봤자 두 자릿수가 되지 않겠지만, 그만큼 넋이 나갈 정도로 빨고 입속을 헤집어 놔서 잠깐 영혼이 외출하고 왔다.
"흡…릅릅릅."
그새 도망치지도 못하게 꼭 껴안고 있는 녀석의 팔. 의중이야 어찌 됐든, 도무지 알 수 없어서 방심했다고밖에 변명할 길이 없었다.
"파-하. 쿻-!"
고작 오 초 되지 않을 순간에 만족한 듯 요염한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