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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화 〉여친이 없는 집에서만, 벌써 세 번째…(2) (42/107)



〈 42화 〉여친이 없는 집에서만, 벌써 세 번째…(2)

참으로, 이럴 때만 나가고…못난 언니라는 자각은 있으니까, 남자친구와 단둘이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하루 정도는 비워 줘야지.

"쿻-!"

그 남친을 이미 내가 따먹긴 했지만,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언니 노릇을 하겠어.

"히힣."

그리 생각하니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웃음 숨길 필요 없이 새어 나와 조용한 방을 간혹 울렸다.


희진이가 없을 때의 방문이 이걸로만 벌써 자그마치  번째…. 도중에 찾아왔던 걸 제외한다면 겨우 두 번째였지만, 이런  따져가며 수를 늘려봤자 썩 좋지 않은 조건의 횟수기에 의미 없는 되새김질이었다. 그나마 싫은 기색이 줄어든 건 단지 담담하게 마음먹고자 적응해서 그런 거라고, 원해서 오는 건 아니니까 거부감이 짙은 건 내게 다행이란 뜻이겠지. 일말의 망설임은 아직 양심이 마모되지 않아서, 이런 나를 꾸짖느라 아픈 거일 거라고 믿었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자책감이 도져서 도망칠 거 같았으니까.

"하하…."

아무렇지 않게 비밀번호를 누르는 것도 우스웠다. 마치 자기 집인 듯 문을 열고서, 신발부터 확인하는 건 설마 싶은 까닭에.

"하-…."

희진이가 없는 사실에 안심하는 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스스로 의문스러워서, 녀석에게 보이기 위해 가능한 껄끄러운 표정을 유지하며 들어가려고 신발을 벗었다.

"-…."

그러면서 역설적으로 최대한 소리 없이 걷는 건 녀석에게 내 존재를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한 번 방심을 노려봐서 녀석의 놀란 얼굴을 보고 싶기도 했다. 전혀 좋은 의미가 아닌 나쁜 뜻으로….

"…왔네."
"멋-…!?"

녀석의 방을 의식하며 복도 중간쯤 다가가니 오히려 녀석이 뒤에서 인사하자 되레 화들짝 놀랐다.

"…?"

때문에 민망했지만, 희진이와 달리 놀라게 할 의도가 없었는지 비웃지 않는 태도.

"…시험은 잘 봤어?"

거기다가 친한 척 말을 거는 것이 떨떠름해도, 어찌 됐든 물어봤으니까 대답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

"뭐, 그럭저럭…."

느긋하게 녀석이랑 안부를 주고받을 생각은 없어서 건성으로 대답했다. 녀석에게 그런 걸 찾는 것이 어색했지만. 생각해 보니 이 시간에 집에 있었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 걸까? 동갑이라고 했는데, 검정고시라도 치렀으려나…알게 모람. 녀석의 개인사 따위.

"…그래?"

희진이처럼 정말 생각해서 묻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인사치레인지 이상으로 구태여 캐묻진 않는다. 아니면 딱히 할 말이 없었던 걸지도.

"밥은 먹었어?"

대뜸 식사했냐는 질문에 곧바로 오라 해서 먹을 시간이 어딨었겠냐며 반박하고 싶었다.

"아니."

그러나 그래봤자 녀석의 심기만 거스를 뿐이라 관두기로.

"배  고파?"
"별로…응."

솔직히, 녀석을 목전에 두고 밥이 넘어갈 거 같지 않았다.

"칫, 재미없게."

재미? 갑자기?

녀석에게 친절할 의무는 없었기에, 일부로 싫어할 만한 짓을 하면서 멀어지도록 하는 것이 그나마 내가 저지를 수 있는 반항이었다.

"이럴 땐 조금 어울려줘야 하지 않아?"

내가 자신을 무슨 취급 하는지 제대로 알기나 하는 걸까?

"항상 혼자 먹느라 외로웠는데…."

…느닷없이 웃기지도 않는 행동에 의미는 대체….

"희진이는?"

딱히 해줄 말도 없어서 다른 주제를 꺼내기로 했다. 저번에도 느꼈지만, 자매끼리 사이가 좋아 보이진 않은 모양.

"…걘 주로 바깥에서 먹고 와. 식성도 맞지 않아서, 집에선 나도 걔도 밥을 하지 않으니까."

그게 사실이면, 적잖이 걱정스러운데….

"걔야 뭐, 먹는 게 전부 가슴으로 가는지 잘 먹는데…그래선가? 내가 가슴이 작은 게?"

뜬금없이 가슴 이야기에 당황하지 않기란 어려워서 무슨 반응을 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아아, 설득력 있네."

대화하다가 급선회하여 혼잣말.

"하기야…그동안 과자만 먹었으니까. 영양분이 없을 수밖에."

자조적인 어조에 자학하는 모습이 나름 진지해서 듣는 거 말고는 할 말이 없었다.

부모님을 여읜 순간부터 여태까지 제대로 된 밥을 먹지 않았다는 뜻일까?

녀석의 주저리에 영양 면에서 제법 염려스러워졌다.

굳이 내가 간섭할만한 일이 아닌 걸 알아도, 나중에 한 번 요리해서 대접해줄까?

취미지만, 고생해서 만든 요리를 누군가 먹어주는 건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살면서 내가 확신할  있는 얼마 안 되는 소확행중 하나가 바로 요리였으니.

"…아무튼, 안 먹겠다는 거지?"

서먹서먹할 게 뻔한데 퍽이나 잘도 먹겠다.

"뭐, 응…."

신경질적인 상념과 달리 고분고분한 태도는 약점을 잡혀서 별수 없이 굽히느라….

"그럼, 본론으로 가자."

말하면서도 나를 지나쳐 들어가는 자기 방. 떨떠름함에 들어가기 싫어서 녀석을 놓치는 바람에 뒤따라 들어가기 망설여졌지만, 주저하면 결과가 최악으로 치닫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으며 들어갔다. 삼  만에 재방문한 녀석의 방이야 크게 변한  없이 그저….

"쿠-훟!"

방에 들어서자마자 녀석에게 느꼈던 본래의 음흉한 시선이 느껴져서, 내가 문을 닫는 모습까지 지켜보다가 속이 시커먼 웃음을 짓곤 옷장을 열어 누가 봐도 교복을 보여주었다.

"…자-."

그러고선 내미는데, 무척 불길한 예감.

"입어."

저번처럼 농담이라도 하는 걸까? 잔뜩 싫은 얼굴을 하면  반응에 만족, 하려나…?

"…싫어."

당연하지만, 입기 싫었다.

"쿠후훗-!"

의미심장한 웃음소리. 항상 그렇지만, 기분 나쁜 미소였다.

"오늘은 부탁이 아니라 명령하는 거야. 그래도 싫어?"

교복이 걸린 옷걸이를 내밀면서 협박.

진짜 이걸 입으라고?

"끗-…!"

여자 옷을…?

하는 짓마다 어째 내가  싫어할 만한 일을 골라서 하는 걸까? 반어법으로 참으로 대단하고, 직설적으로 징글징글해서 천적이 따로 없었다.

"대신이라기 좀 그렇지만, 입으면 돈 줄게. 오만 원 어때?"

오른손은 교복을, 왼손은 오만 원 권을 팔랑이며 의기양양한 모습.

"뭐…!?"

표정 관리를 전혀 하지 않은 채로 있다가, 상상을 뛰어넘는 말에 몹시 당혹스러워 잠시 말을 잃었다.

"받기 싫으면 희진이한테 대신 줄게. 그러면 되나?"

이런 생각이 분명 실례인 건 알지만, 나쁜 생각이지만. 편견을 가지게 하여 정말 부모 없이 자란 티를 냈다. 그러니까, 교육을 덜 받아서 버르장머리 없는 구석을…. 평소엔 자제하고 있었겠지만, 내겐 거리낄 것 없다고 느꼈는지 스스럼없이 드러낸다.

이런 건 좀 끝까지 감춰줬으면….

이런 언니 밑에 어떻게 희진이같은 동생이 있는 걸까? 의문이었다.

"그래도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희진이가 아니라 네가 받는 편이 좋을 거야. 왜냐하면, 여장한 채로 바로 섹스하는 게 아니라 먼저 간단히 촬영부터  거거든."

흐름을 끊지 않으니까, 계속 떠드는 소리가 가관.

"촬영…?"

협박에 섹스로도 모자랐는지, 이젠 보자 보자 하니까 촬영까지 한단다.

"응, 찍을 거야."

나의 거부감 따위 아랑곳하지 않은 채로 아주 자랑스럽게 의기양양한 표정.

"기껏 모델이 됐는데 무보수는 그렇잖아?"

얼토당토아니한 소리를 지껄이는데…결국, 자존심을 돈으로 채워주겠단 소리. 냉정하게 봤을  돈이라도 받으면 금전적으로 이득이라 생각하겠지만, 녀석은 나의 정신적인 부분을 건드리려고 굳이 현찰을 보여주는 거란 것을 알기에 이런 식이라면 차라리 맞는 편이 훨씬 나았다.

"어때? 이러면, 받을 생각이 들어?"

고민할 가치가 없어 대답하지 않는 거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침대에 앉아서 나의 결정을 기다리는 녀석. 하지만, 그렇다고 거절했다간 그에 따른 페널티가 생기겠지.
응답하기엔 사안이 망설여지는 것이라 최대한 거절하려고 머리를 굴렸다. 따지고 봤을 때 섹파란 단순히 섹스만 하는 사이. 그것 외의 내용은 들은 적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다. 딱히 계약서를 쓴 것도 아니지만, 그렇기에 맨 처음 제시한 요구대로 해야 하지 않냐며 따질 권리 정도야 내게도 있겠지. 녀석에게 말이 통한다면.

"원래 조건은 섹파…아니었어?"

애초에 몸을 섞지 않으려고 피했었는데, 어처구니없게도 이게 차선책이  줄은 몰랐다.

"쿻-! 맞아 그래, 그랬었지."

여장과 촬영하는 것을 피하려고 처음에 거부했던 것을 선택하자니 어이가 없어져서, 이런 꼬락서니를 녀석에게 맥없이 보인 탓에 사버린 비웃음.

"그래서 돈을 얹어 준다고 하는 거잖아? 싫어?"

이런 걸 이미 상정했는지, 빠져나갈 기미를 주지 않아 대답이 금방 나왔다.

"끛…."

싫다…남자가 여자 옷을 입는다니. 전혀 생각해본 적도 없어서 불안감투성이다.

"잘 생각해봐. 바지에서 치마로 바뀌는 거뿐이야. 그게 뭐 어때서? 이거 입고 외출하라는 것도 아니잖아?"

대신 촬영한다고 한 주제에….

"…새로운 경험을 했다고 쳐."

지 일이 아니라 제멋대로 지껄여준다.

"후-우……."

녀석은 내게 있어 한숨 같은 존재. 생각할 때도 만날 때도, 언제나 여지없이 한숨을 내쉬게 했다. 어차피 거부권 따위 나에겐 사치겠지. 그렇다면 마음의 준비라도 얼른 하는 편이 자신에게 이로웠다.

"나 말고, 희진이에게 줘…."

동갑내기랑 섹스하면서 협박당했다고 그 누가 믿을까? 그것도 남자가 여자한테….
여기선 괜히 받았다가 나중에 꼬투리 잡혔을 때 오해의 소지가 있어 빼도 박도 못하게 된다. 특히 돈까지 받았으면 상식적으로 반대로 생각할 테니, 그럴듯한 증거는  녀석에게 있어서 결정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젠장.

"…정말?"

당연히 내가 받겠다고 할 줄 알았다는 얼굴.

"네가 번 돈이잖아. 자신감을 가져. 이걸로 희진이가 좋아할 만한 선물 사줘야지?"

해주는 말의 내용은 정상적이라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자신감을 북돋아 주는 뜻이겠지만, 음흉하게 표정이 능글맞아 비아냥처럼 느껴져서 장난기 가득한 뺨따귀를 때리고 싶을 만큼 철없는 눈꼬리였다. 어쩌면 연기하는  같아서, 마치 녀석이 짠 각본에 흐름대로 놀아나는 기분.

"됐어."

어차피 하나를 고를 수밖에 없는 양자택일을 주면서 쓸데없이 결정하는 시간 늘어나도록 만들어 반응을 즐기는 악취미다.

"정말 괜찮겠어?"
"응-…!"

자꾸 돈을 주려고 하는데, 그런 모습이야말로 불안해서 확고히 거절. 이렇게까지 설득하니까 더욱 거절에 대해 잘했다 확신했다.

"딱히…내가 받을 이유는 없으니까."

녀석의 명분은 누가 봐도 뚜렷한 함정. 녀석에게 놀아나다 보니까 늦었지만, 간파할 수 있었다.

"끄래, 그렇다면야 뭐."

그러자 녀석은 할 수 없지란 인상을 일부러. 어차피 돈이야 누구에게 주든 액수는 똑같아서 큰 아쉬움이 없을 텐데, 심히 수상하게 유감스러운 모습이라 받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하든 간에 나에게 주는 것이 녀석에겐 가장 손해이자 이득일 테니까. 돈을 나에게 주면 직접적인 오만 원이 없어지고, 희진이에게 정말로 준다는 전제하에 건넨다면 마찬가지로 오만 원이 손해다. 그러나 희진이에게 진짜로 준다는 확신이 없으니까, 구두상 준다고 해놓고 입  닫을 수도 있겠지. 그러고선 내가 제대로 전해줬냐 물으면 보호자로서 용돈 주는 처지라, 저번에 줬던  계산하여 줬다고 하면 정확하게 수긍할 수단이 없어진다.

"…."

치사하긴….

물론 녀석이 진짜 그럴 거란 보장도 없었지만, 녀석의 일거수일투족이 뾰로통하여 전부 못마땅.

"입어."
"아…."

손에 쥐었던 지폐를 주머니에 집어넣더니, 이내 여자 교복이 걸린 옷걸이를 내밀었다.
내가 골랐으니까…어쩔 수 없이 받는데, 진짜 싫다.

"쿻-!"

옷걸이를 받은 탓에 녀석의 양손이 비자, 이런 나를 감상하기 위해 침대로 손바닥을 짚고는 아주 여유만만한 모습. 저 얄미움이 괘씸해서, 그에 대한 반동인지 무너뜨리고 싶은 욕망이 가끔 불끈거렸다.

어떻게 하면  관계를 역전할 수 있을까…. 섹스할  엄청난 테크닉으로 헐떡이게 한다면, 그나마 복수라도 하는 셈일까?

그렇지만, 여기서 문제는 내게 엄청난 테크닉 따위 없다는 거였다. 분위기에 심취해서 저번처럼 무의식적으로 녀석에게 다정다감하게 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고작이겠지.

"…-."

건네니까 일단 집어 들었으나, 막상 이것을 입으려니 얼떨떨했다.

"참-, 이걸 깜박했네."

그러면서 갑자기 벗는데, 아무리 그래도 여자애의 탈의가 익숙해지긴 어려운 모양. 반사적으로 눈을 가리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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