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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화 〉녀석의 변명(1) (28/107)



〈 28화 〉녀석의 변명(1)

내심 희진이를 두둔하는 듯한 말씀이라 좋았지만, 어쩔 줄 모르는 표정 보이지 않으시더라도 무심코.

"그렇다고 서두르진 말고, 너무 늦지 않게 오렴."
"네…."

끝까지 방심할 수 없어서, 본인이 하고 싶은 말씀만 하시다가 뚝 끊으셨다. 헛기침 나오게 떨떠름했지만 나쁘지만은 않은 기분. 예전부터  부러진 말투와 어울리지 않게 배려하시는 화법을 구사하셔서,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런 어머니가 존경스럽고 또  배우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후우-…."

그렇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진정하기 어려워 다시 살피는 주변. 바닥에 누운 채로 기절한 거 같은데, 이불은 없고 달랑 베개만 있어 누가 해줬으려나 하니 믿기지 않았지만, 아마 녀석일 거다.

"하하-…."

소파에 사랑스럽게 잠든 희진이의 얼굴을 보고 풀어지는 표정도 잠시. 테이블을 보니까 얼마 먹지도 않은 음식 그대로 고스란히 식어 아깝게시리 어질러져 있다.

"끙…."

장소만 살필 게 아니라 자신도 돌아봐서, 사타구니는 개운한데 가운데 가슴은 뻐근한 이상한 느낌. 거기다가 엉덩이가 서늘해 확인하니 허리춤이 반쯤 내려와 허리 부근이 허전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걸까 곰곰이 파악하여 다다르는 결론은 필시….

"…젠장."

악몽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녀석에게 또 당한 거 같아 여태 좋았던 기분이 틀어지며 뒤늦게 인상이 구겨지고 말았다. 한 번도 아니고  번씩이나.

"하-아…."

제기랄.

어쭙잖은 흉계에 놀아나 버렸다. 거기다가 내 몸인데도 불과하고 남에게 멋대로 사용되니까 이로 형용할 수 없는 불쾌함보다 짙은 무언가가 내면 깊숙이. 이러다 보니 아까까지만 해도 사랑스러워서 계속 쳐다보고 싶었던 희진이의 얼굴 볼 면목이 없어졌다. 기복이 심해지는 것은 덤.

"…후우-."

마음 같아선 답지 않게 실컷 욕지거리를 내뱉고 싶었지만, 옆에서 곤히 자는 희진이가 깰까 봐 조심스럽게 일어서면서 바지를 제대로 입었다. 팬티 속에 찝찝한 감촉이 딱 대충 닦은 티가 느껴져 이번 주만 해도 두 번이나. 빌어먹을도 이런 빌어먹을이 없었다.

"제기랄."

결국엔 참지 못하고 작게 내뱉은 욕설이 여기 없는 녀석을 향해서 진심으로 터트리고는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성격상 참지 못하고 이내….

"…하-."

너저분한 테이블 위를 정리했다.

"후-우…."

자릴 치우면서 간간이 욱하고 차오르는 분노를 겨우 다스릴 수 있었던 건, 얌전히 잠든 희진이의 사랑스러운 얼굴 덕분에. 그렇다 해도 참는 것이 고작이라 금방 울컥해져서 녀석에게 따지고 싶었지만, 심호흡하며 이럴수록 차분해지기로 했다. 그야…잔뜩 화가 났음에도 역설적으로 마주치기 싫었으니까.

"젠장."

대략 내가 잠든 뒤 벌어진 일이 궁금해도, 성급하게 다가갔다가 또 무슨 짓을 당할까 싶어 문 앞에서 녀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녀석의 기행을 떠올려 보면, 처음 수갑을 채웠고 이번엔 수면제까지 먹였는데 다음엔 대뜸 수면 가스를 뿌릴지 누가 알겠는가.

"…있어?"

일부러 인기척을 내가며 충분히 기다려도 나오지 않으니까 괜히  빼고 싶지 않아 몸을 돌렸다. 사실 진저리가 나서  수 있으면 가까이도 하기 싫은 거지만. 그러면서 혹시 몰라 코-톡을 보내자 바로 답장이 왔다.

"…."

뒤를 돌아 문으로 향할까 하다가 멈춰서 코-톡으로 어디냐는 질문에 방이라는 대답에 우뚝.

"…-."

한사코 잠잠하던 곳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잘 잤어?"

본인이 재워놓고서 그게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냐고 호통치고 싶었어도, 막상 대면하니까 기가 차서 막혀버린 말문. 꼭 이게 아니더라도 달리 해주고 싶은 역정이 떠오르지 않아 기분이 썩 마땅치 않았다.

"뭐, 그럭저럭…."

눈앞에 자신을 곤란하게 만든 원흉이 태연하게 있음에도 차분해 보이는  그러한 성격 탓에.

"더 잘 거야?"
"아니."

그러나 이번 만큼은 확실하게 거절했다.
내가 잠들면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아쉽네."

그런 어조치고는 무표정한 주제에 뚫린 입이라고 잘도 지껄인다.

"…또 생생한 자지를 넣어볼  있나 싶었는데."

자신의 행각을 숨길 생각이 없었는지, 아주 대놓고 내뱉는 성희롱을 듣고도 침착한 것은 내성이 생긴 덕분일까?

"…참내."

하나하나 상대해주면 귀찮아질  뻔해서 물으려고 했던 것도 짜증이 무럭무럭 자라난 탓에 묻기가 싫어졌다. 어차피 생각하기도 싫은 일을 저질렀던 거야 뻔해서, 구태여 비아냥 들으려 계속 있을 생각 따윈 결단코.

"이만 늦었으니까 갈게."

희진이가 아닌 녀석에게 가보겠단 인사 따윈 할 가치도 없겠지만, 이마저도 쓸데없이 성실해서 언질은 해준다.

"…그래?"

희진이와의 오해가 어영부영이긴 했어도 풀렸으니, 이제 남은 건 녀석과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만….

"쿻-!"

대놓고 비웃는 녀석을 보자니,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하나 잡히지 않아서 일단은 돌아가기로 했다.

"아쉽네, 자지…좋았는데."
"하-…!?"
"있지, 오늘은 좀 아쉬웠어. 기대한 거에 비해 너무 빨리 사정한 거 아니야?"

여자애가 무슨  하나 바뀌는 기색 없이 이토록 상스러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해대는 건지….

"혹시 조루면 고치는  좋을 거야. 그래야 희진이랑 할 때 희진이가 실망하지 않지."

진짜 여친인 희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정작 녀석이 고깝도록 여친 행세라 속으로 참을 인을 새겨도 서서히 화가 치밀어 올라왔다.

"…적당히 해."

참자….

이런 반응이야말로 녀석이 바라는 거였다.

"쿠-훗. 화났어?"

그야말로 일부러 화를 유도해서 관찰하고 비웃는 그런…악취미도 이런 악취미가 없어서 진심으로 상종하기가 싫을 정도.

"-."

정말 그토록 사랑스러운 희진이랑 자매가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울 따름이었다.

"쿠후훗…."

대답 없이 신경질적으로 쳐다보다, 오히려 기뻐하자 이내 고개를 돌리니까 들리는 비웃음.

어쩌라는 건지.

"희진이는…?"

놀리려는 녀석의 감흥을 떨어뜨리게 무시로 일관하자, 그제야 자기 동생에 관해 묻는다.

"…소파에서 자."
"그래…?"

서둘러 방을 치우고 가려는 데에 몰두하다 보니 희진이를 그대로 두고 온 것이 떠올라 멈칫한 것은, 문득 희진이를 거실에 둔 채로 가도 되나 싶은 생각에서.

"후훗-…."

뭐가 그렇게 좋은지 웃음기 만연한 녀석을 두고는 나가려던 발을 돌려 거실로 향했다.

"집에 간다며…?"

현관으로 가다 거실로 되돌아가니까 하는 말.

"…희진이를 방에 옮기고."

녀석이 희진이를 들고 침대로 옮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덮치게…?"
"안 그래!"

내가 자기인 줄 아나?

지가 할 법한 행동을 마치 내가 할 것처럼 말하는 것에 성질이 나서 욱했어도 전혀 미안하지 않았다.

"후-…."

어째 녀석과 대화를 진행하면 할수록 늘어만 가는 한숨.

꿍꿍이 가득한 미소를 머금은 녀석을 혼자 두고서 거실로 돌아가자, 아무것도 모른  아이처럼 새근새근 잠든 희진이가 먼저 들어왔다. 그러면서 뜻밖에 체념 가까운 감정이 든 건, 잘못은 내가 해놓고 괜히 역정 가까운 감회가 스멀스멀 올라오다 말아서. 솔직히 억울해서 내 잘못이라고 따지기도 뭣할 정도로 근본적인 원흉은 여전히 실실 웃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따지기엔 내가 남자답게 확실히 대처하지 못했던 점이 켕겨서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끄-응."

녀석이 말했던 것처럼 파렴치한 놈이 되지 않으려고 얼른 손날을 세워 등 밑으로 집어넣는 손. 하필이면 소파와 맞닿은 상태라 생각처럼 한 번에 쑤욱 들어가지 않아서 살살 사이로 밀어 넣자 겨우 안을 수 있었다.

"흣-…."

그러나 허리만 숙인 채로 자는 희진이를 드니까 휘청거려 안정적이지 않은 자세. 생각으로라도 실례가 될 수 있어서 희진이가 무거운 게 아니라 내가 연약한 거라고 자책하는 것도 잠시, 살집도 없어 보이는데  무거운가 싶어서 원인을 찾아 돌아가는 눈길에 들어온  그저 매혹적인…육감적인 매력덩어리였다.

"…."

와…역시 엄청 크다.

"헛?"

이런 생각 하지 않기로 다짐했던 것도 한순간, 항상 의식하며 피해왔다가 방심하여 제대로 직면하니까…그만 혹해서 무방비한 희진이를 향해 엉큼한 생각이 물밀듯이. 이어서 따라오는 자괴감은 경각이었음에도 녀석과 같은 짓거리를 생각했다는 죄책감이 지배했다.

"…-!"

그런 자신에게 실망하며  다문 입술. 사실 야릇한 감정이야 느낄 수 있다 쳐도, 부끄럽기보단 성스러워야  성이란 단어를 강압적으로 당했던 탓에 상식적으로 이런 건강한 반응을 혐오스럽게 느껴질 만큼 충격이었다.

"…젠장."

작게 내뱉은 욕을 신호로, 계속 상념에 빠지기엔 희진이부터 옮기기로 해서 무릎까지 살짝 접고는 순간적으로 주는 힘. 허벅지를 중점으로 시작하여 느껴지는 발꿈치의 무게 중심과 균형. 상체도 감각을 발휘하여 말려오게 휜 손바닥은 혹여나 옆으로 떨어지지 않게 방지하고, 처음에 불안했던 팔은 부담감을 줄여 무게를 분산시킨 하중 덕분에 아까보단 편하게 희진이를 안아 들 수 있었다.

"후-…."

연하의 여자애를 안아 드는 거뿐인데도 이렇게 힘이 드는 건 그저 본인이 체력 미달이라…. 굳이 힘들게 안아 드는 것이 아니라, 소파 등받이에 뉘어 앉은 상태로 업는 것도 괜찮았을 거라고 조금 후회했다. 그래봤자 실천한 직후였지만.

"…-."

공주님 안기가 예상보다 무거웠어도 견딜 수 있는 건, 사랑스럽게 잠든 희진이의 얼굴을 볼 수 있어서. 물론 부가적으로 왼쪽 팔뚝에 닿은 폭력적인 허벅지 아랫부분 감촉이 직격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오른팔도 만만치 않았다.

"흐-읏, 차!"

 걸음 걷다가 힘들어서 금세 고쳐잡는 양팔. 고작 등을 가로질러 가슴 옆부분을 닿을락 말락 한 거로 만족하는 거 아니냐고 할 수 있었으나, 온 집중은 허벅지도 옆가슴도 아니라 오른쪽 팔에 변변치 않게 눌린 미세하게 불편한 감촉이었다.

"으흠…."

청소년기 남자애의 상상력으로 가장 궁금한 호기심. 브래지어 끈이 닿은 건 아닐까 하는 복잡한 궁금증이 아까의 자괴감을 잊게 했다.

"흣-, 후…."

푹하고 물씬 파묻힌 허벅지의 감촉과 조금만 의식하면 닿을 가슴의 아슬함 따위 뒤로 밀려나서, 마냥 좋기만 한 피부끼리의 닿음보다 오히려 불편하게 따끔거리는 아픔이 순진한 탐구심을 자극….

"쩝, 끄-응."

…했던 충동적인 유혹은 찰나로, 곧 희진이의 방에 들어와서 저번 자신이 잠들었던 침대로 살며시 눕혔다.

"쓰-읍. 하-…."

방금 숨을 들이마시고 내신 건 결코 여자친구의 방에 들어와 어떤 향기가 나는지 궁금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옮기느라 힘들어서…긴 해도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좋은 향기. 안자마자 느껴졌던 샴푸 향이나 체취 또한  맡으려고 노력했으나, 불가항력으로 정말 어쩔 도리가 없었다.

"후-……."

마음을 진정시키며 둘러보는 풍경. 이렇게 여자애의 방에 들어오는 건 처음…은 아니고  번째여도 설렘은 처음보다 훨씬 커다랬다. 침대 옆으로 놓인 옷장과 맞은편의 책장. 평소 공부하기 위해 마련된 책상과 귀여운 디자인의 의자는 학생답게 조성이 잘 되어 있지만, 무난한 벽지와 다시 침대로 돌아오면 군데군데 놓인 인형이 여자애의 방이라는 걸 강조하는 거 같았다.

"…헤-헿."

특히나 베개 옆에 놓인 인형은 내가 선물한 거라 코-톡 프로필 사진에서 본 것처럼 놓여 있길래 흐뭇해지는 건 필연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희진이가 해줬던 것처럼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다 인사하고 배웅받고 싶었지만, 금방 깨어날 기색도 없거니와 시간도 촉박하여 차오르는 아쉬움을 누르고 방에서 나왔다.

"발기했어?"
"멋-!?"

문이 닫히기 전, 옆에서 들린 말에 놀라 황급히 닫았어도  소리 나지 않은 건 천만다행. 녀석의 말대로 희진이의 방에서 야릇한 기분이었던  부정할 수 없었다. 해도 굳이 그걸 녀석에게 알리고 싶진 않았기에 화들짝 하반신을 비틀어 고간을 가렸으나, 되려 녀석이 말한 대로 됐다는 걸 알리는 꼴.

"…적어도  때문은 아니야."

뻘쭘하게 되었지만, 별로 지고 싶지 않아  딴엔 받아친다고 툭 내뱉었다.

"쿡-! 그러게. 나랑 할 때는 먼저 수그러들더니…."

어쩌라고.

뭔데 지금 나도 모르는 감상을 주고받자고 떠드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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