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5화 〉끌려 나온 데이트(6) (65/107)



〈 65화 〉끌려 나온 데이트(6)

"…뭐?"

이야기를 듣고 대답할 땐 두어 번은 생각한 뒤 뱉으려고 자주 하던 노력이 무색해지도록 황당한 말.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서 이해  하겠단 표정을 지어도 실실 웃기만 한다.

그렇다면 내가 들은 것이 맞겠지…얘는 진짜 제정신인 걸까?

나를 협박하고 동생을 인질 삼더니 이젠 그 대상이 자신으로 변했다. 뻔뻔함에 한편으로는 대단할 따름.

"참고로 영화관까지 에스컬레이터를 탈 거야."

 말인즉슨….

멀쩡한 엘리베이터를 놔두고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보이게끔 타는 건 보통 담력이 아니고선 하기 어려웠다. 그러니까 협박이란  이리도 쉽게 해대는 거겠지. 어째 능숙하기까지  정도로 익숙해 보이는 면이 있었다.

"………."

너무 기가  나머지 다그칠 힘조차…. 다시 한번 쳐다본 치마가 그렇게 짧은 편은 아니라서 그런지 수평일 때는  보일 테지만, 높이에 차이가 생기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어디 뒤에서 잘 막아 봐 자기. 영화관까지 무사히 올라가면, 내가 상으로 직접 만지게 해줄게."

이어서 후속타 한 방. 계속 녀석의 손에서 놀아나니까, 이제는 본때를 보여주어 갚아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차라리 미친 척하고 반격할까?

당하고만 있기에는 너무나 휘둘려지니까 반발심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진심이야?"

짜증도 울컥하고 하니, 미간에 잔뜩 힘을 주며 무의식적으로 저질러버린 질문.

"…헿, 드디어 만지고 싶어진 거야 자기?"

홧김에 한 말인데, 그걸 놓치지 않고 기쁜  웃으면서 있지도 않은 가슴을 잡아 강조하며 다가온다.

"…가자."

그에 이성을 되찾아 입술을 굳게 다물고는, 저항한다며 한다는 행동은 그냥 뒤도는 거. 오해를 사기 싫어 최대한 답하지 않은 건데,   한마디에 모두 허사가 될뻔했다.

"자기, 같이 가-."

갈 곳이 정해져 녀석을 기다릴 필요 없이 떠나니까, 서둘러 다가와 팔짱을 껴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

"큼, 큼-!"

빈약한 주제에 여자애 특유의 기분 좋은 페로몬은 원초적인 거라 본능적으로 어찌할  없음을 들키지 않으려 얼굴을 돌렸다.

"…쿠후훟."

별로 걷지 않아 도착한 에스컬레이터 앞. 만약에라도 들키지 않으려면 녀석이 먼저 타야 해서 기다려주자, 아이처럼 폴짝하고 기동하는 바닥으로 올라탔다.

"…-!"

뒤이어 곧장 달라붙어 나풀거리는 치마가 그러지 못하도록 어쩔 수 없이 바짝 밀착해버린 자세.

"어때, 자기?"

거부하려 해도 풍겨오는 샴푸 향이라던가, 만지면 기분 좋을 거 같은 감촉이 내게 부비부비해서 앙다문 잇몸과 짙게 닫은 눈꺼풀은 일련의 사정이 있었다.

"쿠-훟, …발기했어?"
"크, 큼…!"

넌지시 말하는 녀석의 배려 따위는 생색이라, 진짜로  생각했을 리가. 주변에 들을만한 사람이 없어서 안심하는 것도 잠시, 큰일인 건 녀석에게 껄떡이는 자지를 들켰다는 점이었다.

"나 때문에 선 거야? 나로 흥분했어?"
"그만, 아…."

직접 만지면서 허벅지로 문지르면 당연히 설 수밖에 없음을 뻔히 아는 주제에 굳이 언급한  내게 수치심을 주기 위해서겠지. 서글프게도 부정할 수 없었다.

"…-!?"

계단에 오르고는 몸을 돌아 서로 마주 본 형태. 계단의 높낮이 때문에 성난 자지가 어쩔 수 없이 녀석의 다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길래 얼씨구나 허락하고는, 못 만지게 엉덩이를 뒤로 빼려니까 옆의 손잡이가 아니라 어깨를 잡아 도망치지 못하게 한다.

"히히힣-!"

그러고선 즐겁다는 듯이 웃는데, 팬티만  보이게 몸으로 방어할 뿐.

"그만, 좀…!"

손이나 다른 부위는 닿지 않도록 조심하니까, 녀석의 손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마음대로 희롱하기 시작한다.

"읏, 읏-…."

이 상태에서 위험하게 시리 안기고선 잔뜩 맡게 돼버린 녀석의 체취.

"쿠히히히힣-."

가장 싫은 것은 이런 것에 반응하는 나의 욕구였다. 거기다가 더운 여름임에도, 껴안는 행위가 싫지 않단  이미….

"자-기…하고 싶어?"
"앝-…!"

자그마한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이니까 미칠 것 같았다. 아무리 희진이 생각에 참으려 해도, 이렇게 유혹하면 안 서는 것이 필시 이상한 거겠지. 게다가 녀석이 내게 비호감이긴 해도 외관상 사랑하는 희진이와 판박이인데, 여기서 차이점을 뽑자면 발육 차이에 불과했다.

희진이 언니만 아니었어도….

협박만 아니었어도, 동정이었다면 현혹돼서 진짜 녀석의 뜻대로 놀아났을 거다. 지금이라고 뭐가 다르냐 싶지만.

"아니, …안 해."

침을 꼴깍 삼키고 하는 거절이 얼마나 설득력을 주겠느냐마는, 나는 할 수 있을 만큼 저항했다. 이러면 희진이와 대면할 면목이 없진 않겠지.

"쿠쿻-! 그래?"

허벅지 사이를 살살 비비면서 움직이다가 실낱같이 부정하니까 멈추고는, 안은 것을 풀어서 한순간 아쉬운 생각이  건 별수 없는 본능에서였다. 그러나 녀석이 순순히 떨어진 이유는, 다음 층에 안착하기 위해서 잠깐만.

"희진이는 이런  안 해줘?"

포옹? 아니면 에스컬레이터 올라가는 사이의 밀착?

안는 건 몰라도, 이런 적은 없었으니 곧이곧대로 단언하긴 그랬다.

"보통, 바깥에서 자지는 안 만지지…."

보통이란 의미가 어디까지나 내 선입견에서. 야외에서 긴장감 넘치는 짓을 하는 건  성벽이 아니었다. 희진이도 그래 보이진 않았고.

"후-웅…그래?"

다음 에스컬레이터를 타려고 다가가자, 자연스럽게 껴안으며 갸우뚱. 은연중에 자꾸 희진이를 언급하는데, 이거 참 미묘하다.

대놓고 자매 비교라…곤란하기 짝이 없네.

"히히힣-."

어차피 침묵할 것을 알고서 물은 탓인지, 미소를 끝으로 걱정보다 살갑게 어깨를 손끝으로 두드렸다. 살갑다는 단어가  알맞진 않았어도, 노출을 감행한 녀석이다 보니 행여 이대로 옷을 벗길까 싶은 두려움과 비교한다면 심리적으로 훨씬 나은 여건.

"…하-."

심지어 누군가 우리를 쳐다볼 때 녀석이 호승심에 더욱 단도직입적으로 피부를 까발릴까 봐 여간 스트레스받는 것이 아니었다.

"벌써 도착했네, 아쉽다-아."

내게는 천릿길이나 마찬가지였던 거리가 녀석에겐 금방인 모양. 관점이 다르다 보니까 어쩔 수 없겠지만, 불안했던 행위가 끝났다는 사실에 조금 마음이 편안해졌다. 걸으면서 희롱하기엔 다소 제약이 있을 테니까.

"……하."

이제는 당연하다는 식으로 팔을 잡고 걷는데, 도리어 이러니까 성추행은 안 하니 좋았다.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손쉽게 내주니, 사실은 그게 마음 편해지는 선택이라서 참으로 아이러니.

"자기야, 왔어."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주변이 어두워져 영화관으로 입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팝콘 먹을 거야?"

앱으로 예매했는지, 예매권을 뽑지도 않고서 매점으로 이끄는 발길.

"…아니. 별로 생각 없어."

아까 먹은 햄버거가 아직 소화되지 않았다. 정확히는 혼자서 전부 처리한 감자튀김이지만, 그런  따져봤자 달라지는 건 없으니 삐쭉 튀어나오려던 불만을 삼키고.

"그래? 그래도 살 건데, 중간에 목마르다고 하는 것보다 지금 말하는 편이 좋을 거야."

나름 신경 써주는 걸까? 그런다고 고마움 마음 따윈 전혀 안 들었지만.

"…콜라 작은 거로."

그러나 녀석의 말에 설득당하고서 음료를 골랐다.

"훙-…그래."

녀석이 사주는 것을 먹기엔 거북하여 돈을 꺼내려는 틈에 주문하러 가버려서 다시 온다면 줄 예정. 귀찮게 잔돈으로 바꾸기엔  들고 다니지 않아서, 가격판을 보고 계산하곤 녀석이 오기 전에 전송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녀석을 쳐다보니까 폰을 확인하는 모습.

"…-."

1이 사라진 걸 보면 내가 보낸 내용을 봤을 거다. 그러나 받았다는 내용 보내지 않고서 주문을 기다리는데, 여기서 기다리면 될 것을 굳이 카운터 앞에서 서성거리는 건 조금 의아했다. 기다리는 인원도 적어서 금방 나올 테니 그럴 수야 있지만, 아까처럼 번호표가 찍힌 영수증을 받았을 테니 멀찍이 순서를 기다려 전광판을 지켜보면 편할 거란 생각.

사람마다 각자 자기만의 방식이란 게 있으니까….

긁어 부스럼이 생기고 싶지 않아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것보단 오늘은 희진이에게 연락을 하지 않은 점인데…죄책감에 선뜻 토-크를 보내기 애매했고, 어제 일로 피곤한지 회복하느라 자고 있으리란 생각에 망설여지는 기분. 늦게 보더라도 먼저 보낸다면 기분이 나지겠지만, 막상 보내려고 하자니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뿐이었다.

"자기야-, 이것 좀 들어줘."

고민하는 사이 나를 부르는 듯한 껄끄러운 목소리.

"어? 응…!"

녀석과 본의 아닌 데이트 중에 희진이를 신경을 쓰다 보니 집중을 못 했다. 언제 구매했는지, 두 손 가득한 뭔가를 많이 주문해서 도와주려고 빨라지는 걸음걸이. 가까이 다가가 쇼핑백을 벌리니까 조심스럽게 물건을 다 넣는다.

"…."

여기서도 캐릭터 상품을 샀는데, 역시나 드는 건  몫. 완전 짐꾼 취급이지만, 그래서 건드리지 않는다면 차라리 이게 나았다. 불행 중 다행인  쇼핑백에 전부 들어간다는 점. 대신에 녀석은 팝콘 하나와 음료수 두 잔이 담긴 곽을 들어서, 덕분에 그리 불편하진 않았다.

"그것도 들어 줄게."

그런 주제에 곽마저 들려고 하니까 말하면서도 무리했나 싶은 심정. 어차피 한 손은 비어 있다.

"괜찮아. 자긴 그거 들고 있잖아."

뜻밖의 배려에 딱히 기분이 나아지진 않은 건, 나도 인사치레 삼아 해본 말이었으니까.

"근데, 무슨 영화 예매했어?"

표를 받지 않은  보면 모바일로 한 게 확실했다. 중요한 건 무슨 영화를 보는가. 봤던 걸 본다면 어지간한 명작이나 취향이 아닌 이상 흥미가 없었고, 혹여 공포영화라도 본다면 남들에게 심한 민폐를 끼칠 것 같은 느낌에 꺼려졌다.

"움-, 글쎄?"

그렇다고 녀석과 한가로이 로맨스 영화를 보자니, 연인도 아닌데 불현듯 자괴감만. 차라리 녀석 취향이라는 영화를 본다면, 혼자 거기에 빠져들어 그동안만은 내게 관심 끄기만을 기대할 거다.

"궁금해?"

그야 뭐….

"아, 저거야."

말하는 도중에 녀석이 손으로 들고 있기에 가리킬  없어서 살짝 고개를 들어 턱이 가리킨 곳을 보니 섬뜩한 화면.

"엑!?"

방심하지 않아서 화들짝까진 아니었으나, 감추지 못하여 놀란 표정은 놀림감이 되기 딱 좋았다.

"아, 넘어갔네."

넘어가?

마주하기 싫은 화면을 억지로 노려보며 기다리니까 곧 다른 제목과 함께 바뀌는 배경. 이것도 전광판이다 보니 시간이 지날 때마다 차례대로 개봉하는 영화를 광고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녀석이 예매했다는  내가 보자마자 넘어간 모양. 타이밍도 이렇게 얄궂을 수가 없었다.

"뭐야 자기? 겨우 공포영화 포스터만 보고 놀란 거야?"

부디 녀석이 그냥 넘어가 주기를 바랐는데…이래선 이걸 가지고 어떤 장난을 칠지 두려움이. 히-죽 웃는 얼굴이 더욱 나를 불안함에 떨게 했다.

"끄-응…그래."

희진이에게 놀림 받긴 했어도, 그건 어디까지나 장난이었으니까. 그렇다고 녀석에게까지 그런 취급을 받고 싶진 않았다. 싫어하는 녀석이 장난을 치면, 아무리 사소해도 당하는 처지에선 괴롭힘이었으니까.

"쿠-쿡. 귀엽네."

우선은 비웃음 한 번. 그러고선 어떤 비아냥을 해댈지 속으로 예상한다. 여기서 대비하여 희진이는 놀려도 사랑스럽게 놀리니까 기분 나쁘지 않아서 그런 기억을 되살려도 도움이 되지 않아 보였고, 달리 떠올릴만한  날 괴롭히던 녀석들의 폭언들.

…아니, 괜한 트라우마 자극하지 말고 일단 들어나 보자.

말도 직설적이고 사회성이 결여 된 안하무인의 태도라 내심 각오를 굳혔다.

"가자 자-기.  시작하겠다."
"…응?"

감상은 그게 끝?

공포영화는 희진이 집에서만 봤던 거 같은데, 녀석은 내가 싫어하던 걸 몰랐었나? 그것보다 다른 약점을 잡았는데 그걸 가지고 꼬투리를 잡지 않았다. 사실 약점이야 훨씬 치명적인 것이 있어서 이런 건 우스울 테지만…그런  치곤 지레 겁을 먹은  민망할 정도로 가벼운 행동에 안도.

"따라와, 어제 와서 어딘진 대충 알고 있어."

어제? 집을 비워준다고 하더니, 여기에 종일 있었던 걸까?

묘하게 당당히 앞장서던 몸짓이 얼추 이해가 갔다.

"맨 뒷자리도 괜찮지?"

평소라면 내가 희진이를 위해서 먼저 체크하고 여러 가지 알아보는 것이 기본. 그런데 오늘은 반대였다.

"어, 뭐…."

내가 끌려 나온 처지라지만, 녀석이 일정을 잡아서 밥도 먹고 나름 쇼핑도 하고 영화까지 녀석이 계획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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