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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화 〉녀석의 변명(2) (29/107)



〈 29화 〉녀석의 변명(2)

"이제  거야?"

정리할 건 다 했고 희진이도 방에다 눕혔으니, 녀석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로 지나쳤다.


"있지, 중요하게  말이 있어."

지금은 별로 듣고 싶은 말이 없는데, 녀석은 아닌 모양.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서 걸음이 멈췄다가,  이상한 짓을 꾸미고 당하는 건 질색이라 계속 현관으로 향했다.

"희진이에 관해선데, 싫어?"

끝까지 멸시하다 희진이를 언급하자 우-뚝.


"…뭔데."

정지해서 무엇인 가를 묻는 것을 보면, 참으로 마법의 단어가 아닌가 싶었다.

"쿠-훗!"


그런 사실을 녀석도 아는 모양이라 그럴 것 같다는 미소가 같잖아서 찡그려지는 미간.

"방으로 들어갈까?"


내가 대화 할 마음이 들었다고 느끼니까 바로 문을 열고 자기 방으로 초대한다.

"여기서 말해."


그러나 그걸 곧이곧대로 들어갈 내가 아니지.


"쿠-훗…무서워?"


무슨 소릴 하나 했더니, 무척이나 당연한 내용을 꺼낸다.


"어, 무서워."

시선을 아니꼽게 도발하는 얼굴을 주시하며 또 무슨 짓을 할까 대비하는 손짓. 인정하는 것이 나쁜 건 아니기에, 너무 쉽게 인정하니까 덕분에 의기양양하게 살아나던 녀석의 얼굴빛 기세가 줄었다.

"겁쟁이."
"그래, 맞아. 겁쟁이야."


무시하다 반응해주니까 좋아하며 화색이 돌던 얼굴빛이 유지를 못 하고 죽어버리니까 내심 부르는 쾌재.


"칫, 노잼."

이윽고 흥미를 잃은 꼴 보기 좋아서 입꼬리가 올라갈 뻔한 걸 부르르 떠는 정도로 참았다.

"그래서 할 말이 뭔데?"

겁쟁이란 말에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서 질문이 만약 별거 아니면 곧장 나와 집으로 갈 계획.


"별 건 아니고, 희진이의 가정사에 대해서야."


가볍게 말하는 것 치곤 무거운 주제였다.

"내 가정사기도 하고."

자매니까, 그렇겠지.


"우리 부모님이 지금 어디 계신다고 생각해?"


뜬금없이 자기 부모님의 여부를 묻는데, 어디 계시는 거야 함부로 대답하기 어려워 대략 짐작만 하고 있었다.


"이 시간까지 외간 남자를 들여놓고는 아무 일도 없다? 딸만 둘 있는 집에?"

진지하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거 같은데, 말투가 변해서 그런 것 같지 않더니 연극을 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몸짓.


"그야 아무 일이 없을 수밖에, 우리 부모님은 돌아가셨으니까."


가만히 들어줄 땐 슬픈 내용이긴 하나 정작 떠드는 본인이 이야기를 드라마처럼 설명하니까 긴장감이 줄어들었다.

"정확히는, 사랑하는 딸 하나만 두고 가버렸지만."

슬픈 내용을 씁쓸한 얼굴로 말해도, 비호감인 상태에서 들으니까 신기하게 동정심이 들지 않아 편들어주고 싶은 마음마저 전혀.


"덕분에 난, 지금보다 적은 나이에 벌써 많은 보험금을 탔어. 물론 그걸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그런지 이유를  거 같아서, 싸가지도 없고 나쁜 인상만이 남았는데 실제로 그런 짓까지 했다고 하니 더욱 싫어질 만했다.


"지루하게 들릴 내 가정사는 이쯤에서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 너가 그토록 궁금해하던 희진이 입장에서 한 번 볼까?"

 눈치를 보고 표정의 변화가 나쁜 쪽으로만 흘러가는  느꼈는지 방향을 바꾸는 대화.

"이제 고작 초등학교를 졸업한 불쌍한 내 동생은, 사랑하는 부모님을 여의고 하나 남은 언니마저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었어. 뭐,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라서 어찌어찌 여기까지 왔지만."


자신을 나쁜 놈이라고 설명하더니, 이젠 자학하는 태도에 처량함이 느껴져 연심을 사고 싶은 모양이나 그와 별개로 희진이의 내용만 새겨듣고 나머진 거르기로 했다.


"아무튼, 현재에 이르러서 희진인 꽃다운 나이에 연상의 귀-여운 남자친구와 사랑을 속삭이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지. 아-주 보기 좋아. 언니로서 해준 것도 없는데, 잘 자라준 동생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니까."


이번엔 과장 된 손짓 없이 뚫어져라 쳐다보는 얼굴. 예전에는 부담스러워서 먼저 눈을 피했을지언정 지금은 거북해도 피하면 지는  같아 정면을 고수하며 시선을 받아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듣고 알겠지만, 우린 부모님이 안 계셔. 다른 친척들도 우릴 양육하길 꺼려 했지. 그렇다면, 그런 희진이의 보호자는 누굴까?"


되는 대로 지껄이는  같아도, 이야기의 줄기는 쭉쭉 뻗어 나가다가 마침내. 내게 하는 질문이 아주 긴 듣기평가 문제인 양, 묻는 거 같아도 답은 뻔해서 대답할 필요까지 없는 까닭은 곧 자기 입으로 답을 말할  같아서였다.

"나야. 실망스럽지?"


여태의 맥락은 다 현재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처럼 두서없이 손바닥을 펼치며 자랑하다 어색해진 얼굴로 짓는 미소가 안쓰럽게. 그렇다고, 녀석의 말만으로 동정하고 싶지 않았다. 여태의 행실이 워낙에 질이 나빴으니까.


"그래, 나도 알아. 내가 되먹지 못한 인간이라는 거. 그렇지만, 이런 나니까 별로 바뀌고 싶진 않아. 이대로도  즐겁거든."


되먹지 못한 언니가 아닌 인간이란 의미는 그나마 언니로선 괜찮다는 건지, 아니면 인간 자체로 자신이 별로라는 걸 떠드는 건지 헷갈렸다. 지가 즐거운 건 내가 느꼈던 악취미적 성향이 그대로 들어맞아 변명할 생각은 없어 보였고.

"이야기가 또 딴 데로 샜는데, 앞으로 사 년이란 시간이 남았어."


앞으로  년…길다면 길 수 있고 짧다면 짧을 수 있겠지만, 괴롭힘당하던 시절…졸업을 생각하며 버텼던 내겐 삼 년도 길다고 느껴졌었다.


그런데 사 년이라….

"이게 뭘 의미하는 거 같아?"

단도직입적으로 결론만 말하지 않고 차근차근 빙 둘러 말하지만, 결국 희진이가  지내려면 자신의 말을 잘 듣는 것이 좋을 거란 의미다.

"냉정하게 말할게. 너? 아무리 남친이라지만, 겨우 청소년기의 첫사랑 내지  남자에 불과하겠지. 너도 희진이가 처음일 테고. 안 그래?"

마치 그게 전부라 결과는 헤어질 거란 어감.


"난 진심으로 희진이를 사랑하고 있어."


본심을 꺼내자면, 나는 단언해도 희진이 역시 날 진심으로 사랑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만난 기간도 기간이거니와, 희진이가 먼저 고백했음에도 숙맥처럼 구는 내게 실망하여 언제 떠난다고 말해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연습까지 해봤으니까.

"나도 부디 네 말이 진심이길 바랄게. 그래야 희진이를 이용해서 너를 협박하기 쉬울 테니까."


자신의 여동생을 그런식으로 쓴다고 발언하다니…미친건가?

"그런 관계로. 네가 내 말만 자-알 들어주면, 희진이가  품을 떠날 때까지 모자람이 없도록 돌봐줄게."

얼핏 그럴 거라고 느껴지던 예상을 직접 들으니까, 그저 어안이 벙벙해진다.

"물론 네가 싫다고 한다면…어쩔 수 없이 지난번의 냉전 상태로 돌아가야겠지만, 그건 싫지?"

말은 이렇게 해도 내가 거절했을 때의 상황이 불편하긴 했던 모양.

"한 지붕 아래 같이 사니까 나도 힘들긴 해. 사랑하는 동생에게 싫어하는 척을 해야 하니까."


그야 그렇겠지…그렇다고 희진이를 협박 도구로써 이용하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어쩔  없잖아. 남자친구가 여자친구를 별로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거니까."

듣자 하니  올리며 비아냥거리는 말투가 아니라고 표현해도 내가 그럴 거라 단정 지어서, 발끈하게 하려는 설계. 거기에 넘어갈 정도로 생각이 짧진 않지만, 무턱대고 거부하기엔 희진이에게 주어지는 부담감을 경시하기 어려웠다.

아니…친언니가 친동생을 잘 보살펴주지는 못할망정, 이딴 식으로 대하는 건 대체  수작이야.


"사랑한다면…내게도 그 마음을 빌려줘. 솔직히 말야, 외롭거든…궁금하기도 하고. 소설 쓸  묘사의 생동감이 많이 부족해."


이미 정해놓은 대답인  처음 내성적이라며 조용했던 모습과 대비되게 막히지 않고 술술 나온다. 전부터 믿을 수 없게 내가 마음에 든다느니 외롭다느니 그런 변명을 하는데,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 쳐도 이런 방식은 도저히 긍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말하고픈 내 의견이었다.

"…어때?"

어처구니없는 설파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표출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근접하여 뒷걸음치지 못하도록 양팔로 목을 감싸고는 요구하는 듯한 표정으로 끈질기게 원하는 대답을 들으려는 모습. 순간적인 움직임에 미처 피할 수도 없이 당해서 어깨만 겨우 뒤로 물러났을 뿐, 어차피 잡힌 상태라 의미 없는 몸짓이었다.

"후훗-."

부정적인 감정을 노골적으로…질색이라고 몹시 싫다는 기색 드러내도 이러니 숨길 수 없는 당황스러움. 그걸 아는지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더욱 다가올 것처럼 굴더니만, 멈춰서 올려다본 고개에 밀착한 몸이 부드럽고 가벼워 희진이와는  다른 생각을 연상하게 한다.


"어렵지 않잖아? 몸 하나 내어주는 거."

자매가 쌍으로 내게 고백하는데,  이미 임자가 있어서 그걸 알면서도 포기를 모르는 언니의 유혹. 상대가 자기 여동생이란 점이 질투를 유발하는 것인지, 어째 밀어낼수록 더 달라붙는  같았다.


"남자들은 다 이런  원하지 않나? 아니면 네가 별종?"

편견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선입견이란  항상 사람을 초라하게 만든단  알아서 매번 주의하고 반성하는 주제에 대해 상념하도록 하는 말.

"일반화할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난 아니야."

그리 일컫지만, 사실 아랫도리에서 반응이 오는  이 악물고 간신히 대답하여 내겐 애인이 있어 다른 이성과 놀아나지 않겠단 무언의 시위. 그것을 증명하듯 나를 안은 녀석을 향해 만세 하며 절대로 건드리지 않겠다는 태도를 과시했다. 원래라면 닿지 못하게 도망치거나 서둘러 밀치고 가는 것이 현명하겠지만, 과감하지 못하다는 게 흠이라면 흠. 변명하자면 그런 성격이라서 이렇게 대처했고,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속으로는 매우 곤혹스러워서 정상적인 사고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착한 척 굴지 마. 남자는 다 늑대잖아? 상황만 주어지면, 어디서라도 교미하고픈 본능…아니야?"

아까부터 말투가 듣기 묘해서 오싹거리는 건지 오글거리는 건지 모를 닭살이 올라와 무슨 개소리를 하는지, 애써 침착하게 집중하려고 했다.


"아니야!"

몸서리치듯 부정했지만, 그러기엔 슬슬 떨리기 시작한 몸. 무서워서…녀석 때문에 나와 희진이의 관계가 무너지고, 나아가 희진이가 자립하기 전까지 녀석 때문에 힘들어질 걸 생각하니 아찔해졌다.

"쿠-훗. 그런 주제에 나랑은 벌써 두 번이나 섹스했는걸?"


큰소리로 부정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내 논리를 격파할만한 내용을 가지고서 비집으려는 시도.


"강간이겠지. 동의 없는."

녀석의 허술하게 짜깁기된 논증 따위야 예상하여, 애써 나와의 관계를 정당화하려고 했으나 그것만큼은 절대 물러날 수 없는 부분이라 몇 번이고 대답해  용의가 있었다.


"쿠-훗. 그래?"


입은 웃고 있어도 눈은 웃지 않아 섬뜩하니 차갑다고 느껴지는 착각.

"…읏-!?"
"근데 여긴 아닌가 본데?"


우려하던 것이 현실로…차라리 계속 목을 감싸기만 바라던 팔이 떨어져 발기해버린 자지를 순식간에 만져서, 이제껏 아니라고 부정했던 것이 무의미해졌다.






짐짓 상상했지만, 아무리 우락부락하고  스타일의 몸매라 할지라도 당장 눈앞에 따먹을 수 있는 녀석의 몸이 훨씬 현혹스러운 까닭이 신기했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분명 빈약한 자지일지언정 유유히 만지는 촉감 오롯이 야릇해서.

"…발기했어?"

지금까지 올곧은 척 뻐팅기더니, 실제로 만지고만 자지는 자기변호가 무색해지도록 빳빳해져 있었다.

"쿻-!"

이게 녀석의 의지와 관계없는 생물학적 기능이란  알았지만, 그렇다고 수치스럽단 얼굴마저 감출 순 없는 모양. 덕분에 내심 긴가민가하던 태도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


여태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떠들었던 사실이 부정되자, 고개를 돌리길래 시선을 쫓으니까 눈동자마저 피하는 눈길.


"사실은 나랑 하고 싶지? 섹스."

이때를 노리며 망가에서나 봤던 것처럼 도발해봤다.

"전혀…!"


그러나 예상외로 거부하자 만지던 손이 순간 멈추고.

"…그래? 하지만 자지는 이렇게나…."


바지 속에서 애처롭게 꿈틀거리는 윤곽을 손끝으로 쿡쿡 찌르며 녀석을 바라보는데, 애써 태연하게 아니라고 주장하는 자신과 달리 무력해진 몸이 생각처럼 따라주지 않으니까 곤란한 표정 자체가 귀여워선 정말로 또다시…먹어버리고 싶어졌다.

"트-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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