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해답 없는 고민(1)
"아…?"
그런 까닭에 이끌려서 무심코 다가가 아까처럼 뺨을 핥으니까 밀쳐져 물러나는 몸.
"…칫."
벽을 기댄 채로 아슬아슬하게 피하려다 그러지 못하자, 이윽고 녀석이 손을 써버리게 했다고 생각했다. 그래봤자 무의미한 저항이었지만. 제법 달아오르던 분위기가 축 늘어뜨려서 녀석을 혀로 핥은 건 조금 섣부른 거 같았다.
"…이렇게나 자지를 빨딱 세우고선, 섹스하기 싫다고?"
녀석에게서 멀어지자, 자연스럽게 취하는 방어 자세에 다시 다가가긴 글렀기에 빈정대며 투정을 툭-.
"그냥 단순한 생리현상이야."
속으론 몹시 놀랐을 가슴 진정시키며 차분히 처신하는 해명이 계집애 같아서 무의식적으로 웃음이 나온다. 정말로, 생각대로 구는 녀석. 더욱 가지고 싶어지는 욕구에 스스로가 가치를 올렸다.
"글쎄…? 섹스할 때 너도 사실 좋았으니까 할 생각에 자지가 이러는 거 아닐까?"
입맛을 다시며 당연할법한 말을 해대니까 굳게 닫히는 입.
"…-."
비록 영원히 침묵으로 일관하여도, 그게 부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쿡-!"
원래 거짓말을 못 하는 성격. 그 탓에 희진이가 나타나자마자 전부 말하려고 할 때는 무척 짜증 났지만, 이렇게 추궁할 때도 솔직해서 좋았다. 딱히 말은 하지 않으려고 해도, 순진한 얼굴에 다 드러났으니까.
"아니라곤 못 하겠지? 그야…우리가 섹스할 때. 내가 먼저 절정에 이르고 나서야 멈출 줄 알았는데, 그다음에 너도 사정하고 싶어서 짐승처럼 허리를 흔들어 댄 거…내가 가장 잘 알아. 덕분에 나도 숨을 헐떡였지만, 좋았으니까."
그게 오르가슴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맞는다면 처음으로 그런 황홀한 기분을 느꼈을 거다. 그래서 더욱더 포기 못 하는 녀석과의 관계. 그렇기에, 누군가와 관련되기 귀찮았던 행실에 따른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수다스럽지 않았을 거다. 조금 더 욕심을 부려서 사랑하면 바뀐단 뜻을 몸소 체험하고 싶었지만, 거기까진 기적이나 다름없단 생각과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친동생임에도 가차 없는 흉계의 이유는 가지고 싶은 상대가 눈앞에서 자신을 먹어달라고 먼저 꼬리친 거 같은 환상에서였다. 현실로 돌아와 아니라고 저항하는 모습이 반대로 자신을 끌어당겨서…싫다고 반항하면 좋다고 곡해해서.
"악…-!"
녀석이 가슴 앞으로 내밀었던 손을 내리자, 기회를 틈타 다시 한번 밀고 들어가서 이번엔 벽으로 밀치니까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헿."
너무나 무방비해서, 허술한 녀석에게 또 장난을 치고 싶도록. 요번엔 볼이 아니라 입술로 달려들까 했으나, 그건 자신도 큰 결심이 필요해서 답지 않게 쑥스럽게 느껴졌다.
"있지, 섹파…하자?"
그런 감정에 지지 않으려고 우위를 점하며 몰아붙였으나, 키스 생각에 죽었다고 취급했던 민망함이 터지니까 떨리는 목소리를 하고서 맥락 없이 묻는 말. 얼마나 꼴사나웠는지, 목소리 끝이 갈라졌단 사실에 더욱 창피함을 불러일으켜 어딘가 숨고 싶어도 물러날 수 없어서 그런 자신을 도망치지 않도록 가까스로 부여잡았다.
"읓-…."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내적으로 미묘하게 변한 것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라 갈등이 느껴지는 얼굴. 협박이랍시고 내뱉은 말들 대부분 만화로나 배운 대사들이었다. 그걸 자신에게 맞춰 떠들려니까 조잡하고 엉성했어도, 내색하지 않고 몰아붙이니 어찌 됐든 승기를 잡은 기분. 희진이와 나의 이해관계에 관해서 설명했으니, 웬만해선 함부로 내 말을 거역할 수 없을 거다.
"쿠-쿡!"
아주 진중해진 얼굴에 무척이나 고민하는 모습. 그러나 내 눈엔 귀여워 무심결에 웃음을 흘렸지만, 이대로 가다간 내일이 지나도 대답을 들을 수 없을 거 같아 계획을 수정했다.
"…말하기 힘들면 대답하지 않아도 돼. 너는 그저 희진이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내 말을 들어주는 거니까."
"…."
머리로는 안 되는 일이란 걸 알고 있어도 희진이를 들먹이니까 고민하던 차에 벽에 손을 짚고 팔을 기대어 상체를 다가가고선 이윽고.
"희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무탈하게 보살핌받길 원한다면, 내가 원할 때 내 상대를 해주면 돼."
"……."
만화에서 묘사로 봤을 때 이보다 강렬했던 자극은 없어서 귓가로 다가가 속삭여서 말했지만, 우습게도 그러기 위해 까치발을 들은 건 들키고 싶지 않았다.
"망설일 필요 없어. 이게 협박이란 건 너도 알고 나도 아니까. 겨우 희진이가 독립할 때까지, 잠깐 나랑도 만나주는 거뿐이야."
"………-."
가까이 있으면 쿵쾅대느라 들릴 것 같은 심장 소리에 떨어져 보이는 화끈거림. 거기에 아주 미세하게 녀석이…끄덕였다.
"쿠-후훗!"
진작부터 이렇게 할걸.
"조만간 연락할게, 자기…."
녀석이 대답 대신 알아보기 힘들게 긍정했던 것처럼, 마지막의 자기란 단어는 안 들릴 만치 독백했다.
"…이제 그만 가봐."
그토록 유혹해놓고서 허무하게 보내는 건, 당장에라도 빨개지려는 수줍음을 들키기 싫어서.
"…어."
나만 그런 건 아니었는지, 떨리는 목소리에 겨우 한 글자인데도 갈라지고 작아져서 얼마나 당황했을지 짐작이 갔다.
"조만간 연락할게."
해도, 이토록 아무렇지 않게 배웅하니까 냉정하게 망설임 없이 돌아서는 녀석. 마지막으로 자고 가라고 능청스럽게 말하지 못했던 건 자신조차 급격하게 울리는 두근거림을 저지할 수 없어서…녀석이 계속 있었다면 무조건 들통날까 두려워서였다.
"하-…하-…하-아…."
잠기는 기계음이 들리자 떨군 고개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려서 풀썩.
"후후훗…하-아, 하-…."
마침내 원하던 것을 이뤘단 생각에 아득하니…즐거워도 미루고 미루느라 견뎌왔건만, 녀석이 떠나니까 이렇게나 순수하게 두근거릴 수 있구나 새삼 느껴졌다.
"하-, 후후후, 하…후훗-!"
웃든지 부끄러워하든지 하나만 해도 벅찬데, 두 가지를 다 하다 시야가 흐릿해져 뚝 떨어지는 소리에 눈가를 비비니까 손등에 묻어나는 눈물.
"후히힣, 후-우. 후히히히히힣. 하-."
얼마 만에 흘리는 눈물인지 감도 잡히지 않아서 예측할만한 단어는 그저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찬 감격이었다.
"하-아, 하…! 헤헤헿-."
녀석을 만나고서야 기어이…. 살아 있는 감각을 새삼 느꼈다. 알고 있었던 거 같은데, 잊고 있다가 녀석이 깨워준 기분. 처음엔 질투와 욕망, 그리고 쾌감보다 먼저 고통…이제는 마음이 이끌려서 아니라고 발뺌하기엔 부정하지 못할 증거들이 속속 드러났다. 특히나 입맛이 없던 나날이 이어지던 중 갑작스럽게 식욕이 당기는 건 모두, 녀석이 원인이겠지.
"…힛."
거실에 가면 먹다 남은 피자가 있을 거다. 식어서 맛이 없겠지만,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썩 나쁘진 않으니까. 입맛이 돈다…. 예전 같았으면 냉장고에서 식어 딱딱했어도 입안에 넘어가면 다란 생각에 무시하고 넘겼는데, 녀석과의 관계 후 확실히 체력 저하도 느끼고 식욕이란 것도 확연히….
"쿠-힛!"
스스로 현실엔 지나칠 정도로 무감각해서, 2D가 아니면 반응이 오지 않는다고 자조했었는데…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울러 생기가 돌아 미약하게 남은 처녀 상실의 여운도, 녀석과 몸싸움을 벌이느라 알게 모르게 생긴 옅은 멍 자국도 전부 하나하나 감각을 되살려줬기에 그런 걸지도. 단언컨대, 나는 순전히 녀석에게 구미가 당겼다.
만일, 화끈거리는 얼굴 들켰더라도 계속 보여주고 싶진 않아서. 잠깐이나마 설렜다는 감정을 부정하며 서둘러 빠져나오자, 오후만 해도 후덥지근하던 바깥 공기가 자정이 가까워지자 한결 가벼워졌다.
"후-…."
녀석에게서 느껴졌던 기시감…. 피는 속일 수 없다고, 희진이와 처음 만난 날에 대수롭지 않게 다가와 고백하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전혀 주저하지 않은 저돌성과 적극적인 언변. 초면인 상대에게 하기 어려운 행위를 스스럼없이 행했을 때, 이젠 안면도 없는 연하의 여자애에게까지 괴롭힘당하는 걸까 싶었었다. 하지만 희진이는 진심이었고, 녀석 또한 악의적일지언정 의도를 떠나 행위를 놓고 봤을 땐 비슷해서 집착에 가깝도록 순수했던 거겠지. 어디까지나 희진이라는 선행을 겪어봤기에 좋게 봐줘도 부정할 수 없는 범죄 행위…예전에야 서서히 희진이의 마음을 느끼고, 짓궂어도 다 나를 좋아해서 그랬단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걸 구분 짓는 건, 교제하고 있단 전제에 해당하는…오로지 희진이만 가능한 일.
"…제기랄."
녀석은 나와 연인도 아니고, 심지어 친구라고 불릴 사이도 아니다. 단순하게 여자친구의 친언니일 뿐. 결혼도 하지 않아서 처형이나 제부라고 불릴 관계도 아니었다. 되려 이제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 정말이지, 되먹지도 않은 처지라 실소만 흘리고서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아무에게라도 따지고 싶었다.
"씁-!"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녀석이 내게 행한 짓거리를 두고서 반응이 왔던 건 진짜 불가항력이었을까…. 고개를 들 수 없는 죄악감에 밤은 아주 깜깜한 어둠이라 마치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양, 썩 달갑지는 않았다.
"푸-…."
거기서 자신에게 놀랐던 건, 부모님의 야단이나 걱정보다 녀석에 대한 신경 쓰임이 더 컸었다는 점. 내게 있어 우선순위가 부모님 아니면 하나뿐인 친구 묵침이…먼저 나를 버리기 전까진 오직 하나뿐이어야 할 내 사랑 희진이 말곤 없다시피 했다.
"-………."
녀석이 싫냐고 자문하면 그렇다고 단호히. 머리로는…이성은, 이 이상 가까이할수록 파멸로 이어진다고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하나 피하지 못했던 건, 않았던 건…사실 나도 다른 맘을 품었던 탓에 그런 건 아니었을까? 순식간에 혼잡스러웠던 그 순간의 망설임과 어쩔 수 없단 핑계로 끄덕인 자신을 믿을 수 없었다.
"하-아……."
이렇게 한심한 자신을 알아서, 의젓하지 못하고 믿음직스럽지 않더라도 곧 성인이 될 나이. 자립하여 나 하나가 아니라 날 포함하여 남도 챙길 줄 아는 사람이 돼야 한다. 희진이를 만나기 전까진 엄두도 못 낼 가치관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그 벽에 부딪힌 건 성장의 계기가 된 녀석 때문에. 인생사 정말 드라마 같은 일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빌어먹을."
그렇게 자책하고 반성하며 남에게 기대는 것이 아닌 혼자서 해결책을 찾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어째서 미워하고 경계해야 할 대상에게, 희진이한테 느꼈던 두근거림이 반응하여 일순간 혹했던 스스로가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사실은 그게 남자라면 어쩔 수 없이 반응하는 성적 자극에 의한 생리적인 현상이라 머리론 알고 있어도, 실제로 느꼈다면 스스럼없음에 대한 짜증이어야 하는데…회상하면 그게 꽃처럼 피어오르는 붉음이라 격한 혼란을 초래. 전혀 뭉클하고 애틋하진 않았어도, 그게 부정적인 감정은 아니라는 것을 부정하기 어려웠다.
"하-…."
아니겠지, 아닐 거야….
단순한 착각으로…결국,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서 일어난 성가심이라 치부하기로 마음먹었다.
혼자 심각했던 지난 밤에 비해 의외로 공교롭지 않아서 축복인 아침. 집에 들어갈 때까지 기다리시던 어머니가 크게 혼내실 거란 예상을 뒤집고는, 간단히 왔니? 란 말과 늦었으니 씻고 자란 말로 일방적일 수밖에 없는 대화를 마치셨다. 그리고 일어나니까 유난히도 말끔한 정신. 심심한 스마트폰 화면엔 흔한 알림 하나 없어서, 희진이가 새벽에 깨어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묻지 않은 사실이 오히려 신기했다. 어쩌면 녀석이 미리 손을 써뒀을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그 녀석에게조차 조만간 연락하겠다는 말을 끝으로 아무런 연락도 없었기에.
"끄-흠…."
이제 겨우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지만, 별로 기다려지는 것은 아니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해도, 이건 그런 차원의 문제와는 다소 달랐으니까.
'코-톡'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 다더니, 누구라고 단정할 수 없어도 지금 떠올라 좁혀지는 용의 선상은 마침 둘이었다. 이게 참으로 유감스럽게 둘 다 같은 성을 쓰고 피가 섞인 자매란 사실…. 그 어느 쪽도 편안한 마음으로 대화하기 어려웠다.
"음-."
누군지 알아보기 전에 시간을 두고 추론해보자면 희진이는 보통 등교할 때나 연락하니까 이럴 땐 떠올리기조차 싫은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2019년 6월 13일 목요일─
희진♥
[잘 잤어 오빠?]_오전 6:54
그런 나의 추론 따위는 가볍게 빗나가서, 아직 자고 있을 거라 생각한 희진이에게서 온 뜻밖의 선 토-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