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0화 〉부질없어진 죄책감(3) (40/107)



〈 40화 〉부질없어진 죄책감(3)

오빠 주려고 애들 몰래 샀던 커플티가 예상외로 금방 주지 못해 벼르고 벼르느라 둘이 데이트할 땐 같이 입어서 연인인 티를 좀 내고 싶었다.

"훅-…."

머뭇거렸던 사진도 잔뜩 찍어서, 방학  올리면 적어도 혼자 놀진 않는다고 애들 입방아에 오르락내리락하진 않겠지. 대신 자기들끼리  토-크 하겠지만, 그건 자기네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방학에 누가 가장  보냈냐고 한다면 다름 아닌 연상인데 귀여운 남친과 시간을 보낸 내가 승자. 그걸 자랑삼을 수 있도록 연인끼리 찍는 사진에 관해서는 조금 공부해봤다. 이걸로 애들이 인기 많을 텐데  남친이 없을까 하등 소리도 이제 안 듣겠지. 더군다나 오빠는 무척 귀여우니까, 애들한테 부러움을 많이 살 거다.

"히힣."

생각만 해도 벌써 기분 좋아서…특히나 연인 끼리 할법한 행동에 대해 사진을 보면서 부러웠던 거, 오늘 하려고 하니 생각만 해도 두근거려서 기대되는 마음.

"흥, 흥."

음음…그날을 대비해서 속옷도 야한 걸 구비했지만, 과연?

"헤헤-."

그래도…혹시라도 그런 분위기를 오빠가 이끌어 갈 수 있다면  보여줄 것도 없겠지만, 오빠에게 그럴 용기가 있을 리는 없어서 내심 아쉬움이 살짝 있었다. 대신 오늘은 얼굴만 보고 갈 생각. 겸사겸사 선물도 주고서 다음 데이트  입고 오라고 할 거다. 물론 그땐 집에서만 입고 있을 테니 남들에게 자랑하려 했던 목적은 못 이뤄도, 데이트는 그날만 하는 것이 아니니까.

"…후-아."

아무튼, 부픈 기대로 오빠가 언제 올까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도 지루했다. 나도 오빠처럼 자기 집에서 기다리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게 평범한 거겠지.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보호자 없이 자매만 딸랑 있는 집이라니, 누가 봐도 의아해서 이상한 시선으로 볼 게 틀림없었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알려주고 싶지 않은 건데, 오빠에겐 언제쯤 고백할 수 있을까…. 이상하게 생각하고 그것 때문에 싫어지는  아닐지…한편으로는 몹시 무서웠다. 거기다 부모님이  계신다고 불쑥 찾아온다면 그것도 문제겠지만, …헤어지는 것보다야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훙-…."

무작정 기다리는 건 역시 좀 그런가?

오빠의 하교 시간보다야  시간 빨리 끝나서 여유롭게 집까진 올 수 있었어도, 혹여나 바로 집에 오지 않고서 다른 곳에 들린다면 영락없이 기다리기만 해야 했다.

…기약 없는 기다림.

오빠는 나와 달리 코-톡 말고 다른 SNS는 일절 하지 않아서 달리 어딨는지 알 방도 또한 없었다. 이렇게 되니까 기다림은 슬슬 계속 이어질까 하는 초조함으로. 평소와 다르게 약속도 잡지 않고 마냥 기다리기만 하다 보니 점점 불안해졌을 즈음, 다들 스마트폰에 빠진 채로 걷는 와중에 혼자만 성실하게 어깨를 펴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걷는 익숙한 체형이 보이기 시작했다.

"히힣."

오빠 왔다!

얼굴 보려고 왔는데, 멀리서도 오빠인 걸 알아채자 숨는 건 장난기가 발동해서. 귀여운 주제에 성실하기까지 한 얼굴이라 한가득 놀란 표정이 보고 싶어서 재빨리 뒤를 밟을 생각이었다. 그래 봤자 몇 걸음 안 가서 왁-! 하고 소리 지를 거지만.

"-…."

다가와서…못 봤겠지? 괜히 여기서 얼굴 내밀었다간 들키니까 다른 곳  들린다면 금방 지나….

왔다! 히히힣.

고작 이 주였지만, 무려 이 주였다. 그 마음을 담아서 살금살금…걸으면 멀어지니까 소리만 죽인 채로 빨리 걸어서는.

"왁-!"

뒤에서 소리를 지르느라 안 보일 텐데 두 손까지 올려 무서워 보이도록.

"우와아아악!!?"

어린애도 뭐냐 싶을 어설픔에 진심으로 놀라 화들짝 뒤를 돌면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헤헿-. 안냥! 오빠-."

여전한 반응에 절로 웃음이.

오빠, 보고 싶었어.

"나 안 보고 싶었어?"

놀란 기색이 금방 가시지 않아 당황한 채로 나를 살피는 한편, 그런 오빠에게 내가 정말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가 듣고 싶었다.

"…보고 싶었지. 응, 너무 보고 싶었어…."

차츰 상황을 파악하고서 당황스러운 표정 유지한 채로 말하는 모습이  신기방기.

"헤헤헿-…나두야 오빠."

어색하게 들리는 건 아마도 떨떠름함 감추지 못한 거라 치고, 만족스럽지 않은 언성이었으나 여기선 만족하기로 했다.

"…시험은?"

친구끼리라면 점수를 묻는 거겠지만, 오빠는 내게 자신의 시험 기간을 알려줬어도 난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아마 내 시험이 끝났나에 관해서 물어본 걸 거다.

"히히, 나는 어제 끝났어 오빠. 부럽찌?"

오랜만에 봤으니 시작부터 콧소리 담긴 애교.

"그래서 끝나고 애들이랑 간소하게 노느라 힘들어따-."

그러면서 오빠에게 부리는 투정은 익살스럽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간소하게…?"

무려 반 여자애들 전부가 종일 몰려다녔는데…아차, 그렇지 않아도 아직 공부 중인 오빠에게 노는 이야기는 너무했으려나?

"…웅! 노래방 갔다가 밥 먹고 오락실 갔어.  정도면  얌전하게 논 거다?"

사실 그 인원이면 어딜 가도 민폐란 걸 자각했다.

"응…재밌었겠네."

일방적인 자랑에 상상할 수 없다는 얼굴로 엉덩이를 털며 일어나는 오빠. 놀라게  건 좋은데, 넘어지게 한  조금 심했나? 심하다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채리가 떠올랐다.

"있지 있지. 글쎄 채리가…아, 내 친구 채리. 저번에 말했었지 오빠?"
"어, 음. 기억나. 명랑하다는 애."

토-크로 한  언급한 기억이 맞는 모양.

"응 맞아. 채리. 걔가 글쎄 먼저 달려가다가 차에 치일 뻔했지 뭐야."

아무리 차도가 아닌 거리라 해도 사람이 자주 다니는 길목을 빠르게 주행하는 건, 면허 없는 우리들의 눈으로 봐도 위험천만했다.

"진짜? 그 친구는 괜찮데?"

원체 유순한 성격 탓에 예상했던 대로 채리 걱정부터 하는 오빠.

"응. 그때 생각만 해도 아찔해서  다친 게 천만다행이야."

명랑하기만 하고 순발력이 없었다면 그대로 치었을 거다. 해봐야 차  거울을 스친 거라 죽진 않겠지만, 맞았다면 제법 아프겠지.

"아, 다치긴 다쳤나?"
"뭐?"

이야기에 빠졌는지 반응해주는 오빠.

"글쎄, 뛰다가 오빠처럼 뒤로 넘어졌거든."

말하면서도 방금 일어난 오빠의 모습이랑 겹쳐 회상하니까 느낌이 미묘했다.

"괜찮아 보이긴 했는데, 어쩌면 차에 치일 뻔했으니  정도는 양호한 편일 거야."

같이 재밌게 놀려고 하던 참에 그런 일부터 당했으니 분위기는 급속도로 냉랭해져서, 다칠 뻔했던 본인이 기운차게 대처하지 않았다면 쫑파티는 거기서 끝났을지도 모를 일.

"오빤 기말이 다음 주부터라고 했었나?"

얼굴도 봤고, 어제 있었던 이야기도 직접 했으니까 이젠 본래 목적인 오빠 일정을 물어봤다.

"음, 그렇지."

역시 고등학교랑 중학교는 비슷해 보여도 소소하게 차이가 있는 거 같았다.

"움-…구래?"

나야 시험이 끝났으니까 가능하면 이번 주말에 데이트하고 싶었는데….

참아야겠지?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도 그런데, 들어올래?"

고민하던 차에 집까지 왔으니까 하는 소리.

"그, 저번에 엄마가 언제 한 번 희진이를 초대해달라고 말씀하셨거든."

덧붙여서 이야기한 건 조금 의외의 내용이었다.

"…어머님이? 진짜!? 그럼 들어갈래…!"

오빠의 성향이 부모님의 영향으로 보수적이신 분은 아니실까 걱정했었는데, 오빠가 말해주는 걸 보니 괜찮다 싶어 따라 들어가려는 몸짓을 거창하게 잠깐.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오빠 얼굴만 보러 온 거라서. 인제 그만  볼게."

뭔가 까먹은 거 같은데…원래 목적이었던 얼굴 보는  이루었으니까, 뒤로 이동하자 치마 앞에 가지런히 모아 둔 손으로 잡은 쇼핑백이 무릎과 정강이를 툭 쳤다.

"아-, 선물!"

오빠랑 오랜만에 잡담하느라 깜박했다.

"짜-잔! 커플-티!"

옷을 드느라 쇼핑백을 바닥에 두고서 펼치고는 자랑.

"예쁘지?  캐릭터 오빠랑 닮지 않았어?"

나름대로  이유를 어필하면서 오빠의 반응을 살펴봤다.

"와-…감동."

긍정적인 대답에 안심하면서 씰룩거리는 입꼬리.

"좋지?"

좋아해 줄 거라 믿고, 좋아해 주니까 좋다는데 좋다고 묻는 건 좋아서였다.

"히히, 마음에 들  같았어."

선물이란 게 다 상대방이 좋아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하는 거니까. 이렇게 눈앞에서 과장 된 몸짓이라도, 아이처럼 좋아해 주면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 데이트할 때마다 이렇게 맞춰 입고 다니자 오빠."

거기서 놓치지 않고 산 이유를 말하고는, 건네주니 고맙단 감사 인사에 좋다는 대답으로 고이 받으려 펼친 양 손바닥.

"힣-, 기대된다."

연인인데 내가 먼저 손을 잡고, 내가 먼저 스킨십을 하던 건 솔직히 살짝 서글펐다. 특히나 우리 커플이에요-! 같은 티를 입으며 광고하는 연인을 보고선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으니…잘 됐지.

"오빠-, 이렇게 선물도 줬는데…부탁 하나만 해도 될, 까?"

부탁해도 거절하지 않을 법한 기회가 오자, 슬슬 연인끼리 하만한 짓을 해보려고 물었다.

"응? 뭘?"

약간 기대했는데, 이걸 또 순진하게 대답하니까 시도하려 해도 괜히 조심스러워져서 쪼오끔 주저가.

"너무 오랜만이라…못 참겠어!"

그래도, 그동안 많이 참았다. 그렇게나 만나고 싶던 본인이 눈앞에 있는데, 앞으로 일주일은  기다려야 한다니…이걸 견디기 위해서는 오빠와의 스킨십이 불가피했다.

"…응? 못 참아?"

일부로 야릇한 걸 연상하게 만드는 단얼 사용했는데, 이 정도면 쫌 답답!

"만질래."

그렇기에,  놀라라고 명확하게 발음해줬다.

"…엉?"
"만지고 싶어."

예전엔 못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만났었다. 마음 같아선 매일 보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어려우니까 타협해서 최소 일주일. 자주 본다면 주말에 연속으로 이틀을 봤으나 그것도 조금 된 일이었다.

"오빠."

단호하게 부르고.

"눈 감아. 손 내밀고."

과감하게 시켰다.

"어, 응…?!"

그게 통했는지, 눈만 껌벅이다가 정신 차리고서 감은 상태로 차렷 자세.

"손!"

내밀라는 손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길래, 소리치자 반사적으로 손바닥을 보여주었다.

"헿-…."

이제 준비는 완벽. 연인끼리 하는 행위를 시도하려고, 어쩌다 보니 줬던 커플티를 다시 뺏어서 쇼핑백에 넣으니까 빈손이 된 오빠…드디어 상상했던 것을 실행하기만 하면 됐다.

"…헤헤."

순한 양처럼 꼭 눈을 감고서 주뼛주뼛, 살살 떠는 손은 나를 믿고 있어도 원초적인 두려움에 그러는 걸까? 애초에 겁이 많은 오빠니까…이해해야겠지. 하물며 아까도 겨우 뒤에서 소리 지른 것뿐인데 놀라 뒤로 자빠졌으니 어련할까?

"훟-…."

그런 오빠라도 사랑스러워서 연인다운 행동을 하려면 가슴이 뛰니까 왠지 그냥은 하기 어려웠다. 지금은 눈도 감고 손도 내밀어줬으니, 이대로 맞잡으면 아까부터 계속 두들기던 가슴이 터지려고 난리 쳐도…할 거다. 오빠에게 하려고  먹었던 걸, 지금!

"응-……."

막상 하려니까 하늘을 향한 손바닥 때문에 할  없어 손목을 돌려 나를 향하게 하고는 이윽고, 그래도 나보다야 커다란 오빠의 손에….

"……힣-."

…깍지를 꼈다.

"죠아…."

내심 오빠에게 박력을 기대했지만, 그건 크나큰 욕심이란 걸 깨달아서 내가 리드하기 맘 먹은  최근. 너무 노골적이더라도 이끌어주지 않는다면 평생 아껴주느라 매번 내 쪽에서 유도하다 지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답을 알려준 상태로 해달라는 편이 기다리는 것보다 훨씬 낫겠지. 다른 건 몰라도 연애는 아직 서로가 아장아장 걸음마 단계일 테니 맘마 먹을 때 떠먹여 주는 것이 맞을 거다. 그러다 언젠가는 먼저 요구해줬을 때…그겐 대체 무슨 기분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히힣-. 이렇게 손잡기 전에, 무슨 생각 했어 오빠?"

정작 내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길 유도했으면서 짓궂은 질문.

"어? 응, 딱히?"

이런 저돌적인 모습에 조금쯤은 당황하거나 어리바리해도 좋으니 부끄러운 기색 보여줬으면 하는데, 의외로 무심해 보이는 건 너무 오랜만이라 오히려 면역이 들었나 싶었다.

"머야 그게-. 힝!"

눈을 감으라고만 했다면 필시 조마조마한 얼굴로 옴짝달싹 입술 움직이는 모습을 봤을지도?

"오빤 나랑 키스하고 싶지도 않아?"

장난기를 머금고서 따지듯이 말하는데, 예측에 혹해 냉큼 까치발을 들까  착각하게 하고 싶어도 오해하지 않게끔 손을 내밀라고 표현하면서 드는 겸연쩍음. 솔직히 하고 싶었지만, 여기선 아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