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분노한 동생(3)
"괜찮아 오빠. 많이 아팠지? 이따가 내가 언니 혼내줄 테니까, 안 좋은 기억은 잊어버려."
둘이서 뭘 했는지 몰랐어도, 언니보단 오빠를 훨씬 믿었기에 할 수 있었던 말. 그렇지만, 무엇 때문에 왔는지…왜 언니 방에서 나왔는지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미안해…."
작게, 배가 간지러워도 심각한 상황이라 인내하여 손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려 굽히는 허리.
"희진아, 미안…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몰라도 울면서 연신 사과만 하는 터라 등을 두드려주며 달래도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으흙흑흑…끅!"
막 터트리기 직전, 마지막으로 참는 훌쩍거림에 대비하는 마음의 준비.
"끄-흙! 흐어어엉-엉-!!"
울분에 쌓인 모양이라 끝내 오열했지만,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니까 눈물 콧물 젖어오는 게 느껴졌어도 포용하기로 했다.
"옳지 옳지. 괜찮아요."
실제로 우는 아이를 그치게 한 적은 없었어도, 자신 또한 이랬던 적은 있었기에. 무슨 이유에서 울었었는지 다 까먹었지만, 경험을 살려 엄마가 했던 것처럼 보살폈다.
"뚝-. 이제 그만. 울음을 그쳐볼까요…?"
그런 것 치곤 어리숙했는지, 달랠수록 더 우는 거 같아 곤란했어도.
"흐-읅! 흑! 흑!"
설움이 담긴 목소리가 괜히 가슴이 아파져 꼭 내가 받은 상처처럼 느껴졌다. 스스로 어울리지 않는 짓이라고 생각했지만, 달리 해줄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괜찮아요. 괜찮아요."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무슨 일을 겪었는지도 모르게 괜찮다고만 되뇌는 거뿐으로, 애처롭게 말로만 위로했다.
"흑…! 흑…."
실컷 슬픔을 표현하다 끝나가는지, 멎디는 몸짓. 다음 행동을 기다리면서 숨을 죽이니까 우느라 들썩이던 어깨도 점차 차분해져서 다시 살살 두드리는 등.
"괜찮아…오빠."
일그러졌을 얼굴을 상상하니 내 마음이 다 찌그러졌다. 물론 겉으로는 전혀 그런 티를 보이지 않으려고 쓴웃음마저 간신히 참아봤지만.
"응…."
흐느낌을 꾹 참고 연약하게 흘린 대답에 순간 마음이 무너져서 무언가 심상치 않다고만, 감이 말해줬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네…."
겨우 진정하고서 창피했는지 헛웃음을 흘렸지만, 차라리 그런 실소라도 흘려주니까 왠지 모르게 되는 안심.
"아니야…괜찮아 오빠. 누구나 막 울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잖아."
감정에 복받쳐 막 울 땐 심각하게 받아들였었는데, 긴 대화는 없었어도 그런 척이라도 보여주니까 치솟았던 걱정이 한풀 꺾였다.
"오빤 감수성이 풍부하니까 더 그런 걸지도 모르지."
비록 그 방향이 공포 영화를 볼 때만 크게 작용하긴 했어도.
"…그렇겠네."
언뜻 무슨 일이었는지 물어봐 주길 바라는 표정처럼 보이다가, 이내 착각이라 생각하면 정말 그래서 묻지 말아달란 표정 같기도 한 오묘함이 감돌아서 딱히 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
잘못한 것도 없는데 흡사 그런 것처럼…어색하게 대하는 게 서로 똑같아서 꼭 숫기 없던 시절로 돌아간 기분. 이미 현관에서 운동화까지 신었건만, 이 말을 하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체감상 오 분이나 눈치만 봤었다.
"……가볼게."
가보겠단 말을 선뜻 꺼내기 어려웠던 건지 미묘한 분위기에 먼저 이야기를 꺼낸 건 다름 아닌 나를 등지고 나서야.
"응…조심해서 들어가, 오빠…."
분명 평소처럼 작은 체격이었지만, 추욱 처진 어깨가 더욱 그런 체구를 초라하게 하여 보는 내가 다 안타까웠다.
"응…."
저런 모습이라 끝끝내 사연을 묻지 않았지만, 물을 수 있는 상대는 오빠 말고 또 있었으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실히 말해줘야겠어…!
오빠가 가자, 태도를 돌변하며 눈에 불을 뿜을 기세로 뒤를 도니까 예상하고 기다렸는지 복도에서 마주치는 악질범.
"어디 갔었어?"
"…뭐?"
날카롭게 쏘아붙이며 물어보려다, 되레 하는 질문이 기가 차고 어이없어 따로 노는 눈썹에 뭐라 말하려고 했는지 잠깐 까먹었다.
"언니가 지금 그게 나한테 할 말이야!?"
일단 내가 화낼 상황이 맞으니까 자연스럽게 높아지는 언성.
"…아니야?"
"하-! 진짜. 어이가 없어서, 아니 거든!!"
무엇부터 질문할까 구상하는 도중에 뜬금없는 말을 해대니 말문이 막혀서 문장이 이어지지 않고 딱딱 끊어졌었다.
"그거보다 중요한 게 있잖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겨우 숨을 고르고서 묻는 까닭.
"…실수."
거기서 나온 대답이 내가 궁금해서 묻는 것과 전혀 상반된다는 걸 이해하자, 간신히 꾹 누르던 화가 참지 못하고 치밀어올랐다.
"아니, 진짜! 어물쩍 넘어가려고 하지 말고, 오빠는 나도 없는데 왜 집에 온 거야? 그리고 언닌 그런 오빠를 왜…걷어찬 거고?"
따지려고 말하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거품 물고 쓰러진 오빠의 모습이 다시 생각나니까 뒤에 말은 간접적인 안쓰러움에 나도 울먹여 떨리는 음성. 악에 받쳐 언니를 다그치는데, 아파서 기절한 오빠를 생각하니까 내가 당하지 않았음에도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거기다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친언니라서 더욱.
"……미안."
아니 이게 진짜!!?
"지금 사과하면 다야!? 내 말 이해 못 했어!? 둘이 뭐 때문에 만났고 오빠 가랑이는 왜 걷어찬 거냐고!? 자금 그걸 묻고 있잖아!!"
논점도 모르고 자기 잘못도 모르는 행태에 목소리가 비명처럼 커졌다.
"…………."
사과는 나 말고 오빠가 들어야 할 테지만, 일단은. 많은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대답을 해줬으면 하는데 자꾸 침묵하니까 치밀어오르던 짜증이 드디어 머리끝까지 폭발했다.
"야!!!"
이제껏 언니에게 장난스레 대든 적은 있어도 이렇게 화를 낸 건 처음. 말하면서도 망설였던 이성의 끈이 끊어지자 눈에 핏발이라도 선 것처럼 힘이 들어갔다.
"……야?"
그 와중에 반말하자 거슬렸는지 하는 말.
"그래 야!"
내가 야라고 하면 어쩔 건데.
"언니 같지 않으니까 야라고 하지. 지금까지 언니가 사회생활 하면서 잘한 적은 있었어? 맨날 사고만 치고! 그러다 중퇴하고선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잖아!"
그 과정이 순전히 언니 탓만은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어도, 당장 분노에 지배당해 격해져 되는대로 떠들었다.
"그건, 널 돌보려고…."
"내 핑계 대지마! 나도 다 아니까."
말은 안 해줬어도, 이기적인 변명을 하려는 게 뻔해서 차단.
"부모님 돌아가시고 언니 힘든 거, 얼마나 힘들었는데? 친척들이 고아가 된 우리 다 안 받아 주던 거 재성 오빠가! 응!? 이제 갓 성인 된 나이에 무리해서 자기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혼자서 보살펴주던 거! 응!!? 우리 살기 좋게 돌봐주려던 거 언니가 딴맘 품어서 막 억울하게 쫓아냈잖아!!!"
자세히 내막은 모르지만, 막 초년생이 된 차에 우리가 불쌍하다고 보호자로 거두어줬던 사촌오빠는 우리를 위해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말 그대로 희생했다. 그러던 사촌오빠가 느닷없이 쫓겨나듯 떠난 건 보나 마나 언니의 추악함 때문이겠지.
"그래놓고 뭐!? 날 돌보려고!!?"
그간의 억하심정이 참으며 벼르고 있다가 기폭제가 되어 터져버린 속내는 온통 그을음으로 번지자, 상황을 이렇게 형성하게 둔 범인을 탓했다.
"하-아…!"
말하면서도 쉴 새 없이 쌓이는 답답함에 꽉 막힌 한숨의 깊인 아마 최대한으로 터질까 말까.
"개수작 부릴 생각 하지 말고 똑바로 말해! 변명이든 뭐든 좋으니까! 오빠는 왜 집에 있었고! 언니는 그런 오빠를 왜 걷어찼는지!"
딴소리 못 하게 일러서 본론으로 돌아와 정말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
응어리를 한껏 쏘아붙인 덕분에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어도 가슴 속 찌꺼기가 대부분 가신 기분. 그러나 여전한 묵언 수행에 싫증이 나려던 걸 심호흡을 하여 살펴보니까 제 딴엔 변명하려는지, 올렸던 손이 내려갔다가 반박하려고 다시 오르는 게 보였다. 어쩌면 강한 충격에 제정신이 아니라 머리 따로 몸 따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짓거리. 꼭 그게 착각은 아니었는지, 활동복 상의의 살짝 남은 지퍼를 닫자 움직임이 딱 거기까지라 다음으로 뭘 해야 할지 아직 구상이 안 된 모양이었다.
"……-."
동작은 분주하면서 말을 할까 말까 표현하는 팔이 오르락내리락하더니, 반박도 못 하고 떨리는 입술과 흔들리는 눈동자.
"어, 야!!!!?"
몇 번의 결심이 선 건지는 몰라도 이제야 대답을 할 거 같더니만, 금세 자기 방으로 도망쳐버렸다.
아까처럼 서둘러 문을 닫자마자 뒤에서 뭐라 뭐라 소리치는데, 다급했던 나머지 제대로 듣지 못한 게 차라리 다행일지도.
"……씨발련."
머리가 커졌다고 아주 언니에게 못 하는 말이 없다. 전부 내 잘못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저 지랄을 떨어?
"야-!! 문 안 열어!?"
문을 잠그고 기대자 손잡이가 덜걱거리더니, 등으로 전해지는 충격은 주먹으로 문을 쳤을 때의 그것이었다.
"………하-아-…."
그나마 보는 이가 없어 체면 차리지 않고 내지르는 깊은 한숨.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온 건지, 반성은 하지 않고 엉성한 계획이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단지, 계획이 틀어진 모든 이유를 녀석에게 돌릴 뿐.
"니가 그러고도 언니야!? 나잇값 좀 해! 언제까지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을래!? 최근에 밖으로 나간 적은 있어!?"
시작은 지 남친에게 저지른 행동을 따지더니만, 이젠 아예 내 생활방식에 대고서 참견이다.
이제 와서 무슨.
"그리고 오빠는 왜 부른 건데!? 또 오빠는 왜 걷어찬 거냐고!!?"
쾅쾅 두드리면서 원래 물어봤던 걸 대답해줄 때까지 질리도록. 설사 거짓말로 대답해도 수긍하지 않으면 끝까지 따질 기세라 지칠 때까지 무시하기로 마음먹었으나, 도대체가 잦아들 생각이 없는 소란이었다.
"야! 문 열어!! 이런다고 내가 포기할 거 같아!? 내가 아주 우습지!?"
혹시라도 문이 열릴까 노심초사하며 등으로 열심히 밀어 열리지 말길 바라는 몸짓. 실제로 체격 차이가 있어 희진이가 진심으로 덤빈다면 내가 질 게 뻔했다.
그래도 내가 언닌데….
"뭐라고 말 좀 해봐. 억울해? 어차피 언니가 잘못했겠지! 안 그래?"
"씨발…."
사나운 년.
"대체 뭘로 오빠를 꼬드겼는진 몰라도! 오빠 눈에 눈물 나온 꼴 본 이상 나, 이대로 그냥 안 넘어가!!"
누가 들으면 살인이라도 한 줄 알겠다.
"아무리 언니라도 끝장 볼 거니까! 각오해!"
요란하게 두들기던 소리가 마침내 멎자, 금방 시끄러웠던 상황이라 생각하기 어려운 정적. 그렇게 두들기고도 흔한 숨소리 없이 멀어지는 인기척에 그럴 리 없겠지만, 부서질까 봐 조마조마했던 심장 소리만 방의 고요함을 밀어냈다.
설마 이렇게까지 지랄할 줄이야….
"……………후-……씨발."
그제야 긴장이 풀려서 다리에 힘이 쭉 빠지고 서서히 가라앉는 몸. 엉덩이가 바닥에 닿고 나서야 뒤늦은 탈력감에 고개를 푹 숙일 수 있었다.
폰의 화면을 두드리기 전에 비친 모습은 제대로 잠을 못 잤다는 걸 알려주듯 초췌해진 눈매가 확연히. 마침 오늘 꾼 꿈은 나비가 되어 꽃향기에 이끌려 꿀을 빨아 먹다 사마귀에게 잡아먹히는…무척 생생한 꿈이었다.
"…."
이처럼 충격이 쉽사리 가시지 않아서, 이대로 잠들다간 또 다른 악몽을 꿀까 봐 두려움에 트라우마로 느껴질 정도. 그런데 이건 무섭다는 감정보다 죄책감에 가까워서 가슴이 문드러진단 뜻이 뭔지 조금은 알 거 같았다.
"하…."
그날로부터 이미 이틀이나 지나 희진이와의 연락은 예전과 비교하면 많이 간소해져 안부나 겨우 묻고 마는 수준.
"하-아…."
내실수록 더 갑갑해지는 한숨이 벌써 몇 번째인지 세기도 지겨워졌다.
[괜찮은 거지?]_오후 10:37
맥락 없는 이모티콘조차 억지로 붙이는 거 같아서 챙겨주려고 하는 마음이 오히려 안쓰럽게만 느껴질 따름. 그런 본인은 오죽 답답할까…그 전에 이미 시험공부에 매진하라며 먼저 말을 아꼈었는데, 지금에 와선 일요일에 있었던 일 때문에 그러는 거 같아 더 신경 쓰였다.
[그럼 힘내 오빠!]_오후 10:42
"…."
이렇다 보니 공부는 뒷전이고, 괜스레 쳐다만 보는 코-톡창. 전할 말과 묻고 싶은 말보다 미안한 마음이 훨씬 커 사과하고 싶었어도 차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희진이가 배려심에 여태까지 그날에 관해서 묻지 않았는데, 그걸 묻게끔 하려는 배짱 따윈 내게 없었으니까. 웬만한 강단으로는 마주하기조차 어려웠다. 그런 일이 있었던 이후기에, 대화가 즐거울 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