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9화 〉부질없어진 죄책감(2) (39/107)



〈 39화 〉부질없어진 죄책감(2)

특히 무서운 걸 싫어해서 공포영화라도 보면 나오는 반응이 장난치지 않고서는 배기가 어려운 유혹…. 오빠에겐 미안하지만, 같이 볼 영화를 또 찾아봐야겠다.

"…어?"

작은 일을 위해 변기에 앉으려니까 올라간 커버가 눈에 띄어서 그런 의문을 품게 했다.

언니가 오늘 욕실 청소를 하려다가 귀찮아서 말았나?

그러고 보니 요즘 언니는 뭔가 바쁜 모양인지 요새 자주 못 봤다. 같은 집에 살고 있음에도.

청소라도 도와줄까?

용돈도 많이 받았으니까, 청소기 돌리는  정도는  수 있었다. 아니면 세탁기를 돌려서 빨래 너는 거라던가. 솔직히 욕실 청소는 애매해서, 예전에 샤워기 호수로 물만 뿌리니까 언니가 비데 고장  생각이냐며 화를 냈었다. 나는 그저 도와줄 생각이었는데….

"땍땍대긴."

그때의 기분이 떠오르니까 왠지 화가 나 시험공부에 매진하고 있을 오빠에게 이기적인 걸 알아도 오늘 애들과 재밌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공감받으려 토-크할 생각에 기대가 부풀었다. 참을성이 없다고 해야 할까, 모처럼의 첫 남친이니까, 내가 고백한 상대니까….

"오빠…."

연인이 생기면 하고 싶었던 바람을 오빠에게 투영하면서, 가족 말고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다. 특히 가족보다 특별하다면 특별할 연인이기에, 그런 마음은 더욱 차올라서…벌써 보고 싶었으니까.

"후-아."

내가 오빠를 생각하는 마음 비교해봤을 때 이 정도는 새 발의 피였다. 그러니까…우선 쉬는 시간에 연락해도 되냐고 넌지시 물어봐야지.

 정도면 많이 배려한 거야.

"히-힣!"

응응, 내가 생각해도 씀씀이가 괜찮아. 그런 나를 위해서라도 다음엔 꼭 끌어안고 머리 쓰다듬어줘야지. 영화 잘 보면 상으로 귀라도 파줄까? 그러면서 귀에 바람도 불어놓고 막….



잔뜩 고민하다가도, 일단은 공부를 해야 해서 억지로 의자에 앉아도 현저하게 떨어진 집중력을 체감할 수 있었다.

"……."

속으로 끙끙 앓는 것을 겨우 들키지 않는 것이 고작. 죄책감이니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느니 하등 생각이 내 목을 조여왔을 때, 번잡스러운 생각을 잠시나마 내팽개치도록 도와준 건 다름 아닌 희진이었다. 물론 시간 괜찮냐는 연락에 양심이 무척 찔렸지만, 공부하느라 바쁠 테니 짧게 끝낼 거라는 내용과 달리 오늘 애들과 놀았던 사진을 보내면서 실컷 떠들다 이만 자겠다는 일방적인 대답. 내 선물도 샀다면서 보여 준 커플 티셔츠에 애들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고생했다는데, 우리 사이가 희진이의 친구들에게 어째서 비밀인지가 무척이나 신경 쓰이며 의아스러웠다.

…혹시 내가 창피한 걸까?

지금 생각해 보면, 저번에 녀석이 보여줬던 사진 역시 껄끄럽게 남아서 신경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면 거짓말. 헛소리에 속아서 이해할 수 없는 관계가 돼버렸지만, 아무리 그래도 남자친구인 내가 있는데 다른 남자애랑 거리낌 없이 어깨동무하며 셀카를 찍은   보 양보해도 질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

결국, 내게 아무런 소득도 없었던 녀석과 만남. 오히려 피해만 봐서, 가능하면 녀석이 연락 자체를 아예 해주지 않았으면 했다. 현실적으로 희진이의 집에 가지 말라는 소리와 똑같은 이야기지만.

"하-아……."

늘어만 가는 한숨은 지나치게 많은 걱정을 내포하고 있어 적은 나이에 많은 생각을 강요하게 했다.

 연애지만….

"결혼, 생각해야겠지."

연애라는 게 결혼하기 전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니까.
책상에 올린 팔꿈치로, 손등에 턱을 괴고서 열심히 펜을 놀려야 할 오른손은 학습지가 아니라 허공을 맴돌며 초점 없는 시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하지만, 연인과 키스하기도 전에 바람이라니.

"어불성설."

그 사람의 도덕적 윤리관을 의심할만한 사항이었다. 카사노바라면…카사노바라서 여자 꼬시는 솜씨가 대단하다고  법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런 가치관과 상반되는 사람이라고 자부했는데.

"언어도단…."

별로 가부장제나 일부일처 등 사회가 형성한 틀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을 두고 그러려니 해서 이견을 제시하는 등 관여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나, 만약 나를 두고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다면 책임감 있게 행동하려고 노력하겠다는 대답을 들려줄 수 있었을 거다. 그런 게 나란 인간을 형성하는 기반으로, 비록 괴롭힘당한 전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선에서 살아가며 남은 남이고 나는 나이기에 상처를 받을지언정 주지 않겠다는 다짐 하에 떳떳하게 살아가겠다고 맹세했었다.

그랬었는데….

"…그래서."

나는 대체 어쩌다가 녀석한테 키스하려고 했던 거지?

섹스? 겁탈당하고 자는 사이에 당했다, 약점을 잡혀서 협박당해 어쩔 수 없이 어울렸다…. 억지를 들먹인다면 거기까진 그나마 자그마하게라도 반론의 여지가 있겠지. 희진이가 봤을 때 없다고 말한다면 없는 거겠지만.

그런데, 그런데….

"젠장…!"

복받쳐 오르는 분함에 주먹을 꽉 쥐자 떨어져 나간 펜. 녀석에게 자처해서 혀를 내밀었던 자신을, 너무나 용서할 수 없었다. 그건 스스로 생각해도 변명할 껀덕지도 없는 자신의 의지라, 더욱 자신을 향해 희진이는 어쨌냐고 성을 내고 싶은 자책감. 가능하다면 나라는 샌드백에 미쳤냐고 소리치면서 만신창이가 되도록 두들겨 패고 싶었다. 태생을 남에게 피해 끼치는 삶이 싫던  인생에, 그건 나니까 잣대를 두지 않고 엄격하게 다스려야 한다고…꾸짖으며 욕하고 싶은 형편.

"후-…."

그러나,  수 있는 거라곤 나약하게나마 씁쓸한 자신을 곱씹는 거였다. 개인적인 문제 따윈 현실에 순응하기 위해 공부를 피난처 삼아 도피하는 처지.

"옳다면 이게 옳은 거겠지…."

어차피 정답이란 없으니까,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떠밀렸으니 용서를 바라는 것도 뻔뻔하다.

"그냥 솔직하게 말할까?"

나만 아프면 된다, 나만 슬프면 된다, 나만 나쁜 놈이면 된다…근데, 그러려고 하면 희진이도 힘들어진다. 일어난 일을 밝히는 걸 전제로 한다면, 최소 헤어지는  염두에 둬야 했다.

헤어질 만하지, 내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니까.

많이 억울하지만, 이 억하심정을 누구에게 떠들 수 없었다.

어차피 제대로 된 친구 하나 없는 주제에.

"제길-…."

설마하니, 자신의 친동생을 인질 삼아 협박할 줄이야. 세상엔 내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상대가 많단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엮이니까  이해할 수 없는지 진저리를 치게 하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더 알고 싶지도 않았고.

"끙-…암-…쯧."

생리현상이란 건 참으로 신기했다. 가까스로 분노를 삭이는 중인데도 몸은 졸린다며 신호를 보내 하품을 하게 하다니.

"하, 하-하…."

헛웃음에 실마리 없는 상념을 관두기로 하고, 얼마 하지 않은 공부는 어차피 눈에 들어오지도 않으니까 슬슬 잠들기로 했다. 아직 하루가 바뀐 건 아니었지만, 얼마 남지 않았으니 지각하지 않으려면 지금이 적절했기에.

'코-톡'

책을 접고 의자에서 일어나려니까 전혀 반갑지 않은 알람…이 시간이면 분명, 녀석이었다.

'코-톡'

by특별공수
[7월 5일 금요일]
[시간 나지?]_오후 11:49

"…."

어떻게 알았는지, 시험 끝나는 날짜를 콕 집어 말하는 녀석. 친구들이랑 만난다고 둘러댈까? 아니면 희진이란 다음날 선약이 있어 어렵다고 말해볼까?

[6일에 우리 집에서 둘이 쫑파티 하는 거 알고 있어]
[어차피 일정 없는 거 다 알아]_오후 11:49

…희진이가 말해준 건가? 이럴 때 희진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참으로 야속했다. 분명 나랑 토요일에 부족했던 생일 파티를 단둘이 하자고 이야기를 나눴는데, 녀석은 그걸 시험 쫑파티로 오해한 모양.

"싫다…."

굳이 정정토록 하고 싶지 않았으니 착각하게 내버려 두고…말인즉슨. 오라는 거겠지?

[시험이라고 해봤자 오전이면 끝나지?]
[그러니 하교하면 바로 와]_오후 11:50

대책 없이 사는 거 같은 주제에 묘하게 철두철미하다. 하기야, 그러지 않고서는 내가 멍청히 함정에 걸리지도 않았을 테지. 그날을 생각하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약속 있어도 중요한  아닌 이상 우리 집이 우선이야]
[알지?]_오후 11:50

만약 다른 일이 생겨서 올  없을  같단 핑계도 사전에 차단하는 모습.

"집요해…."

어째서 나란 놈에게 이런 정성을 들이는 걸까? 잘난  하나 없을 고작 나 같은 놈에게….
이해할 수 없었다.

1_오후 11:50_[..노력해 볼게]

거부할 수 없는 사정에 거절이란 선택지는 대체 어디로 갔는지, 부당함 속에 항의하고 싶어도 희망은 반려되리란 것을 잘 알았기에. 이번엔 분위기에 심취하지 말고 적당히 어울린 다음 녀석이 만족하면 빠져나오기로…그것이 현재 내가  수 있는 최선이었다.

by특별공수
[ㅋ]
[충분히 노력해야 할 거야]_오후 11:51

눈앞에 있더라면 비웃음을 머금은 얼굴이었을 거라 확신하며 그렇게, 일방적인 약속이 잡혀버렸다.

진득하니 남았던 여운을 만끽하며 글을 쓰는데, 묘사가 사실적으로 변모하며 글에 활력을 주었다. 상상이 아닌 실제 경험을 기준 삼아, 그때의 느낌을 옮기니까 전과 대조적인 것이 확연할 수밖에. 독자도 느꼈는지, 요즘 반응이 좋은 데다 최근 유입도 늘어 수입이 올랐다. 순풍이 불어 상승곡선을 타고 섹스의 여운 가시지 않는 동안 벌써 다섯 편이나….

"쿠-훕!"

비축분을 쌓을수록 늘어만 가는 미소에 얼른 다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는 행복함만이 가득했다. 이런 변화가 모두 녀석 덕분임을 인정하기에 따로 돈이라도 쥐여줄까? 싫다고 말했던 여장도 오에서 십 정도 준다면 조금쯤은 고민할지도?

"쿻-…."

오히려 냉큼 받기보다 액수에 놀라서 갈등하다가 돈에 굴복하지 않는다고 거절하는 상황을 떠올리니까, 참을성 없이 녀석을 다시 부르고 싶었다. 그러나 녀석의 본분도 생각해줘야겠지. 너무 부르면 또 금방 질릴 테니까, 참을성 있게 기간을 두고 서서히 녀석을 삼키는 거다.

"힣-."

생각만 해도 빈틈없이 아주 완벽한 계획…아니, 시추에이션. 같은 장소에서 다른 상황을 야기하여 점점 녀석을 나라는 구렁텅이로 빠지게 한다. 마치 부처님 손 위의 손오공처럼 녀석은 내 손아귀의 장난감.

"…흐-응."

생각해 보니 제대로 된 호칭을 정하지 못했다. 플레이란 역할 놀이니까, 둘이서 몸을 섞으려는 신호로 정해 놓으면  때의 마음가짐이 달라지겠지.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의 사례를 참고삼아 복장도 맞춘다면 더욱 상황에 몰입하겠지만, 거기까진 어려웠다. 기대치를 낮춰서, 녀석에게 스스로 변태적인 성향을 억지로라도 자각하게끔 도착적인 상황을 목줄처럼 채워준다면. 떼어내려고 발버둥 쳐도 나중엔 스스로 목줄을 내게 건네며 산책하러 가자고 조르게끔 하려는 시작으로는 여장만 한 것이 없어 보였다.

"흥-."

새로 주문할까 싶어서 코스튬을 살피니까 당연하게도 여자 옷이 대부분. 거기다가 체형이 최소 봉우리 진 가슴을 요구해서, 다른 도구를 살펴봐도 딱히 끌리는 건 없었다. 초커라던가 액세서리를 사는 것도 그리 흥미를 붙이기 힘들었고, 기껏해야 돌기가 달린 콘돔과 성능이 월등하다는 러브젤. 딜도도 별로라서, 이상하게 도구가 아니라 체온이 있는 것을 원하는 자신을 알  있었다.

"흣…."

때린 다거나 그런 건 참담한 체력인지라, 있으나 마나  근력을 생각하면 무리. 수갑을 채운다 해도 막상 움직일 땐 내가 직접 움직여야 한다는 맹점이 있었기에 힘들었다.  외의 가벼운 플레이의 대부분은 협력해줄 것 같지 않아서, 적당히 수치를 주며 야릇한 분위기로 몰아갈 만한 변태적인 플레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여장뿐.

"후히힣…."

그런 까닭에 쇼핑몰을 닫고 찾아서 보는 건 여장물이었다.


깜짝 생일 축하를 받은 이후에 오빠와 못 만난 지가 벌써 이 주…. 시간 참 느려서, 내가 생각해도 여태 참은  대단했다. 그러나 오늘 그 인내심이 바닥나 오빠  앞에서 몰래 기다리는 건, 오빠 역시 나처럼  만났기에 조바심이 생길까  놀라게 하고 싶은 마음에.

"힣-."

별로 소원해졌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까닭은, 토-크로 서로가 만나고 싶다며 사랑을 확인해서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어제 시험이 끝난 대신 오빠는 아직일 테니까…오빠가 내게 해줬던 것처럼 나도 깜짝 선물을 해줘야지 싶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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