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8화 〉여친의 사연(1) (58/107)



〈 58화 〉여친의 사연(1)

"사촌오빠?"

뺏다란 표현도 흥미로웠지만, 뜻밖의 등장인물한테 관심이 갔다.

"응. 지금은 언니가 가장으로 모든 걸 관리하는데, 암만 부모님 없이 지냈대도 언니나 나나 아직은 미자잖아? 사실 말도 안 되지."

그야 그렇겠지.

"…그렇겠네."

보통이라면 성인이 되어야 권리를 지닐 수 있고 동시에 책임도 진다. 이제 청소년인 우리에게 그런 의무는  이른 이야기.

"그래서 사촌오빠가 부모님이 돌아가신 날부터 언니에게 권리를 강탈당하기 전까지 우릴 돌봐주고 있었어."
"…강탈?"

강탈이라…어쩌다 보니 무척 궁금해지는 단어가 나왔다.

"궁금해 오빠?"

집중하고 듣는 도중에 갑작스러운 질문.

"어!? 어…아니, 말하기 힘들면 말해주지 않아도 돼. 내가 괜한 말을 꺼냈네…미안."

오늘따라 사과만 여러  한다. 궁금증을 유발하는 내용이어도 어디까지나 개인의 가정사. 아무리 내가 애인일지언정, 비밀로 하고 싶은 것은 있을 테니 말하기 싫어하면 딱히 캐묻지 않는 것이 도리였다.

"아니야. 이제 오빠도 알아야지. 그런데 나…딱 하나만 알고 싶은 게 있어."

뭐가 그렇게 알고 싶은지, 눈빛에 간절함이 담겨 있어서 듣더라도 최대한 회피하지 않고자 각오하는 자세로 질문을 기다렸다.

"습-…."

그러느라 저도 모르게 삼키는 마른 입술.

"오빠네 부모님은…며느리 될 사람의 부모님이 없어도. 싫어하지, 않으실까…?"

무얼 말하려고 그렇게 주저하며 고민하는가 싶더니, 알고 싶다는 부분이 뜻밖에 현실적이라 내심 당황한 걸 내색하지 않으려 했다.

"아…그, 우리 부모님이?"

내용을 곱씹어 보면 그간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이해하진 못해도  거 같았기에.

"………응."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았으면서 결혼에 밀접한 이야기를 꺼내는 건 이른 것일지 몰라도, 내겐 결혼에 대해 생각을 했었기에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쉽게 꺼릴 건 없지…녀석에 관한 것만 뺀다면.

"적어도 말이지, 우리 부모님은 그런 희진이가 힘들었겠구나 보듬어 주셨으면 그러셨지 뭐라 하실 분은 아니야. 보증할게."

엄하시긴 하셔도 내가 왕따당할 때 직접적으로 행동해주신 아버지와 존경하는 어머니. 그런  분께서 며느리가 될 희진이가 부모님이 안 계시는 거 가지고 뭐라 하실 분은 아니실 거란  나는 자신할 수 있었다.

두  다 부모 없는 가정이라 해서 차별하실 분들은 아니었으니까.

"아…, 응-…!"

안일하게 생각한다면 별거 아닐지 몰라도, 자신은 노심초사했던 건지 긍정적인 대답에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안심하니까 내가 다 다행이었다.

"저번에…오빠, 어머님께서 날 보고 싶다고 말씀해주셨다고 하셨, 잖아."

부모님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떠오르는 걸 재차 확인하려는 모양.

"응, 그랬었지."

일주일 전에 손깍지 끼고 마주 보던  집으로 초대할 겸 부담 가지지 말라고 한 이야기지만, 진심으로 그리 말씀하셨었다. 애초에 빈말은 하지 않으시는 성격이시니까.

"방학하면, 올래?"

어차피 열흘도  남지 않았다. 희진이는 그것보다 빨리할 테고. 학원은 서로 다니지 않으니까, 특별한 일만 없다면 시간 맞추는 것도 어렵지 않을 거다.

"응…! 갈래."

여간 마음에 걸렸는지 당돌하면서 어딘가 서글펐었는데, 아이처럼 기뻐하길래 무의식적으로 안으려 하니까 덥석 안기는 희진이. 옷을 입지 않아서 그런지  때문에 밀착할 때마다 끈적였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헤헤헤헤."

고작 그런 거로 불편하지는 않았으니까.

"후-우, 웅-…."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떨어지는데,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개운하단 듯이 웃었다.
이래서야 사랑스러워하지 않고서는  배기겠네.

한 번 정을 섞은 것을 통해 많은 걸 알게  느낌…은 기분 탓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했다.

"큼-."

그러다가 의도적으로 밀리는 힘에 저항하지 못하고 쓰러지는 몸.

"헤헿."

아까처럼 누워버려서 올라탄 희진이를 보니까 노리고 그랬다는 표정이었다.

"이 상태로 이야기해도 돼?"

가정사를 꺼내기엔 조금 불온한 자세. 그런 거 따지자면 알몸인 거부터가 옥에 티지만, 내용이 그렇게 무겁지 않아서 이런 걸지도 몰랐다. 아니면 앉아서 이야기하기엔 조금 길던가.

"뭔가 거창하게 이야기했는데, 사실 나도 자세히 아는 건 아니야 오빠."

팔이 저리지 않도록 상체를 들썩이고는 집중했다.

"삼 년…아니, 내가 중학교 입학하기 전이니까 정확히 사 년 전이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이랑 언니랑 사촌오빠랑 같이 피서를 즐기러 놀러 갔었어."

끈적한 것은 몸뿐만이 아니라서, 목구멍도 침을 삼키니까 스르륵이 아닌 스르르 타고 흘러 나타나는 갈증.

"아마 계곡이었을 거야. 막 봄이 될 시기인데  녹아서 물이 졸졸 흐르고 깨끗했던 곳이었어."

그러나 이미 꺼낸 이야기의 흐름을 끊을 수가 없어서 차분히 들으려고 애썼다.

"나는 그때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토끼가 보고 싶었고, 아빠는 이런 산속엔 토끼보단 멧돼지가 있을 거라며 어린 내게 짓궂은 장난을 치셨어. 다들 그게 재밌다고 웃었는데, 나만 계속 울상이었나 봐."

본인 이야기인데 끝에서는  이야기를 하는 듯 이인칭 내지 삼인칭인 말투.

"그래서 내가 떼를 썼는데…그게 전혀 기억이 안 나. 언니도 사촌오빠도 끝까지 말해주지 않고."

트라우마일까? 갑자기 기억을 숨겼다는  충격적인 사태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던데.

"그리고, 이후에 기억나는 건 장례식이었어."

이야기의 흐름이 중요한 부분을 대뜸 넘기니까 당황스러웠지만,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아서 굳이 입을 열지 않았다.

"사망원인을 들으니까, 아빠랑 엄마가 나를 사촌오빠랑 언니에게 맡기고 잠깐 차 타고 뭐 사러 가신다는 것이…교통사고로. 이어졌다 하더라, 고…."

교통사고도 운전자가 방심한 건지, 아니면 상대방이 잘못한 건지 구별이 안 되는 어투.

"애초에 그 지역, 민간인 침입이 금지된 곳이었나 봐. 그래서 길도 험악한 주제에 난폭운전하는 사람이 많았데."

난폭운전이라고 하면, 차끼리 부딪친 걸까?

"사고 나지 말라고 하던 울타리도 해마다 갈아줘야 할 정도로 사고가 빈번하다고도 했고."

실수로 엄한 곳에 충돌하신 걸까? 내용은 안타까웠지만, 명확하지 않아서 헷갈리게 말한다.

"아무튼, 한순간에 부모님을 잃은 언니와 나는 짐 덩이로 전락해버렸어. 엄마랑 아빤 아는 친척도 많았던 거 같은데, 그에 비해 우리를 거둬주실 분은 없더라."

어쩌면 부모님의 사고사를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확실히 말하지 않은 걸지도 몰랐다.

"그렇게 친척 모두가 외면할 때, 오직 사촌오빠만이 우리를 법적 보호자 자격으로 나서서 길러줬어."

듣기만 해도 사촌오빠란 분이 좋은 사람이란  알 것 같은 기분.

"나도 언니도 사촌오빠를 잘 따랐지. 근데, 어느 날 보니까 사촌오빠가 사라졌다?"

 이야기가 단번에 넘어가 버린다. 이래서야 전후 사정을 제대로 알기 어려워서 추론해야 하는 상황.

"나는 사촌오빠가 군대에 간  알았어. 성인이라고 해도  대학을 고민하던 이십 대 초반이었으니까."

최소한 얼마나 지났다던가, 얼마 전의 일이라던가 언급은 해줬으면 좋겠다.

"…그랬구나."

그 사촌오빠란 존재가 녀석에게 대항할 수단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급해져 버린 마음.

"모든 걸 언니에게 맡기고 군대로 간  알았어. 그런데 그렇게 상냥하고 다정했던 사촌오빠가…전화도 받지 않고 휴가가 있었음에도 오지 않길래 이상했지."
"…응."

이래선 희진이의 진중한 이야기를 존중하지 않는 셈이라  문제보단 희진이에게 다시 집중하기로 했다.

"언니에게 물었더니 괜찮다고만 하고…결국, 우리의 법적 보호자가 되기를 승낙했던 사촌오빠와 달리 거부하던 큰이모에게 전화하니까…뻔뻔하게 자기 아들 범죄자 만들어놓고 무슨 연락을 하는 거냐고 하시더라…."
"…."

뭐라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나 말고도 뭔 짓을 벌인 거지 그 녀석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몰라도, 언니가 사촌오빠를 그렇게 했을 거로 생각해. 그럴 땐 좀 무서워. 정말  친언니가 맞는지 말이야."

겉보기엔 별로 표정 변화가 없어서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를 풍길지언정 그렇게까지 유해해 보이진 않았는데…열  물속은 알아도 한  사람의 속은 모른다더니, 녀석을 지금까지보다 더욱 경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끄-흠…."

단순히 부모님의 안부만 확인할 작정이었는데, 가슴 아픈 사연을 들으니까 어떻게 반응을 해줘야 하고 또 어떤 위로가 괜찮을지 많이 고민해버렸으나.

"희진아…말해줘서 고마워."

이럴 땐 머리가 아닌 몸이 실천하는 거라고…그저, 그저 어깨를 감싸 안아 등을 두드려주는 것으로 대응했다.

"무척 힘들었겠네…고생이 많았겠어."

어머니께서 해주셨던 위로를 경험 삼아.

"나로서는…감히  수 없겠지만."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에 함부로 떠들지 않고, 내가 느끼지 않았던 것을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으면서 슬퍼하는 상대방을 조심스럽게 다독이라고 배웠었다.

"…, 괜찮다는 말은 듣기 불편했겠네. 미안해…."

처음엔 내가 괴롭힘을 당했을 때, 선생도 반 애도 위로랍시고 같잖은 소릴 반면교사 삼아.

"그리고, 말해줘서 고마워."

어머니께서 해주신 말 한마디 한마디는 신중하고 마음을 울려서 싫지 않았다.

"아니야 오빠. 오빠야말로 지루해하지 않고  들어줘서 고마워."

어엿하게 멋들어진 말을 들려주는데, 그러면서 서로 질리지도 않은지 계속 끌어안는 행위.

"난 이제 괜찮으니까…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상처를 보듬는 것이 자칫 잘못하여 흉터로 남을 수도 있는데, 이미 아물어 가던 곳을 내가 구태여 꺼내게 한 것이 아닐까 몹시 미안해졌다.

"사랑해 오빠."

씁쓸한 마음이  즈음에서 저돌적인 성격처럼 미사여구 없이 표현.

"나도 사랑해…희진아."

귓가에 사랑을 속삭이고는 느릿느릿 떨어졌다. 그러면서 물러나 소파로 앉는 희진이.

"근데. 언니한테 무슨 말을 들었어?"
"어?"

겨우 떨어져서 마르던 목을 축이려던 참에 일어나려고 생각하다가 갑작스러운 질문에 놀랐다.

"부모님에 대해서 말이야. 오빠가 그냥 물은 거 같지 않아서."

성관계도 한 사이니까, 인사드리는 것이 예의라는 의도가 전해지지 않은 걸까?

"지난번에 둘이 같이 있던 것도 그렇고, 언니가 사람을 그렇게 가까이하진 않았는데…."

그러니까…녀석에게 무슨 말을 들어서 부모님에 대해 질문한 거로 생각하는 걸지도 몰랐다.

"어, …응."

근데 그 방향성이 매우 비틀어진 게, 너희 언니에게 협박을 당해서 말이야….

"무슨 말?"

집요할 정도로 듣고 싶었는지 계속해서 대답을 요구하는 태도.

"그게…."

녀석도 그랬지만, 자매라서 그런지 묘한 곳에서 찌르기를 잘하고 직설적인 화법이 사람 간 떨어지게 한다.

"나 불안해…오빠도 사촌오빠처럼 언니에게 해코지를 당하는 건 아닐까 해서…."

아, 그래서였나….

"-…."

인제 와서 솔직하게 말하기엔 너무 감정적이라 침착하게 대처하자.

"그냥, 희진이를 잘 부탁한다고…."

협박 건에 대해서 말해주는 건 아직 대비할 수단이 갖춰지지 않았기에, 그에 대하여 고백하는 건 별로 이성적이지 않았다. 대신 녀석이 원래 그랬을 만큼 전과가 있으니까 사실대로 털어놓는다면 희진이가 좀   편을 들어 줄 가능성은 있겠지.

"언니가…?"

예상치 못한 말을 들은 사람처럼 표하는 의문은 그리 이상하지 않았다. 뜬금없다는 표정도 덤으로 지어서 정말 생각하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은 얼굴이었지만.

"어, 응…."

사실 나도 마지막에 그런 부탁 아닌 부탁을 들었을  정말이지, 염치없다고 생각했다. 친동생을 협박 도구로 사용한 주제에 목적을 이루고 나니까 입 싹 닫았으니.

"…잘 부탁한다고, 했어."

그걸로도 모자라 잘해주는 척하는 건지 아니면 원래 아끼지만, 그날따라 조급한 마음에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가 버린 건지 헷갈릴 따름이었다.

"히힣, 내가 언니를 너무 나쁘게만 생각했었나 봐?"

여태 녀석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대화하다가 돌연 긍정적으로 변하니까 일단 내 말을 믿는 모양.

"어, 응…."

그래서 더욱 양심에 찔렸다.

"내가 못 보고 모르는 게 있던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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