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0화 〉끌려 나온 데이트(1) (60/107)



〈 60화 〉끌려 나온 데이트(1)

"내가 뭐 때문에 집에서 나와 자리를 비워줬다고 생각하는 거야?"

저번에 사납게 굴 때나 성가시지, 지금 이럴  어렸을 시기의 기분 내며 놀리는 맛에 시시덕거렸다.

"말해 봐. 소설  때 참고나 좀 하게."

추궁하는 이유가 대략 얼빠진 내용이란 걸 인지시켜줘서 화를 내려던 자신이 무색해지도록 유도.

"언니가 용돈도 줬잖아?"

겸사겸사 언급하는 명분.

"둘이서 맛있는 거 실컷 먹고는 그대로 빠구리 떴겠네."

일부로 저속한 단어를 사용하여 짓궂게 몰아붙인다는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줬다.

"으-…진짜!"

그러자 화끈거리는 표정. 당황했으면서 티 내지 않으려고 참으려는 얼굴도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그 어리버리한 쑥맥 녀석이 먼저  자빠뜨리디?"

조금 심하다시피 할 정도로  올리는 것도 거진 삼 년 만에. 그간 너무 무관심하지 않았었나 싶지만, 언니인 내가 이런 성격이다 보니 차라리 여태 그러려니 했던 관계가 더 나았을 거라 새삼 느낄 거다.

"쿠후훟-."

그런 생각을 하자 스스로 우스워져서, 자신감 넘치던 입가도 불균형을 이루어 머금게 되는 씁쓸함.

"…?"

그러다 얼핏 희진이의 행동이 부자연스럽다는  알아채고는, 눈썹 꿈틀거리는 것이 화가 나서 그렇다기보다 고통을 참는 듯한 기분이었다.

"어디 아파…?"

괜찮냐는 말보다 앞서 아프냐는 확인부터.

"쫌…처음이라."

화법이 이상해도, 그런 성질이라 어쩔 수 없었다.

"…심했던 거 같네, 미안해."

희진이를 놀리는 것도 상태가 괜찮을 때나 재밌지, 섹스했나  했나에 대한 것만 찾다가 정작 처녀를 상실해서 아팠을 거란 사실을 무시하면 티격태격하면서도 은근히 남은 자매의 우애를 찾긴 그를 거다.

"…언니?"

실컷 놀리다가도 낌새가 이상해지자 바로 태도가 돌변하는데, 그에 의아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당연.

"이야긴, 나중에 하고…저녁이나 먹자."

그나저나 거슬리는 격통의 경험자로서, 신경질적인 짜증이 다분해지지 않도록 참은 것만 해도 희진이가 성장했음을 은연히 알 수 있어서 은근 시원섭섭했다.

"…뭐, 먹고 싶어?"

그런 기분이야말로 들키고 싶지 않은 창피함이라 조금 더 속을 알  없게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태도를 보여주며 오늘은 그냥 넘어가는데, 어차피 놀리는 거야 희진이보다 녀석이 좀  재밌을 테니까.

"쿡…."

목표를 희진이에서 녀석으로 바꿨다.

내일은 내가 불러서 골려 줘야지.

어제오늘 일로 피곤하겠으나    아니기에.

행복함을 가득 끌어안다 못해 차고 넘쳐서 오다가 흘린 모양인지, 아버지께서 얼굴이 그게 뭐냐는 말씀에 겨우 입이 헤벌렸단 사실을 깨달았다.

"끗-!"

집으로 돌아오면서 얼마나 추태를 드러냈는지 그제야 자각. 그래도…딱히 누군가에게 피해를  것이 아니라서 상관없지 않을까 싶었다.

"…."

뒤늦게 밀려오는 창피함은 자업자득이라 별수 없어도. 오히려 오늘은 어른의 데이트? 그런 기분을 경험한  같아서 한층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누구에게? 숙맥처럼 손잡는 것조차 한심하게 멈칫거렸던 바로 자신에게.

"씁-…."

그러나 그런 기분을 망치는 주범이 있었는데, 바로 뒤늦은 자괴감이었다.

섹스만 하고 책임은 없다고…? 전혀!

혼전순결이나 그런 것까지 바라진 않았어도, 최소한 자신은 짝이 될 상대방에게 한눈팔지 않고 굳건할 자신이 있었다.

자신….

"큭, -."

역시 삶이란 건 체험해 보기 전까진 모를 일이었다. 입으로만 떠드는 것이 아니라, 진짜 그 상황 속에 처했을 때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굉장한 것이라고…다시 한번 절감하고 통감했다.

"…."

나는 말로만 떠들 줄 아는 나약한 놈이라고….

"제길."

뭐가 결혼이고 뭐가 한 사람만을 사랑한다냐….

비록 협박받아서 해버리긴 했지만, 해버린 건 해버린 거다. 서로가 처음인 줄 알았는데, 실은 처음이 아니었다…까진 이해할  있겠지. 그러나 교제 도중이기에 바람이나 다름없는 짓을 저지른 것을 문제가 아니라고 넘긴다면 상대방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거다.

"제길…."

자신의 치부를 제 딴엔 당연함이란 같잖은 단어로 어물쩍 넘어가려는 비도덕적인 시도. 불륜이라는 비리를 저지르고서 올바른 결혼 생활이 가능하기나 할까?

'꽈악'

하물며 연인 사이에서도 들킨다면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하는 거로 끝난다면 다행이라서. 차여도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은 없을 거다. 그럴 정도의 악행.

"…제길."

애인을 두고서 다른 이성과 정을 나눴다는 사실을 어디에서 물어도 열에 아홉이나 백에 구십구는 나쁘다고 할 거다. 남은 하나는 바람이란 행위에 잘못이란 자각이 없는 사람일 테고.

"…, -."

그렇다고 인제 와서 고백하기에는 늦었기에 털어놓고 용서를 구하는 것도 무책임하다.
그래서? 그래서 어쩔 건데?

잘못을 인정하는 것도 물론 용기지만, 그렇기에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은 어려웠다. 내게 사과 아닌 사과를 하던 가해자처럼 장난삼아 지껄여도 될 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라서, 지난날의 반성을 바탕 삼으려 과거 내가 잘못을 저질렀던 때를 떠올렸으니까.

"후-…."

괴롭힘당하던 시절 딱 한 명…친구로서 곁에서 나를 지켜주던 사람에게 어떻게 대했었는가? 피해망상에 빠져 너도 배신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에 사로잡혀서, 끝까지 친구라고 있어 주던 애에게 패악질을 부렸다. 가족이 아닌 단 한 명의 친구에게….

"-제기랄…."

떠올릴 때마다 씁쓸해져 실수로 쓰디쓴 커피를 마셔 입을 헹궜음에도 잔여물이 남아 입안 곳곳을 괴롭히는 기분. 실제론 물로 입을 헹구기 전의 느낌이지만, 다 내 잘못이라 그랬다. 이런 기억을 지우지 않고 떠올리며 잊지 않으려 하는 거야말로, 나를 괴롭혔던 가해자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생각에 애써 위안 삼기로.

"…-."

그런 주제에 사과하기 전에 헤어져 버렸다. 아버지께서 직접 나서서 가해자들이 처벌받고, 나는 등교 거부로 집에만 있기 전. 멋대로 의심하고 제멋대로 싸웠으면서 자기 멋대로 도망쳐버렸다.

"…."

덕분에 아버지께서 내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발단이 그 애와의 싸움이라 이게 참 아이러니했어도 어찌 됐든, 이후 그 애는 소식도 없이 전학을 가버렸다. 나는 시기가 애매해서 졸업만 하고 그 지역과 떨어진 곳으로 이사. 그렇다 보니 오해도 풀지 못하고 사과도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너무 제멋대로였네."

참으로 어리석고 참으로 미련해서 가슴 깊이 자리 잡은 미안함에 사로잡혀도 그 애와의 연락은 전부 끊겼으니까. 가장 마음에 사무치는 것은 정작  애와 마주쳤을 때, 어떤 식으로 사과해도 모자랄  같은 무서움이었다.

"…."

과연,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렀는데…아무리 전력을 다하더라도 코웃음 치지 않으면 다행일 행태였으니까. 받아준다는 전제도 어폐가 많았지만, 사과하고 싶은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은 이기적이어도 그만큼 절실했다.

그게 진심일지언정 말이지….

"하-아………."

이후 난 가치관도 가치관이지만, 진정 자신에게 사람으로서 도리를 잘 지키는지에 대한 반성으로 자주 자신을 돌아보곤 했다. 희진이와 사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도 정말 나란 녀석이 그렇게 예쁘고 완벽한 애와 같이 있어도 괜찮은지 피해망상이 남아 의심까지 했었어도, 너무 사람을 기피하는 것도 좋지 않아서 그 애와의 일을 전례 삼아 믿어 보기로. 이젠 그 믿음이 신뢰로 발전했는데….

"그런데, …."

이번엔 내가, 그 애에게 가해자들과 한패로 날 놀리는 건 아니냐 싶은 오해를 반대로…내가 진짜 녀석과 바람을 피우면서 희진이에게 사랑한다고 잘도 지껄이고 있었다.

거짓은 아니지, 사랑한다는 말 자첸….

그러나 이게 정녕 올바른 짓인가, 사람으로서 가능한 건가 싶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
라고 말할 거다.

이게 어딜 봐서 잘하고 있다는 건지.

이게 바로 기만하는 거고, 교만스러운 거다. 나는 어느새 내가 가장 싫어하던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고…. 그러지 않으려고 했던 반성이나 자책이 물거품 되고 있었다.

"빌어먹을…."

자신에게 저절로 욕이 나오는 상황. 도저히, 자신을 용서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개탄스러웠다. 마땅한 해결책도 없이 끌려만 다니는 자신을.

"저녁 먹어라"
"…아! , 네."

너무 자기 생각에만 집중한 나머지, 아버지께서 다가오셨던 인기척을 느끼지 못하고 자책만 하고 있었다.

"…."

침대에 누워 천장만 보다가 아버지의 말씀에 상체를 일으키고는 다시 풀썩. 어차피 이런저런 생각에 혼자 심각해져도 이번 일은 남이 아닌 내가 해결해야 하는 일임은 분명해서,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고 억지로 입꼬리를 올린 후 손을 씻으러 화장실로 향했다.


"끄-응…."

시험도 끝나고, 다시 희진이와 진지한 교제를 고민하며 어찌해야 할지 머리 싸매며 고민하던 찰나에 문제를 야기한 범인의 연락. 마침 희진이와 서로 잘 자라고 대화를 마친 참이었다.

"하, 싫다…."

시간을 계산하고 있던 건지, 아니면 노리고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이럴 때면 둘이 짜고 치는  아닐까 싶었다. 차라리 그랬다면 한편으로는 마음이 좀 편했을까? 나만 피해자인 것은 이제 그러려니 했으니까.

by특별공수
[내일 나랑 만나]_오후 11:44

싫다고 할까…그래, 지금이라도 거절해보자.
오후 11:44_[싫어]

곤란하다던가 그런 식으로 빙 돌려서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무심코 속마음이 튀어나와 단도직입적인 생각을 전송해버렸다.

당혹스러움에 화면을 보니 1 표시는 애초에 나타나지도 않은 걸 보아 들키지 않게 삭제하는 건 그른 상태.

by특별공수
[싫어?]_오후 11:44

싫다고 대답했는데 굳이 되물으니까 괜히 불안해진다.  봐도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느껴져서, 이대로 지고 들어간다면 계속 휘둘릴 것이 명백했다.

잘 처신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 것도 문제.

[이번 건 별로 협박하려는 게 아니야]_오후 11:44
[            ] ◎ #

무슨 말을 쓰기도 전에 이어서 토-크 한다.

[네 입으로도 말했잖아? 속옷 사주기로]
[난 누구 때문에 소중한 팬티 하나가 사라졌는데, 아무래도 신경 쓰여서]
[내일 나랑 같이 속옷 사러 와줘야겠어]
[이래도 싫으면 걍 협박당한 셈 치고 불려 나왔다고 할래?]_오후 11:45

줄줄이 쏟아지는 말에 거절하려는 명분도 잃어서, 이래서야 안 나갈 수도 없게 되었다.

[..] ◎ ▶

얍삽하다고 해야 할지, 빈틈없다고 해야 할지….

적어도 칭찬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교활하다고 명명했다.

"끙…."

오후 11:45_[..갈게]

여지를 주지 않는 모습에 내가 했던 고민 따위 비웃는 듯한 기분. 실제로 꼬리를 내리는 나를 보고 낄낄댈지도 몰랐다.

아니면 쿡쿡거리던가.

by특별공수
[ㅋ]
[그래야지]_오후 11:44

섣부르게 반항했다가 되려 완전히 잡혀 있단 사실만 각인시켜준 꼴이었다.

갑자기 친절하게 대해주니까, 처음엔 떨떠름하다가 이내 수긍하고는 무난하게 주문하는 저녁. 내일 뭐 할 거냐고 물으니까 집에서 쉬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까탈스럽긴…."

나도 그랬지만, 그곳이 제법 얼얼할 테니 괜히 나가지 말고 쉬란 걱정과 함께 난 내일도 영화 보러 간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니까 오히려 나를 추궁.

이래서 어디 가고 말고 말해주기 꺼려지지.

또? 라는 부정적인 어감에 대충 두세 번 볼 가치가 있는 영화라 말해주니까 퉁명스럽게 돈 지랄이란 말을 사뿐히 해준다.

"…야발년."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걱정하지 말고 기세를 잡았을 때 기를 죽일 걸…아무렴,  남친은 내 섹파니까. 여친이 고깝게 굴면, 남친이 대신…갚아야겠지.

"쿠-쿡."

아래로 말이야….

벌써 내일 있을 일이 너무나 기대됐다. 원래 쓰던 소설의 상황을 접목할까…? 아니면, 내 욕망에 충실해져 볼까?

"쿠후훟-!"

사랑하는 여친과 실컷 사랑을 나누고, 다음날엔 다른 여자와 싫은 기색으로 데이트. 어디 그 알량한 자존심이 얼마나 이어질지 무척이나 기다려졌다.


상영 시간보다 두 시간 일찍 나오라고  것은 희진이처럼 데이트 기분을 내고 싶어서.

"훟-…."

비록 연인까지 되어 귀찮은 관계가 되는 건 사양이었기에 굳이 섹파라는 형태로 매듭지었지만, 녀석은 뭐가 불만인지 싫다고 앙탈을 부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