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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화 〉분노한 동생(2) (20/107)



〈 20화 〉분노한 동생(2)

"아직 자나?"

나도 그렇지만, 녀석도 침묵을 유지하니까 문을 열지 않고 멀어지는 발소리에 서로 소리 없이 안도했다.

"벌써  줄은 몰랐는데…."

계획에 없던 일이라 그런지 조마조마한 것은 녀석도 똑같이. 근데, 따지고 보면 내가 무서워할 필요는 없었다.

"……."

아직. 사실대로 말한다면, 어쩌면….

감춰봤자 좋은 일은 없을 테니 차라리 먼저 털어놓는 게 좋을지도 몰랐다.

"…-."

희진이를  면목이 없지만, 그래도…잘못한 건 나니까.

아까도 비슷한 결심을 한 터라 그런지 마음먹기 두려워도 빠르게 결정할 수 있었다.

"기다려, 나오지 말고. 내가 붙잡고 있을 테니까 토-크 하면 그때 빠져나가."

그런 내 생각을 몰랐기에 얌전히 있으란 녀석의 말. 녀석이 희진이를 어떻게 얼버무릴진 몰라도 모르는 운동화라고 한 걸 보면, 다음부터 저 운동화만 신지 않으면 여깄었단 사실을 영원히 모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니, 지금 나갈래."

미안하지만, 네 말을 들을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거든.

"…뭐?"

내게로 시선 하나 주지도 않고 조심스럽게 문으로 다가가다가 그제야 나를 향하는 얼굴에 놀란 기색이 첫인상과 매우 달라져 있었다.

"제정신이야? 지금 나가면 이 사진 뿌릴 거야!?"

다시금 사진으로 되지도 않는 협박을 하지만,  모습이 정말 그럴 거 같지 않아 보이게 난감한 모습이 역력한 녀석.

"너라면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둘이서라면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을 막을 수 있겠지."

팬티 안에 끈적거리는 느낌이  좋지 않은  빼고 걷는 것에 불편함이 없어서 혹여나 녀석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되레 내가 녀석을 주시하며 방에 가두려고 움직였다.



횡행활보하는 발자국에 아까까지만 해도 내게 깔려 울던 녀석이라곤 상상하기 어려워 저도 모르게 약해지는 기세.

"그, 그렇게 되면 앞으로 희진이랑 좋은 관계가   없을 텐데?"

설마하니 수갑을 풀자마자 입 싹 닫고 딴 사람처럼 태도를 바꾸리라고는…너무 기분  나머지 도리어 몰리게 됐다. 섣부른 판단이었단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나보다 먼저 문에 가까워진 녀석. 혹여나 제압당할까 봐 경계의 몸짓을 하고 있어도 체격 차이가 있어서 소용없는 짓이란 걸 알고 있었다. 중요한 건 녀석이 나를 먼저 제압할 건지, 아니면 희진이를 불러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 건지 모를 선택.

"그럴지도 모르지. 그야 희진이를 믿지 못하고 왔다가 당해버린 내 잘못이니까."

말하는 낌새를 보니 아무래도 후자 같았다.

"그렇다고 해도 네가 사진을 확실히 저장하기 전에 지운다면, 최소한 희진이에겐 피해가 없겠지."

끝까지 희진이 희진이. 지가 뭔데 자기 걱정은 하지 않고 여친 걱정이래?

방으로 끌어들인 것까진 좋았는데, 협박이 통하지 않으니까 계획이 생각보다 아주 엉성하단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협박할 물건을  당사자 앞에서 감히 뺏어 보이겠다는 선언까지 할 정도로 우습게 보인 모양.

"설령 이대로 헤어진다 해도 희진이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

저쪽은 이미 그런 거까지 각오한 상황이라 이대로면 육노예는 그렇다 치고 희진이에게 마저 나를 불신할 거다.

별로 상관없지만, 성인이 돼서 자립하기 전까진 내가 돌봐줘야 하는데….

적어도 우리를 져버렸던 친척들처럼 되긴 싫었다. 얄미운 동생이지만, 내겐 하나 남은 가족이니까.

"똑바로 생각해. 여기서 벗어나면 영영  만날지도 몰라."

문손잡이를 잡은 손에 이미 결심한 표정이라 이런 설득이 통할지 몰랐지만, 그런 식으로 나오니까 나도 상황은 여의치 않아졌다.

"…그건 싫지만, 그것보다  희진이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쓸데없이 성실해선…!

"아-주 갸륵하네! 정말! 희진이가 부러워 죽-겠어!"

 설득할 말은 없었지만, 말로 지고 싶지 않아 질투심 짙은 비아냥이라도 해봤다. 그러면서 슬금슬금 다가가지만, 내가 그러는 것보다 녀석이 손으로 살살 문을 여는 게 더 빠른 건 당연한 결과.

"잠깐 기다려…!"

문고리에 손을 올렸을 때, 뛰쳐나갈 준비까지 마쳤길래 막으려고 눈치 보다가 자기보단 희진이를 생각하는 마음에 짜증 나서 도발하니까 그게 방심이 돼서 순식간에 문이 열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안으로 열리는 방식이란 거. 덕분에 늦게 나가져 간신히 등을 잡았지만, 힘의 차이로 놓치니까 황급히 날아간  손이 아닌 발.

"끄-흙…?!!!"

불행인지 다행인지, 차버린 다리 끝부분이 녀석에게 닿아서 무력화시키는  성공했다. 결과적으론 짧고 굵은 비명을 내서 희진이에게 들켰을 테니 실패겠지만.

"끅-…!!"

흡사 단말마와 같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픽하고 쓰러졌다. 다급히 녀석을 막으려고 취한 행동치곤 너무나 과격해서 내가 차 놓고도 놀라 정지.

"-!?"

맞은 상대는 즉시 고꾸라졌지만, 나는 오른손으로 벽을 짚고 다른 손으론 처녀상실에 화끈거리는 국부를 손바닥으로 꾸욱 누르면서 소리 없이 고통을 잠재우기 바빴다.

"무슨 소리야 언니?  떨어뜨렸어?"

이런 소란 통이라 옆방에서 나오는 희진이와 마주치는 눈. 그러고는 금방 아래의 쓰러진 체구를 보길래 아픈 내색  하려 해도 고통에 떠는 손은 숨길  없었다.

"응? 오빠야…? 오빠!?"

지 남친인 걸 확인하더니, 서둘러 녀석에게 앉아 바닥과 마주한 녀석의 얼굴을 돌렸다.

"끙…흣-!"

나도 아파서 다리가 사시나무 떨리듯 떠는데, 그런 나를 무시하고 먼저 녀석의 상태를 확인하는 모습이 서러워도 못 하는 항의. 솔직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슬쩍 녀석의 얼굴을 확인하니까 눈까리는 뒤집히고 입은 벌어져 거품이나 다름없는 침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견딜 만해도 녀석은 실려 가기 일보 직전이었으니까.

"오빠가 왜 이러는 거야 언니? 응!?"

쓰러진 녀석의 어깨를 흔들며 마치 내가 그랬다는 양 노려본다. 아직 확신에  물음은 아니었어도.

"…찼어."

그러나 변명할 새도 없이 나도 아픈데 쟤만 신경 쓰니까 짜증 나서 홧김에 진실을 내뱉었다.

"뭐?"

기껏 대답해줬는데 되묻는 건 자세한 대답이 듣고 싶어서겠지. 예를 들면 왜 그랬냐라던가.

"내가…찼거든."

불알을, 아마도.

"대체 왜…?! 어째서!?"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당연한 반응.

그러니까, …칫!

"…실수로."

강간에 협박했단 사실을 네게 알리려고 도망치다가 차였다는 걸 곧이곧대로 말할 정도로 뻔뻔하지 못했다.

"언니 미쳤어?"

간혹 이런 표정을 짓곤 했는데, 오늘은 특히나 심해서 진성 미친년을 보는 듯한 표정.

씁….

"제정신이야!? 아니, 지금 오빠를 대체 왜…."

나와 쓰러진 녀석을 번갈아 가며 허둥댄다.

"끟…."

그래도 미안한 감정에 나름 친절히 대답해주고 싶어도 아프니까 잔뜩 구겨진 채로 대답할 수밖에, 실제로 아프니까 무척 신경질적인 증세.

"하-아,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이따가 예기하자."

끙끙대는 나와 거품을 물고 기절한 남친 중에 우선 남친을 고르는 판단력 하난 칭찬할만했다. 그렇게 내 쪽으로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쓰러진  남친을 끌고서 자기 방에 질질. 문은 닫히지 않아 몰래 살펴볼까 싶었으나, 그러기엔 나도 아픔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해서 방으로 복귀했다.

"…칫!"

그러자 보인 풍경은 정리해야 할 것이 많아서 우선 침대에 어색하게 놓인 정액이 든 콘돔부터.

숫기가 없어 어울림은 적어도, 고통스러웠던 과거에 비하면 견딜 필요 없이 적응하기 한결 편해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 와중에 우연찮은 계기는 어쩌다가. 코끝에 맴돌아 살랑거리며 유혹하는 달곰한 냄새에 이끌리듯 따라가니까 나타난 과자의 집을 장난기 많은 소녀가 안내해주었다. 동화에서 보면 보통 마녀가 나쁜 짓을 하고 미녀가 착한 일을 하니까 의심을 하기도 전에 빠져들어서 이미 집을 구경하기 바쁜 상태. 네모난 비스킷 벽돌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외벽에 지붕은 커다란 생크림이 회오리처럼 감겨 올라 맨 위에 자리해서 깨물면 바삭할 것 같은 굴뚝과 싱싱한 체리로 장식한 정중앙, 문은 딱딱한 초콜릿으로 되어 있어 제대로 먹기 위해선 입보단 손으로 뜯는 편이 나아 보였다. 그런 문을 활짝 열어줘도, 주저함이 앞서는 성격 탓에 멈칫하니까 먼저 손을 내밀어 당겨주니 짓궂은 농담에도 질색은커녕 웃으며 들어가 반겨주는 내분 신기함 그 자체. 벽지는 하얀 초콜릿을 얇게 처바른 느낌에 화려하진 않아도 심심하지 않은 색감의 줄무늬가 몇 줄기, 천장은 잘 구워져 푹신한 빵의 속살 그대로 송송 뚫린 구멍이 여기저기 이어져 있어 그 위를 살피면 볼  있는 아까 봤던 생크림의 색감. 신발을 벗기도 전에 이끌려 카스텔라 윗부분의 무난한 바닥으로 발을 올리자 마주치는 시선은 또 하나의 소녀였다. 나를 초대한 소녀와 비슷하게 생겼으면서도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위화감은 필시. 그래도 좋게 지내기 위해 인사하지만, 저쪽에서 그럴 의사가 없어 보였기에 상관하지 않고 집을 구경했다. 모든 것이 행복한 탐방. 이끌어주는 소녀가 소박하게도 과하게도 놀렸지만, 싫진 않았다. 그러다 소녀가 떠나고 다시 나타난 소녀는 다른 분위기. 별다른 말 없이 손목을 잡아 자기 방으로 끌고 갔을  의아했지만, 거기서 거부했어야 했다.

"쿳…."

의미불명의 미소를 본 순간 문이 닫히고.

"…히-힛!"

지금까지와 다른 목소리를 듣자, 세계가 깨졌다.

"끄-흩…!"

허우적거리며 발버둥 쳐도 소용이 없어 포기하는데, 예상외로 느껴지는 상냥한 손길. 처음엔 무작정 눈물이 나와 엄마 손을 놓친 아이처럼 울고만 있었다. 그런 나를 어느새 눕히곤 이마를 쓸어내리는 다정한 온기에 따라 점점 차분해져 흔적조차 남지 않은 눈물 자국. 비록 악몽이라 생각한 곳으로부터 도망치지 못했으나, 사실은 나를 편안하게 해주려고 달래줘서 곧 안심하고 편안히 몸을 기댈 수 있었다.

"…빠. 일어났어?"

풍경은 까마득한데 누운 곳이 침대처럼 편안해 눈을 감은 채로 감촉만 느끼다 뜨니까 시선이 뭉개져 모호해진 경계.

"으-음…."

느긋하게도, 지금 느끼는 감각이 꿈이었단  깨닫자 복잡한 심경으로 살짝 몸을 뒤척였다.

"그래그래. 괜찮아. 오빠."

머리를 쓸며 토닥여주는 상냥한 목소리.

"극-!"

그러나 샅에서 느껴지는 극렬한 통증에 허리가 새우처럼 저절로 숙어졌다. 꿈에서 느껴졌던 고통이 현실적이던 이유는 실제로 너무 아팠으니까….

"잘 잤어?"

걱정스러운 물음에 예의상 그렇다 말해주고 싶어도 통증을 삭히느라 괜히 입술만 꾹 닫게 됐다.

"으, 응…."

직접적인 통증에 정신적인 충격도 미뤄져서 아픔을 다그치려 급급히.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불알을 쥐어짜는 듯한 격통과 그런 자신을 간호하는 여자친구의 품에 안겨 누워 있다는 사실이었다.

"으으…."

여린 신음을 하는 것도 그나마 아린 정도로 가라앉으니까.

"무리하지 마 오빠. 좀  쉬어도 돼. 이제 괜찮아."

이를 악물게  증상도 잦아져서, 어쩌다가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머리를 굴렸다. 동시에 자세가 불편하여 조금 뒤척이지만, 쉽게 가시지 않은 통증이라 어쩔 수 없이 소극적으로 움츠리는 동작.

"…큭-!"

아…흑, ……제기랄.

뒤늦게 차오르는 분함과 서러움에 희진이의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졌다.


분명 깨어난 거 같은데, 불러도 대답 없이 끙끙 앓다 얼굴을 보이기 싫은 듯 더욱 밑으로 파고들어서 부끄럽게도 배 옆과 맞닿은 이마.

"흐-윽…."

걱정스러움에 얼른 허벅지에 머리를 눕혀 회복을 기다리면서, 좋지 않은 꿈을 꾸고 있어도 이마에 난 땀만 조용히 닦아줄 뿐이라 항시 보여줬던 적극적인 성격과 반대로 조신하게 기다려줬다. 깨어나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기 위해 어떤 질문부터 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잠결에 힘겨워하는 표정을 보니까 사그라지는 의심. 대신 화르륵 피어오른 걱정만 만발해서 일어나더라도 먼저 말해주기 전까지 가만있기로 마음먹었다.

"으흐, 긁! 흑…!"

그렇게 다짐했건만, 일어날  같더니 뜰 생각 없는 눈은 오히려 꼭 감고 품으로 들어와 훌쩍이는 목소리만 사무치게끔.

"후-윽! 후-윽!"

평소 소심한 성격을 내심 티 안 내려고 노력하던 모습을 아니까, 이런 약한 모습에 더욱더 당황스러워져 무슨 일인지 물으려고 목 밑까지 올라온 궁금증을 끝내 밀어 눌러 토닥이다 잠깐 떠났던 손을 다시 올려 아가 다루듯 두드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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