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여친이 없는 집에서만, 벌써 세 번째…(1)
이런 곳은 좀 더…키스가 익숙해졌을 즈음에나 인사처럼 하는 곳이니까.
평생 간직될 첫 키스는 매 순간 떠올려도 후회하지 않을 곳에서, 하고 싶었다.
"어!? 어! 물론! 하고 싶지! 엄청나게 하고 싶어!"
조금 서두르는 감이 없잖아 있었어도, 나와 마찬가지라고 설명하니까 안심. 당연하지만, 단정 짓는 것과 직접 듣는 것에도 차이가 있었다.
"…헿. 실제로 들으니까 왠지 부끄럽다."
괜히 투덜대봤자 좋은 거 하나 없다는 사실을 겪어봤기에 더욱이 스스럼없으려는 모습. 세상에는 본심이 아님에도 무심코 싫은 소릴 했다가 사과하지 못한 채 영영 헤어지면 그게 더 후회란 걸 알았기에, 언제부턴가 숨길 필요가 없을 땐 다소 직설적이라도 마음을 표현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오빠랑 교제할 수 있는 거겠지. 첫 만남부터 고백이란 파격적인 적극성으로 말이다.
"하하-, 그러게…."
하자고 한다면 할 수 있다는 어조였지만, 그러니까 오빠는 끌려만 다니는 거야.
"웅-웅, 하지만 오늘은 날이 아니야 오빠. 무드가 없어. 다름 아닌 첫 키스인데…."
보아하니 아마 내가 처음일 테고, 나 역시 오빠가 처음인 풋풋한 사랑. 오빠도 슬슬 기대하는 눈치지만, 오늘 하면 안 되는 까닭을 수줍게 알려줬다. 서툴러도 서로를 향한 마음은 진심이기에, 오빠랑은 영원할 거라 확신에 거듭 확신하는 믿음. 그 대신 서두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애써 느긋하게 마주하기로 했다. 애들한테서도 연애소설에서도 자주 급하게 굴다가 깨졌다는 이야기를 자주 접했으니까.
"그렇지, 첫, 키스니까아…."
오빠도 수긍해서 그런지 끄덕였다. 아까 보았던 아쉬운 기색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건 기분 탓인지, 아니면 아까 본 모습이 착각인지 헷갈렸어도. 앞으로 있을 오빠와의 즐거움을 생각하자니 사소했다.
"그러니까-."
불타는 사랑, 꺼지지 않는 불꽃이라 의심치 않아서. 심지도 굳고 따뜻하니 가까워질수록 강렬하게 뜨거워 마지않을 거라 믿었다. 근데 오늘은 너무 더우니까 서로를 위해서라도 이만 떨어지는 것이 좋겠지. 그렇게 뒤로 물러나는 척 허리를 내뺐다.
"…우리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기대할게."
사랑해 오빠.
두 손마저 등 뒤로 감춘 건, 선물이야 바닥에 둬도 알아서 가져갈 테니 괜찮다고…자신을 속였다. 온기가 남은 손이 식지 않도록 맞잡았고, 말하면서도 빨개진 얼굴 창피했으나 숨길 필요 없이 보여줘도 되는 상대이기에 살짝 고개 숙이는 거로 무마했으며, 차츰 떨어지는 사이에 사랑스러운 그 얼굴 오래 보고자 행복한 여운 간직한 채 살금살금 뒷걸음질 쳤다.
"사랑해 오빠-."
그냥 말해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떨어지자, 속삭이며 하는 말이 맨정신으론 할 수 없는 단어라서 혼자 말해 놓고 혼자 쑥스러워 붉게 물들여진 뺨. 이런 기분 자아내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보고 있어도 보고 싶어 떠나는 발걸음 아쉬워도…별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뭉클한 마음 잠들기 전까지 이어져 오빠 생각에 너무 떠올리느라 되려 매번 했던 잠들기 전 토-크조차 까먹고 잠이 들지도 몰랐다.
"둘만의 오붓한 시간…."
듣기에는 너무나 자극적이라서, 무슨 기대를 하더라도 좋을법한 문장의 울림. 이게 유혹이 아니라면 연인이라는 관계에 대해 의심해봐도 좋을 거다.
"…-."
그러나 정말 의심받아 마땅한 사람은 나겠지.
빌어먹을….
녀석만 없었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텐데. 기뻐 마땅할 사랑스러운 희진이의 몸짓에 마냥 미소 짓는 것조차 어려워서, 타들어 가는 내색 들키진 않았겠지? 씁쓸한 기분 곱씹으면서 멀어지니까 참았던 표정이 확 굳어졌다.
"제기랄…."
어쩌다 이렇게 돼버린 걸까….
아무것도 모른 채 웃으며 커플티를 보여주었을 때, 좋았지만…분명 진짜 너무나 좋았지만! 어째선지 심장이 철렁하고 아파져 사실 그것이 양심이란 걸 깨닫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희진이가 나를 보려고 놀라게 했을 때부터 땅바닥에 부딪힌 엉덩이가 아니라 맞은 적도 없는 가슴이 아팠던 건, 기분은 좋은데 공부하느라 지쳐서 감정이 잘못 받아들인 건 줄 알았다.
"……."
그런 줄 알았는데…꾸밈없는 미소에 기뻐해야 하는데, 억지를 섞어서 마주하니까 순식간에 문드러지며 속앓이. 놀라서 뒤로 자빠진 김에 바로 무릎 꿇고 사과라도 할까 싶은 욕구에 사로잡히기까지 했다.
사과한다면 받아줄까?
아니, 고백하면 앞으로 사 년이 아니라 자기 언니하고 평생 척을 지고 살 텐데. 중간에 끼인 처지가 이렇게나 피곤해 어디 누구에게도 호소할 길 없이 힘들 줄은 몰랐다….
"하-아……."
궁상떨지 말고 집으로 들어가자.
희진이의 선물…이 본인을 마주하는 것보다 이런 선물을 보는 거로 신기하게 위안이 됐다. 그러니까 입어라도 봐야겠지. 후에 고맙다고 전해야…그러고 보니 고맙다고 제대로 이야기 못 했다. 혹시 답례 인사를 하지 않아서 삐졌을까?
"…쩝."
그냥 지금 토-크 보내자.
'코 토-크'
이크! 보내기도 전에 먼저 왔….
"쳇…!"
가능하면 무시해서 차단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 녀석의 토-크였다. 둘이 짜기라도 한 걸까? 희진이 가니까 녀석이 바로….
─2019년 7월 5일 금요일─
by특별공수
[섹스하고 싶어]_오후 5:07
"…-!"
하마터면 욕이 육성으로 터져 나올 뻔했다. 지가 뭔데 나한테 음담패설을 보내는 걸까. 괴롭힘당할 때도 이런 적은 없었다. 남자끼리 그런 이야기가 오가면 오히려 소름 끼쳐서 곤혹스럽겠지만.
[안 되겠지?]_오후 5:07
애초부터 협박했던 주제에 언젠 그랬느냐는 양 헤아려주는 척한다.
꼴값잖긴….
1_오후 5:07_[시험이라, 공부해야 해서]
바로 위의 대화 내역을 보면 본인 입으로 7월 5일 금요일 점심에 약속 날짜 잡아 놓고 그 전에 하고 싶어서 부른 다라…해도 해도 너무한다.
"하-…!"
집 앞에서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얼른 들어가서 저녁이나 먹자. 그리고 공부에 집중하고…몰두해야지. 한눈팔다 간 여태 공부했던 것이 헛수고가 된다. 여자친구도 있으니까 멋들어진 직업을 가지고 착실하게 살아가려면 공부가 최선이자 제일. 꿈이 뭐냐고 묻는다면 평범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큰 어려움 없이 죽을 때까지 건강하게 사는 것이다. 그렇기에 꿈을 이루려면 공부해야 했고, 딱히 무언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기에.
by특별공수
[아쉽네.]
[마음 같아선 그냥 오라고 하고 싶지만..]
너무 제멋대로다.
[그럼 다음 주, 약속했던 시간에 봐]_오후 5:08
보기 싫거든? 하필 왜 그 날인지. 희진이랑 데이트하기도 전에 녀석과 만나고, 다음 날 바로 희진이를 마주한 다라…이게 다 내가 자괴감 들라고 일부러 그러는 걸까? 만약 그렇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다녀왔습니다."
현관에 들어서자 큰 소리로 말해도 무응답. 신발장에 있어야 할 신발도 없고,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아서 집에 제일 빨리 들어온 사람이 나란 걸 깨달았다. 굳이 입을 열 이유가 없어지자 신발을 벗고 조용히 터벅터벅. 답장 이까짓 거 해줄 가치가 없었기에 읽씹하며 살며시 욕지거리를 잘근거렸다. 그리고선 깨달은 점은….
나, 정말 성격 많이 버려졌구나.
그게 정말 녀석 때문인지, 아니면 본래 내 성격이었는지 고민조차 하기 싫어서 방에 들어가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러다 희진이가 준 커플티 말고 다른 선물을 확인하며 잠깐이나마 마음의 안식을 얻으면서.
"………후-…."
외견에 비해 많은 것을 내포한 한숨을 내뱉었다.
시험이 끝나자마자 자연스레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각자 채점하고 친분이 있는 애들끼리는 서로 어땠느니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런 분위기가 그리 싫진 않아서 묵묵히 손깍지를 하며 천장을 향해 켜는 기지개.
"훟-! 후…우. 하하."
그러고 보니 손가락 사이로 교차하는 이 행위를, 희진이랑 했었다. 그 감각이 희미해도 아직 남아 있어서, 다음엔 마주 보고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깍지를 끼며 걷겠지. 상상만 해도 즐거워져 당장 희진이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기말이 끝났으니 곧 방학이라 어디로 놀러 갈까 대화를 나누는 과정마저 즐거울 테니.
"…젠장."
가장 먼저 시험이 끝났다며 알려주려고 폰 화면을 보자, 떠올리기도 싫은 녀석이 한 시간 전쯤에 선수 쳤었다.
─2019년 7월 5일 금요일─
by특별공수
[점심 전에 오면 희진이가 집에 오기 전까지 대략 세 시간이야]
[시험공부 하느라 안 건드리고 선심 써줬으니까]
[오늘은 나를 기쁘게 해줘]_오전 10:12
[기대할게, 귀염둥이]_오전 10:13
시험 끝나자마자 확인한 폰에 알람이 이런 내용.
"…제기랄."
공부하느라 고생했던 마음 풀어지려니까 잘도 이딴 글을 보낸다.
귀염둥이는 무슨.
저번엔 육노예니 섹파니 지랄났더니만, 날 아주 만만히 보고 있다.
"하…!"
섹파는 무슨, 악마겠지. 나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걷어차는 악마.
정작 문제는 알면서도 어버버 거려 대처하지 못하는 자신이란 점이 확실히 문제였다. 더군다나 녀석의 노리개로 전락해야 한다는 사실에 침울. 공부하는 도중 간간이 대책을 떠올려봤지만, 확실한 방법은 오리무중이었다. 주변에 사례를 묻고 싶어도 이런 경우가 흔할 리가 없으니 조언도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 말 그대로 눈 뜨고 코 베이는, 우리에 갇혀 언제 도축될지 모르고 하염없이 사육되는 가축이랑 다를 거 없었다.
"………가기 싫다."
한숨 가득하게 우는소리를 해도, 지금의 난 대처 할 수단이 전무. 싫어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면 해야 했다. 내가 아닌 희진이가 말이야….
"하하…."
스스로 생각해도 자조적인 웃음이 나오는 상황이나, 내 딴에는 심각하고 진지한 다짐이었다.
녀석에게 토-크를 보낸 뒤, 체력이 부족해질 것을 대비해 초코바를 입에 물면서 옷장 안을 살폈다. 여장을 시킨다고 해봤자, 입힐 수 있는 옷은 한정되었기에 안 그래도 부족한 가짓수가 더욱더 초라해진 느낌. 어차피 간소하게 입힐 생각이라서 거창하게 화장이라던가 부가적으로 덕지덕지 시킬 생각은 없었지만, 무난하게 씌울 가발조차 없으니 허전할지도 모르기에 역시 주문이라도 해놓을까 살짝 고민스러웠다.
"쿠-훗."
교복이면 치마에 하얀색 반소매 와이셔츠로도 충분. 굳이 카디건이나 리본까지 붙일 생각은 없었고, 퇴폐적인 분위기를 주려고 뜯지도 않은 망사스타킹까지 미리 꺼내 놓았다. 과연 녀석에게 여장이 얼마나 어울릴지 기대하면서 얼른 오기만을 기다리는데, 곧 점심이라 느긋하게 대화하면서 밥부터 먹고 녀석을 먹을지…. 아니면, 녀석을 먹고 늦은 점심을 먹을지를 고심하였다.
"훟-…."
전자를 고르면 날 완전 섹스에 미친년으로 보는 건 아닐까? 하지만 후자를 선택했다가 저번처럼 거절하고 그냥 가버리면 어떡하지? 그렇다고 후자를 배제하자니 배고프면 힘도 잘 못 쓸 텐데….
"…움-."
혼자서 하는 쓸데없는 고민을 녀석이 알면 참으로 어떤 표정을 지을지 기대됐다.
그래, 그건 녀석을 보고 생각하자. 행여나 얼굴 보자마자 구미가 당겨서 성욕이 식욕을 앞지를지….
"헤헿."
아니, 배고프니까…나라도 먼저 먹어두자.
쟁여 뒀던 과자 상자가 비어가니까 주문은 해놨는데, 그 주기가 전과 비교하면 조금 짧아졌다. 혹여나 살이 찌는 건 아닐까 걱정해서 매일 체중계와 마주하지만, 소식도 소식이거니와 원체 효율이 나쁜 몸뚱이다 보니까 숫자의 변화가 미미해서 현재는 걱정조차 들지 않았다.
"쿻…."
녀석이 온다….
얼마나 기다렸는지, 공부하느라 배려해준 만큼 따먹을 테다…라고 마음먹어도 현실적으로는 두 번이 한계일 거다. 그래도 시간적 여유는 충분하니까 첫 번짼 녀석에게 움직이라 시키고, 두 번짼 괜찮다 싶으면 내가 움직이기로.
"훟-."
이번엔 얼마나 저항할까? 아니면, 얼마나 동조할까?
어쩌면 키스까지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제법 지나서 희진이랑은 이미 했을지 몰라도…어쩌면, 내가 먼저 첫 키스를 선점할지. 내일은 집을 비워줘야 해서, 마침 보고 싶은 영화가 나왔기에 보러 가는 김에 겸사겸사 덕질도 하려고 쇼핑할 준비 만반이다. 희진이에겐 서코라도 가냐고 들었지만, 별로 마음에 드는 부스가 없길래 이번은 패스. 일반인인 희진이가 서코의 존재를 아는 건 내가 나갈 때마다 어디 가냐고 물으면 서코 간다고 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