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연인과의 오붓할 시간(10)
"흠-, 훗."
더군다나 크기도 상당하다 보니까 왼쪽 눈썹도 마찬가지로 체험하는 자비로움.
"후후."
좌측 눈동자만이 간신히 그 범위에서 살짝 벗어나 눈을 뜰 수 있었지만, 굳이 그러지 않고 이 행복한 시간을 길게 늘어뜨리려고 본능적으로 기댔다.
'콩닥'
그러다 문득 파묻힌 귓가에서 들리는 고동은 확연하게. 이러한 두근거림이 자칫 내 심장에서 나는 소리가 아닐까 싶은 착각이 들었었다.
"이히히히."
그러다 노출된 반대쪽 귀에 들리는 음성은, 차분하면서도 본인 또한 편안하여 거리낌 없이 내뱉는 호흡으로 듣기 좋은 자장가. 나아가 손으로 토닥여주는 손짓이 너무나도 졸리게 해서, 나를 느긋하게 두드려준다. 게다가 손끝이 그냥 툭툭 건드리는 것이 아닌 마찰로 옷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신기하게 더욱 잠을 유발하여 자칫 잘못하면 이대로 잠들 거 같았다.
"아-, …."
힘껏 사정했음에도 또 하고 싶게끔 해버리는 엄청난 중독성. 자위할 때도 생각해보면, 한다고 해봤자 하루에 한 번이면 충분했다. 굳이 두 번 이상 해버릴 필요도 없었고, 그럴 욕심도 없었으니까.
"흠…-."
애초에 자위 생각이 나면 순간만 기분 좋다 말아서 귀찮다는 감정도 살짝 없잖아 있었다. 자위라는 단어를 어쩌다가 알았고,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까먹었어도. 중학생 시기는 괴롭힘으로 범벅이 된 기억뿐이라 그다지 떠올리기 싫은 걸지도 몰랐다.
"흐-흥…."
그런 내게 희진이라는 기적이 찾아와서, 부부처럼 껴안은 채로 취하는 휴식은 이게 아직도 꿈인지 생시인지. 이젠 무리하게 그런 자세로 있을 필요가 없었기에 의자에 앉으며 눈빛으로 속삭이다가, 힘이 다 빠져버려 몸이 회복을 요구하길래 옆으로 드러누우니까 희진이도 덩달아 내 위로 이불처럼 나를 덮었다.
"…힣-…."
내가 또래보다 작고 가벼운 까닭도 있었으나 가슴 크기처럼 무거웠던 탓에 내색은 하기 어려워도 눈을 마주치니까 마냥 눈웃음 지을 수밖에.
"앗-…."
행복한 한때지만, 이러기를 십 분 이상 해버리니까 어깨가 아프고 팔이 저렸다.
"…끙."
그렇다고 이미 몇 번 몸을 비틀면서 부스럭거렸던 터라 자꾸 몸을 비틀어 자세를 바꾸면 깨질 게 분명한 분위기. 알콩달콩 겹쳐 누워 잘 이어나가 좋았던 것을 이대로 깨버리긴 아까웠기에 참았지만, 슬슬 한계였다.
"희진아…."
나도 힘들었지만, 그런 만큼 희진이 역시 힘들었겠지. 걱정의 우선순위는 나보다 희진이가 앞서 있었다.
"웅…?"
"그, 괜찮아?"
그러다 문득 생각 난 걱정은 현재 내가 힘들어도 뒤늦게 괜찮은지 질문. 사실 묻는 게 너무나도 뒤를 미룬 것처럼 더뎠으나, 마치 지금 생각난 듯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모가…?"
희진이는 마냥 행복감에 젖은 나머지 차분해 보여서 무슨 의도인지 순수하게 궁금해하며 갸우뚱.
"그, 처녀…."
반은 내 욕심에 찢은 주제에 차마 말할 용기가 없다는 것이 스스로 우스워졌다.
"아…, 히히."
인터넷에서 배운 지식으로 누군가는 죽을 듯이 아프다고 했으며, 또 누군간 전혀 찢어지는 것도 없이 좋다고만 했으니까 희진이는 과연 어떨지 염려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자 남친 실격.
"조금, 아프네…."
구태여 의식하게 했는지 미간을 살짝 찡그린 상태로 반짝 미소의 대답을 들었다. 하기야, 자지를 빼려고 보지를 봤을 때 찔끔 이지만 사이로 핏줄기 흐른 자국이 있다면 껄끄럽겠지…그렇게 생각 안 하려고 해도.
"…미안해."
대화를 하기 위해 거리를 뒀던 얼굴을 뺨과 어깨에 문대도록 안아서, 도닥이던 날개뼈 근처를 계속 두드려주었다.
"헤헤…우-웅, 아니야 오빠. 내가 좋아서 하겠다고 한 건데. 너무 신경 쓰지 마."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배려의 말을 건네는 훈훈함. 그러나 진심이기에 괜찮다는 말을 들었어도 걱정스러운 건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
그렇기에 더더욱 애틋해지는 토닥이는 손과 남은 손으로 쓸어내리는 머리카락.
"에헤헤헤."
애정을 듬뿍 담아서 내 딴에는 섬세한 손짓으로 껴안으니까 좋다고 히히 소리를 내며 안 그래도 밀착한 상태에서 더욱 파고드는 감촉을 느꼈다.
"웃-…!"
귓가에 울리는 신음이 예삿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괜한 착각일까?
"히히히…."
그러면서 혼자 웃더니, 이내 웃음소리가 끊기자 무언가 할 말이 있었는지 고개를 들어 다시 마주쳤다.
"구래도 오빠. 나-아, 살짝 눔무리 나올 만큼 아포."
유난히 애교가 짙어졌다고 한다면 마냥 기분 탓은 아닐 테지.
"근데…키. 쮸, 해주면 나을지도?"
앙탈이란 단어를 망각한 채, 어떻게 해야 아픔을 식힐 수 있을까 고민하는 내게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교태를 부린다.
"…-."
눈이든 귓구멍이든 애교를 수북이 쑤셔 넣는데, 방심한 채로 당해서 어안이 벙벙.
"으후후후후-훟…."
눈만 껌벅이는 것도 찰나라, 의도를 깨닫고는 눈매가 바뀌었다.
"해줄게, 얼마든지…."
예전의 나…불과 일주일 전의 나라면 상상도 못 할 수준의 진보로, 아직 서투른 기색이 남았으나 결정에 관해서는 여지없는 결단력.
"…츕-."
살짝 건조해진 입술을 핥고서, 희진이의 뒤통수를 사뿐히 감싸 키스하기 좋게 당겼다.
"후-웅…쯥."
사랑해 마지않아 급한 것도 없었고, 서두를 것도 없었기에 느긋한 입맞춤.
"흡-, 웅-훗…."
마무리에 가까운 키스라서 그런지 진득하진 않았으나 가볍다고 말하기엔 여유를 두어 늘어지지 않게끔 만족할 만치.
"응-…."
수분이 적어서 그러진 실타래를 쳤던 타액마저 그리 긴 존재감을 나타내지 못하고 끊기거나 금방 입술로 붙어버렸다.
"후-훙, 헿."
"…히히히."
이어서 또 키스해도 좋았지만, 만족감은 차고 넘쳐서 단순히 바라만 봐도 흐뭇할 지경.
"…앉을까?"
바라지 마지않던 성욕이 해결되자, 여태 견디느라 고생한 다른 부분이 더는 못 버티겠다고 아우성치는 바람에 자세를 바꾸자고 말했다.
"…훙-."
불편한 얼굴을 끝내 드러내니까 콧소리로 답하며 물러나는 몸.
"아, …."
그러면서 가슴이 출렁거리니 무심코 그곳으로 눈이 가버리는 건 별수 없는 본능이었다.
"헤헿-."
가슴으로 쏠린 시선을 느꼈는지, 의기양양한 목소리가 들려서 올려다보니까 만족스러운 눈매. 원래 섹드립을 자주 치던 터라, 눈길에 대한 부끄러움보단 자신감을 가지고서 자신의 몸을 활용한다.
"음…."
눈요기로는 좋았어도, 막상 가슴의 주인이 어디 더 쳐다보라는 식으로 나오니까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피해야겠단 일념에 수줍었던 예전으로 돌아가는 태도. 엉거주춤하게 앉아서 창피해지자, 이런 얼굴을 감상하려는지 흥미롭단 관심을 받았다.
"아, …."
뭔가 말하고 싶은데, 딱히 할 말은 없어서 구태여 딴청 피우는 것은 오히려 희진이가 내게 무언가 말해주길 바라는 사심 때문에. 섹스도 그나마 인터넷에서 배우고 녀석과 세 번에 걸쳐 해봤으니까 어리바리하지 않았던 거지, 유종의 미를 거두는 건 몹시 어설펐다.
솔직히 끌어안고, 사랑한다 속삭이며 다정다감하게 굴었는데 이만하면 된 게 아닐까…?
여기서 깨달은 건 진짜 끝맺음을 하는 법을 몰랐다는 사실이었다.
"훟…."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
어쩌다 보니 장난스러운 눈초리를 받고 있었다. 전혀 의도한 것이 아닌데, 이것만큼은 본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패배한 자신을 탓해야겠지.
"헤-헿."
그러나 그렇다고 재밌는 것을 발견한 눈동자를 대적하기에는 의미도 없이 혼자 쫄았다.
"크, 흠-."
놀려도 좋으니까 차라리 무슨 말이라도 해줬으면….
"…히힣, 훙."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도 좋은지, 그렇게 천진난만하지만은 않은 즐거움을 머금고서 다가오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면 꼭 닿을 만치 가까워졌다.
"하하, 흠-."
여기서 상황을 타파할 수단이란 그대로 받아들이고서 장난에 당하면 될 텐데, 여태 묻지 못했던 말을…꺼내기도 애매한 주제를 용기 내서 물어보기로 했다.
"그, 희진아…."
"우-웅? 왜 그래 오빠?"
나름 진지하게 목소릴 깔았는데, 아직이랄지 이제 막 장난치려고 시동을 거는 익살스러움. 그러나 희진이에겐 유감스럽게도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우리, 여기까지 왔는데…."
"웅 웅-."
어울리지 않게 느닷없다고 느끼겠지만,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진솔함을 보여주는 것이 바르다고 판단하여 고개가 아니라 아예 돌려버린 상체.
"너희 부모님께 제대로 인사 한번 해드려야 할 거 같아서."
아까의 기죽음은 어디 갔는지 입이 떨어지자마자 돌변한 눈동자로 책임에 대한 확고함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아…우리, 부모님?"
녀석의 협박과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반신반의했던 내용. 계시지 않는다고 들었음에도 묻는 건 무척이나 실례겠지만, 알아서 먼저 이야기를 해주기엔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니었다.
"…응."
만약 녀석의 말이 거짓말이고 부모님이 계신다면 녀석과 일련의 협박 사건을 이야기하여 희진이의 중재로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몰랐으니까.
"우리, 부모님…."
그렇게 되면 나를 향한 희진이의 질타나 그런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할 테지만, 지금은 그런 모든 것을 감수하고 물을 가치가 있었다.
"으응 그게, 사실…."
뜸 들이는 것을 보아 만약 살아 계시는가 하더라도 입에서 좋은 소식이 나올 거 같지 않은 분위기.
"………안 계셔."
제발 아니기를 바랐던 내용이 희진이에게서 나오고야 말았다.
"아, …! 미안…."
설마 했지만, 녀석의 말이 사실이었을 줄이야…불길한 예감은 잘 들어맞는다더니.
"으-응! 아니야. 오빤 몰랐잖아."
아예 모르지는 않았고, 심증만 가지고서 의심만 하고 있었다. 협박범을 상대하면서 곧이곧대로 믿을 생각은 없었으니까.
"어, 그래도…."
의혹이 진실로 변하자, 하나의 탈출구가 틀어막히면서 막막해진 기분…그것보다도 해야
할 건 어색해진 공기를 환기하는 거였다.
"나야말로 먼저 말하지 않아서 미안해 오빠."
거기서 내가 다른 행동을 취하기 전에 선수 치는 희진이.
"사실…무서웠거든."
묘해진 상황에서 좋아지려면, 마음 아플 당사자가 아무렇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최고였다.
"부모 없이 자란 애라고 불리는 게…."
겉으로만 보면 잘해보려다가 저지른 실수라서 그런지 내가 성급하게 굴지 않아도 어련히 헤아려주는 마음씨.
"아니야, 그건…."
그러나 그걸 직접 말하게끔 유도한 탓에 생기는 죄책감은 제법 쓰라렸다.
"아니야…."
그런 희진이를 두고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확신할 수 없었다. 성선설이나 성악설을 그다지 믿진 않지만, 인간이란 존재가 때론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 중학생 때 직접 체험해봤으니까.
"그렇지 않아…."
그런 인간들에게 거리를 두던 내가 반대로 희진이 덕분에 다시 마음을 열었던 건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그렇기에…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도무지 발언에 힘을 실을 수 없는 현실.
"…괜찮아."
대신에, 최소한 내게는 괜찮다고…나는 그런 거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에 말보다 몸이 먼저 나가서 희진이를 끌어안고 말았다.
"불안하게 해서 미안해…."
"으응, 괜찮아 오빠."
알몸에 땀이 버럭 뒤척였다가 식은 상태라 끈적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서 각자 체온에 찾는 안정.
"오히려 이걸로…사랑을 확인했으니까."
무신경할 수 있는 언어로 섣부르게 상처를 준 건 아닐까 싶었으나, 떨어지면서 확인한 얼굴엔 씩씩함이 서려 있었다.
비록 결과는 좋았지만, 안정을 찾은 희진이와 다르게 나는 안심할 수 없었다. 녀석과의 불편한 관계를 개선하고자 시도했던 방법이 내게 썩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
"…."
이젠 어떡하나 싶은 심정으로…아예 지금 고백해버릴까 싶기도 해버려서, 머리론 어떻게든 내가 피해자로서 변명할 수 있을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런 주제에 입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지만.
"인정하기도 싫고, 믿을 수도 없겠지만. 저렇게 제멋대로인 언니가 여태 날 키웠어."
그러려던 찰나에 희진이가 기나긴 침묵 속에서 운을 뗐다.
"올해로 이제 삼 년일걸."
삼 년…? 그리 짧지만은 않네.
내가 왕따를 당했던 시간도 딱 그즈음이다. 그 정도 됐으면 보호자로서 나름대로 구색은 갖췄을 시간.
"키웠다고 말하니까 좀 그렇네…언니는 고작 사촌오빠가 하던 짓을 자기가 뺏은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