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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화 〉여친의 사연(2) (59/107)



〈 59화 〉여친의 사연(2)

더군다나 이런 이야기까지 들었으니 녀석에게 반항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더 어려워져서 나빴다.

"헤헿…오빠, 나-아. 이제 씻으러 갈 건데…."

홀로 머리 아파지도록 고민하던 차에 희진이가 먼저 자리를 이탈하겠다고 하니 내심 아쉬웠어도 끄덕이는 고개.

"어, 응. 다녀와."

대답을 기다리던 얼굴에 그러라고 말해주니까 반응이 더딘 것이 잠깐 딴생각을 했던 것 같았다.

"…웅."

알겠다는 대답을 하자 소파에서 벗어나 복도로 걸어가는데, 흔들리는  가슴만이 아니라…탄력적인 엉덩이에 기껏 정리하던 구상이 저만치 날아….

"오빠는 같이 안 씻어?"

갑자기 훽-! 하고 뒤도니까 가슴이 드리블했다.

"믛!? …괜찮아!"

혹여나 노골적인 시선을 들키지 않았을까 조마조마하면서 거절.

"진-짜?"

확실히 놀리는 어조라서, 여기에 넘어가면 심각하게 고민하던 것을 다 까먹을지도 몰랐다.

"좋긴 한데…다녀올 동안 나, 뒷정리 좀 하고 있을게."

이대로 자리를 비우기엔 노골적이라, 누군가에게 들킨다면 곤란하기 짝이 없을 수준. 특히 녀석에게 보인다면 귀찮아질 게 뻔했다.

"아, 그러고 보니 그렇네."

섹스하느라 부대낀 자리 근처에 타액이라던가 애액이라던가 정액이라던가…. 민망한 액체를 흩뿌려 놓았고, 땀도 굉장히 흥건하게 소파에다가 비볐으니 물티슈로 닦았다.

"…하-."

직후 사용한 콘돔과 뜯은 러브젤도 고이 버리고 조심스럽게 한숨. 수고롭지 않게 간단한 일이었지만, 내가 처리해야 하는 편이 맞으리라 생각했기에 움직였다.

"그러니까. 편하게 씻고 와."

두 번이나 사정해서 그런지, 나른해지는 몸. 이런 상태로 씻어버리면 필시 노곤해져서, 설령 씻더라도 세수만 하는 편이 집에  때 편할 거다.

"웅! 히히…."

그제야 놀려먹으려는 생각을 접었는지 돌리는 발걸음.

"-…."

그에 홀린 것처럼 멀어지는 뒤태가 사라질 때까지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러고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바닥의 쓰레기부터 치우는데….

"아! 그래두 같이 씻고 싶으면 고민하지 말고 들어와 오빠-."
"…끟-!"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놀라 허리가 곧게 펴져서, 화들짝 놀라는 나를 보고 히죽거리며 진짜로 퇴장.

"…하하하, 하하…, 하-."

아슬하게 지친 나와 달리 쾌활하고도 음흉한 농담은 여전했다.


영화관에 있는 백화점…아니, 규모로 봤을 때는 백화점이니까 영화관이 있는 거겠지.

"…별로네."

쇼핑이라도 할 겸 여기저기 둘러봤는데, 마땅히 사고 싶은 건 없었다.

내가 원하는 굿즈가 있는 것도 아니고.

"…팬티."

그러던 중 하나 눈에 들어온 장소가 여성용속옷가게. 그러고 보니 섹스만 해봤지 데이트나 키스나 연인으로서 느껴볼 법한 행위는 일체 해본 적이 없었다. 검정고시 보듯 진도를 껑충 넘기니까 지나쳐버리는 허점. 여자로서 솔직히 아쉽다는 기분이 매우 들었다.

"…."

녀석에겐 뻔뻔하게 보일지 몰라도, 자신은 얼굴만 무표정에 가까울 뿐이지 실제로는 엄청 용기 내는 터라 그런 사실을 몰라주니 내심 섭섭하기도.

"영화…."

그런 관심을 받을만한 처지가 아니란 건 알고 있었지만, 욕심이란 것이 원래 그랬다. 이기적인 자신을 아닌  속이면서 실제로는 이상의 보답이나 환상을 품는다는 걸.

"…데이트."

마침 억지를 부려 속옷 사주게 했으니까, 겸사겸사 영화도 보고 카페도 가 보고 속옷가게도 가서 사달라고 하면 충분한 데이트다.

그럼…날짜를 언제 잡는 것이 좋을까?

가능하면 지금도 괜찮지만, 오늘만 해도 벌써 영화를 세 편이나 본 탓에 눈이 피로했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희진이에게서 답장이 없었기에 녀석에게도 남기는 토-크.

"…."

아예  앞에서 녀석을 꼬드길까 했지만, 그러기엔 내 체력이 모자랐고, 녀석이라고 항상 혈기왕성하지만은 않을 거다.

"쿻-."

되려 진저리치며 거부하면 거부하겠지. 마음 같아서는 수백 번 그럴 테지만, 약점을 잡힌 몸이다 보니 쉽사리 거역할 수 없는 수하를 부린다는 점은 악취미라 느껴도 솔직히 재밌었다.

─2019년 7월 6일 토요일─
오후 5:11_[집에서 나오면 알려줘]
함상명
[나왔어]_오후 5:21

"쿠-훗."

희진이
[오빠 갔어]
[들어와]_오후 5:22

때마침 울리는 알람은 슬슬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내용. 누가 커플 아니랄까 봐 토-크 보내는 것도 비슷했다.

"쿡쿡."

속으로 섹스는 좋았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건 면전에서 하는 편이 더 즐거울 거란 생각에 간신히 참았다.

저녁은 먹지 않고 돌아가는 건지, 혹은 그럴 힘이 남아 있지 않은 건지. 아무튼, 생각보다 빨리 들어가서 저녁에 예매했던 영화도 취소하고 집에 오니까 희진이가 보이지 않았다.

"…?"

평소라면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던지 방에 틀어박혀 있을 텐데, 아무래도 후자라 닫혀 있는 방문이 그것을 증명.

피곤해서 잠이라도 자고 있으려나…? 그건 조금 이른데.

귀찮게 문을 두드려 있나 없나 확인하지 않고서, 탐정이  마음으로 얘네가 어디서 거사를 치렀는지 조사할 계획이었다.

"쿠-훟."

녀석에게 직설적으로 묻거나 희진이에게 넌지시 떠보면 되겠지만, 현실과 접점이 부족한 내게 있어 이런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쿻…-."

우선 유추해야  사실은 오늘 섹스를 했나….

가장 확실한 증거로는, 사용하라고 두었던 콘돔이 줄었는지 확인하는 거였다.

"-…."

녀석이 지참했을 때도 있겠지만, 필요하면 쓰라고 서랍 속에 넣어놨으니 지금 열어보면  수 있겠지.

"쿠-후훗!"

놔둔 콘돔을 둘째 치고 러브젤 샘플도 줄어 있었다. 이거 아주 진득하니 즐긴 모양. 보통은 콘돔만 챙길 텐데, 저번에 내가 러브젤도 같이 사용하니까 따라 한 거 같았다.

자-그럼….

사용하려고 가져갔단 증거는 확보했고, 다음으로 어디서 했는가다.

"흐-음…."

집에서 장소는 거실, 주방, 욕실, 내 방과 희진이 방. 그리고, 안방이 있었다. 드레스 룸도 있지만, 창고나 다름없으니 굳이 퀴퀴한 곳에서 할 만큼 음침한 녀석들은 아니니까.

"…."

제일 유력한 희진이 방은 마지막에 들르도록 하고, 쓰레기통을 한 번 뒤져 보기로 했다.

"…쿠-힣."

들키면  될 사람이 있다면 안일하게 처리하지 않았겠지만, 녀석은 내가 섹스할 때 여러 가지 알려준 관계라서 굳이…. 별로 숨길 필요가 없을 테니 집에다 버린 흔적이 없다면 분명 희진이가 치웠을 거다.

내게 섹스한 흔적을 들키는 것이 창피한 거겠지…귀엽긴.

사춘기니까, 아마도 그런 구석이 남아 있을 거다.

"쿡-!"

그런 동생을 놀리는 것이 언니의 특권. 싹수가 많이 없어지긴 했어도, 발끈하며 얼굴 붉힐 모습을 상상하니 얼른 괴롭혀주고 싶어졌다.

"…-."

그럴 리가 없다는 예상대로 들어맞아서, 나갔을 때랑 비교하면 그다지 변화 없는 방. 쓰레기통도 내가 버렸던 것 그대로라, 활동복으로 갈아입고는 설렁설렁 움직였다.

"후-우음…."

다음으로 향한 곳은 거실. 리모컨이 소파 위가 아니라,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는 점에서 여기를 들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섹스도 소파에서 했을까?

"…음?"

겉으로 보아선 알기 어려웠다. 쓰레기통은 분리수거통과 함께 주방에 있어서, 무엇을 했을지 알아보려면 먼저 주방으로 가는 것이 맞아 옮기는 발걸음.

"-…."

 봐도 분리수거통엔 가격깨나 되는 배달음식을 주문한 흔적이 남아 바깥으로 삐져나온 플라스틱용기를 보고 피식 웃어버렸다.

맛나게 먹었나 보네.

처음 보는 용기라 뭘 먹었는지 몰라도, 오만 원이나 줬으니까 근접하게 소비했을 거라 생각된다.

어쩌면 녀석이 자기 돈을  보태서 고작 먹는 거로 사치를 부렸을지도.

중요한 건 이게 아니라서, 쓰레기통을 살피자 바로 원하던 흔적들이 나왔다.

"후후훟-…."

부러뜨린 나무젓가락과 잔여물이 남지 않은 플라스틱 뚜껑에 어울리지 않게 콘돔 하며 버려진 러브젤 샘플. 혹시 몰라 찢고 버리기만 했을까 봐 확인하기 위해 냄새를 맡아 보니…예상대로 역시 불쾌해서 눈매가 구겨졌고, 입꼬리가 올라갔다.

"…칫."

괜한 호기심이 기분을 망쳤지만, 어쨌든 찾았으니까.

"…힛-."

다음은 장소였다.

그렇다고 여기서 했을 리는 없을 테고…역시 거실이겠지.

"쩝-…."

확신을 가진 채로 떠나기 전에, 혹시 몰라 냉장고를 여니까 달랑 반쯤 남은 탄산음료만 있었다.

먹고 올 걸 그랬나?

게다가 음식은 남기지 않고  먹은 거 같아서 입맛만 다셨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 희진이를 골려 줄 생각에 배고픈 것도 참고 돌아왔는데, 막상 도착하니까 입이 심심해서 이거 참 웃기지도 않는 상황. 기운을 잃은 팔로 냉장고를 닫고는 거실로 터벅터벅 걸었다.

"아-함…왔어 언니?"

때마침 희진이가 복도에서 하품하며 인사하는데, 반쯤 감긴 눈을 보아 잠깐 잠이 들었던 모양.

"…어."

항상 그랬던 것처럼 눈을 마주치고 고개만 살짝 끄덕이니 원래 목적으로 보이던 냉장고를 향해 걸어간다.

"훙, 야. 그래?"

그러고선 안 그래도 소량 남은 음료수를 꺼내 채우는 컵.

"언니, 저녁은?"

지는 점심에 성대하게 먹었으면서, 저녁이랍시고 배꼽시계가 째깍째깍 울리나 보다.

"…먹어야지."

음식도 먹고 남자도 먹은 너와 다르게 이 언닌 팝콘만 씹었단다…외로이 말이지.

"머 먹을래 언니?"

평소라면 자기가 메뉴를 정하고 설득했을 텐데, 방금 일어나서 그런지 뭐 먹을지 고민을 안 한 상태였나 보다.

"…냉모밀."

바깥이 워낙에 더워서, 시원하면서도 자주 안 먹던 것이 당겼다.

"냉모밀? 나가서 먹게?"
"응? …아니."

방금 들어왔는데 느닷없이 나가서라니?

"그래? 국수 종류는 배달해서 먹으면 별로 맛없어."

아아, 그런 이유에서인가…까탈스럽긴.

"그럼 넌 뭐 먹고 싶은데?"

냉모밀이 먹고 싶단 생각은 했어도 그냥 그런 생각이 났을 뿐, 간절했던 건 아니라서 오늘도 희진이에게 고르기를 떠넘겼다.

"움-…잠시만."

그러자 주방 식탁 위에 올려져 있던 책자를 가져오는 희진이. 틀림 없이 점심에도 저걸 보고 음식을 시켰을 거다.

"…어."

고르는 데 시간이 걸릴  같아서 소파에 앉아 등받이에 목을 기대는데, 묘하게 미끈한 것이 닦은 지 얼마 안 된 느낌을 받았다.

얘가 청소했을 리는 없을 테고, 그렇다면….

"쿠-훟."

이쯤 되면 다시금 추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주방 쓰레기통에 콘돔과, 소파…그것도 등받이까지 닦은 흔적. 거기다가 구석자리인 여기에 앉으면 오른발이 테이블 다리에 걸려 불편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까 전과 차이를 알  있도록 오른쪽으로 제법 밀려 있었다.

"-…음."

그런 사실이야 굳이 여기 앉지 않더라도 반대편으로 가면 좁아진 소파의 간격 탓에 쉽게 알아차릴 수 있겠지.

"소파에서 질뻑하게 했나 보네?"

등받이에서 고개를 돌려 콧구멍으로 킁킁댔는데, 아쉽게도 내가 아는 정액 냄샌 몽땅 지워져 있었다.

"어? 뭐-!? 무슨 소리야 언니?"

반대쪽 소파 팔걸이에 엉덩이를 걸쳐 앉아 책자를 보다가 장난스럽게 던진 말을 덥석 무는 희진이.

"…얼마나 했어? 이런 구조면 아무래도, 기승위보단 후배위려나?"

둘이 했을 체위를 생각하며 이리저리 몸을 돌리다, 침대가 아닌 의자라면 아무래도 후배위가 무난했을 거라서 물어봤다.

"아, 아니 지금. 진짜…! 아니야 언니!"

손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부정하는 걸 보니까, 여기서 섹스했던 모양.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손을 소파에 얹고 박았는데 굳이 등받이까지 닦을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럼 정상위?"

소파가 길긴 했어도 둘의 체격을 상정하면 옆으로 누워서 하기엔 살짝 무리가 있을 테니, 한다면 대략 기승위보단 정상위겠지.

"언니!! 자꾸 그럴 거야!?"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화를 내는 타입. 그것 때문에 어릴 적부터 얼마나 어리광을 부리던지…그렇다고 여기서 물러나 봐야 얕보이기만 한다.

"너야말로 시치밀 뗄 거면 목에 키스 자국이나 지우고 말하시지?"
"엩!? 진짜? 읏-!"

노려보던 시선을 아무렇지 않게 맞받아치며 말해주자, 이미 들켰음에도 황급하게 가리는 목덜미.

"보나 마나 나 없는 동안 실컷 물고 빨고 별 난리를 쳐댔겠지."

잘해줬다고 기어오르는 태도가 아니꼬워서, 기를 죽일 필요가 있었다. 사실은 언니보다 먼저 남친도 사귀고 키스도 하고 데이트도 하고 섹스도 했다는 것에 거만해져 뻗대기 전에 선빵 치려는 거긴 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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