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엉성한 흉계(1)
"후-우…."
좀처럼 옅어지지 않는 숨결에 희진이가 추궁이라도 해줬으면, 다 털어놓을 수 있었을까 고민해도…그러려던 마음이 깨져서 다시 붙이기란 쉽지 않았다. 시도는 항상 머릿속을 맴돌다 오로지 불행스러운 결과만 내놓을 뿐. 그런데도 내가 아닌 희진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길 기다리는 건 매 맞기 무서워서…자신의 잘못을 알지만, 혼날까 봐 자수하기 어려워하는 아이의 심정 같았다.
'코-톡'
미련이 남아 희진이와의 코-톡 방에서 하염없이 있다가, 누군가 내게 코-톡을 보냈다는 내용의 상단.
…녀석이었다.
─2019년 6월 11일 화요일─
by특별공수
[야]
[너 희진이 생일 모르지?]_오후 11:11
"…?"
이 녀석에게만큼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는데, 별안간에 내용이 뜻밖이라 뜬금없었다. 다른 협박이나 그런 내용이 있을 거 같아 나름대로 각오하고 대화창에 들어갔는데, 엉뚱하게 생일이라니.
오후 11:11_[생일?]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전혀 딴소리라 너무 느닷없어서 그 일에 대해 언급하여 나무라기도 무색해졌다.
by특별공수
[몰랐지?]
[그럴 거 같더라]_오후 11:12
이러는 녀석의 의도를 파악하며 친언니인 본인이 정말 몰라서 물었을 리는 없을 테고, 곧 희진이 생일이니까 알려주려고 말을 건 듯한 낌새가 살짝. 그러고 보니 희진이의 남친이면서 같이 찍은 사진도 적거니와, 하물며 생일도 몰랐다. 교제한 지 이제 겨우 한 달 남짓이라지만…어쩌면 한 달이나 되었는데 내가 너무 관심이 없었다는 반성. 하지만, 그걸 저 녀석 때문에 깨닫는 것이 불편했어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아직 희진이한테 얘기 안 했지?]_오후 11:12
그러면 그렇지.
생일에 대해 알려주려나 싶더니, 본론은 희진이에게 그날의 내막을 다 떠들었냐였다.
[안 했지..] ◎ ▶
원래는 솔직하게 말해주려고 했었는데, 막상 희진이가 앞서 보듬어주고 괜찮다고 달래주니까 도리어 말문이 잘 떨어지지 않았던 상황.
[어차피 이틀 전까지 동정이었던 주제에 말할 용기나 있겠느냐마는]_오후 11:12
안 했다고 전송하려는데, 대뜸 시비조로 한심하게 몰아가니까 울컥했다.
"…지도 처녀였으면서."
남들에게 피해갈까 봐 대화하는 것도 생각하고 내뱉지만, 반면에 녀석과의 소통은 그런 자제력이 부족해져서 쉽게 드러내는 험한 속내. 물론 내 방에 나 말곤 없기에 할 수 있는 혼잣말이지만.
[마침 내일이 희진이 생일이거든?]_오후 11:12
"내일!?"
불과 오십 분도 채 남지 않은 상황.
[어차피 너 시험공부 한다고 입도 뻥끗 안 했겠지]_오후 11:13
아무리 그래도 생일인데…그리 생각해본 적 없어서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이런 건 보통 남친인 내가 찾아봐야겠지만, 사귄 지 얼마 안 됐거니와 처음이라 몰랐으니까…. 이런저런 내용에 뭐가 맞는지 몰랐어도, 이건…너무 갑작스러웠다.
"…………."
나야 초딩 때 이후로 친구도 없을뿐더러 생파 초대를 받은 적이 없어서 그러려니 하겠지만, 인싸에 인기녀인 희진이는 달랐을 테니까. 무려 잘나가는 여자친구의 생일만한 이벤트는 찾기가 드물다…라고 인터넷에서 강조했으니 중요하다. 이게 중요하지 않으면 달리 뭐가 중허냐고 싸울 정도.
[내 말 잘 들어]
[내가 희진이 생일 알려줘서 같이 생일파티 계획하려고 불렀다 말 맞춰]_오후 11:13
그러니까, 우리가 일요일날 만난 이유를 생파 때문이라고 하잔 소리였다. 그래봤자 이후에 희진이를 만나며 저지른 행동거지가 몹시 의심스러울 텐데.
[그리고, 네가 갑자기 뛰쳐나간 건 조심성 많은 성격이라 오해할까 봐 지레 겁먹어서 그랬다 치고]_오후 11:14
이렇게까지 말하니 어거지를 부리면 얼렁뚱땅 수긍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난 그런 거 말리기 서툴러서 알 깠다고 할게]_오후 11:14
아직 대답도 안 했는데, 혼자 열심인 걸 보면 자기도 다급했던 모양. 안하무인 한 성격이라 희진이에게도 그런 거 같았는데, 그래도 친동생이라 그런지 나도 모르는 꼼짝 못 할 무언가가 있는 거 같았다.
"……."
녀석이 알려준 대로 변명해도 정말 희진이가 믿어줄지는 의아했지만, 이것 말고 마땅히 넘어갈 만한 구실은 생각나지 않았기에 일단 끄덕이는 고개.
[왜 대답이 없어?]
그러나, 녀석이 하잔 대로 하면 거짓말을 하게 되는 셈이라 망설여졌다.
[내가 제법 고민해서 만든 핑곗거린데]_오후 11:15
재촉하는 물음에 당장 그러겠다기도 어려워서 어디까지나 양심상의 문제라.
[생각 잘해]
[남친이라고 희진이 생각해주는 척하지만, 어차피 헤어지면 남이잖아?]_오후 11:15
틀린 말은 아니지만, 받아들이기 영 거북했다.
[그와 달리 난 내 여동생이어서 싸워도 계속 지내야 하는데, 그게 너한테서 이야기를 들으면 이 사태가 아무래도 평생 갈 거 같거든?]_오후 11:15
아무렴. 친언니가, 그것도 자기 남친을 강간하고 협박했는데 멀쩡할 사람은 절대 없을 거다.
[...이런 못난 언니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는 내가 돌봐줘야 해]_오후 11:16
"…헛-."
그나마 자기가 못난 건 알곤 있네.
[근데 얘가 체격도 그렇고 나보다 쪼금 나은 걸 가지고 기고만장해서 깝친단 말야]_오후 11:16
은근히 둘 사이의 문제를 인간적으로 말해도, 녀석에 대한 인상이 워낙 안 좋아서 어차피 지가 먼저 잘못했을 테니 그런 거겠지 싶었다.
[넌 모르겠지만, 내가 무려 희진이의 보호자라서]_오후 11:16
보호자…??
[까불면 용돈을 안 주거나 해서 생활에 지장을 줄 수 있지만, 별로 그러고 싶진 않아]_오후 11:16
아니…, 자기가 왜 보호자야? 용돈? 희진이네 부모님께선 뭐하시길래….
일방적인 대화에 이해하려다, 상식적으로 넘어가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조급해지는 생각.
[그런데 만약 네가 희진이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떠들면 엄청나게 원망받겠지만, 이미 실컷 미움받느라 크게 달라지진 않을 거 같지만]_오후 11:17
그게 바로 자업자득이란 거지만, 보호자니 용돈이니 하등 그런 단어 때문에 생각이 딴 길로 새서 흐름 따라가기 벅찼다.
[어차피 괜한 기싸움이야]
[하지만, 이런 상황을 뒤집을 기회가 아직 남아 있어]_오후 11:17
여러모로 상념이 떠오른 와중에 계속 이어지는 말을 집중하고자 확실하지도 않은 추론은 접어 두고.
[그날 있었던 일은 깜짝생파하려고 작당하던 거라 치고, 내일 집에서 진짜로 해주면 예전처럼 다시 원만한 관계로 돌아갈 거야]_오후 11:17
말은 좋게좋게 하는 거 같아도 결국, 그날 있었던 강간은 유야무야 처리하고 자기는 어정쩡해진 희진이랑 다시 잘해보고 싶단 소리.
"…쩝."
내심 혹한 방법이긴 해도 그 의도가 기분 나빠서 협력해주기 몹시 껄끄러웠다. 애초에 자기가 잘못해놓고 대강하게 공범 행세 하는 건 아니꼬와도 정도가 있지. 말은 그럴싸하지만, 생리적으로 싫은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참…."
녀석 덕분에 못 된 감정이란 감정은 여러 가지 배우느라 헛웃음이 나올 지경.
[그러니까 내일 학교 끝나면 일찍 집으로 와]
[케잌이랑 선물도 사 오고]_오후 11:18
승낙도 안 했는데 벌써 그런 분위기에 앞서 몇 번이나 기가 찬 나머지 이젠 어이없는 상태도 익숙해졌다.
오후 11:19_[그래..]
내성적인 성격이란 걸 스스로 알아도 이건 불같이 화를 내며 지랄이란 걸 하고 싶은 심정.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 희진이랑 잘 지내고 싶은 욕심에 마지못해 대답해버렸다. 어쩌면 녀석의 제안에 은연히 수긍했다는 듯이.
"이걸로 된 걸까…."
알 수 없는 의도보다, 서먹해진 희진이와의 관계 개선이 우선이라 깊게 생각하지 않고서 녀석이 하자는 대로 받아들인 꼴이 되었다. 그렇다고 좀처럼 그럴듯한 방도가 떠오르지 않아서 잠시 밀어두기로 한 녀석이 저지른 행태는 도대체가…. 그것 때문에 악몽까지 꾼 주제에, 바보같이 나아질 거란 발언에 혹해 은연중 수긍해버렸다. 실제론 무턱대고 받은 것이 아니라 얼척 없이 어쩌다 긍정한 게 되었지만. 속된 말로 날치기당했다.
by특별공수
[100,000원을 받으세요.]코코넛페이_오후 11:19
응…??
이야기는 대략 끝난 거 같아 피하고 싶은 녀석과의 대화를 끝마치려는데, 뜻밖의 송금.
오후 11:20_[뭐야 이건?]
by특별공수
[심부름 값]_오후 11:20
이리 큰돈을 쉽게 주는 건 자기가 돈이 많다고 과시하는 걸까? 아니면 진짜 희진이 보호자란 걸 주장하려고?
오후 11:20_[케익이야 이삼만 원 할 테니까 괜찮아]
그리 싼 값은 아니었지만, 못 살 것도 아니었다. 사실 녀석에게 무언갈 받는 행위 자체가 무척이나 싫은 게 본심이었다.
by특별공수
[받기나 해]
[사람 공짜로 부리는 거 아니랬어]_오후 11:21
"뭐야 진짜…."
여지껏 떼나 쓰는 애처럼 굴었으면서, 용돈 쥐어주듯 어른스럽게 말하니까 약간 혼란스러웠다.
"뭐냐고…."
근데 돈을 준 건 맞지. 그래서 더욱 어지러웠던 거다. 지금껏 나를 괴롭혔던 녀석 중 반절은 돈을 요구해왔으니까. 그런데 반대로 돈을 준다는 건 처음이라 받아도 될지 의문스러웠다. 그러나 한참을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 우선 받아두기로. 뭣하면 희진이에게 사실을 말하고 돌려주면 될 일이었다.
[100,000원 받기 완료!
받은 코코넛페이머니는 송금 및 오프라인
결제에 사용 가능하며, 리워드도 받을 수 있어요
오후 11:24_{내역 보기} {리워드 확인}]코코넛페이
"후-…."
오묘하게 든 불안감에 받아 놓고 연신 한숨만.
by특별공수
[ㅋㅋㅋㅋ]_오후 11:24
"…?"
그래도 희진이랑 다시 좋아질 수 있는 희망에 이만 잠드려는 차, 녀석의 웃음이 무언가 마음에 걸렸다.
"…."
뭐지? 내가 너무 방심한 걸까? 녀석의 의도가 단지 그거 뿐?
끝난 줄 알았던 이야기에 겨우 키읔 자음 네 글자 찍힌 마무리가 겨우 잠잠해지던 마음을 건드려 요동치게 했다.
1_오후 11:25_[섹스는 안 할 거야..]
혹시나 몰라 해보는 반항. 또 그 사단이 나면 가만 안 두겠다고 마음 먹었으나, 우습게도 소심한 투정처럼 보였다.
by특별공수
[ㅋ]
[그러든지]_오후 11:25
나약한 주장에 칼같은 대답.
[나도 됐어]_오후 11:25
포기한 걸까? 애당초 내게 무슨 가치가 있다고 그런 짓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입만 열면 거짓말 같아서 무엇 하나 믿기 어려운 것투성이.
"하-……."
뭐가 됐든 방심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녀석의 말이 사실인지 알아볼 심산. 이대로 희진이에게 내일 생일이냐고 묻는 건 멍청한 짓이니까, 간편하게 희진이의 프로필을 확인했다.
"…쩝."
자기가 예쁜 걸 알아서 찍은 셀카가 당당히. 이렇게 예쁜 애가 정말로 내 여친인지 여전히 믿기지 않아 습관처럼 볼을 꼬집으려다 관두고, 프로필 사진을 눌러 둘러보니 전에 선물해 준 인형이랑 같이 있어 순간 안도했다.
"맞네…."
그러고서 스토리를 확인하니까 유월 십이일. 바로 내일이 생일이었다.
"하-아, 멍청한 놈…."
당연히 알아야 할 사항을 몰랐던 자신에게 자책하곤, 지금이라도 대처하려고 선물은 뭐가 좋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돌연.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고, 녀석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서 조사하니까…이름이 희민이란 걸 알 수 있었다.
"희찌-인! 생일 축하해."
반에 들어가자마자 반겨주는 목소리 덕분에 밤늦도록 걱정하느라 굳어졌던 얼굴이 풀어졌다.
"히히히힣-, 고마워 얘들아."
아침부터 삼삼오오 모여서 떠들다가 반겨줘 기다렸다는 분위기. 생파에 대해선 미리 이야기됐기에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아, 여기!"
자리의 주인인 양 미리 앉은 까닭은 원래 앉을 사람을 기다리느라.
"응-."
채리가 비켜주길래 책상 갈고리에다 가방을 걸고서 치맛자락이 등받이 뒤로 넘어가지 않게 엉덩이를 아래로 쓸어내려 팬티 외의 맨살이 의자에 닿지 않도록 앉았다.
"무슨 일 있어?"
이제 막 온 참인데 대뜸 걱정스러운 물음.
"응? 아니, 별로. 왜?"
눈치 좋은 현비가 겉은 웃고 있어도 속은 그렇지 않단 걸 알아챘으나, 말하기 껄끄러운 내용이라서 딱 잘라 부정했다.
"그래? 평소였음 오늘 파티의 주인공이라고 들떠야 정상인데, 그러기엔 안색이 안 좋길래."
친구들의 축하에 기뻤어도, 내심 오빠와 언니의 일이 신경을 많이 잡아먹어 티가 났던 모양.
"으-응, 아니야. 히히히…참! 케이크는?"
애들 다 있는데 괜히 꼬투리 잡히면 귀찮아질 게 뻔해서 오늘 정하기로 했던 장소와 케이크의 여부 중에 케이크부터 화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