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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화 〉언짢은 시달림(1) (70/107)



〈 70화 〉언짢은 시달림(1)

아…, 나도 희진이처럼 녀석을 골려주며 꽁냥꽁냥할까…? 딱딱하게 응답할 거 같아도 괜찮을 거 같아. 응, 해버리자.

"유감이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일단은 수긍하는 척 헤아려주다가…아쉬움에 사소한 요구를 집어넣는다면 거절하진 못할 거다.

"그럼 다음에 하는 대신에, 자기가 키스해죠. 가슴도 만져주면 좋고."
내가 키스에 재도전한다면 평소처럼 할 수 있을 수준으로 회복된 몸. 여운에 잠식돼서 오로지 감각을 유지하는 욕망에 지배됐었는데, 차츰 정신을 차리니까 제멋대로 구는 것이 아니라 녀석을  멋대로 행동하게끔 다루어야 했다. 겨우 녀석을 협박했던 목적을 떠올려서 되찾은 침착함.

"…그렇게 하면, 집으로 갈 거야?"
"음-…자기 하는  봐서."

보통 싫어하는 티를 내 거나 절레절레 저을 텐데, 잣대를 잃었는지 쉽게 흔들렸다.

"끙…, 얼마나 해야 하는데?"

말투를 보아 키스는 허락한 분위기.

"내가 만족할 만큼."

녀석은 필시 구체적인 대답을 원했겠지만, 두루뭉술하게 말해주니까 미간에 찜찜함이 가득해 보였다.

"히히힣, 베-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였지만, 그러기 전에 아까처럼 혀를 내밀어 달려들기 좋게 준비.

"끄-흣…!"

밥상을 차려줬음에도 탐탁스럽지 않은 표정이라, 그 사유를 알고 눈썹을 찡그려도 기꺼이 웃어줄 수 있었다.

"키스부터 할 거야? 아님…가슴부터?"

혓바닥을 보였다고  놀리는 것을 끝낸 것이 아니라서 재촉하는 발언도 적절하게.

"가슴부터…만질게."

체념하여 그늘진 눈빛으로 마침내 반항적인 모습은 없어지고 그저 명령에 따르면서 이러면 안 되는데 혼잣말하는 녀석이 되었다.



대략 그렇게 삼십 분은 흘렀을까? 화장실 밖에서 망을 보게 한 뒤 나는 안에서 흐르는 물에 원피스를 닦으며 비누칠했다. 젖어버린 흔적은 지울 수 없었지만, 정액의 강렬하고 비릿한 냄새는 지워지기에 해결한 차선책.

"읗…?"
"헤헤헤헿-."

이대로 영화를 보러 돌아가기는 영 그랬기에, 상영관을 바라보던 녀석의 목을 뒤에서 휘감아 몸을 돌리게 했다.

"…끙."

이대로 밀어서 걷게 하니까 어디 가냐는 질문도 하지 않고서 그대로. 나온 곳은 당연히 영화관 바깥이라 녀석을 계속 뒤로 안은 채 엘리베이터까지 걸었다.

"히히힣."

사소한 저항 없이 조종하는 대로 움직이는 녀석. 자신의 처지를 알아서일까? 아니면  상태를 배려해서 이러는 걸까.

"큼…."

그나마  수 있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은 듯이 헛기침을 했어도 그게 저항의 끝이라 내가 이끄는 대로 순순히 걸어주었다.


"자기야, 쪼-오기!"

귓가로 바로 꽂히는 명랑한 목소리와 은은하면서도 끊임없이 자극을 주는 체취. 화장실에서부터 등에 바짝 붙으면서 걷는데, 여자애 특유의 불쾌하지 않은 땀 냄새가 물씬 풍겨와 기분 나쁘기는커녕 흥분감에 발기될 것 같아 오히려 내가 녀석의 뒤로 숨고 싶었다.

"…어디?"

다리가 잠깐 힘을 못 쓸 정도로 격렬한 섹스를 한 직후기도 하니, 방심했다간 쓰러질 것 같은 위기감에 전력을 다해 이성을 붙잡느라 안 그래도 모자란 정신력이 닳아버리게끔 소모되고 있었다. 거기다가 뒤에서 저기라고 콧소리 내며 말해봤자, 이곳저곳이 전부 가게다 보니 어딘지 모를 상황. 이쪽의 상태도 신경 써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하기야, 이기적이기만 한 녀석에게 그런 배려는 무리라서 만약에라도 그랬다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겠지.

"쩌-어기!"

매달리다시피 목을 휘감던 손으로 얼굴을 붙잡아 목적지를 향해 시선을 고정하니까 눈에 익은 카페가 보였다.

"읗…! 알았어."

녀석이 원하는 곳을 알았으니까, 어서 아기자기하면서도 보드라운 손을 치워줬으면 싶은 소망. 어디서 봤나 싶었더니만, 공교롭게도 희진이랑 왔었던 체인점이었다. 같은 지점은 아니더라도, 같은 부류로 들어가는  자매끼리 취향도 비슷하다는 증거. 그렇게 생각하니까, 녀석이 날 두고 한 말이 떠올랐다.

"…크-흠."

취향도 같아서 나를 좋아하게 됐다…는 말이 그저 되는대로 지껄여 헛소리만은 아니란 것을 몸소 깨닫자, 마냥 좋아할 수 없는 괴로움.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싶은 의문은 너무 예전 일이라서 그런지, 이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지겨워졌다.

"…."

그렇다고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는 말에 절대로 복종하고 싶지는 않은 상황.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자각한 주제에 여전히 희진이에게 일편단심이라, 할 수 있다면 잘못을 없애고서 누구 하나 피해받지 않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려면 녀석과 만남은 절대 피해야 할 테지만….

"뭐 먹을래?"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싫어도 떨어져야 해서 물에 젖은 부위가 보이지 않도록 구석에 앉아야 했다. 그러나 메뉴는 진열장에 있어서 녀석을 자리로 보내곤 한 번에 주문한다면, 남들도 이상하게 보진 않을 거기에 미리 물어보는 메뉴.

"제일 달콤한 거로. 두 조각. "

특정 이름을 거론하지 않고 특징만 콕 집는다. 어찌 보면 메뉴를 모르기에 할 수 있는 간편함이라서, 듣기만 해도 어떤 게 먹고 싶은지 대략이나마 유추하기 쉬워서 주문하려는 내게도 나쁘지 않은 대답이었다.

"…알았어."

유리창에 부착된 포스터를 힐끔 하는 걸 끝으로 입장. 무얼 주문할지 미리 들었기에, 우선 녀석을 구석진 자리로 안내하니까 마침내 떨어졌다. 그리고는 서둘러 착석.

"휴-…."

여기까지 오면서 가슴까진 닿았어도 원피스의 하복부 부분을 의식하며 최대한 간격을 주었던 걸음걸이는, 이게 다 무심코 자지를 치우지 않은 채로 녀석의 원피스에 바짝 가져다 대서 문댄 결과였다.

"…끙."

이번엔 내게 잘못이 있었기에 함부로 거절하지 못해서, 녀석을 업고 기어이 이곳으로 어영부영 당도. 먼저 앉아 자신의 파우치를 만지며 내용물을 꺼내느라 정신이 팔린 녀석에게 슬쩍 젖어있을 부위를 훔쳐보니까, 약간 말랐어도 물에 닿은 흔적이 확연해서 창피했었던 이인삼각은 필요로 인해 할 수밖에 없었다며 자신을 위로했다.

"-…."

이인은 둘이서 떨어지지 않고 이동한 거라 맞았다 치더라도, 나머지 방해물인 삼각이 무엇인진 짚이는 점이 너무나 많아 무어라고 단언하기 어려웠다. 굳이 거론한다면, 멀게만 느껴지는 도착지점과 그리 곱지만은 않은 남들의 시선?

"자기야-! 여기."

그러다 볼일을 다 마치는 녀석과 눈을 마주치기 전에 가려고 하자 부르는 목소리에 황급히 딴청…얼핏 파우치 안에 콘돔이 보였는데, 거기서 꺼내 내게 주는 건 다름 아닌 카드였다.

"아, 아냐. 내가 살게."

비록 속옷을 사주려고 나왔지만, 그건 원래 해줘야 하는 거니까 논외. 녀석이 영화표를 구매했기에 카페는 내가 내야 맞았다. 정작 영화를 본 기억은 없다 하더라도.

"직접  버는 거 아니면 무리하지 말고 받아 자기."

마치 본인은 돈을 벌고 있다는 듯한 어조라 학생이 무슨 하고 코웃음 칠 뻔했지만…녀석은 학교도 안 다니고, 희진이 말로는 가장 노릇을 한다고 하니까 섣부르게 판단할 수 없었다.

"…고마워."

녀석에 대해 아는 것이 적기도 했고, 사실 없다고 봐도 무방. 그렇다고 알아가기엔 껄끄러워서 가능하면 관심을 끄고 싶은 것이 소원이었다. 그래도,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란 말도 있으니 싫어도 알아야겠지.

집에 가면 생각을 정리하도록 할까?

"주문받겠습니다."

인기 상품이 저번과 동일한지 진열장을 흘깃 살피며 카운터에 도착하자 점원분께서 응접해주셨다.

"일 번 세 개랑 우유 하나 주세요."

잘 팔리는  번은  봐도 사진 찍기용이라 맛은 변변찮았기에 가장 인기 있는  번으로 세 조각. 마음 같아선 나도  조각 먹고 싶었으나 반쯤 먹으면 물리기도 했고, 만약 녀석도 마찬가지라면 남길 거 같은 걸 염두에 둬서 부탁한 것과  걸 합쳐 세 조각을 주문했다.

"아, 잔은 두 개 주시겠어요."

그리고, 우유를 판매하는 것은 잔이 아니라 유리병이라 혼자 먹기엔 많아서 하나만. 이번엔 둘이서 마시니까 남기진 않겠지만, 저번에 남겼으니까 녀석이 입이 짧으면 무리하며 먹게 될 거다. 그런 것도 상정해서 효율적으로 주문했으니, 녀석이 염려대로 제발 그러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진동이 울리면 받으러 와주세요."

그렇게 내미는 벨을 받아 녀석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어차피 번거로운 것을 요구한 것도 아닌데 기다리면 금방 나오겠지만, 희진이랑 있던 습관처럼 일 초라도  보고자 돌아갔던 터라 녀석의 얼굴을 보고는 이런 자신에게 절망. 그러나 내색할 수 없어 미묘한 웃음을 짓고 말았다.

"뭐야 자기-. 표정이 이상한데?"

때론 확신할  있는 감정보다 이도 저도 아닌 것이 상대방에게 의구심을 품도록 만드는 모양. 차라리 한껏 얼굴을 구길 걸 그랬다.

"아니, 그냥…."

닮은 거라곤 유전자밖에 없는 녀석에게 희진이를 대입하여…혹은 착각하여 행동한 까닭에 씁쓸한 기분.

"사람이 적다 싶어서."

녀석이 기분 나쁘다고 해봤자 무슨 의미겠냐마는, 여기에서 약자는 나인지라 마음 상하지 않도록 그럴듯한 변명을 해야 했다. 그렇다곤 해도 아까는 점심 되기 한 시간보다 더 전이라서 사람이 적더니만, 이번엔 점심이 되니까 카페에 사람이 적은 현상. 참으로 절묘한 타이밍이 아닐 수 없었다. 의도했다면 무섭도록 치밀한 계산이라서, 이러니 협박을 당할 수밖에 없다고 자신의 달랜다면 자책하던 기분이 좀 나아질까?

"…크-흥."

…되려 언짢아져, 전혀 그렇지 않았다.

"쿠-훟! 그래?"

생각에 사로잡힌 탓에, 보고 만 녀석의 느닷없는…참으로 의미심장한 미소. 대체 무슨 생각을 했길래 그러는지, 부디 아무 일 없이 지나갔으면 싶었다.

'지-잉 지-이잉'

"울린다, 어서 다녀와 자기. 배고프니까 빨리 먹고 싶어."

재촉하면서 입맛을 다시는데, 먹고 싶다고 발언할  시선 처리가 어째서 내 바지인지는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 의도야 뻔해서 날 골려주려고 그런 거겠지.

"쿻-…."

장난기를 머금은 입가에 눈웃음을 애써 무시하며, 케이크 세 조각과 우유병 하나가 담긴 쟁반을 받아 탁자로 올리려니까 녀석이 파우치와 잡고 있던 폰을 옆으로 치웠다. 이에 마주 보고 앉으니까 마주하는 녀석의 여전히도 만연한 웃음.

"자기야, 먹자-."

어째 눈빛이 부담스러울 만큼 애틋해서 반응하기도 곤란했다.

"어…잘 먹을게."

어찌 됐든 간에, 녀석이 사주는 거니까 감사 인사 정도는 해줘야겠지. 그러면서 각자 포크를 잡아 케이크의 면적이 작아지는 모서리를 옆으로 찍어 자르며 떨어지지 않게 올렸다.

"자-! 아-앙."

그대로 입에 넣으려는데, 녀석이 먼저 내게로 케잌을 얹은 포크를 입에다가….

"……."

전에 희진이랑 했던 짓이 판박이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녀석은 사진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였다는 거. 녀석은  그대로 애인끼리 있으면 할법한 짓은 다 해서 두서없어도 챙길 건 챙겼다. 그렇다 해도 이건 연인이 할 짓이 아니라 협박으로 이뤄진 억지기에….

"자기…안 먹을 거야?"

또박또박한 어조가 뒤로 갈수록 차갑고 음이 낮아져서, 살짝 짜증이 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상냥한 말투 속에 말은 하지 않았어도, 먹지 않으면 가만 안 두겠다는 은근한 협박. 어디까지나 그러리란 내 망상이었으나, 이미 전적이 있어서 녀석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아아-."

그렇기에 애처롭도록 속절없이 벌리는 입.

"옳-지. 맛있어 자기?"

아직 씹지도 않은 입을 보면서 맛있냐고 묻는데, 너무 성급하다.

"아흡! 응…."

다물었으니까 일단 혀에 닿아 느껴졌으니 거짓말은 하지 않아서 조심스럽게 포크를 빼는 녀석. 겨우 이런 거로 만족스럽다는 얼굴이라 웃어야 할지 곤혹스러웠다.

"쿠-훟, 그럼  머거-."

이걸로는 부족한지 내 손으로 집은 포크에 녀석처럼 잘린 케이크가 있던 것을 보려고 하지 않고는 자신의 케이크를 자르는 녀석.

"잠깐…, 우유부터 따르고."

스스로 먹으려던 것이 힘들 거란 예상에 내려놓고는, 서둘러 우유병을 따 녀석의 머그잔을 채워줬다. 이어서  잔에 채우곤 우물우물 씹다가 삼키니까, 쉬지 않고  앞으로 내미는 케이크.

"돼찌? 자아-!"

녀석과 있으면 뭘 해도 피곤한 것이, 숙맥이니 여자가 처음이라느니 놀리던 주제에 자기도 과거의 나랑 다를 바 없이 굴어서 피곤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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