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언짢은 시달림(2)
그동안 느꼈던 위화감이 바로 이런 거였을까? 울컥 짜증이 나면서 좀처럼 손 놓고 볼 수 없었던 이유가 설마하니….
"왜 그래 자기? 맛없어? 아님 내가 준 케잌이 마메 안 드러?"
혀 꼬인 발음으로 애교부리며 잘 나가다가 뜬금없이 역정을 낸다.
"…응!? 아니, 그건 아닌데…."
아까까지만 해도 스스럼없는 사이처럼 찰떡같이 붙어 있다가, 이번엔 뭐만 해도 꼬투리부터 잡는 애인을 연기하는 걸까? 아니면 체험? 아무리 그런 행세라지만, 스트레스다.
"아아-!"
아랑곳하지 않고 목소리가 커져서 억지로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
"아…읍-."
표정 관리 어렵게 가까스로 받아먹었다.
"헤헤헿, 잘했어."
그러자 아이처럼 좋아하며 먹으니까 한결 나아지는 기분.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좋아하니까 안정을 되찾아갔다.
"자-기! 나 삐졌어!"
아니 씹…!
나름대로 잘 나가다가, 갑작스러운 고백에 기가 차서 순간 욕설이 튀어나올 뻔했다.
"자기만 입이야?"
그러면 먹여달라고 말을 하던가!
돌발적인 투정에 진심으로 울컥해서 인내력이 부족했다면 벌떡 일어섰을 거다. 녀석의 변덕을 몇 번 겪어 본 터라 자제심이 강해져서 망정. 녀석을 보고 있자니, 무언의…무언가 알듯 떠올릴 듯 떠오르지 않는 오묘함이 일었다.
…기시감?
녀석과 바깥에서 이렇게 다니는 건 오늘이 처음인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남 일 같지 않은 건 어째서일까?
"자-…."
입을 벌리며 재촉하길래 가장 먼저 내 입으로 가져가려 했던 케잌을 녀석에게 주자 기다렸다는 듯이 받아먹는다.
"쿠-후웅. 마시써."
애교라는 것이 꼭 좋은 게 아니라는 점을 새삼 느끼는 지금. 녀석의 외모가 꾸미지 않아도 반반한 편이라 귀여우면서 날카로운 인상이 새로운 매력을 보여줬어도, 여태 경험했던 지랄 같은 성격이 있어 솔직히 살짝 역했다. 제 딴에는 귀엽게 보이려고 하는 거 같은데, 콧소리도 그렇고 너무 과한 나머지 전혀 들지 않는 좋은 감정. 차라리 입 꾹 다물고 행동해줬으면 나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
입술은 열심히 우물거리면서도 눈빛은 강하게 빛을 내며 대답을 요구하길래 건성으로 힘없이. 무엇이 이리도 녀석을 조급하고 갈망하도록 했는지 궁금해져서, 한편으로는 안쓰러울 따름이었다.
"자기두, 아-앙."
조급하다라…평소보다 여유가 없어 보이긴 하네.
"냠, 음."
딱히 하는 것도 없어 보이는데 시간은 많다더니, 서두르는 경향이 없잖아 있었다.
"쿠-힣! 아-…냠! 우-음!"
어수룩함, 그러면서도 있어 보이려는 척 허세. 돈은 자기가 쓰려 하는 허영심과 그러면서도 연인이 생기면 하고 싶었던 일을, 허용량 초과하는 걸 생각지 않고 부담 없이 한아름…내미는 모습이었다.
"…쩝."
이런저런 생각에 도달한 결과 인정하기 싫었어도, 녀석의 행동은 과거 내가 희진이에게 보여주었던 초조함과 어수룩하던 모습이 맞물려서 내 연애 초기를 보는 듯한 기분. 물론 이런 저돌적인 행동은 못 한 채 속으로 삼키거나 감히 상상조차 못 하긴 했었지만, 연애질이라 일컫는 꽁냥꽁냥 거리는 짓을 내심 하고 싶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확실히…그때 생각으로 넘겨서 다행인 것투성이라 하지 않길 잘했네.
안 그랬으면 녀석처럼 굴다가 금방 차였을 거다. 교제하는 사이라고 함부로 대하면 안 될 짓을 마구 하는 걸 보아, 녀석은 훌륭한 반면교사의 교보제로써 자각하지 못한 듯 즐거워할 뿐. 이게 차일 걱정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해버리는 처지의 태도라고 생각하니 몹시 거슬렸다.
"끙…적당히 해."
더군다나 내 사정 따윈 헤아리지 않고서 주저 없이 저지르는 방자함까지.
"웅? 모가 자기?"
딱 봐도 모르쇠로 일관하여 과장 된 연기를 하며 약 올리는 듯이 얼굴을 들이미는데, 혹여나 착각일까 봐 상체를 뒤로 이동해서 아래를 살펴보니까 역시나. 녀석의 발가락이 꼼지락하고 자지를 건드리며 내게 발등을 보였다.
"쿠-훟!"
이젠 남들 다 있는 카페 안에서까지 이러니까, 혹여라도 누가 볼까 주의를 한 번 둘러보고는 없어서 안심하고 저항의 의미로 눈살을 한껏 찌푸리며 말리려는 손.
"거부하면 바로 희진이한테 사진 보낼 거야 자기."
치우려고 뻗자마자 안 보고서 피하고선 뒤죽박죽인 분위기에 잠시 잊었던 협박을 받았다.
"으…, 후-."
진짜 억울하기 짝이 없네….
이번엔 발로하는 희롱에 당해서, 녀석하고 있으면 장소가 어디든 방심할 수 없었다.
"쿠-히힛."
그러면서 자기는 장난을 치는 위치랍시고 내 곤란함을 즐기는 듯한 모습. 중학생 시절 전체를 왕따당한 처지로서 이런 녀석의 괴롭힘을 도저히 좋게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킇-!"
그런데도 묵묵히 있는 건, 희진이에게 실제로 피해를 줄 수 있는 상대이기에. 잠깐잠깐 망각했어도, 가벼운 행실에 잊기 쉬웠으나 녀석은 희진이의 언니였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앞으로도 희진이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물이란 거.
"쿠-훟."
그것만 아니었다면 증거를 잡아 신고하거나 고소하고서 다신 만날 일 없는 관계로, 두 번 다시 보기 싫은 녀석임은 틀림없었다.
"자, 자기…아-앙."
위로는 입이, 아래로는 자지가 쉬지도 못하고 녀석의 즐거움을 위해 주물러지고….
"핳-! 하하, 아-…."
이어서 표정 밝게 하라는 명령에 의지와 상관없이 광대가 아프도록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려야 했다.
이십 분가량 녀석을 농락하고서야 기운을 되찾았다.
"훙-…."
물론 녀석을 놀리느라 회복한 것이 아니고, 현실적으로 에너지를 섭취해서 얻은 힘이었지만.
"자기야-."
"응? 응? 왜?"
처음엔 나랑 어울리는 것이 좋지 않아서 그런지 언짢은 표정 자주 보여줬으나, 소소하게나마 저항하던 녀석에게 한 번 으름장을 놓으니까 깨갱거리고 말대답이 사라져 순순히 수긍한다. 자기가 연기자도 아니고 표정은 완벽히 감출 수 없어 관리가 잘 안 되는 모습 유감없이 보여주었기에, 그것이 나로서는 알기 쉬워서 보기 좋았어도 녀석은 죽을 맛이니까 슬슬 그만둘 참.
"이제…나갈까?"
다리를 펴고 유감없이 발로 주물러줬는데, 이게 허벅지라던가 쭉 뻗느라 가끔 다리가 저리고 아파서 발을 바꾸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그래선지 막 발가락이 닿았을 땐 어깨를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이젠 적응한 모습. 아니면 내가 미약해져서 그랬다던가.
"어…괜찮겠어?"
어쭈? 계속 당하던 주제에?
"웅? 우리 자기는 계속 여기 있고 싶어?"
사실 내가 힘들었고, 영화에 대해 감상을 나누자니…그다지 본 것도 없어서 걷자는 의미를 내포하여 물어봤는데 걱정스러운 말이 뜻밖이라 괜스레 도발하고 싶어졌다.
"아니, 그건 싫어."
딱 잘라 거절하는 대답에 역시 계속 있기는 싫은 모양. 기어이 발을 걷어 샌들을 신었다.
"쿻-, 그래."
귀엽긴….
사실 녀석의 자지를 잡았던 바람은 비록 목표치를 높게 잡아서, 이대로 사정까지 시키고 싶었지만 턱도 없이 모자랐다.
"그럼 일엏…!?"
허리를 숙여 샌들의 찍찍이를 잘 부착하고는, 무릎에 힘을 줘서 일어나니까 종아리에 찌릿하고 갑자기.
"…왜 그래? 괜찮아?"
몸이 가볍게 들썩여져 테이블에 뒷덜미가 부딪혔지만, 찰나에 쥐가 올뻔한 것에 비하면 별거 아니었다.
"아-흫!? 읗…."
대신에 자칫 잘못하면 크나큰 위기에 봉착한 상태. 혹여라도 녀석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줬다간 얕보여서 겨우 되돌려놓은 위치가 바뀔지도 몰랐다.
"아냣, 아무것도…."
안 그래도 위압적으로 군 것 치고는 체력이라던가 현실적 한계에 부딪혀서, 실제로 하려고 했던 짓에 절반도 이루지 못한 전적. 녀석이 어리숙해서 그렇지, 성실하고 순한 성격이 아니었다면 먹히는 쪽은 나일 거란 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조련.
"자기이-, 있찌…."
마음은 조바심에 서둘러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시키라고 하는데, 내키는 대로 빠르게 일어났다간 반동에 오려다 말았던 쥐가 진짜 찾아올까 봐 겁이 났다. 이런 와중에 어느샌가 곁으로 와 걱정하는 녀석을 신경 쓰려니까 이마에 땀방울이 생성된 것을 의식.
"…응?"
최대한 심각한 어조로…무슨 장난을 칠지 모르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처였다. 그러다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기발한 생각.
"쿻-, 히힣…!"
진짜 별일 아니라는 듯 해맑게 웃으며 달랑 고개만 올리고서…
"어-보조!"
태연히도 익살스럽게 말했다.
"끄-흠 음…알았어."
녀석은 녀석대로 진지한 얼굴을 하다가, 진짜 별거 아닌 줄 알고 허무한 신음을 삼키고선 마지못해 끄덕. 앞서 내 옆까지 다가온 터라, 내 안색을 살피려다 업어달라고 하니 몸을 돌려 쭈그려 앉는다.
"히히힣-."
거기다 혹여 옆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팔을 뒤로 뻗는 세심함에 미소가 지어지는 건 녀석이 보지 않고 있기에.
"자기, 쪼-아."
소극적인 녀석의 성격이라면 충분히 주변의 시선을 신경 썼을 텐데 주저 없이 등을 내어주니까 마음이 우쭐해지는 건, 내가 녀석의 위에서 조종한다는 우월감에서가 아니라 순전히 몸에 밴 배려가 나를 위해서 실천하니까였다.
"그럼, 업힐 게 자기야."
배 부분이 다 젖고 물기가 살에 붙어 민망한 자국. 그걸 보이지 않으려고 카페까지 녀석을 뒤에서 안아 뒤뚱뒤뚱 걸어왔지만, 잘 생각해보니 계속 업히면 해결될 문제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왕 올라타는 거, 근육이 놀라지 않게 조심하며 사뿐히 녀석에게로 기대 목을 감싸니까 확실히 느껴지는 든든함.
"…!?"
더불어 녀석의 손이 나를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손으로 엉덩이를 얹자, 놀라서 소리 낼 뻔하다가 참은 건 이미 부자연스럽게 행동하였기에 자꾸 그런 모습 보여줬다간 위화감을 부추기는 꼴이 돼서였다.
"히힣…."
녀석은 모르더라도, 지금까지 숨긴 것이 있어서 자신을 향하여 짓는 어색한 웃음.
"읕!? 뭣, 그만해…!"
조금 추해도 녀석에게 업히면서 경련이 일어나려는 종아리 근육을 녀석에게 비비며 살살 풀어주었다. 근데 업히는 상태로 이동하느라 쉽진 않아서, 나름대로 집중을 요구하는 행위.
"우-웅, 시러!"
카페 밖을 나가서 본격적으로 허벅지를 움직여 비벼대기 시작했다.
"끟, 흠-…."
서서히 사람들의 유동이 많아질 시간이라 자연스럽게 쏠리는 시선. 손을 잡고 걷거나, 에스컬레이터에서 마주 보며 가벼운 애정표현은 간혹 보더라도, 부녀지간이 아닌 비슷한 나이대의 이성에게 업고 업히며 걷는 모습은 매우 희소할 거다. 특히나 업은 사람 힘들게끔 하체를 움직여 마치 떼를 쓰듯 한다면 더욱이.
"하-…, 업힐 때만큼은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참다 참다 불만을 표출하는데, 유감스럽게도 본인을 모를 사정이 있어서 그건 어려웠다.
"베히히…."
녀석의 난감한 표정을 유감없이 즐기다 막상 내가 어려운 처지에 망설임 없이 도와주자 뒤늦게 생기는 미안함에 사소한 부탁 정도는 들어주고 싶어도, 재발할지 모르는 통증에 아직 안심하긴 일러서 긍정 대신 들려주는 멋쩍은 미소.
"끄-응…."
그에 바로 포기하고는 묵묵히 걷는 녀석이었다.
"이제 어쩔 거야?"
느긋하게 움직이곤 있어도, 마땅한 목적지는 없어서 느릿느릿. 같이 밥도 먹었고, 속옷도 받았으며, 영화 보다 섹스도 질펀하게 했으니 이대로 헤어져도 여념이 없겠다마는…녀석의 등이 마음에 들어 당장은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카페에서 잔뜩 희롱도.
"음-…글쎄?"
머리는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하여 녀석에게 부담을 주려고 했으나,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몸은 은근히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걸 무시하기엔 후폭풍이 두려워 처녀 상실 이후 한동안 앓았던 때를 상기.
"우선…좀 더 걷자 자기."
종아리를 꾸준히 녀석에게로 문지르다 보니까, 앞으로 오 분 정도 더하면 나을 거 같았다. 괜히 이런 고생 필요 없이 솔직하게 쥐 날 거 같으니까 다리 좀 주물러 달라고 하면 되었으나, 돌이키기엔 너무나 멀리 온 실정.
"…나 혼자?"
의견을 제시해놓고 부담을 녀석에게만 주어서 그걸 콕 집어 말하면 양심상 밀어붙이기 고민스러워진다.
"음-, 헤헤헿…."
여태 그래왔던 주제에 말이지.
"후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기엔 따스함에 감기는 눈꺼풀. 어차피 더위에 곧 땀이 흘러 묻어서 질척이느라 불쾌해지겠지만, 그전까진 닿을 수 있는 피부를 전부 밀착하기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