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끌려 나온 데이트(2)
성실하다는 건 이럴 때 귀찮아져서 애인일 때 기분 맞추기 싫은 까닭에 편하게 섹파하자고 했는데, 이래서야 애써 섹파로 구분 지었던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깜찍하긴."
녀석이 내 취향이고 마음에 들었다 한들, 사실 거기까지였다. 인간관계에 있어 귀차니즘을 피력한 나이기에 연인이란 존재는 번거로웠으니까.
한때는 재성 오빠에게 여실히 마음을 두었지만, 두 번이나 차였으니 깔끔하게 버려야겠지.
"…."
그나저나 다행이다. 녀석이 재성 오빠처럼 까다로웠다면 이번엔 진짜 희진이랑 영영 남이 되었을지도 몰랐는데.
"쿠-훟."
어수룩해서 약간의 거짓말을 보태도 따라주니까, 너무 쉬웠다.
싫은 기색을 팍팍 내면서도 말이지….
이게 바로 입으로는 싫다고 하는 주제에 몸은 정직하군…뭐, 그런 걸가?
"쿠-후후훗."
정말 웃기는 상황이었다. 폰 화면을 보다 말다 만지작거리면서 기다리다가…녀석이 먼저 나오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어도, 약속 시각이 다가올수록 내심 녀석이 기다리고 있다가 반겨줬으면 하는 바람.
"웃, 겨…."
빨리 나올 수야 있었어도, 반겨줄 일은 없으리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이런 게 여자의 이기적인 심리인가….
같은 여자가 보기에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내가 그러니까 이제야 이해가 됐다.
이래서 해 봐야 안다고 하는구나….
재밌는 감정을 경험했다.
"훙-…."
아직 십 분이나 넘게 남았지만, 장소와 시간을 알려주니까 대답이 끝낸 토-크 화면이 별로라, 언제 오느냐고 타박하고 싶었어도 그다지 늦은 건 아니기에.
'스와이프'
여유가 있는 시간임에도 너무 이른 탓에 괜히 초조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비록 경험을 희진이보다 빨리했다지만, 데이트라던가 중간 과정 자체는 난생처음이었으니까. 거리감이나 그런 것도 넘기고 녀석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애매했지만, 무턱대고 조심스럽게 굴면 얕보일 거 같아서 저돌적으로 나가기로 이미 마음먹었다. 그게 과연 집이 아니라 바깥에서도 가능할지, 먹힐지가 불확실했어도.
"그, 와 있었네…."
익숙한 음성에 왠지 내게 하는 말 같아 고개를 드니까 사복 차림의 녀석이 보였다. 그런데 서먹서먹한 사이라 그런지 멀찍이 떨어져서 딱 들릴 정도로만 목소리를 냈고, 들릴락 말락 해서 진짜 소리만 내어 자신을 알리는 용도로만. 반가웠던 마음도 잠시, 토-크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싫은 티를 팍팍 내니까 그간 좋았던 기분 다 망친다.
"…칫-."
이렇게 돼버리자 오기로라도 녀석과 가까워지고 싶어지는 욕심. 녀석이 먼저 그럴 리는 없었기에, 내가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흐-엨!!?"
생각도 하고 마음도 먹었으니 실천하여 무방비한 녀석의 팔을 연인처럼 붙잡으니까 보기 좋게 당황한 모습. 부각할 것이 없는 몸이라 가슴을 문대도 별 느낌 없겠지만, 대신에 내가 남자의 팔 근육을 느끼니까 된 거겠지?
"자기-이. 왜 이리 늦었어?"
할까 말까 많이 망설이긴 했지만, 결국엔 연인처럼 굴기로 했다.
"느, 늦다니? 시십 분 일찍 왔는데…? 것보다, 떨어져…!"
당혹스러움이 역력한 채로 어깨를 미는데, 자세가 나오지 않아서 그런 건지 힘이 부족한 건지 버티지 못할 저항은 아니었다.
"나보다 늦었으면 늦은 거지 자기도 차-암. 앞으론 나보다 일찍 와야 해-. 안 그럼 모두가 보는 앞에서 쪽쪽 할 거야-."
이런 힘에도 혹여나 떨어질까 더욱 달라붙어서 기왕 창피해질 거 무척 낯간지러운 말을 귓구멍에 선사. 흠칫하며 헤엑!? 거리는 녀석의 반응에 부끄러웠어도 미소가 지어졌다.
"희진이라면 걱정하지 마. 자기가 자지를 실컷 박아댄 탓에 오늘은 종일 집에서 쉬고 있을 테니까."
자꾸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며 눈치를 보는데, 혹시나 희진이한테 걸릴까 봐 이러는 건가 싶어서 안심하라고 하는 소리.
"후-."
"흨-!?"
뺨에다가 진짜 입을 맞출 것처럼 달라붙으려다가 멈춰서 귀에 바람까지 불어 주니까 좋아 죽는다.
"아니면, 희진이랑 너가 사귀는 걸 다른 누가 알기라도 해?"
녀석이 벗어나려고 미약한 발버둥을 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행해버리는 이야기.
"…아직, 그런 건 아니지만…."
보아하니 누가 보더라도 연인 행세 하는 것에 태클 걸 사람은 없다는 뜻이니까, 찰-싹 붙어도 걱정 없었다.
"그럼 됐어 자기. 오늘은 나랑 데이트도 하고, 섹스도 하자."
은근슬쩍 녀석에게 들려주는 진심. 녀석을 불러낸 나의 원천적인 욕망이자, 욕구였다.
"목소리 좀 낮춰…! 다 들리잖아…!"
노골적인 발음에 화들짝 놀라는데, 드디어 녀석이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려 누가 들을까 속삭이는 목소리. 연인 간의 눈꼴사나운 애정 행위가 눈에 띄긴 했으나, 나도 무리했다는 걸 인정하고 곧 자제하기로 했다.
"이게 어때서? 어제 희진이랑 섹스만 하느라 집에만 있었잖아? 오늘은 나랑 바깥을 돌아다니며 데이트도 하고 좀 더 연인다운 기분 좀 내자고."
귀찮은 건 질색이었지만, 과정 자체에 대해서는 낙관적이라 이런 행위 자체는 싫지 않았…아니.
좋아.
"끄-응…."
하나 녀석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얼굴을 피해 떨군다. 녀석에게 저질렀던 일을 생각하면 당연한 반응.
"쿠히힣-."
그래도 떨어지길 포기했는지, 나를 밀던 손도 물러나자 자의로 팔을 풀어주고는 눈앞에서 허리를 곧게 펴 몸을 볼 수 있게끔 가리지 않았다.
"자기-. 나 어때?"
남자라면 듣기 싫은 말이라지만, 꼭 한번 해보고 싶던 욕심으로 어디가 변했고 그걸 알아차려 주기를 바랐다.
혹은 칭찬해주거나.
"어, 그래…귀여워."
어수룩해 보여도 눈치가 없는 건 아니라서 그런지 바로 칭찬하지만, 어째 엎드려 절 받는 느낌이라 영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게 다야?"
기분 나쁘지 않은 투로 말했지만, 별안간에 실망스러운 건 내가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이라서. 좀 더 해달라는 듯이 몸을 가볍고 부드럽게 움직여 여러모로 자세를 취해주었다.
"어, 어울려…."
이어지는 칭찬도 단조로워 조잡하기 짝이 없었지만, 녀석에겐 아마 이게 최선이겠지. 싫어하는 상대에게조차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는 성격은 아니었으니까, 보잘것없이 초라해도 분명 진심일 거다.
"휘-이…이번엔?"
한 바퀴 몸을 돌리면서 허벅지 반쯤 가린 원피스가 나풀나풀하도록 회전. 이어서 드러난 쇄골 사이에 살며시 손을 얹고는 두드러지지 않는 가슴을 강조했다.
"희진이에 비하면 빈약하긴 해도, 네가 만약 슬렌더가 취향이라면 수요는 있는 거겠지?"
내 입으로 이런 말 하면서 언짢았지만, 딱히 내세울 거라고는 없었기에 아쉬운 대로. 혹여나 녀석의 취향이 풍만한 것이 아니라 반듯한 거라면 희망은 있을지도 몰랐다. 무엇에? 섹파로서 희진이보다 궁합이 잘 맞는다는 것에.
"어…, 큼-."
그러나 대답하기 무안한 눈동자를 보니까 현실을 깨닫고 광대처럼 굴었던 자신이 창피해져서 푹하고 머리를 숙여버렸다.
그래, 이런 건 진짜 연인끼리나 할 법한 짓이니까….
"…들어."
마음에 들지 않아 녀석에게 냉큼 파우치를 가슴에 밀어버리고는, 얼떨결에 받으니까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어?"
그러자 잠깐 망설이던 목소리가 들리더니, 곧 뒤따라오는 인기척에 흑역사를 얼른 잊고 다음엔 어떤 방식으로 골려주면 재밌을까 머리를 굴리면서 늦추는 속도. 아쉽게도 옆으로 걷지 않고 뒤에 거리를 두며 따라와서, 찜찜했어도 이제 시작이었다.
화가 난 걸까?
느낌상 씩씩 소리를 내며 걷는 건 아니지만, 어떤 표정인지 알 수 없어서 그저 놓치지 않게 졸졸 따라갈 뿐.
"…."
어쩌다 들게 된 손가방은 뜻밖에 소녀 소녀 해서, 녀석의 취향이 이런 거라곤 연상하기 어려웠어도 겉모습만 보면 충분히 수긍 갈 만했다.
어디까지나 외적으론 말이지.
누가 저 종잡을 수 없게 지랄맞은 성격을 알게 되면 분명 치를 떨 거고, 내가 현재 그러는 중이다. 모처럼의 일요일을 녀석과 보낸다고 하니 그야말로 최악. 그게 별로 처음인 것도 아니었지만, 단연 나쁘다고 말할만한 기억이라 확신한다.
그저께에 이어서 오늘 또한 앞으로 벌어질 일로 인해 반드시 후회할 거라고….
이건 정말, 참으로 억울하고 부조리했다.
"배 안 고파?"
일이 있어 만날 때면 항상 묻는 안부 같은 말.
"…조금."
그렇다고 거절하기엔 지난번에 한소리도 들었고 하니, 여기선 그렇다고 하는 편이 낫겠지
…솔직히 아침도 안 먹고 와서 허기가 지긴 했다.
"쿻, 그래?"
어디까지나 거절은 하지 않는 선에서의 반항. 화가 잔뜩 났는지 고개를 뒤로 돌리지도 않고 툭툭 내뱉는 터라 마음에 걸리긴 했어도, 여기서 숙이고 들어가면 매번 끌려다닐 것을 알기에 쉽게 질 수는 없었다.
"희진이랑은 보통, 뭐 먹어?"
잘 가다가 멈춰서더니 갑작스러운 질문.
"…희진이랑?"
그렇게 뜬금없는 말은 아니었지만, 예상했던 건 아니라서 순전히 호기심에 의한 궁금증을 답해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바깥에서 식사는 잘 하지 않는 편인데…굳이 먹는다면 주로 분식집? 둘 다 입이 작은 편이라 그렇게 많이 먹지 않거든."
처음에 파스타나 스테이크 전문점을 가니까 자기는 라볶이가 훨씬 좋다면서 자리를 옮겼었다. 내가 생각해도 스스로 무리하는 게 뻔히 보여서 나를 배려하느라 그런 건 줄 알았는데, 분위기 있는 카페를 좋아해도 쫄면이나 떡볶일 무리 없이 잘 먹어서 단순히 배려하려고 거짓말을 한 건 아닌 모양이었으니.
"흐-응, 그래?"
거짓 한 점 없이 솔직하게 말해줬는데, 녀석의 반응이 뭔가 미묘해서 뒤늦게 경계심이 생겼다.
"근데 우리 속옷 사러 온 거 아니야?"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았기에 대답을 기다릴 바에야, 괜히 이리저리 움직이기보다는 얼른 용건을 마치고서 헤어지고 싶은 마음 한가득.
"아니, 데이트하는 건데?"
그러나 녀석은 뒤돌아서며 나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고는 딱 잘라 말했다.
"…뭐? 내가? 너랑 왜?"
연인도 아니고서야 그걸 내가 너랑 왜 해야….
"꼭 연인 사이에만 하나? 기분 좀 내고 싶으니까 어울려주시지? 자-기-야?"
언제 내 머릿속을 읽었는지 다시 한번 나를 몰아붙이면서 말하는데, 괜히 반항해서 그런 걸까? 어느새 다시 내 옆으로 달라 붙어버리고는 끌려가는 모양새. 도무지 속을 알 수가 없어서 어려웠다.
"하하…."
체념에 가까운 웃음으로 무미건조한 기분을 표현하면서, 끌어당기는 대로 이끌려가는 신체. 예전 같았으면 여자와 접촉이 일어나는 것만 해도 소스라치게 놀랐을 텐데…희진이랑 녀석과 자꾸 만나다 보니까, 이 정도론 별 거부 반응이 없는 걸 보아 변화한 자신을 칭찬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실없이 웃기기만 했다.
"…그래서? 어디 가는 건데?"
구태여 나랑 데이트하려는 이유가 정말 내가 녀석의 취향이라 그런 거라면 그런 거라 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상대도 아닌데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끌려다니는 것은 기대가 아닌 불길함이라 불안감에 떨리는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쿠-훟! 기대돼 자기?"
아, 설마하니 여자를 때리고 싶단 생각을 할 줄이야…애교는 나름 귀여웠어도, 그게 일련의 범죄를 용서할 정도는 아니니까.
"…큼."
그러니, 녀석이 원하는 대로 좋은 표정이 나오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우선 이렇게 제멋대로 구는 것부터 어떻게 좀 했으면.
계속 자기중심적으로 안하무인의 태도를 고수하면 부처님이 오셔도 혀를 차실 거다.
"…크-큼."
냉큼 대답해주기엔 껄끄러워서 공연히 기침만. 녀석의 협박에 어쩔 수 없이 같이 다니지만, 마음마저 허락한 건 아니라서 헛짓거리에 일일이 답해줄 의무는 없었다.
"그래! 흥! 그러면! 우선 밥부터 먹고, 다음에 자기가 원하는 대로. 내 속옷, 골라줘."
대체 누가 원한다고….
능청스럽게 팔짱 끼면서 소름 끼치게 검지 끝으로 어깨를 콕콕 찌르는데, 무조건 싫어하려는 머리와 반대로 몸은 싫어하지 않으니까…이게 참 형용하기 그랬다.
"크-흠."
일일이 반박한다 해도 이러한 태도에 소용이 없어 보였고, 그렇다고 덧붙여서 해줄 말도 없었기에 또 헛기침. 이후에는 그저 침묵으로만 일관하고 싶어졌다.
"좋아-자기. 이틀 연속으로 격렬했으면 지칠 만도 하지."
호응이 없으니까 알아서 판단하는 자세라 뭔가 안쓰러웠지만, 알게 모람.
내가 겪은 스트레스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